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15
“—제가 했습니다, 페드로 아저 씨.”
레온 일행의 등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음절이 끝나기도 전에 세 사람 의 몸이 뒤집혀, 허리춤의 검 자루에 손을 가져다댄다.
A랭크급 무인 셋의 배후를 자연스 럽게 점하다니?
기습이라도 당했다면 큰 낭패를 봤 을 것이다.
‘강하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 그를 마주했 을 때, 레온은 전율마저 느껴야했다. 기세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풍모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함이 존재 했다.
다갈색의 피부 위로 울퉁불퉁한 근
육이 솟아있고, 2미터가 좀 넘어갈 듯한 체격은 묵직하면서도 강건하다.
무엇보다도 위협적인 것은 그 내면 에 잠들어있었다.
태산처럼 크고 강력한 몸 안에서 생명력(오러)이 소용돌이를 만들고, 지면에서 올라온 땅의 힘과 불길의 가호가 덧입혀져 격렬한 와류를 한 층 더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옷 위를 은은하게 둘러 싼 광휘, 성력을 합하면 무려 세 종 류의 힘에 축복받은 괴물이었다.
[강하구만. 이놈이 아마 현 유겐트 최강이겠어.]레온은 내심 동감했다.
힘의 크기만 큰 게 아니라 무(武)의 소양도 엄청나게 깊다. 반 걸음 파고 들 틈조차 안 보이니, 세 사람이 협 공을 가해도 일방적으로 당할 거라 는 느낌밖에 없었다.
마스터. 그것도 카렌과는 달리 완숙 하게 경지에 접어든, 제 그릇의 끝을 본 명인이었다.
“그, 그랑 마이스터…?!”
하지만 세 사람의 놀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페드로의 비명 같은 목 소리에 더 커졌다.
그랑 마이스터.
유겐트 최고의 대장장이를 상징하 는 칭호가, 저 드워프처럼 보이지 않 는 자의 것이라니? 셋의 놀라움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이, 남자는 그들 에게도 몸을 돌려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유 겐트의 그랑 마이스터와 신성교단의 추기경을 겸하고 있는 자, 이렉사나 라고 합니다.”
“그랑 마이스터에…!”
“추기경까지…!?”
갈론드와 카렌이 전투태세도 잊고 두 눈을 부릅뜨자, 레온 역시 그 이 름에 동요해서 숨을 멈췄다.
추기경 이렉사나.
『광맥침략자』의 담당자로 나와있었 던 이름이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셋이 굳어져 버린 사’이, 페드로로부터 전후사정을 들은 이렉사나가 말했다.
“페드로 아저씨가 만든 무기들을 저 검이? 굉장하군요.”
레온의 허리춤으로 간 시선을 보아 하니, 페드로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 반응을 본 레온은 이내 직감했 다.
아무래도 이렉사나는 그의 신원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남들 모르게 신분 을 알리려면, 저 흥미를 이용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 쥐어보시겠습니까?”
“ 예?”
검사에게서 쉽게 나올 수 없는 제 안에, 이렉사나가 드물게 놀란 표정 으로 되물었다.
무인의 주무기는 곧 제2의 생명이 나 다름없었으니.
“정말로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그러나 대장장이로서 마이스터급의 무구들을 꺾어버린 검을 지나칠 순 없었는지, 레온이 다시 한 번 허락하 자 이렉사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 밀었다.
체격과도 같이 두꺼운 손아귀가 검 자루를 쥔 순간.
이렉사나의 두 눈이 경외심으로 물 들었다.
성검 엘시드.
문외한은 알아볼 수 없는, 성검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신성 그 자체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대장장이임과
동시에 추기경, 여신을 섬기는 자였 기에 알 수 있었다.
또한 성검의 소유자는 한 명뿐이었 다.
“…따라와주십시오, 네 분 모두.”
용사가 찾아왔다면 그 용무는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레온의 뜻을 짐작하여 더 말하지 않고, 이렉사나는 더 심도 있는 이야 기를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뒤따라서 모든 사람이 열람실 을 빠져나가자, 케이트만 그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두 눈을 깜빡거 렸다.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로 돌아왔지만, 무슨 일이 일 어날 것 같은 조짐만은 느낄 수 있 었다.
“길드의 조사원으로 오신 거였군 요.”
페드로는 일단 대장간으로 돌려보 내고, 세 사람의 방문자와 마주한 이 렉사나가 말했다. 그의 권한으로 빌 릴 수 있는 방은 얼마든지 있었다.
서로 할 이야기는 많았다.
마검에 홀린 갈론드를 레온이 멈춰 세운 것.
그 출처를 쫓아서 13에어리어에서 1에어리어로 온 것.
〈로드릭의 전승〉으로 권리를 얻어, 마이스터 페드로와 함께 기록열람실 을 찾아간 것.
“아, 그러고 보니.”
거기까지 말한 레온이 한 가지 의 문점을 입에 올렸다.
“이렉사나 추기경님, 어째서 저희들 이 알아보려고 한 곳에 접근제한을 걸어두신 겁니까?”
나머지 두 사람도 궁금하다는 얼굴 로 이렉사나를 바라보자, 그는 찻잔 을 한 번 홀짝이고 나서 말했다.
“불길한 기척을 느꼈습니다.”
“불길한 기척…이요?”
“ 예.”
단호하게 대답한 이렉사나가 왼팔 의 소매를 걷자. 그 굵은 팔뚝에 새 겨져있는 문신이 드러났다.
성 흔 (Stigmata).
여신의 권능을 일부 재현할 수 있 는 은혜이자 죽복.
“제가 추기경으로서 내려받은 것은
‘인도자의 성흔’입니다. 그릇된 것, 사악한 것을 감지하면 왼팔의 성흔 이 빛을 내지요. 매일같이 이 성흔으 로 유겐트 왕국 곳곳을 살펴보는 것 이 제 일과였는데, 해당 광구에서 성 흔이 반응했습니다.”
“무언가가 있는 거군요.”
“예, 그래서 바로 접근제한을 걸었 습니다만….”
갈론드를 한 번 바라본 이렉사나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좀 늦은 모양이군요. 13 에어리어까지 갈 정도면, 왕국 전역 의 대장간에서 수백 자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양이 유출되었을 겁니 다.”
“전부 회수할 수 없을까요?”
“마검을 골라내는 법을 알 수 있다 면 좋겠습니다만….”
그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카 렌이 말했다.
“피.”
모두의 눈이 그녀에게 쏠리자, 카렌 은 제 허벅지에 매달린 단검 한 자 루를 뽑아들면서 설명했다.
“갈론드가 아까 그랬잖아요. 마검은 피를 본 후에야 본색을 드러냈다고.”
“그랬지.”
“피를 본 마검은 사용자에게 알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니, 검을 만들고 서 한 번씩 피를 묻혀보도록 하면 마검을 골라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고 제 손가락에 단검 끄 트머리를 누르니 피가 한 방울 홀러 나와서 묵색 검신을 적신다.
그걸 본 사람들이 잠시 침묵했다.
나브지 않다.
아니, 잘 따라준다면 이보다 더 효 율적인 방법도 없다.
꼴통들로 가득한 드워프족이라도
그들에게 ‘지시’할 수 있는 존재가 여기 있었으니까.
“••좋은 의견이군요.”
이렉사나가 옅게 웃으면서 말했다.
“왕국 전역의 대장간에 전달하겠습 니다. 근래에 만든 무구 전부를 피를 몇 방울 묻혀서 검사하라고. ‘오염된 광물’을 그 사유로 거론한다면 다들 따라주실 겁니다.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때까지는 엄수해야겠지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면 역시….”
“예.”
레온의 말을 긍정한 이렉사나가 대 답했다.
“대광맥 내부에 숨어있는 오염의 근원, 정체불명의 존재를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혼자 나서서는 그 일대를 다 살펴보 기도 힘들 것 같더군요.”
대광맥은 세계 최대의 광산이었다.
지금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구역 만 해도 웬만한 영지보다 방대하며, 평지와 다르게 온 사방을 파고들어 가기에 입체적인 면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게다가 광산지대는 그중 반 이상이 마물의 서식지였다.
“다수의 정예가 필요합니다.”
소수정예(少數精銳)로는 부족하다.
광대한 면적을 탐색하는 것과 동시 에 그 일대의 마물을 싹 쓸어버릴 수 있는 무력이 필요했다.
최소 A랭크.
한 영지에 한두 명이나 머무르면 다행인 실력자들이.
“갈론드님.”
“부디 말씀하십시오.”
“길드에 제 이름으로 협조요청을 넣겠습니다. A랭크 이상, 그 이하라 도 능력이 출중하다면 모두 불러주 십시오. 유겐트에 세워져있는 길드
전체가 제 의뢰대상입니다.”
“아! 그랑 마이스터의 뜻, 이해했습 니다.”
일종의 총동원령이다.
비록 길드가 한 국가에 치우치는 일 없이 운영된다지만. 이 정도로 큰 사태에서 그냥 발을 빼버린다면 유 겐트라는 국가를 적대하게 될 터였 다.
위급상황엔 수지가 안 맞는 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했다.
“그리고 레온님.”
갈론드에게서 눈을 뗀 이렉사나가 고개를 돌려, 황금색으로 빛나는 레
온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 시선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잠시 독대를 요청하고 싶습니다만.”
그거야말로 레온이 기대하고 있던 바였다.
갈론드가 한 발 먼저 1에어리어의 길드로 떠나자, 분위기를 읽은 카렌 도 자연스럽게 방을 빠져나갔다.
마침내 방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 게 되었다.
유겐트의 그랑 마이스터이자 신성 교단의 추기경, 이렉사나.
그 신분의 지고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왕명이라도 불평부터 늘어놓는 드 워프들이 그의 한 마디면 고분고분 하게 따르며, 유겐트 전역의 성철쇄 기사를 소집하고 동원할 수 있는 권 한도 보유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신의 무력이 뒤떨 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타이탄족 전사장들도 웬만한 마스 터 수준으로 강했지만, 이 사내보다 강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여신의 종, 이렉사나가 용사님을 뵙습니다. 빛을 인도하는 자께서 방문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 다.”
황제 앞에서도 고개를 꼿꼿하게 들 수 있는 남자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레온의 발치에 두 무릎을 꿇었 다.
극공경(極#敬)의 자세.
사실상 유겐트의 최고권력자나 다 름없는 이렉사나가, 아직 B랭크에 불과한 모험가에게 하급자를 자처했 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먼저 스스로의 눈부터 의심했으리 라.
이렉사나 앞에 선 레온조차 당황스
러울 지경이었다.
“추기경님, 일어나주세요. 많이 부 담스럽습니다.”
“예, 용사님께서 그러길 바라신다 면.”
그의 바람대로 일어났으나, 여전히 허리를 좀 숙여 레온을 내려다보지 않는 태도가 실로 공손했다.
추기경과 용사.
여신의 뜻을 받드는 자와 그 뜻을 대행하는 자.
그러니 이렉사나가 레온을 공경하 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태생부터 가 평민 출신에다, 아직 제 신분에
익숙해지지 않은 레온으로서는 적응 하기 힘들었지만.
‘게다가 저 체격으로 아무 기척도 없이 다가오니까 놀라게 된단 말이 지….’
카심의 자연체에 비하면 좀 떨어지 지만, 이렉사나 역시 그 몸가짐에서 무예의 깊이가 드러났다. 레온의 〈안법〉조차 잠깐 허술해지면 그의 모습을 놓칠 정도였다.
2미터가 넘는 거한이 천천히 걷고 있는데도 단련된 시야를 벗어난다 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온이 잠시 고민 했다.
‘어, 잠깐만.’
이렉사나는 정말로 인간인가?
드워프가 저렇게 클 리가 없으니 인간이겠지만, 불과 땅의 정령력을 보유한 인간도 꽤 드물었다. 그리고 유겐트 최고의 대장장이인 ‘그랑 마 이스터’의 칭호가 드워프도 아닌 인 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인가?
그의 시선을 알아차린 이렉사나가 미소지 었다.
“저는 하프드워프입니다.”
“ 예‘?!”
속마음을 읽힌 레온이 크게 당황하 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이렉사나는 태연한 얼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님이 드워프셨고, 어머님은 인 간이셨지요. 두 분 모두 행복하게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드워프의 피가 섞였음에도 이 덩 치다보니, 의문을 느끼게 할 수밖에 없더군요. 다행히 아버님의 손재주 와 정령친화력은 모두 물려받았습니 다만.”
인간과 엘프의 혼혈, 하프엘프보다 몇 배나 드물다는 것이 하프드워프 였다. 인간족의 미적 기준은 보통 드워프족 이성을 매력적으로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렉사나는 그 드문 경우에 서 드문 아이가 태어났던 것이고, 인간과 드워프의 장점을 모두 가지 고 태어나서 그랑 마이스터의 직위 까지 올랐다.
엘시드가 그 말을 듣고서 투덜거렸 다.
[축복받은 몸의 소유자로군. 인간과 드워프의 장점만을 다 타고났다니,
확률로 따져보면 천문학적인 수준일 텐데』
‘두 종족의 장점이라, 예를 들자 면?’
[인간의 키에 오러운용능력, 드워프 의 근밀도와 골밀도에다 두 속성의 정령친화력이 추가된 거다. 신성력 까지 더해졌으니 저놈 혼자서 소드 마스터 둘을 감당할 수 있을걸.]눈어림으로 잰 체격은 208cm에 213kg으로. 전사로서 결코 맞상대 하고 싶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분만이 아니다.
드워프족 고유의 경화(硬化)능력에
신성력, 정령력도 모자라 오러마스 터라니! 레온이 괜히 보자마자 벽을 느낀 게 아니다. 카심과 마찬가지로 그가 범접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러나 이렉사나를 살펴보는 것과 별개로 이야기는 흘러가, 대광맥 수 복작전의 청사진이 탁자 위에 펼쳐 졌다.
“제 성흔이 반응했던 곳을 중점적 으로 봉쇄선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B25, Mil. A4 구역의 교 차점에 놈■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클 것 같아서요.”
“현철과 미스릴, 아다만티움의 채굴 지군요.”
갈론드의 검을 제작하는데 쓴 재료 의 출처였다.
세 곳 모두가 오염되었을 수도 있 었고. 한 곳만 오염되었을 수도 있 었다. 탐사대가 직접 들어가보기 전 에는 결론을 낼 수 없는 이야기였 다.
당연하지만 봉쇄선은 넓고 길게 펼 쳐져야했다.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한 곳이라도 빼먹었다가 그 구멍으로 놓치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수 색 해야한다.
•엘시 드.’
[음?]레온은 자연스럽게〈공법〉을 떠올 려, 엘시드의 능력으로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나 그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안 돼.]‘ 어째서?’
[성검의 봉인이 풀려버린 이상, 나 는 네 인과율에 직접적인 간섭을 할 수 없어. 아까처럼 잠깐 가르치는 정도라면 몰라도, 직접적인 조력과 전투행위는 이제 불가능하다.]‘…그러고 보니 블레인에서 도와줬
을 때도 한 달이나 깨어나지 못했 지.,
봉인이 걸려있었을 때도 그 정도의 페널티가 있었는데, 다 풀린 지금이 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엘시드의 존재 자체가 여신이 어떻게든 집어 넣은 편법이라, 이 이상을 시도했다 가는 성검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마물 하나 찾자고 조언자이자 스승 인 그를 잃을 순 없었다. 그래서 레 온이 다음 해결책을 고민하려는데,
‘내가 직접 해보라고?’
[경험치란 원래 실전으로 쌓아올리 는 법이지.]겨우 창을 한 자루 구부린 것에 불 과했으나, 성공시킨 적도 있으니 아 예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