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28
“아싸! 약속하신 거예요!”
이렉사나의 확답을 받은 카렌이 제 자리에서 덩실덩실 몸을 흔들었다. 안 그래도 그녀 자신이 쓴 기록만으 로는 신뢰도가 많이 부족했는데, 추 기경의 인증이 더해진다면 감히 신뢰 도를 문제삼는 자들은 나타나지 않을 터였다.
“고작 제 서명으로 그토록 기버하시 다니, 참으로 검소하신 분이시군요. 역시 용사님의 동료분다운 인품이십 니다.”
“하, 하하… 뭐, 그렇죠?”
카렌의 의도를 읽은 레온이 떨떠름
하게 웃자, 엘시드가 그 돌아가는 꼴 을 보고서 키득거렸다.
[검소하기는 개뿔.]‘야!’
[요즘에는 검은 소를 검소라고 부르 냐? 나 때에는 흑우라고 했던 거 같 은데, 그 알렉토의 자식놈이 흑우일 줄은 몰랐네.]뜻 모를 농지거리를 한 귀로 홀리 며, 레온은 슬슬 강당으로 돌아가려 고 몸을 일으켰다.
이렉사나는 신경쓸 거 없다고 말했 지만,〈절망〉과 싸우면서 그가 입었 던 상처는 막중했다. 코르디아가 쓴
외법은 도대체 무엇인지, 레온이 성 검으로 그 독성을 대부분 중화시켰는 데도 상처부위가 빠르게 썩어들어갔 다.
그래서 이렉사나는 즉시 특단의 조 치를 실행했다.
‘윽, 괜히 떠올렸네.’
자신의 손으로 갈비뼈를 직접 들어 내, 부패한 살점을 아무 표정도 없이 뜯어버리던 모습이 눈에 선명했다.
그야말로 철인과도 같은 정신력이었 다.
“추기경님, 나중에 또 찾아오겠습니 다.”
“예, 오늘은 부디 편안하게 연회를 즐겨주시길.”
“저와의 약속도 잊으시면 안 돼요?”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 한 마디씩 작별인사 를 남기고, 이렉사나의 개인실을 떠 났다. 이내 정갈하면서도 엄숙한 분 위기의 복도가 레온 일행을 반겼다.
1에어리어에 존재하는 신성교단의 지부.
대광맥 원정대는 귀환하고서 만 하 루를 재정비에 소모하고, 바로 그 다 음날의 연회에 초청되었다.
레온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끼이이 익一.
일시적으로 연회장이 된 대강당의 문짝을 열자, 그 안에서 왁자지껄하 던 사람들의 눈이 그들을 향했다.
누구보다 먼저 베르게르가 제 목청 을 높였다.
“오! 드디어 우리들의 주인공께서 행차하셨구만!”
이미 맥주를 몇 통 들이켰는지, 낯 이 시뻘게진 베르게르가 껄껄 웃으면 서 그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레온의 어깨를 탁탁 두드
리면서 말했다.
“갈론드한테 몇 번이나 들었는데, 형씨가 내 목을 땄다며?”
“예?! 아, 그건…”
“사정은 알고 있으니까 미안해하지 말라고! 내 모습을 베낀 괴물딱지가 사람을 죽여대는 것보단 낫지!”
진심으로 별 유감이 없는지, 베르게 르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왼손에 쥔 돼지갈비를 뜯었다.
부귀공명을 좇아서 칼날 위를 춤추 는 게 용병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그걸 구분할 줄 모르는 놈은 이름 몇 자를 날려보기도 전에 싸늘한 시 체가 될 분이었다.
“저 녀석이 그 레온이라고? 생각보 다 더 어린데.”
“어리다고 얕보지 마. 베르게르를 죽인 놈이야.”
원정대원들도 복제체의 존재와 그 힘을 보았거나, 전해들은 바가 있다 보니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A랭크 중에서도 ‘꿰뚫는 자’, 베르게 르는 제법 유명했다.
한 자루 창으로 백인대를 6개 꿰뚫 고, 단원들과 함께 성을 함락시켰던
사내다. 전력으로 창을 든 베르게르 에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인물 은 이 안에서도 몇 없었다.
“멍청한 놈들.”
11조와 동행했던 정령사, 이름 모를 남자가 와인 한 모금을 삼키면서 작 게 중얼거렸다.
그의 생각에 주목해야할 것은 레온 이 아니었다.
그 옆에 태연한 낯짝으로 앉아있는 여자.
카렌이야말로 요주의 대상이었다.
‘어쌔신마스터가 A랭크 모험가 노릇 을 하고 있었다니…!’
어쌔신은 그 기량이 높아질수록 성 장하기가 힘들어, 특급에 해당하는 A 랭크만 해도 굉장히 희귀했다.
그런데 마스터급, 드랭크의 어쌔신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14조, 백병전에 도가 튼 용병들조차 단칼로 절명시킨 존재.
‘만약 날 노린다면 3초도 못 버티고 죽어나가겠지.’
전위보다 후위, 근접전보다 원거리 전에 특화한 정령사는 곧 어쌔신의 좋은 먹잇감이다. A랭크를 상대하더 라도 승산이 2할 미만인데, 카렌은 무려 S랭크의 어쌔신마스터다.
싸울 이유가 없는 상대라도 그 수준 의 먹이사슬이 성립하면 공포를 느끼 는 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더 용감하다 던가?
남자는 별 생각도 없이 카렌에게 말 을 걸어보는 자들을 몇 번 흘깃거리 다가,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떴다.
“크으의 역시 유겐트의 술은 최고 군!”
맥주거품을 코 위에 묻힌 채, 만취 한 갈론드가 레온 옆으로 다가와서는 즐겁게 인사했다.
“왔는가, 조장! 자네의 무용담을 드
높이느라 입술이 다 부을 지경이었다 네. 하하하하!”
“ 취하셨군요.”
“그럼! 취해야지! 이렇게 좋은 날인 데!”
갈론드는 손에 쥔 맥주잔을 들어올 리면서 고함쳤다.
“빌어먹을 거미의 멱을 딴 으조장, 레온을 위하여!”
위하여!
강당에 있던 사람들도 그 외침에 호 응하듯이 잔을 한 번씩 부딪혀, 연회 장은 돌연 술잔이 격돌하는 소리와 꿀꺽거리면서 술을 마셔대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본의 아니게 주목받게 된 레온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물에 물 탄 듯, 술 에 술 탄듯 있으려고 했건만.
‘하긴, 그런다고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 없겠지.’
A랭크 107명이 참가한 원정대에서 혼자서 B랭크였던 레온, 그가 원정목 표 중 하나를 쓰러트린 것이다.
이렉사나의 활약이야 당연한 일이었 지만, 그의 활약은 전혀 당연하지 않 았다. 또한 베르게르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실력이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초대형 루키와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자 다가오는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 었다.
“레온이라, 좋은 이름이로군. 내 조 부께서도 한때 사자라고 불리신 적이 있으셨는데….”
“계속 모험가로 활동할 생각인가? 소속될 곳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 해주게. 특급의 대우를 약속하지.”
“특급은 무슨, 네놈 클랜은 신인들 의 단물만 쪽 빨아먹고서 내뱉는 걸 로 유명하지 않았나?”
“뭐라고! 지금 내 동료들을 모욕한 거냐!”
오죽하면 레온을 포섭하려다가 서로
방해공작을 펼쳐, 진짜 열받은 사람 들이 치고받는 일도 있었다.
원정 직후라서 다들 몸이 성치 않 아, 목숨을 건 싸움까지는 번지지 않 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교단 내부 에서 유혈사태를 벌였다가는 그 뒷감 당이 힘들었다.
레온은 그저 방관자로서 한 발 물러 나있었다.
‘호의가 3할. 형식적으로 다가온 사 람이 5할, 악의를 지니고 있는 사람 이 2할인가.’
그의 예민한 오러센스가 오랜만에 빛을 발했다.
레온은 곁에 다가왔던 사람들의 호 오(好惡)를 읽어, 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파악했다.
감탄하는 자, 흥미를 느낀 자. 칭찬 하는 자.
질투하는 자, 불신하는 자, 무시하는 자.
두 부류로 나누기만 해도 사교관계 가 상당히 간략해진다.
“그나저나 자네 포상은 어떻게 할 셈인가?”
그때, 갈론드가 혀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원정대원들의 최대 관심사도 그것이 었다.
유겐트 왕국과 신성교단이 공동으로 소집령까지 내린 임무, 그 대가로 주 어지게 될 포상은 얼마나 대단할까!
그리고 이렉사나는 그 기대를 배반 하지 않았다.
—1 에어리어에서 주문제작(Order-made) 한 무구.
유겐트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 장이들이 모인 곳에서 한 개의 무구
를 제공한다는 소리였다.
원정대원들은 한 명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
눈이 뒤집혀서 고개를 끄덕거릴 수 밖에 없었다.
“크하하하! 뭐야, 포상의 이야기인 가? 나는 이번에 십자창을 한 번 써 보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어!”
베르게르도 대뜸 끼어들어서 한 마 디를 던지고,
“저는 가볍게 입을 수 있는 방어구 가 필요하겠네요. 지팡이 쪽은 불만 도 없고, 여차할 때 한두 번쯤은 자 력으로 살아남을 필요를 느껴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헤이즐도 제 생 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무래도 망가져버린 방패를 받아야겠지…?”
14조의 용병 중 하나, 타워실드를 록 이터의 침에 잃어버린 남자도 그 렇게 푸념했다. 그 말에 그냥 즐거워 하던 사람들이 가볍게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레온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몇 방울 흘려버린 술을 닦으 며, 타워실드 덕분에 적의 의태를 알 아차렸던 것도 떠올렸다.
‘어쩌면 칼레이더는 사로잡은 자의
무의식을 토대로 복제를 만든 걸지도 모르겠네. 망가졌던 방패가 다시 생 겨났던 건, 저 사람의 무의식이 아직 방패를 잊지 못했기 때문일테고.’
[그럴 수도 있겠지.]엘시드가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뒤이어 레온은 또 한 명의 손님을 맞이해야했다.
“와하하하! 또 보는군, 자네!”
13에어리어의 길드장, 라이언이 비 공선까지 타고 날아와서 그들을 찾았 다. 갈론드에게 조사원 자격을 부여 해서 보낸 후, 이렉사나의 소집령에 가장 빠르게 반응해서 A랭크급 인원
들을 파견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갈론드와 함께 원없이 술을 퍼먹었 는지, 라이언은 눈이 반 가까이 뒤집 힌 채로 호언장담했다.
“레온, 자네는 금패야! A급이라고!”
“절차가 아직 좀 남아있어서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주게나! 내 손으로 직접 금패를 가져다주지!”
실력은 이미 충분하고, 실적은 이번 원정대에서 칼레이더를 토벌함으로써 적정 기준을 만족했다.
라이언이 입밖에 낸 순간, 그의 승 급은 확정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 감흥은 없었다.
A랭크나 길드의 평가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본 탓일까. 조금 더 활동하기 편해졌다는 감상이 전부였다.
‘뭐, 보상이라면 더 좋은 것을 받기 로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수다 덕분에 흐지부 지된 화제였다.
원정대의 1등 공로자면서 교단이 지 탱해야할 인물, 용사.
이렉사나는 그와 카렌에게 모종의 선물을 약속했다. 신분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줄 수는 없었지 만, 좋은 빌미가 생겼으니 그 흐름을
타면 될 분이었다.
레온은 좀 떨어진 자리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카렌을 보며, 두 사람이 받기로 한 선물을 떠올렸다.
유겐트를 대표하는 상징의 정점.
주인의 자격마저 증명해야만 그 소 유권을 인정받는 무구.
‘유겐트스틸 (Jugend-Steel).’
무인들이 제 목숨을 담보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하는, 한 자루의 값어 치가 능히 성채와도 비견된다는 보물 드_
그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약속받은 포상이 었다.
대강당에서의 연회를 끝마치고, 바 로 그 다음날이었다.
원정대는 즉각 해산되었다.
C랭크나 B랭크와 달리 A랭크는 대 체불가능한 인력이며, 한 지역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들을 차지하고 있 었다. 자리를 좀 오래 비우기만 해도 큰 공백이 생길 정도라서, 훗날의 재
회를 기약하고는 발리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반대로 두 사람, 레온과 카렌 은 한가했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이 기도 했고, 이렉사나가 그 공로를 직 접 보증했기 때문이었다.
대광맥 원정의 1등 공신에게 채찍 질을 할 정도로 무분별한 인간은 없 었다.
“하아암一.”
이른 아침부터 잠을 깬 카렌이 길 게 하품했다.
“신성교단은 다 좋은데 너무 부지
런한 게 문제야. 새벽 4시 반에 일 어나는 일과가 보통이라니, 그렇다고 또 일찍 잠드는 것도 아니더만.”
암살자로 살다보니 그 체질부터가 야행성이 된 카렌에게는 제법 괴로 운 시간대였다.
레온 역시 가볍게 히품하면서 푸념 에 어울려주었다.
“성직자들은 기본적으로 극기(荒己) 와 고행(苦行)을 수행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니까. 먹는 것을 줄이거나, 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그 일환이 겠지.”
“그런 게 강해지는데 정말로 도움
이 될까?”
“전투를 목적으로 한 단련만 있는 게 아니잖아. 정신력이나 신앙심 같 은 부분을 고취시키는 걸지도 몰라.”
오러는 몸에 축적한 마나를 정제하 여, 마력은 몸 안에 만든 서클을 회 전시켜서 제어권을 손에 넣는다.
그렇다면 성력은?
여신이 직접 내려주는 힘은 어떻게 단련해야할까?
“…‘선행을 거듭하고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그 문구만 봤 을 때는 꼭 고리타분한 도덕책 같았 는데.”
카렌의 말마따나 보통 사람들은 그 뜻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더욱 특별했다.
단순하게 힘을 원한다거나, 특정한 목적이나 야망을 가지고 두 손을 모 아서는 성력을 깨울 수 없었다.
선의지 (善意志).
선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일률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나갈 수 있는 자들 만이 성직자가 된다. 주어진 삶에 감 사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 며, 길가에 떨어져있던 금화를 주인 에게 스스럼없이 돌려줄 수 있는 사 람들.
“그거 참 멋지네.”
어째서인지 카렌은 조금 씁쓸한 표 정으로 말했다.
그녀 스스로가 그렇게 살 수 없었 기에 더더욱, 빛의 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눈부시게 보였다.
레온은 차마 할 말이 떠오르지 않 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였다.
“여기에 계셨군요, 레온 형제님. 그 리고 카렌 자매님도.”
복도 저편에서 걸어온 성철쇄기人}, 제오프가 둘을 알아보고 반가운 얼
굴로 다가왔다.
두 사람도 그를 발견하고서 마주 인사했다.
레온이 풀플레이트 차림을 한 제오 프를 보고 물었다.
“벌써 복귀하시는 겁니까?”
“ 예.”
제오프가 싱긋 웃었다.
피로감은커녕 한 치의 그늘도 내보 이지 않는, 상쾌하기까지 한 미소였 다. 갑자기 원정대로 소집되느라 비 공선을 타고 먼 곳에서 날아왔을 텐 데, 사흘만에 다시 임무에 복귀해야 한다.
싫은 소리 한 마디쯤은 내뱉을 만 한데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보였다.
“제 자리를 며칠이나 비워뒀으니,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처리해야 겠지요. 후임들을 못 믿는 것은 아닙 니다만,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좀 불 안해져서요.”
“제오프 경은 참 훌륭한 선임이십 니다.”
“하하, 형제님께서 칭찬해주시니 더 의욕이 솟는군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제오프지 만, 그의 실제연령은 이미 50을 넘
어섰다. 충만한 신성력과 꾸준한 단 련, 정중한 행동이 그를 젊어보이게 한 것뿐이다.
두 사람과 잠시 덕담을 나누다가, 그는 시계를 한 번 보고 앉은자리에 서 몸을 일으켰다.
“슬슬 가봐야겠군요. 비공선에 자리 를 예약해둔지라.”
그리고는 흐뭇한 눈으로 둘을 번갈 아보고, 레온에게 나직이 몇 마디를 속삭였다.
“형제님, 다음에 뵐 때는 단장님이 라고 불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 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