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58
득했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졸렬함이, 추악함이, 연약함이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었 다. 리안과의 결투에서 승리하고도, 아카•데미를 떠나서 몇 번의 역경을 넘어서고도.
그의 마음속에는 먼 옛날의 상처들 이 남아있었다.
그렇게까지 해도 레온이 외면하지 않자, 심상은 다시 한 번 형태를 바 꾸었다.
이번에는 그가 모험가 차림새를 한 모습이었다.
《나는 블레인을 구했어!》
당당하게 가슴을 편 레온이 의기양 양하게 소리쳤다.
《리안이었다면 결코 구해내지 못했 을 거야! 루베나도, 내가 용사였기 때문에 구할 수 있었어!》
저열하기까지 한 우월감.
그걸 마주한 레온은 스스로의 목구 멍 너머에서 올라오려던 구역질을 겨우 참아냈다.
《처음부터 이랬어야해! 리안 따위 는, 내가 용사로 거듭나기 위한 발판 에 불과했다고! 하하! 황궁에서 귀하 게 나고 키워진 황자님께서 또 무슨
고생을 해봤겠어?》
더럽고 추한 말이었다.
우월감에 찌들어서 남을 내려다보 는, 경멸받아 마땅할 말을 그와 똑같 은 모습을 한 자가 지껄이고 있었다.
그에 몇 번이나 구역질이 치밀었지 만,
‘아니야’라고 말하려는 것을 참았다.
‘닥쳐’라고 소리치려는 것을 참았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래서는 안 된 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약함을 부 정하고 억눌러서는, 그 전부를 포용 했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어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망할 황자님이 내 탓에 제대로 엿을 먹었잖아! 용사는 무슨, 미친 황제한 테 잡혀가서 발바닥이라도 핥지 않 으면 다행이겠지! 하하하하!》
레온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 라보았다.
추악하게 일그러트린 표정으로 리 안의 욕을 내뱉고, 그에게 동의를 구 하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뭐야! 네놈 혼자만 착한 척하시겠 다, 이거냐?! 나는 너다! 리안을 미 워하는 것도, 그 꼬락서니에 기뻐했
던 것도 전부 네 마음이야! 그걸 부 정할 생각이라면一!》
처음으로 ‘그’를 마주보고서, 레온은 말했다.
“ 고맙다.”
《—뭐?)
할 말을 잃어버린 ‘그’를 내버려두 고, 계속 말했다.
“나 대신에 욕해줘서 고맙다. 나 대 신에 슬퍼해줘서 고맙다. 나 대신에 기뻐해줘서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 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거야.”
《무, 무슨, 헛소리를.》
“그리고.”
레온은 ‘그’의 두 손을 맞잡으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이 어두운 곳에 계속 내 팽개쳐둬서, 미안해.”
그러자 ‘그’의 표정이 변화했다.
뿌리깊은 분노와 증오로 일그러졌 던 눈매가, 입꼬리가. 이를 악물고서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참아내듯이 떨 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건, 레온 자신의 마음 이었으니까.
“이젠 괜찮아.”
《•••정말‘?》
“응, 더는 외면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같이 가자고, 레온이 손을 끌어당겼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끌어당기는대로 당겨진 ‘그’가 희미 한 빛의 형태로 레온에게 스며들었 다.
강한 척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그때 와는 다르다. 지금이라면 이 약함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추함마저 끌어안고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고 다짐할 수 있었다.
“…아, 그런가.”
그제서야 레온은 이 내면세계의 본 질을 깨달았다.
“몸과 마음은, 처음부터 하나였구 나.”
마음이 곧 ‘나’를 정의한다.
물질세계에서 마음은 몸의 내용물 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몸 밖으로 나 올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엘시드는 그걸 염체(念體)라고 불렀 다.
제 의지로 세상을 덧칠하는 게 염
력이라면, 염체는 제 몸과 다름없이 세상을 누빌 수 있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그 힘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때. 엘시드가 물었다.
[레온, 넌 누구냐?]레온은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서 돌 아섰다.
성검 엘시드. 그 연결점을 공유했기 에, 그들은 내면세계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엘시드, 아니 성왕 로드릭.
내면세계의 그를 바라본 레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 태양!?”
내면세계에서 생명체는 제 마음이 규정하는 형상을 취한다. 스스로를 포식자라고 자부한다면 맹수가 될 것이요, 자유로운 여행자라고 생각한 다면 바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로드릭의 염체는 태양이었 다.
어느샌가 내면세계의 어둠은 남김 없이 그 빛에 내쫓겨, 온 세상이 찬 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그의 진면목을 본 것은 사실상 이 게 처음이었다.
엘시드의 무(武)를 가늠하기에는 레 온이 너무 약했고, 그가 보여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도 이해할 수 없었 다.
그런데 내면세계의 형상은 실로 직 관적이 었다.
강자임을 숨길 수 없고, 약자임을 숨길 수 없다. 제 형상을 정직하게 드러내야했다. 성왕 로드릭, 그 영혼 의 일부가 깃들었을 분인 성검이 이 렇게나 대단하다니!
“엘시드.”
그를 본 레온은 순순히 인정했다.
“나는, 너처럼은 될 수 없겠지.”
[뭐, 그렇지.]엘시드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이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확률로 태어나버린 돌연변이. 인간이 지닌 가능성, 재능의 총체(總體)임과 동시에 극에 도달한 존재.
인간이라는 종이 탄생해서 멸망할 때까지, 로드릭과 동등한 존재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레온의 말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예 상하지 못했다.
“나는 널 쫓아보겠어.”
[……진심이냐?]로드릭과 동시대를 살아간 천재 모 두가 좌절하고, 절망했다. 그리고 레 온의 재능은 그들보다도 열 수는 아 래 였다.
가능할 리 없다.
성공할 리 없다.
엘시드의 혜안은 언제나처럼 그 미 래를 꿰뚫고, 레온이 제 옆에 나란히 설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긍정해봤자 그에게 더 큰 절망을 주 게 될 거라고 예감했다.
그러나.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그딴 건 아 무래도 좋다고.”
레온의 등 뒤에서 솟구치는 불길이 그를 가로막았다.
찬란하기 그지없는 황금의 빛.
한 쌍의 날개처럼 치솟아오른 불꽃.
아니, 실제로도 내면세계에서 그가
규정한 형상은 날개였다. 레온이 스 스로를 무엇으로 규정했는가, 그걸 알아본 엘시드가 놀람 반 기쁨 반으 로 웃어젖혔다.
[크하하하하! ‘도전자’라고? 그 초라 한 날개 두 짝으로 내가 있는 하늘 까지 올라오겠다, 그렇게 말한 거 냐!]“그래! 그 말대로다!”
태양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그는 날개를 소원했다.
성왕의 제자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엘시드의 염체를 마주하고도 한 걸
음조차 물러서지 않으며, 레온이 의 연하게 가슴을 펴고 외쳤다.
“네가 말했지. 용사에게는 필패가 예정되어있다고.”
[아, 그랬지.]“그렇다면 난 이겨주겠어!”
성왕 로드릭을 뛰어넘겠다고. 본인 의 눈앞에서 선언했다.
“위대하게 태어난 자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고! 평범하게 태어난 내 가 널 이겨서 증명하겠어!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내일보다 더 좋은 모레를! 성왕 로드릭이 가져온 평화 보다 더 멋진 세상을 만들어주겠어!”
[하하하하! 진심이구만, 이거?]그의 포부에 흐뭇해하던 엘시드가 입을 열었다
tj A人 I •
[마음에 들어! 카심 그 덩어리도 내 염체를 마주했을 때는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날 이겨먹겠다고 소리쳤겠 다? 역시 내 제자다! 그런 의미에서 네 염체에 이름을 붙여주마!]태양에 도전하는 날개.
옛 신화에도 그러한 위업에 도전했 던 자가 있었다.
이카루스 (Icarus).
밀랍날개로 하늘을 날아, 그 너머의
태양까지 올라가려다가 추락하고 말 았다는 비운의 위인.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여, 한계에 도 전했던 인간의 상징.
이번에는 레온이 그 뒤를 잇는다.
밀랍날개와 다름없는 재능과 태생 으로 날 때부터 저 하늘에 군림했던 로드릭에게 도전한다.
누군가는 그 결과가 뻔하다고 조소 하겠지.
하지만 엘시드만은 진지하게 그 성 공을 기대했다.
[이카루스 윙 (Icarus-Wing) 이라고 부르지』
고대 신화.
머나먼 옛 시대, 자비의 여신 말고 도 다른 신들이 천상에서 지상을 굽 어살피던 때.
신의 위엄을 알면서도 저 하늘로 날아오른 자였다.
실패했을지언정 그 의기 하나는 인 정해야했다.
[실패자의 이름이 붙은 게 마음에 안 드냐?]“아니, 멋진 이름이야.”
레온은 스스로의 등 뒤를 돌아보면 서 대답했다.
〈이카루스 윙〉.
황금의 불꽃으로 된 날개.
내면세계에서 구현된 형상이지만, 그는 이제 외부에서도 이 염체를 다 룰 수 있음을 직감했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 법칙에 사로잡히지 않는 힘. 칼날처 럼 휘두를 수도, 방패처럼 몸을 보호 할 수도, 진짜 날개처럼 비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왠지 모르게 깨달았 다. 마음만 먹는다면 폭발적으로 분 사해서 신체를 가속하는 일도 가능 하겠지.
‘이카루스.’
실패자라고 해도 그 실패에는 의미 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용사와도 같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도전하는, 이 상을 쫓아가는 자.
로드릭을 뛰어넘기로 한 레온 역시 도 이카루스처럼 분수를 모르는, 이 루어지지 않을 꿈의 도전자였다.
[염체까지 깨우쳤으니 이제 한 걸 음만 남았구만.]
엘시드가 말했다.
[진정한 마스터로 거듭나기 위한 벽, 업(業)의 충족만이 네 앞에 남아
있는 장애물이다.]
“여태까지 내가 쌓아올린 업도 상 당할 텐데.”
[평범한 마스터가 될 거라면 그 정 도로도 층분했겠지.]그러나 레온은 성왕 로드릭의 직전 제자로서 이 시대에는 더 존재하지 않는 무의 왕도를 걷고 있었다.
오러마스터가 되기 전부터〈염력〉 과〈염체〉를 쓸 수 있게 된 자는 레 온밖에 없으리라. 타 마스터와 다르 게〈오러블레이드〉의 한계치가 존재 하지 않는 그였기에. 필요한 업의 규 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정상적인 수련으로는 백 년을 고행 해야할 정도로.
[뭐, 걱정하지 마라.]그럼에도 엘시드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네가 이번에 쓰러트려야할 놈 정 도라면 충분하겠다.]“뭐?!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너한테 말할 수 없을 뿐이지. 성검 안에서도 대부분은 볼 수 있거든. 슬 슬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양인 데.]레온은 물론이고 현 시대의 성직자
들도 모르겠지.
엘시드는 사막 저편에서 꿈틀거리 는, 더럽고 역겨운 기척을 느끼면서 이를 갈아붙였다.
외신의 주구.
한때 고대왕국의 지배자였음에도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백성 전부 를 지하세계의 망령으로 만든 반역 자. 힘의 규모를 보아하니 제대로 된 소환은 아닌 것 같지만, 산 자를 먹 어서 힘을 키우는 놈이다보니 안심 해서는 안 된다.
일명〈검은 파라오〉.
죽음을 먹어치우고 불완전한 그릇 이 완성된다면, 반신급의 신위를 발 휘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모래폭풍.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모래가 쌓여 있고, 바람을 가로막는 것 하나 없는 사막에서는 흔해빠진 일이었다.
암석사막과 달리 그 입자가 작고 가벼운 모래사막은 폭풍의 빈도는 물론이고 지속시간도 훨씬 더 길었 다. 기록에 따르면, 무려 50일간이나
불어닥쳤던 대규모 모래폭풍을 ‘캄 신’이라고 따로 명명할 정도였다.
한 번 휘몰아치기 시작한 모래폭풍 은 땅을 휩쓸고, 구름의 턱밑까지 치 솟으면서 해를 가린다. 밤의 어둠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한낮의 사막 에 짙은 그림자가 진다.
그리고 그 그림자에서 준동하는 악 (惡)이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라, 라흐무님! 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두 사내가 사라져간다. 비유법을 쓴 게 아니다.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 칠혹의 물결
이 한 번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 무것도 남지 않았다. 핏자국조차 한 방울 남겨놓지 못했다.
흑요석처럼 검게 빛나는 풍뎅이들.
그 주둥이에 물린 것은 갑옷과 몸 을 막론하고 썩어들어가, 생명체를 한 줌의 흙으로 만들어버렸다.
“에르무드! 라힘!”
죽어버린 부하들의 이름을 부르며. 라흐무가 손에 쥔 칼을 전력으로 휘 둘렀다. 불그스름한 오러가 깃든 칼 날이 잠시나마 풍뎅이들을 뒤로 물 러나게 만든다.
초열(焦熱)의 오러.
붉게 타오르는 시미터의 일격은 저 풍뎅이들조차 상처입힐 수 있었다.
그럼에도 라흐무의 안색은 창백하 기만 했다.
“살아있는 자는 내 부름에 답하라! 누구 없는가!”
모래폭풍에 진입한 지 불과 30여 분.
그 안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그 의 것밖에 없었다.
실종의 원흉으로 추정되는 놈을 발 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뒤를 쫓아 서 모래폭풍에 들어온 게 실수였다.
베드윈족에서 정예로 이름 높은 무 사들이 제대로 된 공격도 못해보고 죽어 넘어졌다.
“일단 이 폭풍에서 빠져나가지 않 으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