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59
라흐무는 제 등허리를 타고 기어오 르는, 선명하기 그지없는 죽음의 예 감을 느꼈다.
심장 근처에 화살촉이 박혔을 때도.
목 앞에 시미터가 들어왔을 때도.
맹독으로 사경을 헤맸을 때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죽음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휘오오오오오….
부하들의 시체를 등 뒤에 내버려둔 채, 라흐무는 오직 살기 위해서 내달 렸다. 공포와 긴장으로 굳어진 발이 몇 번이나 모래밭에 파묻혔지만, 그 래도 멈추는 일은 없었다.
백 미터, 이백 미터.
거리감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달렸 음에도 모래폭풍의 끝은 보이지 않 았다. 머리 위로 일그러진 태양과 발 밑의 그림자가 그를 비웃듯이 요사 스럽게 꿈틀거렸다.
기분 탓일까?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나와라!!”
마침내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자존 심으로 공포를 찍어누른 라흐무가 뒤돌아섰다.
이 모래폭풍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놈’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주변에 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런데 ‘놈’ 을 뒤쫓다보니 시야가 흐려지고, 어 느샌가 폭풍의 한복판에 들어서고 말았다.
“썩 나오지 못해! 네놈에게도 명예 와 긍지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 도 이 라흐무의 앞에 낯짝을 내밀어 라!”
발악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응할 리 없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라흐무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악한 존재 에게 죽어나간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놈의 낯짝에 대고 침이라도 뱉고서 죽어야했다.
결사의 각오를 품은 오러가 한층 더 기세를 부풀린다.
일격.
부하들을 벌레밥으로 만든, 저 사악 한 존재에게 생채기 한 줄이라도 긋 고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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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각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음 산한 소리와 함께 ‘놈’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폭풍 탓에 그 형상은 불분명했 다.
그림자처럼 검게 일렁거리는 사내 와도 같았다.
머리에 쓴 것은 호화스러운 네메스 다. 고대왕국의 양식으로 치장된 숄. 턱끝에 붙어있는 수염은 황금으로
된 가짜로, 신의 선택을 받은 파라오 만이 쓸 수 있는 장신구였다.
목과 허리에는 오리하르콘 띠가 걸 려있었고, 양손에는 왕홀 네카카와 지팡이 헤카를 쥐고 있었다.
[•••비천한… 것이…날…부르다니…]석탄처럼 검게 물든 피부와 그 위 로 우묵하게 들어간 안와 안쪽에서 녹색의 안광이 피어오른다.
〈검은 파라오〉, 네프렌 카의 형상이 었다.
“네, 네놈은 뭐냐…?”
본능적으로 그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알아본 라흐무가 발작하
듯이 소리쳤다.
“실로 사악하고, 또 불경하구나…! 존재해서는 안 될 괴물이 당당히 태 양 아래를 거닐다니!”
【태양-?】
그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네프렌 카가 두 눈을 껌뻑이며 하늘을 올려 다보았다. 모래폭풍에 가려져서도 그 빛을 완전히 잃지 않은, 찬란한 빛의 구체를.
【•••나를… 부정한… 저주스러운… 빛…!】
두 눈을 번뜩인 네프렌 카가 선명 하게 타오르는 증오로 그 빛을 노려
보다가, 곧 라흐무를 향해서 눈을 돌 렸다.
명백하기까지 한 살의와 분노.
그걸 마주한 라흐무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아아압!”
〈오러소드〉에 대기가 불타면서 쩍 갈라져, 시미터가 네프렌 카의 정수 리를 쪼갤 것처럼 내리꽂혔다.
그러나.
【…가소롭다… 버러지…]
네프렌 카는 움직이지도, 주문을 읊 조리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봤을 분이다.
그 시선이 라흐무를 주목한 순간, 본능으로 오러를 피하던 풍뎅이들이 움직였다.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칠 흑의 파도처럼 뭉쳐지면서 칼날을 가로막은 것이다.
〈오러소드〉로도 단번에 벨 수 있는 풍뎅이는 수십여 마리. 수백, 수천 마리로 된 물결은 끊을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 뭣?!”
갑자기 힘이 쭉 빠져나가는 감각에 놀란 라흐무가 두 눈을 부릅떴다. 불 타오르던 그의 시미터는 점점 빛을
잃더니, 이내 중간부터 뚝 부러지고 말았다.
아니, 부러진 게 아니었다.
시미터의 단면을 잘 살펴보니 풍뎅 이들이 갉아먹어, 자잘한 파편이 먼 지처럼 홀러내리고 있었다.
“설마 내 오러를…먹어치웠다고!?”
경악한 라흐무가 몇 걸음 물러서면 서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러는 생명력의 정제된 형태, 초고 밀도로 압축된 힘이었다. 단단하기로 이름이 높은 금속들도 그 힘을 온전 히 담지 못해, 미스릴이나 오리하르
콘 같은 특수금속을 찾아야할 정도 다.
그런데 금속조차 아닌 생명체, 풍뎅 이들이 오러를 풀이라도 되는 것처 럼 뜯어먹다니?
【…나의…권속들은…생명을… 먹어치 운다…】
본래대로라면 파라오는 태양의 화 신.
생명과 빛을 상징해야할 존재이나, 외신과의 거래로 타락한 네프렌 카 는 정반대였다.
죽음과 어둠이야말로 그가 지배하 는 권능이었다.
【…저주스러운…태양만이… 내… 영토
를…모멸하노니…네놈의…불꽃은…실
로… 보잘것없다…】
【…두려운가?】
라흐무가 저도 모르게 그 말에 고 개를 끄덕이자, 네프렌 카는 킬킬거 리면서 지팡이를 뻗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자를 희롱하듯이.
더없이 사악하고 흉흉한 뜻을 담아 서.
【•••자비를… 베풀어주마…!]
네프렌 카의 지팡이에서 홀러나온
어둠이 라흐무를 덮쳤다. 눈과 코, 입과 귀까지. 얼굴에 뚫려있는 구멍 전부에 불경하고 사악한 힘이 흘러 들어간다.
〈외법〉보다 더 끔찍하고 강력하다.
외신에게서 직접 힘을 빌리는 네프 렌 카의 권능은 사악교단 주교급 이 상이었다.
얼마 안 가서 라흐무의 발버둥이 멈췄다.
생기를 잃어버린 피부가 건어물처 럼 쩍쩍 갈라지고 메말라, 이내 뼈대 만을 남기고 달라붙었다.
그러자 네프렌 카의 몸통에서 벋어
나온 촉수가 그 몸뚱이를 붕대처럼 칭칭 감더니, 눈구멍과 입만 남겨놓 고서 몸 전체를 빠짐없이 휘감아버 렸다.
【…일어나거라… 나의…종복이여…]
네프렌 카의 목소리에 라흐무가 눈 을 떴다.
녹색의 안광.
〈외법〉으로 만들어진 언데드, ‘미라 (Mummy)’로 재탄생당한 라흐무가 공손히 무릎꿇었다. 그리고 인간이었 을 적과는 전혀 다른, 탁하게 가라앉 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하소서, 위대한 파라오시여.》
네프렌 카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 거렸다.
【…네…동포였던…자들에게로… 안내 해라…】
《파라오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용맹하게 그와 맞섰던 사실이 거짓 말처럼, 라흐무는 잠깐의 주저도 없 이 그 명령대로 움직였다.
베드윈족을 네프렌 카의 산제물로 바치기 위해.
이 대사막에 죽음의 왕국을 재림시 키기 위해.
【…얼마…남지…않았다…]
라흐무의 뒤를 따르던 네프렌 카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말이 어눌한 것도, 추격대 따위에게 수십 분을 소모한 것도 다 불완전한 소환 때문이었다.
반신급의 존재를 가벼이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소환되고 난 후에 산제물을 먹어치워, 몸과 정신을 완전하게 만 들어야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옛 시대와 달리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몇 없을 터.
【•••태양이여…내가…돌아왔노라…!】
이 땅에 다시 군림하겠다는 포부로,
〈검은 파라오〉네프렌 카가 흉흉하 게 웃어젖혔다.
* * *
회합결투, 그 다음날.
레온 일행은 즉시 부족장 회합에서 세 자리를 차지하고 그 이야기에 끼 어들었다. 외부인의 개입을 불쾌해할 지도 모른다 염려했건만, 수인들은 이전날의 결투로 레온 일행을 인간 족에 몇 없는 대전사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회합장의 분위기는 예
상 이상으로 온화했고, 세 사람이 발 언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였 다.
“흐 ”
어째서 일까.
“흐음.”
레온은 제 옆자리에 앉은 우라칸을 곁눈질했다.
이전날의 결투로 입은 상처가 상당 했는지, 엘라한이 치료를 도왔음에도 몸 곳곳에서 알싸한 약 냄새가 풍겼 다.
〈호천삼연성〉을 정면돌파한 대가였 다. 티그리스족의 육체가 제아무리
강건하다고 해도〈칠성검〉은 전설로 남아있는 무예. 그 연식오의에 몸을 내던졌으니 살아남은 게 용했다.
“方 O으”
—w •
자꾸만 알 수 없는 콧소리를 내는 우라칸에게, 레온이 끝내 참다못해 고개를 돌려서 소곤거렸다.
“왜 자꾸 그럽니까, 신경쓰이게.”
“흐으으음.”
“우라칸!”
그가 버럭하자. 우라칸이 이빨을 드 러내면서 말했다.
“하루만에 또 다른 사람이 되어버
렸군. 인간의 성장속도가 빠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좀 너무한데.”
수인으로서의 감일까, 아니면 전사 로서의 식견일까.
어느 쪽이라도 대단한 안목이었다.
레온은 그 말에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운이 좋았습니다.”
“ 지랄.”
우라칸이 픽 웃었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해놓고 운이 좋았다고 지껄이는 놈들은 다 머저 리야. 될 일이니까 된 거고, 이길 만
하니 이기는 거지. 그렇게 겸손떨지 마라. 짜증나니까.”
“우라칸, 당신도 제법 얻은 게 있어 보이는데요.”
“어제처럼 싸우고 배우는 게 없는 쪽이 더 이상하지.”
한 번의 실전에서 백 번의 연습보 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게 다가 우라칸은 이 대초원에서 무예 로 맞겨룰 수 있는 상대가 한 명도 없었다.
바르그와 결투했던 날만이 그가 되 새기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 레온이 나타났다.
어떤 면에서는 저 바르그보다 더 깊은 무예의 수련자, 성왕 로드릭의 직전제자를 자칭한 전사가.
“다음에는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싸 워보자고.”
어제의 흥분을 기억해낸 우라칸이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 일을 마치고 한 판 더 붙어 준다고 약속해주면, 나는 전적으로 네 의견을 지지해주지. 어때?”
“티그리스족은 다 전투광이라더 니….”
“좋아, 승낙한 걸로 알겠다.”
대련약속 한 번으로 주전파 최강자 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레온은 그 적극성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면 어제보다 더 쉽게 이긴 다.
염체를 터득한 그는 우라칸이 한 말대로 어제와는 또 다른 사람이었 다.〈이카루스 윙〉이 더해진 순간속 도라면 바르그의 〈천랑〉과 겨뤄볼 만하지 않을까?
그가 잠시 딴생각에 빠졌던 때였다.
“그렇다면 우리와 유목민들을 맞붙 이려고 한 놈을 제거하기 위해선, 사
막 한복판까지 들어갈 수밖에 없겠 구려.”
카프리족의 족장, 바질이 돌아가는 상황을 정리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누군지도 모를 놈의 목적은 전쟁. 유목민들을 사막 밖으로 몰아내서 수인족들과 싸우게 만든다는, 대국 (大H)을 바라보고 짠 전략이었다.
그걸 저지하려면 사막 내부에서 식 량과 주민들을 공격하고 있는 괴물 을 처치해야했다.
“대규모로 움직일 수는 없겠네. 베 드윈족도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고
했지? 괜히 대규모의 병력을 움직였 다간 우리쪽에서 선제공격을 하는 줄 알지도 몰라.”
“일리가 있소.”
레푸스족의 앨리스, 우르스족의 토 투가가 말을 주고받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중립파와 주전파 로 입장이 달랐지만, 결투 후에는 뒤 끝도 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야만스럽게 보일지언정 그 또한 수 인족의 강함이었다.
그 이후에도 부족장들의 토론은 계 속되었다.
“소규모라면 수준을 높여야만 해.
어중이떠중이를 보내봤자 사막에서 힘도 못 쓰고 퍼져버릴걸.”
“동감하오. 부족장급, 적어도 그 후 계자급은 되어야겠지.”
“허나 부족장들을 다 동원해버리면 초원의 질서가….”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거 질서는 무슨!”
“그렇다면 내부의 우환을 그냥 방 치하자는 소리요!?”
누군가는 격하게, 누군가는 침착하 게.
각자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들 의 주장을 펼쳤다. 어느 쪽이나 제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다.
하지만 레온은 조금 답답해졌다.
하루를 지체할수록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엘시드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상대방은 시간의 경과와 산 제물의 수집에 따라서 그 힘을 되찾 는 괴물.
최대한 빨리 토벌해야할 필요가 있 었다.
“—시끄러워!”
그때 였다.
쾅! 하고 원탁에 두 발을 올려놓은 우라칸이 외쳤다.
“겁쟁이처럼 그러면 안 된다느니, 이러면 안 된다느니! 언제까지 이 탁자 앞에서 지껄이고만 있을 거냐!”
“우라칸 족장! 당신이라도 회합에선 예의를 지켜야一.”
“닥쳐!”
다시 한 번 쾅! 하고 탁자를 걷어 차고 일어선 우라칸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네놈들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어! 난 간다! 내가 죽더라도 티그리스족 은 잘 먹고 잘 살겠지. 안 그러냐, 짜식들아!”
그가 관중석을 돌아보면서 외치자,
지루한 얼굴로 늘어져있던 티그리스 족이 환호성으로 대답했다.
“우리도 데려가십쇼, 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