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86
차례 마주했음에도 현실감이 안 들 었다.
엘라한의 주먹이 몇 차례 더 빛을 발하고, 레온 일행은 곧 앨제어성의 지하로 추측되는 구역에 이르렀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레온이 나설 차례였다.
단단한 지하 암반에 대고 오러를 불어넣자, 그 힘이 암벽의 내부에서 튕기고 울려퍼지면서 반향이 되돌아 온다.
〈파동반향법〉.
수십 미터 위쪽의 지표면을 샅샅이 훑어, 그 일대에서 인적 없는 구역을
알아낸 레온이 두 사람을 인도했다. 생명체분만 아니라 구조물의 존재와 형태까지 알아낼 수 있으니,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쯤은 어렵지도 않았 다.
푸화
엘라한이 주먹을 뻗자, 어김없이 땅 이 도려내지면서 지상을 향한 구멍 이 뺑 뚫려버렸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지 상으로 뛰쳐나왔다.
인기척은 없다.
빈민가라도 되는 것인지, 다 무너져 가는 건물 안쪽에서 세 명의 그림자
가 일렁거렸다. 감각을 뻗어내서 그 일대를 더듬어본 레온이 두 눈을 뜨 면서 말했다.
“괜찮은 것 같네. 아무도 없어.”
“혹시 모르니까 한 바퀴 돌고 올 까?”
“부탁할게.”
그와 동시에 카렌은 발치의 그림자 로 녹아들더니, 레온이나 엘라한의 감각으로도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멀어져갔다.
그림자 밖이었다면 소닉붐이 몇 번 터졌으리라.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와! 언니는 거기에서 더 빨라졌네 요?”
엘라한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서 감탄했다.
“발라졌다기보단 요령이 생긴 거라 더라. 그림자를 갈아타는 속도나 과 정을 좀 더 단축한 거라고.”
“차이를 잘 모르겠네요.”
“나도 그래. 우리는 그림자를 다루 는 감각을 잘 모르니까.”
똑같은 오러마스터라고 해서 서로 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 니,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마스터라서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알 라자즈의 거인이 어떤 원리로 형성되는지.
바르그의 회오리가 어떻게 발에 휘 감기는지.
세드릭의 검이 발휘하는 절삭력은 어느 정도인지.
레온은 그 무엇도 짐작하거나 이해 하지 못했다.
내면세계로부터 현실로 뛰쳐나온 염(念),〈오러블레이드〉는 실로 타인 에게 불친절한 권능이었다.
‘뭐, 됐나. 지금 고민해볼 만한 문 제도 아니고.’
머릿속을 차지한 잡념을 다 털어버 리고, 레온은 허리춤에서 봅아든 성 검을 툭툭 두드렸다. 카렌이 그 일대 를 정찰하는 人!•이에, 다시 한 번 목 표물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그의 의지를 받아들인 검이 눈부신 빛을 붐어냈다.
퀘스트 맵(Quest-Map).
여섯 색상의 표식이 그려져있는 지 도가 두 사람 앞에서 그 속살을 드 러 냈다.
“•••역시.”
퀘스트 맵을 유심히 들여다본 레온 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 를 끄덕거렸다.
앨제어성.
유겐트 방향을 마주보고 있는 제국 의 국경요새 한가운데에, 파란색 표 식 하나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위험
부담이 존재하는 노란색 표식보다 한 단계 아래, 그들의 기량이라면 쉽 게 해낼 수 있는 퀘스트라는 의미였 다.
엘라한의 시선을 느끼면서 손을 가 져다대니, 표식이 한 번 번뜩이면서 그 안의 정보를 토해냈다.
「인신공양을 저지하라
* 난이도: 보통(Normal)
* 규모: 1체
* 적성개체: 흑마법사 나이젤
* 담당자: 없음
클라이드 제국의 궁중마법사 나이
젤은 사악교단과 결탁한 흑마법사 중 하나다. 그는 앨제어성의 주민들을 제 물로 바쳐, 유겐트 왕국군에〈광란(狂 亂)의 저주〉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 음모를 저지하고, 흑마법사 나이젤을 처단하라.
심상치 않은 내용이었다.
흑마법사.
이 세상을 팔아넘긴 대가로 힘을 받아들인 외법사보다는 좀 나았지만, 타 차원의 힘을 빌린다는 점에 있어 서는 큰 차이도 없는 놈들이었다. 사 악교단처럼 광기에 젖은 경우는 드 물지만, 오히려 그 부분에서 더욱 위
협적이었다.
사악교단이 제 마음 가는대로 설쳐 서 문제라면, 흑마법사는 냉정하고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다.
‘루베나 백작령에서 몰래 뱀파이어 들을 쥐어짰던 흑마법사, 안드레이가 딱 그런 놈이었지.’
레온이 아니었다면 신성교단의 대 응도 몇 박자 늦었으리라. 광기 하나 로 움직이는 사악교단과 달리 이성 적으로 활동하는 흑마법사의 동선은 무척 효율적이다.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
단방법도 가리지 않으며, 이목을 피 하거나 속이는 것 또한 능숙했다.
무엇보다 그 방식이 매우 악질적이 었다.
“용사님, 이건…!”
바로 옆에서 그 내용을 들여다본 엘라한이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목 소리를 높였다. 이 악랄한 수작질로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를 즉각 깨달 은 모양이었다.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국경지대의 요충지, 앨제어성을 제 물로 써서 유겐트 군대에〈광란의 저주〉를 부여한다?
다 죽어가던 병자도 미친개처럼 날 뛰게 만드는 저주를?
“그래, 네 생각대로야.”
엘라한의 경악에 수긍하듯이 고개 를 한 번 끄덕거린 레온이 그 뒷말 을 이어받았다.
“누군가가 이 전쟁을 의도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이 계획이 성공한다 면 앨제어성은 무력화될 거고, 유겐 트 왕국군은 눈이 뒤집혀서 제국의 땅을 짓밟고 들어가겠지.”
“신성교단도 동행할 텐데,〈광란의 저주〉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 않을 까요?”
“글쎄, 난 아니라고 생각해.”
흑마법은 그 제물의 양과 질에 따 라서 파괴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제아무리 성철쇄기사 전원이 모였더 라도, 추기경과 사제단이 동행하더라 도 수만 명의 생명을 불태워서 쓴 저주를 막아낸다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그 저주가 완성된 시점에서 앨제어성의 주민들은 다 죽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유겐트 왕국과 신성교단은 결국 별개의 세력이야. 추기경님이 ‘그랑 마이스터’의 직위를 가졌다지 만, 왕이나 그 주변에서 진군을 결정
한다면 그냥 멈춰세울 순 없어.”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엘라한이 숨 을 집어삼켰다.
“…앨제어성 같은 요충지를 무혈로 점령할 수 있으니, 그걸 내버려두기 도 힘들겠구요.”
“그래.”
“이번대 황제를 괜히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군요. 자신의 백성 들을 제물로 써서 전쟁을 키우다니,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나 다름없 어요!”
레온은 잔뜩 흥분한 엘라한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안 그러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기세였다.
“괜찮아. 우리들은 늦지 않게 온 것 같으니까.”
〈광란의 저주〉를 계획대로 사용하 려면 유겐트 왕국군이 그 유효거리 까지 접근해야했다.
이렉사나가 한 말대로라면, 보름 후 였다.
그 이전에 흑마법사를 처치하고 인 신공양에 사용되는 진을 파괴하면 그만이었다. 마스터급의 강자나〈구 마주교〉같은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 레온 일행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전력은 더 없을 테니까.
그때 였다.
“다녀왔어!”
그림자로부터 머리만 쑥 내민 카렌 이 몸을 끌어올렸다.
물 위로 튀어오르는 날치처럼, 그림 자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땅 위에 가 볍게 착지하면서 상황을 보고했다.
“앨제어성은 지금 전시체제에 들어 가있어서, 대낮에도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몇 명 없어. 우리 같은 외부 인이 대로변을 돌아다니면 금방 들 키게 될 거야.”
“위협이 될 만한 전력은?”
“없어. 익스퍼트급의 기사 몇 명하 고 6위계 마법사를 한 명 보긴 했는 데, 느낌이 별로 안 좋더라.”
그 말에 레온과 엘라한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놈이군.”
“그놈이 네요.”
“응? 뭐가?”
카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 자, 두 사람은 방금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카렌은 한 마디로 그걸 요 약했다.
“찢어죽여도 모자랄 놈이네.”
목적이나 술식은 다르다지만, 블레 인의〈도시 삼키기〉와 별 차이가 없 는 수법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 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었던 카렌은 자연스럽게 치를 떨었다.
해야할 일이 정해졌으니, 이제 방법 을 생각해볼 차례였다.
“앨제어 변경백은 이 수작을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더라도 제 영지와 영지민을 모두 파멸시키 는데 가담할 리가 없다. 영주에게 있
어서 영지는 제 왕국이요. 재산이었 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흑마법사, 나이젤은 진정 한 목적을 은폐한 채로 성 안을 돌 아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변경백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건 어때?”
“안 믿을걸. 증거를 가져가도 그걸 조작했다고 말한다면 더 설득할 방 법이 없고.”
“끄응, 귀족들 머리통이 좀 딱딱하 기는 하지.”
카렌이 한 발 물러서자, 그 다음에 는 엘라한이 나섰다.
“흑마법사를 찾아내서 제압하는 것 은 어떨까요? 이 사악한 짓을 주도 하는 게 흑마법사라면, 그가 사라진 시점에서 모든 작업이 중단되거나 취소될 테니까요.”
“나브지 않은 생각인데, 카렌?”
“ 응‘?”
“아까 그 6위계의 마법사는 어디에 서 본 거야?”
레온의 말에 기억을 되짚어본 카렌 이 대답했다.
“영주의 저택, 귀빈으로 대접받고 있는 모양이던데.”
“•••어렵겠네요.”
엘라한의 말에 긍정한 레온이 첨언 했다.
“목숨을 끊는 것뿐이라면 어렵지도 않지만, 암살했다가 그 배후로 유겐 트가 지목된다면 일이 더 귀찮아질 거야.”
제국 내부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국경지대의 변경 백들은 한 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 니, 움직일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지.
복수심으로 칼을 잘 갈아온 페르마 는 물론이고, 히스파냐와 메릴 해상
연합에 유겐트 왕국까지.
클라이드 제국의 위기에 기뻐할 자 는 있어도 슬퍼하는 자는 없었다. 변 경백들이 한 명이라도 등을 돌렸다 가는 곧바로 그 빈틈을 찌를 하이에 나들만 가득했다.
그런데 앨제어성 안에서 궁중마법 사가 암살당하고, 그 배후로 유겐트 가 지목당한다?
“전력의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사항전하겠지.”
유겐트군과 신성교단의 합종군이라 면 앨제어성을 공략하는 것쯤은 일 도 아니나, 투항하지 않고 버틴다면
흐르는 피가 몇 배로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레온은 제3의 선택지를 꺼 내들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네? 거꾸로요?”
“어떻게?”
두 사람의 이목을 끌어당긴 레온이 손을 뒤집어보였다.
“우리들이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저쪽이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을 만드는 거야.”
블레인에서 한 번 겪어본 상황이다.
대규모 의식을 위해서는 그 준비가 필수적이고, 긴 시간과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도시 하나를 제물로 공양 하기 위해서 이 앨제어성 어딘가에 포석을 깔아두었을 터.
레온이 공략하고자 한 것은 바로 그 포석이었다.
* * *
그날밤이었다.
세 사람은 혹시 모를 이목을 피하
고자 낮 내내 폐허에 몸을 숨겼다가,
해가 떨어지자마자 도심부로 파고들 었다.
카렌 수준의 은신술까지도 필요없 었다.
인기척을 없애고 빠른 속도로 움직 이기만 해도, 마스터급의 발자취를 쫓을 수 있는 인간은 드물었으니까. 소리도 없이 한 건물의 꼭대기를 내 리밟은 레온이 높게 뛰어올라, 앨제 어성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관광지로는 영 아니구만.’
군사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다보니 보는 맛은 없었다.
기능미라고 할 만한 부분은 제법
있었지만, 드워프도 아닌 인간의 심 미안에 적합한 생김새는 아니다.
한눈에 도시 전체를 내려다본 레온 이 이내 목적지를 찾아, 그쪽으로 몸 을 날렸다.
어느샌가 그는 혼자가 되어있었다.
본의 아니게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제각기 움직 이고 있었다.
[역오망성 (Reverse Pentagram) 이 라, 구닥다리 진이군.]앨제어성의 다섯 지점으로 분산된 마법진을 한 번에 간파한 엘시드가 시시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오망성.
본래대로라면 정(正)을 의미해야할 오망성을 거꾸로 뒤집어. 부(不)의 의미로 반전시킨 상징이었다. 흑마법 의 기본이자 끝. 악마를 이 세상에 불러들여 몸에 받아들이기 위한 문 으로써도 중요한 표식이라던가.
“구닥다리라. 혹시 별 거 아니라는 뜻이야?”
[설마.]엘시드가 코웃음쳤다.
[구닥다리는 많이 낡았다는 뜻이지. 그렇게 낡은 수법인데 계속 쓴다는 건,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는 거다.]“그건 그렇지.”
[내 입장에서야 지겹게 많이 본 놈 이라서 시시한 감이 없지 않다만, 넌 방심하지 마라.]레온은 그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서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사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그의 감각 권에 경비병 넷의 기척이 다가왔다. 사악한 힘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흐암, 이 낡아빠진 창고는 대체 왜 지키라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순찰이나 돌면 밤 일하는 아가씨라도 가끔 볼 텐데, 여 기 짱박히면 날밤만 새는 거잖아.”
“황도에서 온 기사님들도 한 분씩 따라오시니 이거 숨도 못 쉬겠어. 실 수로 하품이라도 했다간 죽을지도 몰라.”
“에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들은 역시 이 장소가 무슨 목적 으로, 왜 지켜야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레온이 움직였다.
그림자에서 한 걸음 걸어나와, 허리 춤의 검을 봅는 대신에 검집째로 들 어올린다. 여기까지 콤마 3초. 정면 을 바라보면서 걷던 경비병 하나가
그 형체를 식별하려던 순간.
빡! 빡! 빡! 빡!
흐릿한 잔상까지 남긴 검집이 정확 히 네 번 후려쳐, 경비병 넷의 의식 을 완벽하게 끊어버렸다.
해가 중천에 들 때까지는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들의 몸뚱이를 구석탱이에 대충 쌓아놓고, 레온은 이윽고 ‘낡아빠진 창고’ 앞에 이르렀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건물.
그 너머에서 뻗어나오는 기세가 적 의 존재를 증명한다.
“ 나와.”
레온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려퍼 졌다.
그와 동시에 창고의 문이 쿵 열리 고, 풀플레이트를 장비한 기사 한 명 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투구까지 눌러써서 얼굴이 안 보인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익스퍼트급이라.’
모험가라면 손쉽게 A랭크를 따낼 수 있는, 기량은 물론이고 실전경험
까지 풍부한 베테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