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206
뒤이어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 불규 칙한 원을 그렸다.
쿠구구구구궁…!
그 직후에 벽난로의 불길은 좌우로 갈라지더니,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던 입구마저 쩍 벌어 지면서 감춰진 통로를 드러냈다.
네 사람은 그라니아의 뒤를 따라서 비밀통로로 진입했다.
대마법사가 직접 관리하는 곳답게 그 안은 너무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고 딱 적당한 상태였다.
넓이도 상당했다.
공간마법으로 넓히기라도 한 것인 지, 눈어림으로 잰 면적과 안 맞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썩은내가 나는군.]엘시드가 중얼거렸다.
레온도 그 말에 동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육안으로 볼 때는 그저 비
밀스러운 공간이었지만, ‘주시자의 성흔’에 비친 풍경은 역겹기까지 했 다.
외법으로부터 흘러넘친 힘이 그 일 대를 오염시켜, 마법으로 봉하지 않 았더라면 포트로이까지 덮칠 수준이 었다.
외차원의 힘에 민감한 엘라한도 두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방일세.”
그라니아가 멈춰선 곳, 닫혀있는 문을 바라본 레온이 검을 봅아들었 다.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너
무 지독해, 그냥 서있으면 기분이 가 라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검 엘시드.
검신이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찬란 한 빛이 붐어져나와, 그 일대의 오염 을 세차게 밀어냈다.
그걸 본 그라니아가 경탄한 표정으 로 말했다.
“지고지순한 빛…! 과연, 그것이 여 신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주셨다는 성검인가.”
“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레온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성검을
내리쳤다.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 였기에, 이미 무의미해진 마법진과 함께 방문을 두 동강낸 것이다.
쩍, 하고 갈라진 문짝이 뒤로 넘어 갔다.
그 순간이었다.
“윽!”
거무스름한 기운이 독사처럼 쭉 뻗 어와, 레온은 반사적으로 그 끝부분 을 후려쳤다.
묵직하다.
그러나 성검에 닿은〈외법〉은 그 형태마저 잃어버리고, 알 수 없는 괴 성을 내지르면서 후퇴했다. 지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행 동하는 것인지.
뱀의 형상을 한〈외법〉은 침상 한 복판에 누워있는 남자의 몸속으로 되돌아갔다.
“ 에드가!”
그라니아가 크게 당황해서 손을 뻗 었다.
어떻게든 놈을 끄집어내고자 한 일 이었지만, 한 발 늦었다. 레온조차
지근거리에서 겨우 반응한 속도라면, 마법사가 그걸 포착하는 것은 불가 능했다.
그 대신에 엘라한이 두 걸음 걸어 나왔다.
“물러나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용사 님과 제 차례입니다.”
“•••부탁하겠네. 내 제자를 구해주 게.”
8위계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이렇 게나 무력하다니, 황혼기의 대마법사 는 그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말했다.
제자를 구해달라고.
그의 후계자를 살려달라고.
엘라한은 그 애걸에 작게 미소지었 다.
“부탁하실 것까지도 없답니다. 마 땅히 할 일이니까요.”
아델라도 그녀 옆으로 다가서면서 제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네놈이 진 업보를 제자한테 떠넘기는 것도 이치에 안 맞는 일이고.”
“아델라….”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참 오랜만 이다?”
추기경과 성녀, 그것도 모자라서 용사까지.
〈외법〉을 상대로 이 면면보다 더 강력한 인선이 있을 리도 없었다. 세 사람은 그대로 에드가가 묶여있는 침상을 세 방향에서 둘러싸, 혹시 모 를 상황을 대비했다.
그리고 엘라한이 먼저 나섰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농축되어있 는 이차원의 힘, 숙주에게 상처입히 지 않고 그 껍질을 벗겨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녀 한 사람뿐이 었다.
“광명으로 지상을 굽어살피시는 여 신이 시 여 一”
두 손을 모아서 합장하듯이 기도하 니, 엘라한의 몸 주위로 아름다운 서 광(腦光)이 홀러넘치면서 방 안을 밝 혔다.
그와 동시에 에드가의 몸을 휘감은 어둠이 꿈틀거렸다.
뜨거운 것에 닿은 사람이 움찔거리 듯이.
뱀 형상으로 똬리를 튼 놈은 어떻 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엘라한이 한 구절을 읊을 때마다 빛이 강렬해
지니 껍질마저도 한 장씩 벗겨져나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분이 더 지나니, 에드 가의 몸을 휘감은 어둠이 선명하게 그 형상을 부각시켰다.
[지금이다. 날 써라.]엘시드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말대로였다.
에드가를 사로잡은〈외법〉은 그 구 조부터가 악질적이라, 뱀 형상으로 길게 뻗은 어둠이 영혼까지 부리내 리고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몇 갈래로 꼬아놓은
쇠사슬처럼.
옛 왕의 고사에 등장한 ‘고르디우 스의 매듭’과 같다. 재주로 풀어내려 고 하면 어렵지만, 단칼에 내리쳐서 끊어버리면 쉽게 풀어낼 수 있다.
“하압!”
〈태양검〉의 ‘빛’만을 활성화시킨 레 온이 검을 내리그었다.
그 칼날에 닿은 어둠이 썩은 지푸 라기처럼 뭉개지고, 아주 잠깐도 버 텨내지 못하며 찢겨나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가 울려퍼진다.
놈이 발버둥을 칠 때마다 에드가의 몸이 펄떡거렸지만, 그 육신을 봉쇄 한 것은 그라니아의 마법이다.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져도 놓지 않는다.
숨이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다 고칠 수 있는 상처였다.
“엘 라한!”
“네!”
성검의 일격으로 놈은 반 이상의 구속력을 잃었다.
영혼까지 불태울까봐 힘을 다 쏟지 못하던 엘라한이 나머지 빛을 모조
리 퍼부었다. 눈부실 정도로 휘몰아 치는 신성한 빛,〈외법〉의 뱀은 마침 내 그 빛을 피해서 도망쳐나왔다.
‘빨라!’
레온에게 있어서 한 가지 오산이라 고 한다면, 그 뱀이 실로 무시무시하 게 빨랐다는 점이었다.
영혼을 사로잡는 뱀.
그렇다면 놈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 라 혼의 영역에 있으며, 물리법칙에 사로잡히지 않는 영속(靈速)을 발휘 한다. 번개처럼 공간을 미끄러지는 뱀이 도망쳤다. 레온과 엘라한을 지
나쳐서, 아델라의 등 뒤에 있는 문을 향하여一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여도,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러나 그 앞을 가로막는 손이 있 었다.
자그마한, 하나 공간을 우그러트릴 정도의 힘이 들어간 손. 아델라가 뱀 의 몸통을 움켜쥐고서 스산하게 웃 었다.
〈맹진〉의 아델라.
그 이명에 깃들어있는 뜻은 두 가 지였다.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미안하지만 진로를 읽는 거라면 주특기거든.”
뱀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아 델라의 악력이 더해지니 부직부직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실체도 없는 혼이 으스러 지고 있었다.
엘라한과는 비교할 수 없어도 그녀 역시 추기경, 외차원의 존재에게 치 명적인 신성력의 보유자였다. 아델라 는 그 손맛을 만끽하면서 ‘뱀’에게 속삭였다.
정확히는 에드가한테 그 뱀을 심은 자에게.
“외법이라고 해도 저주의 종류라면 그 이치는 같겠지. 뜻을 이루지 못한 다면 술자에게 리바운드가 돌아가던 가? 이 정도의 수법이라면 데미지도 상당할테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그 정도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쓰레기. 내가 금방 쳐죽이러가 마.”
그리고.
콰직, 하는 소리가 났다.
공간째로 으깨진 뱀이 아델라의 손 아귀에서 소멸했다. 무려 7위계의 대마법사를 무력화한 수법치고는 허 무한 끝이었다.
엘라한은 다시 한 번 에드가를 살 펴보고서 말했다.
“•••끝났어요. 심신이 많이 쇠약해 지긴 했지만, 몸에 더 이상 외법의 기척은 없습니다.”
“오, 오오…!”
그라니아가 감격한 얼굴로 침상으 로 다가섰다.
이렇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 건만, 몇 년만에 보는 것 같은 얼굴 이었다. 어둠에 휘감겨있을 때는 도 저히 접근하기가 어려워, 침상으로 옮기는 것조차 마법을 쓸 수밖에 없 었다.
침상 옆에 주저앉은 노인이 앙상해 진 제자의 손을 잡았다.
그 감촉을 느꼈을까.
“……스승, 님?”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던 에드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탓인
지, 그 눈빛은 혼탁했으나 초점만큼 은 분명했다.
그라니아는 몇 번이나 끄덕거리면 서 대답했다.
“그래, 나다. 이 멍청한 놈아. 어떻 게 된 건지는 알겠느냐?”
“••폐를, 끼쳤습니다.”
“멍청한 놈!”
눈시울을 붉힌 그라니아가 격하게 그를 다그쳤다.
“내 자리를 물려받고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다니! 여태껏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더냐! 너는 날 뛰어넘을
수 있는 천재라고! 이 스승의 말이 그토록 우습게 들렸더냐!”
“아닙…니다.”
“마지막이다. 이걸로 정말 마지막 이야! 내가 널 다시 책하는 일이 없 게 해다오. 알겠느냐? 응?”
“•••예. 스승님.”
두 사람의 해후를 지켜보던 아델라 가 혀를 내밀었다.
“누가 보면 아들이라도 몰래 낳아 온 줄 알겠네. 저 꼰대가 질질 짜는 꼬라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추기경님!”
엘라한이 그 험악한 말투를 지적하 면서 노려보자, 아델라도 더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녀 대신에 카렌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나설 차례가 없었다보니 좀 삐진 기색이었다.
“용사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 데.”
“음? 뭔데?”
“추기경님이 저 뱀 같은 외법을 저 주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저주가 풀 렸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거 아니 야?”
“ •••그렇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레온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저주(唱脫)는 통상적인 마법이나 주 술과 크게 다르다.
특정한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것만 을 목적으로 실행되기에, 그것이 실 패하면 다른 사람도 아닌 술자에게 리바운드가 되돌아간다. 그러니 알 수밖에 없다.
저주를 파괴한 자가 있다고.
“이런.”
한 박자 늦게 레온은 그 뜻을 이해
했다.
에드가에게 걸려있던〈외법〉은 아 주 강력했다. 마법적으로 분류하자면 7위계 이상, 8위계 이하 정도일까.
숙주를 상처입히지 않고 해제할 수 있는 조건이 추기경 5인분의 신성력 이라면, 해제가능한 경우의 수도 줄 어들게 된다.
‘누가 해제했는지’를 특정할 수 있 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 릇이었으니, 이중으로 깐 트랩에 걸 린 셈이군. 수가 더러운데?]엘시드의 말대로였다.
사악교단은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용사 레온의 존재까지는 몰라도, 성녀 엘라한이 포트로이에 있다는 것을. 추기경 다섯 명이 여기까지 잠 입했을 리 없으니, 당연하기까지 한 귀결이었다.
대마법사 그라니아의 협력을 얻은 대가로 존재가 노출됐다. 그게 이득 인지 손해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검빨로 네벨어 (206)
그 다음날이었다.
“다시 한 번,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네.”
레온 일행을 맞은편에 앉게 한 그 라니아가 고개를 숙였다.
마탑주가 된 후로 내려가본 적이 한손으로 꼽을 수 있었던 머리였으
나, 수제자의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구적(舊敵)의 그 익숙하지 않은 태 도에 아델라는 떨떠름한 기색이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인사를 받아들였다.
사악교단의 수작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다면 모를 까, 알게 된 이상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그라니아님.”
몇 초를 기다려도 그의 머리가 올 라오지 않자, 레온이 먼저 사양하면 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우리들이 지금 생각해야할 상황은 지나간 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제 국 내부에 도사리고 있을 사악교단 과 그 요인을 추려내서 쓰러트리는 것이지요.”
“으음, 자네가 한 말대로일세.”
그라니아가 침중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봤자 수십 년이나 지난 것이라네.
마탑주의 직위를 내려놓고 난 후로 한 번도 카렐룸에 돌아가본 적이 없 으니까 말이야.”
정보의 생명은 그 유효시간에 달려 있다.
1분 전과 1시간 전, 하루 전과 일 주일 전의 정보는 똑같은 내용이라 고 해도 값어치가 백 배 이상 달라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레온은 낙담하거나 하지 않고 말했다.
“수십 년이라고 하시면…?”
“본격적으로 낙향했을 때가 25년
전, 직위를 해제하고 일을 그만둔 게 30년 전이로군.”
“그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홈?”
그라니아의 의문 어린 시선에, 레 온은 몇 번이나 동료들과 이야기해 본 내용을 꺼내들었다.
“클라이드 제국 곳곳에 준비해놓은 수작들, 그라니아님이나 데이턴 경 같은 위인들을 움직인 수법을 생각 해보십시오. 몇 년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광황제〉가 즉위하 기도 전부터 꾸며왔던 음모일지도
모릅니다.”
“으음…!”
“조금이라도 떠오르는 것이 있으시 다면 한 가지도 빠짐없이 말씀해주 십시오.”
레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 는지, 그라니아는 마시던 찻잔마저 내려놓고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니, 회상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
안 그래도 마법사들의 기억력과 사 고속도는 타 직종의 수십 배에 달하 는데, 대마법사까지 된 그라니아라면 누군가와 감히 비견할 수조차 없을
터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는 앉은자리에서 자신의 기억을 1분 전부터 30년 전까지 되돌아보 는데 불과 3분쯤을 소모했다.
“••••••재상.”
3분만에 입을 연 그라니아가 언급 한 것은, 클라이드 제국의 명실상부 한 2인자가 된 직책이었다.
자작급 이하의 귀족들은 물론, 백 작급 이상의 대귀족들마저 대규모로 숙청당하는 시대에 황도 카렐룸의 관리들만은 거의 대부분이 살아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