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230
“그러냐.”
몇 번이고 그의 호의를 사양한 리 안이 잠시 멋쩍은 얼굴로 침묵하다 가,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레온 형, 제가 왜 이렇게 불렀는 지는 짐작하고 계시죠?”
“어느 정도는.”
정치적인 견식이 얼마 없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클라이드와 페르마, 두 국가 사이 에 존재하는 골은 너무나 깊고 넓었 다. 손을 잡는 게 합리적임에도 그 선택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 을 정도로.
페르마군의 총사령관이나 다름없는
발테르 후작,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 다.
“나한테 중재라도 부탁하려고 온 거냐? 발테르 후작이라도 교단 앞에 서 경거망동할 순 없을 테니까.”
“뭐, 비슷합니다. 신성교단의 협력 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 이거든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
“ 네.”
리안은 그 반문에 수긍하면서 이야 기를 계속했다.
“대부분 이미 짐작하고는 있겠지만, 제 혈통을 이용한다면 백악궁의 보
안체계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문제 는 그 방법을 썼을 때. 동행가능한 인원이 얼마 안 된다는 겁니다.”
“뭐?! 인원수에 제한이 있다고!”
“황실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염려한 조치 같은데, 설마 이 상황에서 방해가 될 줄은 몰랐네요.”
이렉사나를 비롯한 사람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어쩌면 리 안이 거짓말을 한 것일지도 모르나, 레온의 직감은 저 말이 사실이라고 확답했다.
그렇다면 전략의 틀이 뒤흔들린다.
백악궁 자체의 보안체계를 통과해
도 그 안에 존재하는 병력 전부가 무력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확실히 돌파하려면 최소한 기사단을 몇 개 끌고 들어가야했다.
적어도 수백 명은 필요하다는 소리 였다.
“그래서? 네가 동행할 수 있는 인 원수는?”
“저를 제외하고 6명 정도일까요.”
“부족한데, 마스터들만 추려내서 간 신히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정 도잖아.”
“그러니 소수정예로 잠입해서 백악 궁 내부의 결계중추실을 파괴해야합
니다. 그럼 외부의 병력을 불러들일 수 있어요.”
문제는, 하고 운을 뗀 리안이 조심 스레 레온을 바라보았다.
“레온 형과 그 동료분들에게 희생 을 강요한다는 겁니다.”
“희생이라니?”
“네. 6명의 인원으로 잠입부대를 구성하려면, 레온 형과 그 일행분들 이 필수적입니다.”
리안의 말을 따라서 여섯 명에 들 만한 후보를 떠올려보던 레온이 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카렌, 엘라한까지 해서 셋. 나머지 세 명은?”
“제 쪽에선 길버트와 세드릭을, 페 르마군에는 발테르 경의 동행을 요 구할 겁니다. 잠재적인 적의 총사령 관을 후방에 둘 순 없으니까요.”
“안나 추기경님이 남는데? 아, 그분 으로 하여금 두 군세의 완충지대를 형성하려는 건가.”
“지휘관이 서로 없다고 해도 혁명 군보다 페르마군의 전력이 더 크니 까요. 뒤통수를 칠 여지가 존재합니 다.”
다 이해하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였 다.
발테르가 리안을 믿지 않았듯이, 리안도 발테르를 믿을 수 없었다는 것뿐이다.
불신(不信)이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스스로를 찌를 수도, 남을 벨 수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서로의 칼날을 부러트 려서 찌르거나 벨 여지를 지운 것이 다. 마스터가 한 명도 남지 않은 상 황에서, 추기경이 직접 이끄는 성철 쇄기사단에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
었다.
소속원 전부가 익스퍼트급 이상의 강자이며, 단체전에 뼈가 굵은 게 성 철쇄 기 사단이 다.
“아니, 잠깐만.”
리안의 말을 중단시킨 레온이 그 허점을 지적했다.
“내가 네 말대로 움직인다면 교단 이 혁명군의 편을 든 거나 다름없잖 아. 절대중립의 원칙을 위반하는 거 아닌가?”
“교단이 자체적으로 움직였다면 그 렇겠죠.”
“•••내 명령이라면 상관없다는 뜻으
로 들리는데.”
“맞습니다. 용사는 신성교단의 전권 을 가진 입장이지만, 그 규율에 속 박되지도 않거든요. 절대중립의 원칙 도 결국 여신의 뜻을 왜곡할까봐 세 워진 것이니, 여신의 대행자가 직접 내린 명령이라면 원칙 자체가 무의 미하고요.”
실제로도 그 말대로였다.
리안이 한때 용사가 됨으로써 황위 수복을 꿈꾸었던 것 또한 그러한 입 장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용사한테도 절대중립의 원칙 이 적용되면, 교단의 힘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테니까. 열 명의 추기경과 성철쇄기사단을 모조 리 제외하면, 신성교단의 무력은 없 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온이 픽 웃으면 서 말했다.
“날 따로 불러낸 것도 그래서였군. 안나 추기경님이나 엘라한이 그 말 을 들었으면 제대로 화를 냈겠어.”
“그것까지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만…형이 정말로 혼자 오실 줄은 몰 랐습니다. 사람을 잘 믿는 건 여전 하시네요.”
리안이 그를 질책하는 것처럼 푸념
하자, 레온은 제 어깨를 으쓱거리면 서 대답을 돌려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너라면 시답잖은 수작은 안 부릴 테니까. 그 정도는 믿고 있다고.”
“……그렇습니까.”
어째서인지 리안은 알 수 없는 표 정으로 조용해졌다.
레온은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털어버리고 등을 돌렸다.
“이쪽에서도 따로 상의를 좀 해보 고 대답할게. 하루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지?”
“네, 물론입니다.”
“그러면 너도 좀 쉬고 있어라. 엄 청나게 피곤한 얼굴이라고. 클로에가 걱정할 거 아냐.”
그렇게 몇 마디를 남긴 레온이 멀 어져 갔다.
그의 등을 바라보던 리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얼굴로 실소했다.
대련으로 꺾였을 때보다 더 짙은 패배감이 몰려들었다.
레온을 볼 때마다 알게 되고, 느끼 게 된다.
왜 스스로가 용사일 수 없었는지 를.
백악궁(白 m 宮).
수만 명의 군대에 포위되어있는 상 태로도 평온하기까지 한, 호화로운 궁은 그 내부마저도 사치스럽게 넓 었다.
천 단위의 메이드가 매일같이 쓸고 닦아도 먼지가 쌓인다고 할 정도라, 황족들도 백악궁의 방이 몇 개고 평
수가 얼마인지 모르는 자가 대다수 였다.
그중에서도 지하에 해당하는 면적 은 더욱 그러했다.
저벅, 저벅.
마력으로 작동하는 등불이 일정 간 격으로 늘어서있다.
본래대로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야할 지하계단은 그로 인해서 은은하게 불을 밝혔고, 그 계단을 걸어내려가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실로 기묘한 풍모였다.
정확히는 ‘풍모’라고 할 수도 없는 생김새였다.
얼굴을 본 자 모두가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그려보라고 준 종이에는 물음표만을 그리게 될 터다.
문자 그대로의〈혼돈〉, 사악교단의 주교 모르스였다.
저벅, 저벅.
삭막하기 그지없는 발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심연으로 떨어져내리는 듯한, 그 불길한 공기 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과 어둠은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길을 찾을 수 없는 게 당연 한 시간이야말로, 빛이 드리워져도
길을 알 수 없었던 자에게의 구원이 었으니.”
듣는 자가 아무도 없음에도 그는 독백을 멈추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선악의 갈 림길은 지나쳤으나, 이제 그 다음의 의문을 마주해야할 때다. 세계의 ‘밖’으로 나아가면 이 결함품에게도 마땅한 대답이 있으리라고 믿겠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면, 그 허무 를 대답으로 삼겠다.”
어느샌가 지하계단의 끝이 보였다.
한 걸음도 멈춰서는 일 없이 나아 간 모르스는 곧 백악궁의 지하 어딘
가에 들어섰다.
와인창고로 사용한 적이 있었을까.
벽면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술 냄새 가 코를 간지럽혔다.
애주가들은 그 향기만 맡아도 황홀 해할 정도로 좋은 술들이 가득했던 장소였으나, 모르스는 주도(酒道)는 커녕 식도락조차 즐길 수 없는 인물 이었다.
그래서 이 와인창고를 들어낸 후에 거점으로 삼았다.
“흐음.”
방의 중심부를 본 모르스가 처음으 로 발을 멈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악교단의 통신수단 중 하나, 흑 수정으로 만들어진 거울이 괴기한 색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보통 사 람은 직시하자마자 그 이지를 잃고, 미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권능의 파편,〈광기의 불꽃〉을 쓸 수 있는 주교는 한 명분이었다.
모르스는 조심스럽게 거울에 다가 서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대주교.”
사상 최악의 대악당을 호명했다.
그 정체는 물론이고 강함조차도 미 지수로 존재하는, 세계의 적.〈구마 주교〉모두의 어버이이자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면서 전 대륙에 수백 번 의 재앙을 가져다준 괴물.
수백 년 동안 신성교단의 수배목록 1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사악교단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대주 교였다.
흑수정 거울 너머에서, 그 터무니 없는 존재가 발언했다.
—모르스, 왜 나의 허락도 없이 거 사를 일으켰지?
듣기만 해도 심신이 뒤흔들린다.
마스터의 영역에 들어선 것도 모자 라서 광기로 제 영혼마저 물들인 모 르스조차, 흑수정 너머로 흘러넘친 노기(怒氣)에 두 눈과 귓구멍에서부 터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그 여파만으로도 내상을 입은 것이 다.
그러나 모르스는 무덤덤하게 대답 했다.
“당신께서 나를 ‘혼돈’이라고 가르 치셨기에.”
혼돈은 규정되지 않는다.
혼돈은 정리되지 않는다.
혼돈은 예측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알 수 없기에 혼돈. 무엇이든 될 수 있 고,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혼 돈이라고 한다.
〈혼돈〉의 주교, 모르스는 대주교마 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저지름으로 써 그 본분을 충족시켰다.
—•••그런가. 내 손을 벗어나고 싶은 가보구나, 모르스.
“예.”
한 문장의 대답으로 그가 원하는
바를 간파하고, 대주교는 제 분노를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이미 결정한 일을 뒤집거나 할 놈 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이용가치를 찾을 분.
흑수정 너머로부터 악의 수괴가 입 을 열었다.
―문을 열 생각이냐?
“예.”
—황제가 네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은 있나?
“ 없습니다.”
—성검 엘시드가 네 주변에 있다. 네가 그 염원을 이루려고 한다면, 성검의 일격만큼은 피하도록 해라.
“예.”
스스로의 계획을 망쳤음에도 대주 교는 더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 길을 나아가려는 제자의 등을 떠밀듯이,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내어주면서 독려하고 있었다.
어째서 일까.
모르스는 잠시 고민했으나, 대답이 나올 수 없는 의문임을 알고서 곧 잊어버렸다.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그의 지나간 인생으
로도 충분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주교.”
—그래, 이걸로 마지막이군.
“예, 그동안의 선도에 감사드립니 다.”
건조한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남긴 채, 모르스는 아직 불이 남아있는 거울을 뒤로 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방이다.
누군가가 찾아올 일도 없으리라.
—…마지막이다.
그를 배웅하듯이, 흑수정 거울에 쩌적하고 금이 달렸다.
리안과의 밀담장소로부터 돌아온 후, 레온은 즉시 동료들을 불러모아 서 회의를 시작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진퇴양난의 국 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 가 보인 상황이었다.
“소수정예로 구성된 잠입작전이라.
뭐, 나브진 않네. 인원이 더 많았다 면 훨씬 좋았겠지만.”
전후사정을 다 들은 아델라가 고개 를 끄덕거렸다.
인원수의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라 면, 결계중추를 공략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또한 그 잠입부대 의 면면은 당연히 각 세력의 최강자 들, 마스터들로 구성되어야만 했다.
백악궁 내부에 도사리고 있을 외법 사들과 근위대, 괴물들을 모두 돌파 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리안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 는 발테르라도 이 제안을 거절하긴
어려우리라. 일단 차출되는 인원만 해도 페르마군이 가장 적은데, 그마 저도 못 하겠다고 억지를 부린다면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서 뻘에 파묻힐테니.
“하지만 6명, 아니 7명으로 정말 괜찮을까요? 백악궁이라면 대륙 최 강의 방어요새로 유명한데, 그 풍문 의 반의 반 정도만 사실이라도 마스 터가 10명은 필요할 거에요.”
엘라한의 염려에도 과연 일리가 있 었다.
발테르 후작과 달리 레온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인지, 리안은 백악궁 내부에 존재하는 보안체계를 모두
설명해주었다.
침입자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 악하는 탐지마법진.
대상의 신체능력과 오러를 깎아내 는 약화마법진.
궁 내부의 면적을 자유자재로 증감 하는 공간마법진.
근위대와 골렘에게 오러를 공급해 주는 충전마법진.
수십 가지의 마법진에 대해서 다 털어놓으니, 그 누구보다 먼저 아델 라가 욕지거리를 토했다.
“X발! 진짜로 미친 거 아니야!? 그 마법진들을 전부 유지할 정도라면,
제국 영토에서 매년 생산되는 마석 의 7할 가까이를 소모한다는 뜻인 데?”
“실제로도 그 정도라던데요? 페르 마 왕국에 조공으로 받는 마석은 거 의 다 백악궁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개만도 못한 새끼들! 제대로 써먹 어본 적도 없는 마법진에 수백만 명 을 먹여살릴 수 있는 재화를 낭비하 다니!”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어 갔으리라.
건실한 방향으로 쓰였더라면 국가 하나를 풍요롭게 할 수도 있었을지
도 모를 자원이, 여태까지 침입자 한 명 경험해보지 못했던 궁의 유지 따위에 소모된 것이다.
추기경들이 그 낭비에 이를 갈아붙 일 때, 카렌만은 뜻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능한가? 응. 어쩌면 가능할 지도?”
“ 카렌?”
“아! 미안해, 용사님. 갑자기 떠오 르는 게 있었거든. 제대로 통한다면 이번 작전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레온에게 한 마디 양해를 구한 카 렌이 깊은 생각에 빠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작전회의를 계속했다.
안나 추기경이 조심스러운 목소리 로 입을 열었다.
“저, 용사님?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게 사실이라면, 백악궁의 공략은 불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백악궁의 보안체계가 모두 발동한 상태라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