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25
확실히 변명거리가 있고 없고는 또 다르다.
슬럼가의 세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모험가 길드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 깜냥은 없었다. 길드를 잘못 건드리 면 상위 랭크의 모험가가 튀어나올 지도 몰랐으니까.
B랭크까지는 어떻게 해볼 만한 상 대지만, A랭크부터는 국가 단위로 통제하는 무력이었다.
“고마워요, 리제. 다음에 꼭 보답할 게요.”
“신경쓰지 마세요. 이게 제 일이잖 아요? 아, 그리고〈락 슬라임 토벌〉 의 의뢰비도 받아가세요. 수비대장님 이 웃돈을 좀 얹어주셔서 액수가 괜 찮아요.”
“아, 그리고……
돈주머니를 건네받은 레온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봤다.
마치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하지 만 그를 성기사로 오해한 리제라면 심각하게 들어줄 만한 질문을.
“블레인의 교단 위치를 좀 알려줄 래요?”
“교단… 이라구요?”
“네, 찾아가볼 일이 생겨서.”
과연 그 생각대로였다.
생글거리던 리제의 얼굴이 굳어지 고, 떨리는 목소리에 짙은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 는 이야기였다. 고행하는 도중의 성 기사는 교단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 지만, 교적(敎敵)이 나타났을 경우만
큼은 예외가 된다.
여신의 자비를 모욕하는 자들.
소속과 세력에 관계없이 신성교단 의 총력을 기울여서 전부 초토화해 야할 것. ‘무자비’를 표방하는 성철쇄 기사단이 출동할 수 있는, 유일한 명 분이기도 했다.
“•••북동쪽의 프리마 지구, 13번지 에 있어요.”
“프리마 13번지, 기억했습니다.”
‘그럼’ 하고 인사를 한 그가 길드에 서 나왔다.
리제는 멍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만 계속 바라보다가, 이내 고심하기 시
작했다.
성기사가 교단을 찾아가야할 일이 생겼다.
교적의 등장.
그 문맥을 연결하니 ‘블레인에 신성 교단의 적이 나타났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너저분한 흑마법사 한두 명으로 교단까지 부를 생각은 안 할테니, 상당한 거물이 행차했다 는 뜻도 되었다.
“보고해야겠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리제가 길드 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추측이 옳다면 길드로서도 방관할 일은 아
니었다. 교단이 움직이면 문자 그대 로 평지풍파가 일어날테니.
그 오해 아닌 오해가 무슨 파장을 불러올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 米 半
[영악하구만.]엘시드가 말했다.
레온은 틀림없이 한 마디의 거짓말 도 하지 않았다. 교단의 위치가 궁금 해졌던 것도 사실이며, 교단에 찾아
갈 만한 일이 발생한 것 또한 사실 이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말투와 접수원 의 오해가 뒤섞이면서 그 의도대로 일을 진행시켰다.
“보고가 올라가면 길드 쪽에서도 알아서 움직이겠지.”
“내 신분만 제외하면 전부 사실이 잖아? 여차하면 교단에 널 보여주는
걸로 해결되겠지.”
물론 최후의 방법이겠지만, 성검 엘 시드는 교단의 전폭적인 협력을 장 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봉인도 안 풀린 성검에,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어서 숨 겼을 뿐. 언젠가는 직접 밝혀야할 일 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않겠다.
레온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발걸음 을 옮겼다.
“그나저나 리빙아머 (Living Armor) 라, 드문데. 살아움직이는 갑옷의 마 물… 맞지?”
[응? 아닌데.]엘시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상식 을 부정했다.
[바보냐, 리빙아머가 외계에서 넘어 온 것도 아닌데 왜 마물 취급을 해? 그놈들이 숨을 쉬어, 밥을 먹어? 내 버려두면 아무 피해도 안 끼치잖아.]“집이 안 팔린다는데.”
[집값 좀 떨어진다고 세상이 망하 냐? 떨어지면 언젠가 오를 날도 있 겠지.]집주인이 그의 폭언을 들었다면 복 장이 다 터져나왔겠지만, 다행히 그 목소리는 레온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엘시드의 설명이 계속되었 다.
[리빙아머는 드물게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다. 마술이나 주술의 힘, 혹은 누군가의 사념이 깃들어서 갑옷을 움직이는 거지. 자아를 가진 것도 아 니고 ‘침입자를 격퇴한다’라는 행동 원리만 남은 깡통들이야.]
“어, 그러면 디스펠로 해결되지 않 나?”
[마법적으로 성립한 게 아니라서 무리다. 디스펠은 건물의 벽돌이나 기둥을 빼서 무너트리는 원리지, 쌓여있는 흙더미를 소멸시키는 게
아냐.]
그래서 마법사들도 별 쓸모가 없다.
잘 만든 갑옷들은 마법저항력도 상 당하기 때문에, 고품질의 리빙아머는 오히려 마법사의 천적이 될 수도 있 었다. 때때로 리빙아머를 제 사역마 로 쓰고자 한 마법사들이 있었지만, 그 실패의 대가는 참혹했다.
고대의 던전 같은 장소에서 특히 위험시되는 존재이며, 그 힘의 편차 가 지독하게 큰 것이 리빙아머였다.
“뭐, 우리가 상대해야할 놈은 별 거 아니지만.”
의뢰서를 읽어본 레온이 짧게 평
했다.
잡철에 은도금을 한 갑옷.
장식품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그 강 도는 물론이고 연결부의 완성도도 낮다. 부수는 것에 수고가 좀 들겠지 만, 성검이라면 이가 빠지는 일도 없 으리라.
[그런데 왜 여태까지 토벌이 안 됐 대냐? 징벌임무로 했으면 진작 해결 됐을 거 아냐.]“글쎄.”
의뢰서의 하단. 그곳에 참고문이 적 혀 있었다.
“갑옷의 재생력이 비정상적으로 뛰
어나다네? 투구부터 각반까지 다 부 숴봤는데, 10분도 안 돼서 일어났다 고. 무기가 못 버텨줘서 결국 후퇴했 다고 적혀있어.”
[잡철로 만든 리빙아머가 그 정도 로? 이상한데.]“도착하면 알 수 있겠지. 일단 가보 자.”
목적지는 슬럼가 인근의 저택.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태양의 힘을 느끼며, 레온의 발걸음이 한층 더 빨 라졌다.
음산한 바람소리가 그 뒤를 배웅했 다.
슬럼가.
그 말은 단순히 빈민들의 주거지역 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회로부터 도태된 자, 혹은 격리당한 자들이 모 여서 국가가 통제하기 어렵게 된 지 역. 그중에서도 극도로 질이 나쁜 곳 에야말로 ‘슬럼가’라는 명칭이 붙는 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블레인에 형 성된 슬럼가는 그 틀을 상당히 벗어 나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번화한 구역이잖 아….”
[확실히. 이건 슬럼가보다 환락가가 더 어울리겠는데? 돈이 어지간히 잘 벌리나보군.]레온의 말에 동감한 엘시드가 씹어 뱉었다.
해가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붉은 등불이 내걸리고, 호객 행위에 열중 하는 어린애들이 돌아다닌다. 낯뜨거 운 복장을 한 여자들이 몇 군데의
테라스에서 손님을 유혹하고, 술 냄 새가 섞인 공기는 달짝지근한 냄새 와 함께 끈적거렸다.
밤 문화를 근본부터 부정할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좋게 볼 수 있는 광 경도 아니었다.
‘엘시드.’
[음‘?]
묘한 느낌을 받은 레온이 생각으로 말했다.
‘이 거리에 들어오고 난 뒤로 불쾌 한 기색을 느끼는데, 혹시 날 따라오 는 놈들이라도 있어?’
[없다. 그런 놈들이 있었다면 내가
진작에 알려줬겠지. 뭐, 짐작가는 부 분이라면 하나 있지만.]
‘그게 뭔데?’
엘시드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 했다.
[오러센스, 기감(氣感) 때문이지. 태 양의 오러는 그 특성상 외부에서 오 는 악의에 민감하거든. 네가 어려보 이니까, 만만히 보고 탐색하는 시선 이 꽤 많았다. 그놈들이 품고 있는 악의가 네 오러를 자극했던 거야.]‘아, 그랬구나.’
레온은 그 말에 납득했다.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었다.
오러에 입문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자가 타인의 뜻을 읽고, 그 의도를 구분한다? 유형화의 경지에 달한 오 러유저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감각 이었다.
최상위속성, ‘태양’이었기에 가능했 다.
‘이유를 알게 되니까 더 불쾌하네. 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다 나를 해치 려는 놈들이라니.’
[그건 이해한다만, 조심해라』
엘시드는 그 반응을 보고 충고했다.
오러를 쓸 수 있게 되었어도 너를
위협할 수 있는 놈들은 많아. 지금 느껴지는 악의도 대부분은 별 거 아 닌 잔챙이지만, 그중에 몇 놈은 위험 하다.]
‘•••알겠어.’
[슬럼가든 환락가든 낯선 자들을 일단 경계하기 마련이지. 당분간은 그 의뢰에 집중하면서 얼굴만 자주 보여둬라.]레온은 슬럼가의 외곽에서 발을 돌 렸다.
첫 방문부터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엘시드가 한 말처럼 괜히 경계심을 사느니, 시
간을 좀 들여서 우회로를 찾는 쪽이 더 현명했다.
그리고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폐가의 리빙아머 토벌〉, 그 의뢰 서에 적힌 폐가가 곧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허,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누가 아니래.”
문자 그대로 폐가(廢家)였다.
누렇게 말라버린 잔디가 거무죽죽 하게 썩었고, 잡초들은 그 위에서 혐 오스러운 형상으로 뒤엉켜있다. 늪처
럼 변한 연못은 암녹색의 더러운 수 면을 찰랑거렸다.
비바람에 삭고 바스러졌을 벽은 또 어떠한가. 녹이 슨 철창, 다 깨진 창 문들의 주변은 거미줄만 한가득이었 다.
“리빙아머가 없어도 안 팔리겠네.”
레온은 혀를 차면서 철창살을 밀었 다.
자물쇠도 녹이 슬어서 부서져나간 지 오래였다. ‘끼긱’ 하는 쇳소리와 함께 철창이 벌어졌다. 발로 한 번 걷어차면 박살날 것처럼 비걱거리는 것이 영 불안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갈 수도 없었다.
[좋아, 내 차례인가.]문 앞에 다다르자 성검이 튀어나왔 다.
의뢰서의 설명대로라면 저택 내부 는 암흑이나 다름없었다. 머무르는 사람도 없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채로 몇 년이나 방치되었으니 당연 한 일이었다.
앞서 찾아왔던 모험가들은 횃불을 썼다지만.
“엘시드 덕분에 참 편하다니까.”
[혹시 모르니까 횃불도 몇 개 들고 다녀라.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이렇 게 못하잖냐.]“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
레온은 성검에서 나오는 빛을 흩부 리면서 문을 열었다. 한 치 앞도 보 이지 않는 어둠. 아직 황혼이라서 햇 빛이 있는데도 이 정도니, 밤이라면 정말로 암흑천지일 터다.
저택 내부는 고요했다.
인기척은커녕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싹한 침묵만이 그 폐허를 배 회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 근방에 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
의 비명이 크게 울려퍼져도, 아무도 듣지 못할 것이리라.
스있다.’
몇 걸음이나 들어갔을까.
어둠 때문에 거리감이 엉망이었다.
레온은 시야 끄트머리에서 투박한 형상을 발견했다. 장식이 매달려있는 투구, 비효율적인 형태로 다듬어진 견갑, 손아귀에 쥔 할버드만이 실전 에 쓸 만한 물건으로 보였다.
그와 동시에 리빙아머가 반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놈■의 텅 빈 투구 는 정확하게 레온이 있는 방향을 노 려보았다.
키잉.
눈구멍에서 붉은 안광이 타오른다.
명백한 적의.
침입자를 발견한 리빙아머가 한 걸 음 내딛자, 부서진 타일 조각이 사방 으로 튀어올랐다.
눈어림으로 잰 간격은 12미터쯤.
레온은 먼저 달려드는 대신에 오른 발을 뒤로 뺀 채. 상대의 선제공격을 기다렸다.
‘할버드, 상대해보는 건 이게 처음 인데.’
도끼 머리를 단 장창, 할버드는 폴
암(Polearm)에서도 특히 강력한 무 기였다. 휘둘러서 벨 수 있고, 찔러 서 꿰뚫을 수 있으며, 내리쳐서 박살 낼 수 있다. 달인이라면 그 사용법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될 정도다.
무엇보다 리빙아머가 쥔 것은 2미 터가 넘었다.
레온이 한두 걸음 더 나아가야할 거리를, 놈은 무기의 길이 하나로 메 꿔버릴 수 있다.
콰직!
그 예상과 같이 리빙아머가 돌진했 다.
단숨에 수 미터를 뛰어넘어, 할버드
를 머리 위로 치켜세운 갑옷이 덤벼 들어온다.
악몽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쩌어 엉!
무기가 교차하면서 굉음이 터졌다.
고요하던 저택 내부가 ‘응응’ 떨리 고, 바닥에 앉았던 먼지가 훅 일어나 면서 허공을 맴돌았다.
검과 할버드.
상식적으로 보자면 정면에서 부딪 힐 만한 조합이 아니었다. 할버드는 그 중량부터가 검의 두 배 이상이며, 길이를 이용한 원심력까지 감안하면 위력은 네 배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레온은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고 받아냈다.
‘그 상하관계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 지.’
리빙아머는 가볍다.
속이 빈 갑옷의 무게라고 해봤자 20kg에서 30kg. 할버드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 중량으로는 레온을 압 도할 수 없다. 또한 레온은 두 무기 가 부딪치는 순간에 검을 비틀어, 충 격의 8할 이상을 흘려버렸다.
사용자의 힘과 기술이 너무나도 다 르다.
성검과 부딪힌 할버드의 날은 깨져 나갔고, 제 발로 간격을 좁혀버린 대 가는 참혹했다.
콰각!
손목베기.
짧게 친 검격이 리빙아머의 건틀렛 을 부쉈다. 정확히 손목 연결부를 때 린 것이다. 놈은 한 손을 잃고도 할 버드를 놓치지 않았지만, 그 반응이 늦었다.
레온의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가속 했다.
쩌저저저정!
일순간에 7번을 벴다.
산산조각이 난 리빙아머는 찢어진 종이처럼 흩어졌다. 갑옷 파편이 땅 을 구르고, 졸지에 몸을 잃어버린 투 구가 뒹굴면서 처량한 쇳소리를 냈 다.
아카데미에서 엘몬트를 상대로 처 음 쓴, ‘액셀’0] 완전하게 펼쳐진 모 습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그가 ‘액셀’을 해제한 다.
그때와 달리 레온은 멀쩡했다.
오러유저가 된 지금은 무리없이 쓸 수 있다. 분 단위로 쓸 수준은 아니 어도, 몇 초쯤은 자유롭게 다룬다. 그의 전투력은 일주일 전과 비교해 서 몇 배나 올라간 상태였다.
[나쁘지 않군. 가속에 휩쓸려서 검 로가 흐트러진 걸 빼면.]엘시드의 쓴소리가 귀를 찔렀다.
[바르기만 한 공격은 얕아. 만약 저 리빙아머가 강철로 된 놈이었다면 네 손목이 부러졌을 거야. 어설프게 빨라질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 다.]“네 번째를 말하는 거지?”
[여섯 번째도다. 사선베기는 그 기 세가 강렬한 만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검이 흔들려』
엄격한 지적이었다.
급가속의 관성에 밀려서 검이 어긋 났다. 그 찰나에 불과한 실책을, 엘 시드는 놓치지 않고 짚어냈다.
레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긋났던 자세를 몇 번 반복하여,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몸 에 새겨넣는다. 적을 완벽히 해치웠 음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미숙함을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