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3
과정이 무의미한 0X게임이나 다 름없는 걸?
“여신이시여.”
지금까지 한 번도 신을 찾아본 적 이 없었다. 이름 없는 신. 태초부터 이 세상을 가꾸었으며, 숭배를 요구 하지 않고 그저 생명의 자유로운 삶을 지켜본다는 자비의 여신.
레온은 처음으로 그 위대한 존재 에게 말을 걸었다.
“내 노력은, 내 삶은 무의미합니 까?”
당연하게도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별이 총총하게 박힌 하늘 은 언제나처럼 침묵했다.
아니, 그 판단은 조금 일렀다.
번쩍一!
멍하니 올려다보던 레온의 상공에 서 빛이 폭발했다.
“우왓!”
그 섬광을 본 레온은 반사적으로 몸을 튕겼다. 강렬한 빛에 노출된 눈이 멀어버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
도 좋았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은 검술만 이 아니다. 고전사, 예법과 같은 인 문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도 그 교 육과정의 일부였다. 그렇기에 레온 은 ‘유성’이 무엇인지쯤은 알고 있었 다.
별의 조각.
아득히 먼 하늘에서 떨어져나와, 헤아릴 수 없는 속도로 땅 위에 내 리꽂히는 재앙이다. 막대한 열과 충 격파를 동반하기에 그 일대는 철저 하게 초토화되며, 아무리 작은 유성 이라도 한 발에 성벽쯤은 날려버리 고도 남는다.
필사적으로 몸을 날린 레온이 땅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제발!’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 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폭음과 충격을 기다렸다.
그렇게 몇 초를 더 기다렸을까.
각오했던 층격은 찾아오지 않고, 시간만이 흘렀다.
[일어나라.]레온의 머릿속에서 정체 모를 목 소리가 울려퍼졌다.
“ 누구냐!?”
[궁금하면 일어나서 네 눈으로 보 면 될 거 아니냐?]그 시큰둥한 말에 일어난 레온이 눈을 깜빡거렸다.
섬광 때문에 잠시 멀어버린 눈은 아직도 흐릿하기만 했다. 눈두덩을 몇 번 비벼본 그가 조심스럽게 말 했다.
“아직 안 보이는데….”
[음? 아, 잠깐만 기다려라.]바로 그 직후였다.
레온은 즉시 눈 주변이 시원해지 는 것을 느꼈다. 흐릿하던 시야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스스로의 눈을 의 심할 수밖에 없었다.
‘••••••검?’
겨우 몇 걸음 앞이다. 레온은 그 정면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검’ 을 보면서 입만 딱 벌렸다.
위와 좌우로 길게 솟아나온 그립 과 크로스가드, 그 아래로 홀러내리 는검신의 정중앙에서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이 타오른다. 산의 어둠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빛. 신 앙이 없는 자라고 해도 경외심을 품게 될 위용이었다.
그러한 특징을 지닌 검은 이 세상 에 한 종류분이다.
“성검 (聖劍)?!”
[그렇다!]
성검은 호쾌하게 답하며 온 사방 으로 빛을 부려댔다.
[그리고 네가 날 불렀다, 레온.]
“내, 내가?”
[그래, 네 마음이 나를 이끌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있는 놈들 은 더 가지면서, 없는 자들은 그나 마 가진 것마저도 잃어버린다. 하지 만 기회만큼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산중턱에서 홀로 빛나는 성검이 위엄차게 말했다.
[여신에게 운명의 불합리함을 논한 자여, 묻겠다.]레온은 그 말에 식은땀을 홀리면 서도 고개를 쳐들었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삶의 불합 리함을 탓할 자격은 없다. 오로지 제 삶을 치열하게 불태운 자에게만 이 그 자격이 있지. 레온, 너는 스 스로에게 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 나?]성검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무시무
시했다.
전설에 등장하는 드래곤이라도 마 주친 것처럼 뼈와 근육이 얼어붙어 서 움직이지 않는다. 한 푼의 거짓 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자의 시선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말할 수 있었다.
모르는 새에 호흡조차 멈췄음에도, 영혼이 말을 토해냈다.
“—있어!”
내일같이 갈고닦았던 마음의 힘이 그 목소리가 되었다.
“나에게는, 그 자격이 있어!”
[그렇다면 그 말을 증명할 기회를 주마.]레온의 대답에 호응하듯이 성검이 빛을 흩어냈다.
휘황찬란하게 부리던 빛이 사그라 지자, 그곳에는 아름다운 형상의 검 만 한 자루 남아있었다.
봅■아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바위 에 박힌 성검이.
[쥐어 봐라!]성검은 그 위압감을 거두지 않은 채로 말했다.
평범한 사람은 한 걸음 나아가기
도 힘든 압력을 뿜어대며, 스스로가 한 말을 증명해보라고 독촉했다.
눈어림으로 대충 네 걸음.
무엇보다 무거운 것은 그 각오였 다. 성검을 쥔다는 게 무슨 의미인 지 아는 레온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이던가?
“큭!”
그가 한 걸음을 나아갔을 때. 성검 이 차갑게 경고했다.
[날 얻는다고 해서 곧바로 강해지 리라 생각하지 마라. 너는 나에게서 받는 기회보다 큰 시련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두 걸음째 내디뎠을 때, 성검은 부 드럽게 타일렀다.
[그것은 네가 짊어져야할 것이 아 니다. 위대한 운명을 지닌 존재는 그 이상으로 혹독한 삶을 살아야한 다. 사랑하는 여자, 믿을 수 있는 친구, 그들 전부를 희생해야할 수도 있다. 너의 ‘특별한’ 삶을 위해서 그 가시밭길을 꼭 걸어야겠느냐?]겨우 세 걸음째를 옮겼을 때, 성검 은 달콤하게 제안했다.
[네가 그 리안이라는 도련님을 이 기고 싶다면, 내가 약간의 힘을 보태주마. 성검의 주인으로서 짊어지 게 될 의무는 다른 이에게 떠넘기 고, 네 소원을 이루는 거다. 운명을 좀 거역하는 대가로 이 세상을 구 원하라니, 수지가 안 맞지 않나?]
마지막 걸음을 남겨두고, 레온은 잠시 멈춰서서 심호흡했다. 성검의 목소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를 뒤흔들었다.
무려 저 성검이 혹독하리라 경고 하는 ‘시련’.
지금까지 한 번도 고려해보지 못 했던 ‘희생’.
지난 3년간 꿈속에서도 애타게 바
라왔던 ‘승리’.
여기에서 발을 멈추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아니, 리안의 불합리 한 강함을 꺾고 승리의 희열을 맛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내 디디며, 레온은 말했다.
“그건, 비겁하잖아…!”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단련한 것 은 그 불합리함을 쳐부수기 위함이 었다. 노력 여하에 무관하게 정해 져버리는 서열과 결과. 그 불공평 한 현실에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
었다.
여기에서 성검의 말에 타협해버리 면, 지난날의 각오와 노력은 한 푼 의 값어치도 없는 쓰레기가 된다.
열등감으로 점철된 패배자의 삶이 었지만. 의미는 있었다.
레온은 그 의미를 증명하고자 성 검의 앞에 섰으니까!
[—옳다.]그렇게 네 걸음을 나아가서 발을 멈추자. 성검은 그 대답을 찬미하듯 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네 자신의 고결함을 증명했 다, 용사여!]사그라졌던 성검의 빛이 차오른다. 자격 있는 주인의 손을 기다리며, 그 검신에 새긴 태양을 환희하듯이 불태웠다.
그것이야말로 성검의 의지였다.
용사는 신탁 따위로 결정되는 게 아니며, 잘난 혈통과 가문 따위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불합리한 운명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
황금과 명예를 탐하기보다 제 신 념을 증명하려는 의지.
그 모두를 갖춘 자야말로 용사가 될 자격이 있다!
[자, 나를 봅아라!]
성검의 열의에 이끌리듯이, 레온은 타오르는 빛의 중심부로 손을 뻗어 서 그 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지친 몸에 활력이 차오르 면서 용기가 샘솟는다.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해낼 수 있 는 듯한 전능감!
안 그래도 잔뜩 고양되어있는 성 검이 우렁차게 외쳤다.
[나는 엘시드(El-Cid)! 성왕 로드 리고 칼디아스 엘 비바르의 분신이 자, 이 시대의 빛을 인도하는 검! 마스터 레온이여. 나 엘시드와 함께
사악을 토벌해보자!]
그것은 누군가는 초라하다고 할 만한 도입부였다.
아카데미의 뒷산 공터에서 만난 성검과 평민용사라니, 결코 잘 팔릴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틀이야말로 용사 레온 이 쳐부숴야할 적.
엘시드를 쥔 순간, 그의 인생에는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태생적인 한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큰 폭풍이.
* * *
[뭐야, 나 불렀어?]어딘지도 모를 공간에 경박한 목 소리가 울려퍼진다.
조금 전까지 레온을 찬사하던 말 은 온데간데없이, 언제나와 같은 말 투로 돌아간 엘시드가 껄렁거렸다.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엘시드는 성왕 로드릭의 영혼이 담긴 분신이니, 그 인격은 베이스가 된 본인과 큰 차이가 없다.
한 마디로 지금 보여주는 성격이
성왕 로드릭의 본성이며, 역사가들 의 찬사로 덮인 진실이었다. 너무나 도 위대한 업적 때문에 인격적인 결함이 감춰져버린 경우였다.
[왜 신탁을 어겼냐고? 무슨 소리 야? 레온 그 녀석도 이름이 ‘사자’ 를 의미하잖아. 클라이드 황실에 전 해져오는 예언이라고 해서 그 대상 이 황족뿐이라는 말은 없었지. 안 그래?]도대체 누구와 말다툼을 하고 있 는지, 엘시드는 능청스러운 말투로 그 지적을 받아넘겼다.
사실 용사가 되어야할 사람은 레 온이 아니었으니까.
[그 리안인가 하는 놈은 내 기준에 미달이야. 재능과 숙명, 두 가지를 지녔는데도 ‘의지’를 못 깨웠더군. 텄어.]엘시드는 썩은 감자를 품평하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생각했던 것보다 잔 소리가 적네. 너도 레온이 꽤 마음 에 들었나보지? 하긴, 지금처럼 기 득권층의 체제가 다 고착화된 시대 에서는 보기 드문 놈이지. 나 때에 도 저런 놈은 몇 명 없었는데. 기껏 해야 셋?]그 후로도 엘시드의 독백은 꽤나
길어졌다.
누군가의 말에 투덜거리고, 반박하 고, 웃어넘기면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성검’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으며, 공간과 시간을 무시하는 존 재는 하나분이었다.
또한 끝자락에는 제법 진지한 이 야기였는지, 웃음기 한 점 없는 목 소리로 말했다.
[어, 걱정하지 말라고. 내 유산을 사용한다면 전대 용사보다 더 나을 걸? 그놈들도 슬슬 빚을 갚아야할 때가 됐지.]알 수 없는 공간에서 엘시드의 빛
이 희미해져간다.
이야기의 끝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면 천상에서 잘 지켜보라고, 그게 네 일이잖아?]그 말을 마지막으로 성검의 빛은 지상으로 되돌아갔다.
무려 300년만에 인정받은, 평범한 용사의 곁으로.
18번째 생일의 다음 날, 레온은 언제나와 같이 새벽 5시부터 일어 나서는 침상을 정리했다.
몇 년간의 반복으로 몸에 익은, 기 계적인 동작이었다.
레온이라고 해서 졸리지 않을 리 없었다.
졸음기가 가득한 얼굴에 찬물을
몇 번 쏟아붓자, 겨우 눈이 다 뜨이 면서 거울이 보였다. 밤색 머리카락 에 고동색 눈동자, 못생긴 건 아니 지만 잘생기지도 않은 얼굴.
그리고 앞머리를 쓸어올린 왼손, 그 손등의 문양까지도.
[일어났냐?]“•••좋은 아침, 엘시드.”
하룻밤만에 제법 친숙해진 레온이 인사말을 건넸다.
성검 엘시드.
전설적인 대영웅, 성왕 로드릭이 여신에게 하사받았다는 검. 만약 교 단에 알린다면 교황이 맨발로 뛰어
나올 물건이었지만, 그 위명과 달리 엘시드의 성격은 털털했다.
첫 만남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럴 듯한 연출이라던가.
“엘시드는 내가 잘 때도 깨어있는 거야? 아니면.”
문득 궁금해진 부분을 입에 담자, 엘시드가 응답했다.
[같이 잘 수도 있고, 깨어있을 수 도 있다. 어차피 네가 자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말이지.]“그럼 불침번 정도는 가능하겠네.”
[신성모독이다!]레온은 그 반응에 킥킥거리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생각해보면 꽤 오랜만의 일이다.
매일같이 훈련에 훈련, 스스로 고 립되기를 선택한 레온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클 로에가 가끔 말을 걸어왔지만, 리안 과 교제하고 있는 그녀와 가까워졌 다가 무슨 소문이 생길까봐 거리를 뒀다.
그러니 시답잖은 말로 낄낄거리는 것도, 아침부터 누군가와 이야기하 는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아, 검을 휘두르는 모습도 보여달
랬지?”
[그래, 널 제대로 가르치려면 현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알 필요 가 있으니까.]“실망시킬 것 같은데.”
레온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 리에 당황했지만, 엘시드는 조금도 웃어넘기지 않고 대답했다.
[실망하지 않는다. 레온, 너는 스스 로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했다. 가르치지 않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고 탓하는 스승이 어디 있겠 냐?]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 레온이 잰걸음으로 걸었다.
성검과 용사는 그 마음으로 연결 된 관계. 엘시드가 한 말에 담겨있 는 진심이 그를 처절하게 뒤흔들었 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목검을 쥔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 어갔다.
[꽤나 어둡구만. 아직 해가 안 떠 서 그런가?]이윽고 연무장에 도착한 엘시드가 그 안을 둘러보았다.
레온의 왼손등에 깃든 성검이 어 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시야는 상당했다.
360도 어디에도 사각이 없는 것처 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면 슬슬 시작할까.”
간단하게 몸을 푼 레온이 목검을 움켜쥐었다.
검술이라고 해봤자 기본기를 좀 응용한 동작이다. 대영웅의 기억을 지닌 성검에게 보여줄 만한 게 아 니었지만, 엘시드가 한 말이 레온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집중한
그가 움직였다.
우웅!
바람이 잘려나간다. 날 없는 목검 에 베어지는 소리, 천 번을 휘둘러 서 열 번을 성공할까 말까한 일격 이었다.
그렇지만 무아지경에 빠진 레온은 또 달랐다.
내려친 검을 그대로 올려베면서 다시 한 번, 올려벤 자세를 전환하 여 대각선으로 내리치면서 또 한 번. 우연에 가까웠던 참격을 벌써 몇 번이고 재현해냈다.
열 번, 스무 번.
멈출 줄 모르고 움직이던 목검은 곧 제지당했다.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