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30
다. 레온이 그 용도를 묻자, 칸은 두 가지 물건을 가리키면서 설명했 다.
“내 표식을 새겨놓은 단검이다. 너 한테 괜히 지랄하는 놈이 있으면 보여줘라.〈관지기〉말고는 덤빌 엄 두도 못 낼 거다. 그리고 그 주머니 에는 대충 모아놓은 매직스크롤을 담아뒀지. 팔아도 상관없고, 필요하 면 써라. 선금이라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지.”
앉은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레온이 질문했다.
“주먹, 처음부터 멈출 생각이었나?”
그 의미를 알아들은 칸이 표정을 지웠다.
무표정하게 변한 얼굴에서 두 눈 동자만이 움직여, 두려움을 모르는 먹잇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씩 웃었다.
“ 설마.”
* * *
슬럼가를 들어설 때와 나설 때의 공기는 달랐다. 칸이라는 괴물과 직
접 대면했기 때문일까. 그 남자에 비하면 뒷골목의 피 냄새도, 험상궂 은 폭력배들의 인상도 그저 희미했 다.
〈송곳니〉라는 이명도 납득할 수 있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고도 남을 자였다. 레온의 손 바닥에서 말라붙은 피가 버석거렸 다.
‘겨우 한 합만에 찢어졌나.’
전력을 다한 일검으로도 칸의 살 가죽만 좀 베고 끝났다. 그 후의 일 격은 대응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터무니없는 강함이다.
“엘시드.”
그러나 칸의 실력보다 우선해야할 문제가 있다. 레온은 제 손에 쥔 종 이뭉치를 배낭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걸 보면서 짐작가는 게 있었 어?”
몇 가지는.]
엘시드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확언하기 어렵다.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 어. ‘사악’의 수법은 그 대응방식이 어긋나면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너무 높아.]
“네 눈으로 직접 살펴봐야한다, 이 거지?”
[그래.]말이야 쉽지, 위험천만한 일이었 다. 용병 500명이 몰살당한 구역에 잠입해서 정보를 수집한다니, 일류 의 암살자나 레인저 같은 놈들에게 나 주어질 만한 임무다.
칸 또한 레온의 생존을 크게 기대 하지 않으리라.
“…조력자가 필요하겠어.”
그의 결론은 간단했다.
미숙한 역량으로 혼자 무리하느니,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동행하는 쪽이 더 확실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와 동행할지가 또 다른 문제였다.
제 등을 맡길 수 있는 실력자에, 人!•지(死地)에 들어가야하는 일이니 만큼 숨기는 것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한다. 조건을 그렇게 늘어놓 고 보니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모아놓은 돈을 다 써도 A랭크 모 험가나 용병을 고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23〜25지구의 조사를 의뢰한다면 거절당할 게 뻔
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군.]“그러게. 나도 하나밖에 안 떠오르 는걸.”
엘시드와 레온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모든 조건을 중족시키는 조력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교단.
‘사악’의 티끌조차 용납하지 않을 그곳이라면.
“프리마 지구, 13번지라고 했지.”
리제가 가르쳐준 주소를 한 번 되 새겨본다.
숙소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다.
평상시처럼 걸어서 20분 내외일 까. 성직자를 만나본 경험이 없다보 니 조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이비 성검처럼 마냥 가벼운 사람들은 아닐 터였다.
성검을 드러내지 않고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말이 안 통할 경우에는 그 수단도 고려해야했다.
[야, 걱정하지 마라. 나 때도 순둥 이들밖에 없었는데, 고작 300년만 에 뭐가 그렇게 달라졌겠냐?]“아니, 300년이면 충분히 긴 시간 인데.”
[인마! 나 성검이야!]“도대체 그게 뭔 상관이야…?”
결국 레온은 떨떠름한 얼굴로 수 긍했다.
엘시드가 한 말대로 흘러가는 게 최선이기도 했고, 어차피 내일 찾아 가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바로 그다음 날, 레온은 해가 떠오 르자마자 숙소를 나섰다. 알게 모르 게 마음이 조급해진 탓도 있었고, 보는 사람이 없는 시간대가 딱 그 쯤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마 지구, 13번지.
블레인의 번화가에서 꽤 멀리 떨 어져있는, 북동쪽의 판자촌 구역이
었다. 제아무리 잘 사는 동네라고 해도 주민들 모두가 부유하지는 않 듯이, 슬럼처럼 노골적인 곳을 제외 하더라도 그 신세가 궁핍한 사람들 은 많았다.
레온의 발이 한 번 붙었다가 떨어 질 때마다 건물의 높이가 점점 낮 아진다. 투명해야할 창문은 부옇게 물들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색 도 남루해져갔다.
이곳은 슬럼과는 또 다른 의미의 빈민가였다.
‘교단에서는 왜 이런 구역에 지부 를 둔 거지?’
레온이 그걸 궁금해하자. 엘시드가 생각을 읽고 대답했다.
[눈치 보이라고.]
‘뭐?’
너무 축약된 대답이었다.
엘시드도 이내 그 사실을 깨달았 는지, 그가 알고 있는대로 설명해주 기 시작했다.
[신성교단은 옛날부터 항상 그랬 어. 가난한 자. 비천한 자, 소외된 자들이 머무르는 곳에 건물을 짓고 성직자를 보냈지. 그럼 교단의 눈치 를 본 권력자들이 빈민가에 돈을 쓸 수밖에 없었거든. 선의를 바탕으
로 한 정치적인 시위나 마찬가지 야』
‘과연.’
[부유한 자들에게 무작정 베풀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효과적 이었지. 무늬만 그렇기는 해도 ‘자 발적으로’ 쓴 돈은 미련이 덜하니 까.]레온은 내심 감탄했다.
선행은 틀림없이 숭고하지만, 현실 을 고려하지 않는 선행은 곧 층돌 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옳은 뜻으 로 한 행위라도 그 결과가 참혹하 다면 진정한 선행이라고 할 수 있
을까? 이상만 좇는 사람들의 결말 은 항상 좋지 못했다.
그런데 신성교단은 그 현실을 알 고, 타협하지 않는 선에서 절충점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선함이 곧 미련함은 아니고, 호의 를 베푼다고 해서 호구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리사욕을 내려놓 았기 때문에 더욱 현명해지는 게 성직자다.]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득에 눈이 먼 자는 유혹당하기 쉬웠고,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조종 당하기 쉽다. 성직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 심기가 태산과도 같다.
승상하는 것은 스스로의 신념과 여신의 가르침뿐이니,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현혹할 수 없다.
“ 그런가.”
엘시드의 말을 이해한 레온이 중 얼거렸다.
“•••어설픈 거짓말에 속아줄 리 없 다?”
[잘 알아들었군.]“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지금처럼 미숙한 채로 용사를 자 칭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판국에 계속 고집부릴 순 없었다. 게다가 정체를 드러낸다고 해도 그 상대가 성직자이니, 묵언을 부탁하면 결코 누설하는 일이 없을 터였다.
행동방침을 정한 레온이 당당하게 걸었다.
얼마 안 되어서 프리마 지구에 발 을 들여놓고, 그는 슬럼과 이 구역 의 다른 점을 또 하나 찾아냈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 불안해하
는 느낌은 있지만, 남을 해치려는 의도는 안 보이네.’
온몸이 쉴 새 없이 따끔거렸던 슬 럼가와는 큰 차이였다. 잘 살펴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많이 달랐다.
남루한 행색과는 달리 눈동자는 맑았고, 흉흉한 빛이 없다. 주위를 경계하거나 남의 주머니를 노려보지 도 않는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남 아있다는 증거였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건물이리라.
“신성교단.”
발걸음을 멈춘 레온이 두 눈을 들 어올렸다. 화려하지 않은, 그러나 번듯하게 세워져있는 건물이었다.
여신을 상징하는 태양과 달의 문 양.
아침 일찍부터 온 탓인지 문은 닫 혀있었지만,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인기척이 하나 있었다. 체내에서 흐 르는 오러가 그 기척을 향해서 반 갑다는 듯이 꿈틀거렸다. 아마도 그 기척의 주인이야말로 이 지부를 담 당하는 인물이겠지.
탕탕.
문고리를 몇 번 잡았다가 놓자, 문
안에서 움직이던 기척이 그를 향해 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마디도 없이 문짝을 열어젖혔다.
“누구십니까?”
“ 아.”
인사를 건네려던 레온이 할 말을 잊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문 뒤에 서 나타난 사람의 정체가 정말 의 외였기 때문이었다.
뾰족하게 돋아난 귀, 중성적으로 다듬어진 미형. 그와 같은 특징을 지닌 종족이라면 하나분이니까. 처
음으로 아인종을 본 레온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 엘프…시군요?”
“예.”
그는 한 점의 불쾌감도 보이지 않 았다.
주교를 상징하는 망토, 펠레그리나 가 붙은 카속(Cassock)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아카데미에서 배우지 않 았다면 알아볼 수 없었겠지. 무엇보 다 신성교단의 주교급이면 자작위와 동급의 대우를 받는 직위였다.
설마 그 직위에 엘프가, 그것도 대 도시 한복판에서 지부를 운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여신께서는 모든 종족을 평등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저도 이 생 애를 바쳐 그분을 경애하는 것분이 지요.”
레온은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 면서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주교님.”
“아닙니다. 드문 상황에 의문을 품 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 같은 입장의 엘프가 흔한 게 아니니, 모 욕이라고 자책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
다.”
주교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솥 안 의 희멀건 쌀죽이 보글보글 끓으며 좋은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를 맡 은 레온의 텅 빈 위장이 꼬르르륵 소리를 냈다.
그가 무안해서 눈을 피하자, 주교 가 그릇을 건넸다.
“시장하시다면 함께 드시지요. 제 이름은 체자레(Caesare), 블레인을 담당하고 있는 주교입니다.”
“아, 저는 레온입니다. 모험가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최근에 자주 들어본 이 름입니다.”
주교, 체자레가 싱긋 웃으면서 죽 을 퍼줬다.
“하수도와 성벽 지하의 마물들을 퇴치해주셨지요? 레온님의 노고 덕 택에 수질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배 탈을 앓는 사람도 꽤 줄어들었지요. 여신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몇 번을 말씀드려도 과 하지 않겠지요.”
레온도 체자레의 살가운 태도에 금방 말문이 트였다. 둘은 몇 그릇
의 죽을 비우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본론으로 들어간 것은 식사를 다 마친 후였다.
“자, 그럼 말씀해주시지요.”
체자레가 커피 두 잔을 내려놓으 며 말했다.
그 역시 레온에게 특별한 용건이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에 앞서 사람 됨을 알아본 것이었다.
결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사람들의 고층을 우선시하는 모험 가, 여신의 축복과도 같은 태양의 힘. 젊은 나이의 실력자임에도 불구
하고 겸손한 성품. 타 종족에게 편 견을 먼저 사죄하는 심성까지. 오랜 만에 만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먼저 이 문서들을 봐주십시오.”
레온은 몇 마디의 설명보다 먼저 증거를 내밀었다.
체자레는 그 종이뭉치를 받아들더 니, 이내 진지한 기색으로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종이가 한 장 넘어 갈 때마다 그의 흰 피부에 불그스 름한 기운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 그것을 내려 놓은 체자레가 두 주먹을 굳게 움
켜쥐면서 말했다.
“•••교단이 직접 움직여야할 사안이 로군요.”
그러나 체자레는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의 출처가 문제입니다. 본부 에서 즉시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사를 맡기라고 할 겁니다. 그래서는 상당 히 늦고 말겠지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염려를 긍정한 레온이 스스 럼없이 말했다.
“그래서 저와 함께 23〜25지구를
조사하실 분을 찾고자 이 지부를 찾았습니다. 체자레 주교님, 마땅한 분을 소개받을 수 있을는지요?”
“ O 으”
— v그 •
체자레가 두 눈을 감고서 고심했 다.
괜찮은 인물이 없는 것인지, 아니 면 스스로의 재량으로 할 결정인가 가늠하는 것인지. 그는 몇 분이나 계속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긍정적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반 응이 었다.
“죄송합니다만 이 지부에는 무력을
갖춘 분들이 없습니다. 회복이나 보 조계 성법을 익힌 분들은 몇 분 계 시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도움 이 될 것 같지는 않군요.”
“아….”
“어쩔 수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구석마저 무너 진 레온이 두 눈을 감자, 체자레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제가 나서지요.”
레온은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면 서 되물었다.
“ 예?!”
“사무적인 업무는 다른 분들께 잠 시 맡겨도 괜찮을테니, 이 체자레가 동행하겠습니다. 주교라는 직책은 결코 궂은 일에서 멀어지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놀란 레온 이 몇 번이나 물었다. 설마 주교씩 이나 되는 인물이 따라오겠다니? 잘해봤자 성기사나 몇 명 붙여주겠 지 싶었던 기대를 한참 뛰어넘었다.
그런데 체자레는 그걸 좀 다르게 받아들였다.
“흐음, 제가 못 미더우십니까?”
그는 레온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카속의 양팔 소매를 걷어붙이 면서 손바닥을 내보였다.
엘프답지 않게 거칠어진, 상처투성 이의 손.
그리고…….
우우우웅!
그 손바닥이 푸르게 불타올랐다.
레온은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듯이 뒤로 물러섰다. 체자레의 양손에 모 인 힘은 그 정도로 심상치가 않았 다. 오러가 선명히 유형화된 것도 모자라서 불꽃의 형상을 이루다니?
오러 파이 어 (Aura-Fire).
밀도의 한계치에 도달한 오러가 새어나오며 그 주변 대기를 불태우 는 현상. 이 상태로 후려갈기면 미 스릴도 몇 번 버티지 못하고 종잇 장처럼 찢어지고 만다.
[이야, 이놈도 꽤 센데?]
‘어느 정도야?’
호기심을 참지 못한 레온이 물었 다.
[어제 만났던 깡패하고 비슷한 수 준이다. 그놈과 달리 무의 기본기가 바로잡혔고, 성법(聖法)도 다룰 줄 아니까 이쪽이 두 수는 유리하겠지.
경력이 어떤지는 몰라도 실전경험도 상당히 많아. 잔재주는 안 통할 거 야.]
‘괜히 주교급이 아니었구만?!’
엘시드의 말에 경악한 레온이 침 묵하자. 체자레는 두 손의 오러를 거둬들이면서 말했다.
“어떻습니까? 발목을 붙잡지는 않 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