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45
어느 쪽으로든 벗어날 수 없는 밑
바닥 인생들이다.
“나도 환락가에 갈 거라고 생각했 어요. 잡으러온 놈들도 꽤 있었고, 하프엘프는 보통 인간보다 돈이 좀 되니까.”
그러나 카렌은 그때 누군가에게 구해졌다. 그녀를 잡으려던 놈들은 일순간에 모두 시체가 되어버렸다.
유감스럽게도 선의로 한 일은 아 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구원에는 악 의밖에 없었다.
“꽤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죽 어버려도 별 상관이 없는 고아들을
잡아와 암살자로 육성하는 거. 백 명 중 한 명만 제대로 길러내도 본 전을 봅아낸다나?”
그녀를 잡아온 자도 예상하지 못 했으리라.
다크엘프의 혼혈.
스스로도 몰랐던 혈통 덕택에 카 렌은 제 천재성을 깨닫고, 불과 15 년만에 조직의 간부직까지 올라선 다. 블레인에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 던 것도 그 시점이었다.
물론 조직에서는 기버했다.
시궁창에서 보석을 주운 셈이었으 니 오죽하랴? 카렌의 손이 빠르고
예리해질수록 조직은 더욱 강성해졌 고, 그녀의 지위는 점점 올라가서 보스(Boss)만을 제 머리 위에 두었 다.
“별 거 아니었어요.”
카렌은 그걸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역이 아니어서 그런지 감도 떨 어졌고, 제가 갑자기 덤빌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나봐요. 7초만에 끝장났 으니.”
원치 않았던 암살자가 되었다.
원치 않았던 살인을 거듭했다.
그 원한을 수십 년에 걸쳐서 쌓고
다듬어서, 마침내 조직의 꼭대기에 있던 보스의 심장을 도려내는데 성 공했다. 뒷골목의 고아 한 명이 하 극상을 성공한 순간이었다.
하나 카렌은 더 이상 암살자로 살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 조직의 썩어빠진 상층 부를 다 숙청하고, 그녀와 같은 신 세의 암살자들을 해방했다.
“한 번에 정리하면 주목을 받을 테 니까. 천천히 해산시켰죠.〈관지기〉 로 활동하는 일도 뜸해졌고. 이제 와서 평범하게 살 수도 없으니 모 험가로 전업해볼까 했는데.”
카렌의 신분세탁은 제법 치밀했다.
이번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몰랐겠지. 몇 년에 걸쳐서 밑작업을 깔고. 백 회 이상의 의뢰를 성실하 게 수행함으로써 모험가 길드의 호 의마저 샀다.
어중간한 랭크면 또 몰라도, A랭 크 모험가라면 그 누구라도 함부로 의심하지 못할 신분이었다.
“뭐, 결국에는 이렇게 들통나버렸 지만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그녀가 자 조적으로 웃었다.
“나름대로 공도 세웠으니까 처형은
안 당하겠죠? 신성교단 상대로 도 망다닐 수 있다고는 생각도 안 해 요. 그래도 감옥은 좀 싫으니까 노 역형 같은 걸로 부탁드리고 싶은 데….”
특급 암살자치고는 연약한 소리였 으나, 신성교단은 웬만한 마스터도 못 건드리는 곳이다. 외교적인 절차 에 관계없이 전 대륙을 누빌 수 있 는데다가, 매일같이 마물이나 외법 사 같은 놈들과 살육전을 벌이는 성철쇄기사단이 있다.
게다가 카렌은 이번 토벌전을 진 행하면서 체자레와 레온의 힘을 본 것도 있어서, 그 이전보다도 훨씬
겁먹은 상태였다.
“형제님.”
잠시 생각해보던 체자레가 눈을
돌렸다.
레온은 그 부름에 돌아보다가, 이 내 의도를 파악하고서 두 눈을 동 그랗게 떴다.
‘내 재량에 맡기겠다고?’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카렌이 암살자로 살아온 것은 잘 못이지만, 그 잘못에는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악을 처단하 고 새 삶을 살고 싶어하는 마음도 거짓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용사에게도 감히 용서를 논할 자 격은 없겠으나, 제 과오를 뉘우치는 자에게 검을 들이밀 필요도 없어보 였다.
“ 카렌.”
레온은 겨우 상반신을 일으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 를 줄 겁니다. 어느 쪽을 고르는가 는 당신의 자유이며, 어느 쪽을 고 르든지 그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약 속합니다.”
“응? 무슨 소리야? 그걸 후배님이 결정할 수 있어?”
“네.”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그 의문에 수긍했고, 앞서 말한대로 두 개의 선택지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카렌은 선택했다.
그 결단에는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 * *
카렌과 만났던 날 이후, 레온은 무 려 나흘이나 더 회복실에 누워있다 가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회복기간이 만 일주일을 채운 것 이다.
제대로 휘둘러진〈칠성검〉의 위력 이 어느 정도인지, 자신의 봄을 시 험대로 알아본 느낌이었다. 반 발자 국만 더 나갔어도 죽거나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반동이다. 천부 적인 재능을 가진 자에게만 허락되 어있는 검.
편법으로 그 경지에 닿은 대가일 지도 모른다.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불러서 미안 하게 됐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일주일
이나 기다리시게 만든 것 같아서 죄송해지네요.”
레온은 그와 악수를 나누고서 맞 은편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위압감 이 뿜어져나오는 덩치였다.
블레인의 길드마스터, 버나드.
금속으로 된 의족이 인상적인 거 한이 씨익 웃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상식적으로 이 만남은 성립하기 힘든 것이었다.
블레인의 길드마스터, 버나드는 전직 A랭크의 모험가이면서 도시 한 곳을 담당하는 권력자였다. 작 위만 없을 뿐이지, 그가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은 어지간한 귀족 이상이 었다.
이번 사악토벌전의 준비과정만 살 펴봐도 그렇다.
이 도시의 영주, 블레인 백작과 독대해서 군을 움직인다는 판단을 이끌어낸 것도 버나드였다.
‘길드의 핵심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B랭크도 얼굴을 보기 힘들다 던데. 난 자주 보는군.’
레온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버나드의 얼굴 한 번 보려고 상단 주들이 갖다바치는 뇌물만 해도 산 더미였다. 길드마스터와 친분을 쌓 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는가?
비밀스러운 정보의 독점, 유능한 모험가나 용병의 선점.
한 가지만 손에 넣어도 경쟁자들 을 간단하게 제칠 수 있는 수준이 었다. 그러니 상단주들도 눈이 벌 게져서 길드마스터를 찾아다닐 수 밖에 없다.
‘아니, 상인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 지.’
귀족들은 또 어떻겠는가?
귀족이라고 하면 질색하는 교단과 달리 길드는 권력자와의 접촉을 꺼 리지 않는다. 요구사항이나 비위만 잘 맞춰준다면 수십 년을 공들여야
하는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가능했 다.
A랭크라면 좀 힘들어도, B랭크만 해도 어지간한 기사단에서 중견급 이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자들이 다. 손수 키워내려면 최소한 20년 은 소요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운이 따라줘서 A 랭크를 영입한다면? 왕궁에도 없는 강자가 제 가문에 머무르게 될 수도 있었 다.
“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까.”
찻잔을 한 모금으로 비운 버나드
가 중얼거렸다.
“불러놓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미 안하네만, 이번 사태는 내 입장에 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네. 조금만 이해해주게.”
“물론입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말 씀해주시죠.”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아닌 게 아니라, 그 말대로였다.
사악토벌 전.
그 자체는 드물지만, 가끔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교단 측에서 포착한 ‘사악’을 대상으로 한 섬멸 작전. 성철쇄기人!•가 앞장서서 모든
방해를 쳐부수고, 국경과 법의 굴 레에 개의치 않고 정의만을 추구하 는 성전*戰).
버나드 역시 모험가로서 활동하던 시절에 겪어본 일이었고, 제법 혁 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토벌전은 경우가 좀 다르단 말이지….”
C랭크에 불과한 레온이 그 꼬리 를 잡은 것도 모자라, 교단 측의 조력자와 동행하면서 작전을 주도 하기까지 했다. 천 명 이상의 모험 가와 용병, 군병력까지 동원된 작 전이다.
대담하게 그 인원을 미끼로 삼아 돌입조를 구성해, 슬럼가 3대악당 두 명을 포섭하는 것도 성공했다. 결국은 이 도시를 집어삼키려던 놈 들의 우두머리를 직접 쓰러트리기 까지.
이번 토벌전의 주인공이나 다름없 는 활약이었다.
“끙, 그냥 다 털어놓겠네.”
버나드는 제 콧수염을 비비 꼬아 대다가 말했다.
“자네의 그 실적은 이미 A랭크로 승급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규칙에 어
긋나는 일도 아니지. 이렇게까지 해낸 사람이 없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하고 운을 뗀 버나드가 말했다.
“활약상의 공개는 피할 수 없을 걸세. 전례가 없다는 것은 필연적 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부르지. 올 바른 절차였다고 해도 그 이유를 비공개로 한다면 길드 전체의 투명 성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 아.”
“•••부정한 방법으로 승급했다고 생각하겠군요.”
“신성교단의 증언도 있다보니 대
놓고 할 놈은 몇 없겠지만, 안 좋 은 평판은 암암리에 퍼져나가는 법 이지.”
레온은 그 말에 납득하면서 고개 를 끄덕였다.
비밀은 곧 의심을 불러들이고, 오 해와 질투까지 더해진다면 악의로 변질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또 갈림길에 서있 는 모양이었다.
‘뭐, 고민할 필요도 없지.’
진작부터 결단을 내린 레온이 입 을 열었다.
“길드마스터, 제 승급을 보류해주
세요.”
“…진심인가?”
버나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보면 활약상만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영응이 될 수 있었다. 스무살도 안 된 나이로 사 악토벌전을 지휘하여, 신성교단의 인정까지 받아낸 젊은 영웅!
레온의 이야기가 퍼져나가면 음유 시인들을 그의 노래를 몇 곡이든 지어내느라 바쁠 것이며, 인재에 탐욕스러운 귀족이나 상단은 더없 이 호화로운 조건으로 그를 유혹할 터였다.
문자 그대로 부귀공명이 굴러들어 온 상황인데, 그걸 생각도 안 하고 걷어차겠다니?
“네,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레온에게도 나름대로 생각 이 있었다.
그의 활약이 널리 알려진다는 것 은, 이 도시에 숨어들었던 ‘사악’의 무리에게도 알려진다는 뜻이다. 〈도시 삼키기〉같은 대의식을 방해 한 장본인이니, 레온의 신상명세가 퍼지면 그를 죽이러올 게 틀림없었 다.
‘지금과 같은 실력으로는 내 앞가
림도 못해.’
성검이 있었기에 외법사들은 쉽게 상대했지만, 그의 순수한 무력은 B 랭크에도 못 미친다.
만약 ‘사악’이 직접 나서지 않고 그 하수인들을 동원한다면, 레온의 목숨은 즉시 위태로워진다. 그런 위험성을 무릅쓰고서 부와 명성을 쫓아야할 이유가 없었다.
“B랭크로의 승급도 조금 간격을 둘 생각입니다.”
사실 오러의 유형화도 못하기 때 문이었지만, 버나드는 그걸 알 수 가 없었기에 고개만 까딱거렸다.
유명세를 좋아하지 않는 젊은이.
아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 지 않을까.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가 더 말할 수 없겠지. 길드마스 터의 권한 밑으로는 이번 토벌전의 내역을 조회할 수 없도록 처리해두 겠네.”
“아, 감사합니다.”
“그건 내가 할 말일세. 자네가 아 니었다면 이 도시는 지금 처참하게 파괴되었겠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 이야.”
버나드는 제 의족을 씁쓸한 눈으
로 내려다보다가, 이내, 씩 웃으면 서 레온의 어깨로 팔을 뻗었다.
“그래도 자네 같은 젊은이를 볼 수 있어서 기뻤네. 마음이 바뀐다 면 언제라도 좋으니까 내게 귀띔해 주게. 보이는 것처럼 발이 넓어서 음유시인도 많이 알거든. 두 달 내 로 이 대륙의 반대편까지 자네 이 름이 울려퍼지게 해주지.”
“그, 그건 좀….”
“하하하하! 블레인의 영웅이 숫기 없기는!”
그의 어깨를 팍팍 두드린 버나드 가 웃어젖혔다. 레온은 그 충격에
몸을 휘청거리다가, 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말을 꺼냈 다.
“그러고 보니, 길드마스터.”
“ 뭔가?”
“토벌전이 끝나고 칸은 어떻게 되 었습니까? 소식이 없던데, 그냥 슬 럼가로 돌아간 건가요?”
그 질문에 버나드의 눈썹이 양미 간으로 모였다.
“쯧, 그놈이라면 벌써 도망쳤네.”
“•••예?”
“토벌전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슬럼가의 재산을 정리해서 도시 바 깥으로 튀었지.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네. 워낙에 잽싼 놈이다 보니 추격자를 붙일 수도 없었어.”
레온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만 딱 벌렸다.
도주 자체는 예상하고 있었다.
슬럼가는 이번 토벌전으로 절반 가까이 무너져내렸고, 이제 쓸려나 갈 일만 남았다. 게다가 토벌전에 참가한 공로가 있다 하더라도 성철 쇄기사의 징벌은 피할 수 없다.
카렌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노역 형을 받거나, 감옥에 몇 년 들어가
는 건 확정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바로 다음 날에 도망치다니….’
가진 게 많아질수록 엉덩이가 무 거워지는 법인데, 칸은 그 미련도 없이 쏜살같이 내빼버린 것이다.
터무니없는 행동력.
레온은 새삼스럽게 그의 교활함을 떠올려야했다.
‘어디선가 또 만날 것 같은 기분 이 드는데.’
찝찝한 기분을 감춘 레온이 긴 한 숨을 내쉬었다. 그걸로 다 털어버 리고, 그는 버나드를 보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 여서 였다.
“크흠, 이 용건으로 정말 마지막일 세.”
병상에서 막 일어난 그의 눈치가 보였는지, 버나드가 괜히 헛기침을 거듭하면서 말했다.
“자네, 영주님과 만나볼 생각은 없 나?”
“영주님… 말씀입니까?”
“그래. 주교님께 말씀을 좀 들어보 니 교단과 인연은 있지만, 성기사 는 아니라고 하시던데? 그렇다면 귀족들과 어느 정도는 가깝게 지내
는 것도 괜찮다네.”
레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예법도 잘 모르고, 귀족들과 얽히면 제 목적이 멀어질 것 같아서요.”
“그런가? 그럼 영주님의 치하는 내가 대신 받아주겠네.”
누군가는 어리석다고 할지 몰라 도, 레온에게 귀족이란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에서 겪었던 것도 그러했 고, 엘시드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귀족들은 배신자였다. 여신의 은혜
를 배반하고, 그것을 악용해서 다 른 사람들을 발 아래에 둔 자들.
그들과 깊게 관련되어서 좋은 기 분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일세. 그만 일어나겠나?”
“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레온이 그 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 마스터.”
“음!”
버나드는 그 악수에 화답하면서
짙게 미소지었다. 둘의 첫 독대는 그런 식으로 끝을 맞이했다.
* * *
“오, 후배!”
길드마스터와의 독대를 끝낸 레온 이 걸어나오자, 문 앞에서 기다리 던 카렌이 그를 반겼다.
포니테일로 묶인 회백색 머리카 락.
초점이 없어보이는 눈동자도 여전 했다.
그녀 역시 토벌전에서 부상을 좀 입었지만, 레온과 달리 그 깊이가 얕고 자체회복력이 워낙 뛰어나서 다 회복된 지 오래였다.
“이야기는 잘 끝났어?”
“ O ”
흐.
두 사람의 거리감은 며칠 전과는 또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