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49
“ 네.”
엘라한은 그 말에 수긍하면서 앞을 보았다.
세상의 끝.
‘별의 정수리’에서도 끝자락, 하늘 을 꿰뚫기라도 할 것처럼 솟아오른 산맥이 그들의 앞에 우뚝 서있었다. 하나 엘라한은 그 산의 웅대함에 놀 란 게 아니었다.
“저게 그 성왕님께서 남기신…!”
“예, 세계 최대의 검흔(劍a)입니 다.”
산중턱쯤을 수평으로 한 번 깎아낸 듯한, 초대형 칼자국이 드러나있었 기 때문이었다.
저 흉터자국이 고작 일검에서 비롯 된 것이라니?
산봉우리 몇 개를 토막낸 것도 모 자라서 지형을 뒤집어버린 흔적이 다. 오죽하면 도시 하나, 국가 하나 를 위협할 수 있다는 마물들조차 저 흔적을 두려워하면서 내려오길 꺼릴 까.
신성교단이 그 본부를 두면서까지 막으려고 한 마경이, 한 번의 검격 으로 봉인되어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 절벽에 새겨진 흔적들 이, 나를 비롯한 성녀들이 계승식 직후에 남겨놓은 것들이랍니다. 물 론 초대님만큼은 그 말년에 남기셨 다고 하지만요.”
전대 성녀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 자, 산맥을 벤 칼자국에 비할 순 없 어도 만신창이가 된 절벽이 서있었 다.
그 꼭대기에는 흰구름이 머무를 정 도의 높이.
거대하기 그지없는 암석의 벽에, 7 개의 크레이터가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져있었다. 검흔만큼은 아니어도 이 또한 인간이 남겼다고 믿기 어려 운 흔적들이었다.
“자,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8대 성녀, 엘라한은 대답하지 않았 다.
그녀는 투구에 가려져있는 입술로 대답하지 않고, 손아귀에 쥔 철퇴를 들어올린 채로 걸어나갔다.
말 대신 행동으로 증명하겠다는, 무언의 시위.
‘‘—스읍.”
절벽을 마주보고 선 엘라한이 숨을 멈췄다.
전심전력 (全心全方).
체내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남김없 이 퍼올려서, 손아귀에 쥔 철퇴에 집중시킨다. 2m 남짓한 자루가 금 빛으로 물들고, 이내 그 철퇴머리 또한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한 방이다.
그녀는 두 다리를 적당하게 벌리고 선 채, 몸을 대각선으로 틀어서 무 게중심을 굳게 고정했다.
‘아아, 용사님.’
작렬시키는 것만을 남겨놓은 순간, 엘라한은 그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 도했다.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반 자, 용사에게.
‘활약상은 전해들었습니다. 신탁의 날까지 아직 반 년은 더 남아있는 데, 벌써부터 그렇게 활약하시다니 요. 이제서야 겨우 성녀가 된 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직 성검의 봉인도 해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악’과 맞서,〈도시 삼키 기〉라는 재앙을 막아냈다. 게다가 그 소식은 주교 체자레가 전달한 것 이었다.
당연히 그 말은 레온에 대한 칭찬 일색으로, 엘라한은 그걸 고스란히 믿어버렸다.
‘이 얼마나 용맹하신, 이 얼마나 늠 름하신 분인지! 저 역시 용사님에게 어울리는 성녀가 되고 말겠습니다!’
감정이 절로 고양된다.
용사에 대한 동경심이 차올라, 엘
라한의 거대한 성력이 한층 더 부풀 어올랐다. 외부에서 본 그녀의 모습 은 이미 황금빛의 회오리와도 같았 다.
그녀 본연의 오러도 성력으로 인해 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성력이 몸 과 정신을 강화하고, 그 강화된 심 신은 더욱 강력한 오러를 끌어올릴 수 있게 만든다.
메이스 위로 황금사자의 형상이 떠 오른다. 유형화를 넘어선 경지, 오러 마스터의 증명이나 마찬가지인 구현 화.
“ 단!”
엘라한은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메 이스를 들어올려,
“ 죄에에에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려쳤다.
그 직후, 소리가 사라졌다.
너무나도 큰 굉음은 들을 수 없다. 소리의 벽을 박살내버린 층격파가 온 사방을 후려쳐, 먼지구름조차 걷 어버리면서 반경 수백 미터를 뒤흔 들었다.
거기에 직격당한 절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떨어져나온 낙석과 흙이 폭풍처럼 쏟아져, 산사태처럼 주변 일대를 휩 쓸었다. 멀리 떨어져있던 전대 성녀 조차 그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의 일 격이었다.
냉병기의 일격보다는 공성병기에, 공성병기보다는 드래곤의 브레스에 더욱 가깝다.
“ •••굉장해.”
전대 성녀는 할 말을 잊어버리고서 그저 감탄했다.
총 7개의 크레이터가 새겨져있던 절벽. 그 전체가 엘라한의 일격으로 무너져내렸다. 역사를 다시 쓰겠다
는 듯한, 성녀들의 숙원을 대변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산사태에 휩쓸린 그녀에 대한 걱정 은 전혀 없었다. 성녀의 방어력은 기본적으로 제 공격력보다 훨씬 높 았다.
우우웅一.
아니나 다를까, 먼지구름을 헤치고 황금빛의 구가 나타났다. 엘라한이 장착한 갑옷에 존재하는 기능이다.
대결계에 준하는 성법방어막.
옛 전승에 따르면 궁극마법도 감당 할 수 있다던가. 고작 이 정도의 산 사태라면 홈집이 생겨나는 쪽이 더
힘들다.
“용사님, 부디.”
아무렇지도 않게 대파괴를 일으킨 성녀, 엘라한은 그 폭풍 속에서 다 소곳한 자세로 손을 모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렇게나 부족한 저를, 당신께서는 받아주시기를.”
사람들은 말한다.
진심은 어떻게든 결국 전해진다고.
우연인지 아닌지 몰라도, 그 순간 은 바로 레온의 목덜미가 오싹해진 순간과 일치했다.
단검 (Dagger).
이 조그만 날붙이는 꽤나 약해보인 다. 칼몸을 남김없이 다 박아넣어도 치명상이 안 될 때가 있으며, 아무 리 깊이 베어도 팔다리를 끊어내기 에는 칼날이 좀 짧다.
다수의 적을 꿰뚫고도 그 길이가 남는 창, 허리를 끊어내도 칼날이
남는 장검과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불리하다.
그래서 단검 사용자들은 그 칼날에 독을 바르거나, 간격의 우열을 역전 시킬 수 있는 근거리에서 기습하는 경우가 많다. 단검을 주무기로 쓰는 직종의 대다수가 암살자, 레인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정면대결에 적합하지 않은 냉병기. 그게 바로 단검에 대한, 냉정하고도 정확한 평가였다.
위력이 부족하다.
간격이 부족하다.
독을 바르지도, 기습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단검은 그 힘의 대부분을 잃는다. 모험가, 용병들이 단검을 보 조무기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 유다.
하지만.
카카카카캉!
순식간에 5번을 부딪힌 칼날이 튕 겨나간다.
한 호흡의 여유도 없다. 레온은 저 릿한 손아귀에 힘을 넣으면서 검 자 루를 비틀었다. 공격속도의 차이는 세 배 이상. 아주 잠깐만 지체해도 다음 공격에 따라붙기가 어렵다.
세간에 통용되는 상식과 달리 단검
술에 일격필살은 드물다. 얕은 공격 을 빠르게 반복해서 상대의 몸을 깎 아내, 전투력을 소모시킨 다음에 결 정타를 꽂는 게 정석이었다.
지금 카렌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 럼.
‘발라!’
레온의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흔들 린다.〈안법〉으로 느려진 세계에서 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역시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적이 있었다.
오러를 배제하고 무예를 겨룰 때. 창은 검보다 세 배 이상 강하다고.
간격의 차이는 절대적이며, 역량의 차이가 상당해도 그 격차를 좁히는 건 쉽지 않다고.
무엇보다 검과 단검의 격차는 그 이상이었다. 상식대로라면 카렌은 그에게 접근하는 것도 어려워야할 터.
“뭐야, 잘 막잖아?”
그러나 카렌은 단 한 번도 주도권 을 놓지 않았다.
양손에 한 자루씩, 두 자루의 단검 을 쥔 그녀가 몸을 낮춘 채로 씩 웃 었다. 저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얼마 나 무시무시한 공격이 튀어나오는
지, 레온은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마스터리(상급)의 경지인
가….’
엘시드는 말했다.
중급까지는 흔한 숙련자에 지나지 않으며, 상급부터가 진짜 달인의 영 역이라고. 무기를 제 몸보다 능숙하 게 다룰 줄 아는, 상식을 초월하는 기교의 세계.
그녀의 단검술은 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짧은 길이를 이용해서 손 안에서 단검을 회전시켜, 궤도는 물론이고 그 위력까지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제부터 두 템포 올린다?”
그렇게 말한 카렌이 ‘팟!’ 하고 사 라졌다.
터무니없는 속도다. 저 빠르기야말 로 단검술보다 더 위험한 요소였다. 레온의 눈으로도 옅은 잔상밖에 안 보인다.
“—아무래도 용사님의 눈은 좀 반 칙이 니까.”
들려오는 목소리로 위치를 쫓는 건 불가능하다.
그녀가 직접 가르쳐준 일이다. 암 살자의 비술 중엔 소리를 왜곡시키 는 것도 있다고. 등 뒤에서 들려온
속삭임에 고개를 돌렸다가는 그 빈 틈을 찔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레온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시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카렌 의〈신기루〉를 상대하면서〈안법〉은 한 단계 진보했지만, 그 때문인지 시각에 의존하는 전술을 그녀에게 지적받았다. 지금처럼 人]•각(死角)을 노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 다.
‘오러센스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아 야해.’
레온의 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희미하기까지 한 밀도의 오러. 선 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오감의 다음, 여섯 번째 감각이 눈을 뜬다.
반경 수 미터를 손바닥처럼 훑어보 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좀 많이 부족하다.
카렌은 그 귀신과 같은 기척만큼이 나 오러 또한 희박했다. 극도로 집 중한 상태에서도 느껴질까 말까 할 정도다.
“후우….”
자연스러운 심호흡과 함께 전신을 이완시킨다.
몸 바깥으로 새어나온 오러에 제 의지를 흘려보내, 감각을 더욱 선명 하게 만든다. 카렌이 가르쳐준 요령 과 같다. 체외로 뻗어나온 혈관을 다루듯이, 그를 기점으로 한 오러의 흐름이 마치 피부와도 같은 막을 이 룬다.
반경 1미터.
카렌을 상대하기 위한 오러센스의 경계범위였다. 이 이상은 정확도가 크게 떨어져서 별 의미가 없다.
‘어디냐.’
날카로워진 감각에 많은 자극이 스 쳐지나간다.
풍향의 변화. 어디선가 홀러들어온 빵 냄새, 카렌이 박차고 지나갔을 땅의 흔들림까지….
1초를 1분처럼 느낄 수 있는 시간 이었다.
집중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집중하다 가.
카아앙!
받아쳤다.
“어라, 들켰네.”
기습을 간파당한 카렌이 키득거리 면서 몸을 뺐다. 모험가가 아닌 암
살자로서 싸우는 방식이었다. 은신 했다가 일격을 가한 후, 실패하면 곧바로 이탈해서 다음 공격을 시도 한다.
그걸 성공할 때까지 반복하면 된 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 로 안 되면 세 번. 체력이 떨어지면 그냥 도망치고서 다음 기회를 노린 다.
‘쫓아가려면 속도가 부족하고, 어설 프게 반격을 시도했다간 그 자리에 서 숨통이 바로 끊어지지.’
탁 트인 평지에서, ‘그림자’를 쓰지
않고 있는데 이 정도다.〈관지기〉의 표적이 된 자들은 어떤 공포를 느꼈 을까. 레온은 왠지 그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잡념을 떨쳐낸다.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레온은 결국 카렌의 암습을 여덟 번까지 감당해냈다. 아홉 번째에도 반응했지만. 그 궤도를 잘못 읽었다.
“좋아, 그저께보다 두 번 더 막았 네.”
그의 목덜미에서 단검을 뗀 카렌이 칭찬했다.
“그것도 내 움직임에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몸을 더 효율적으로 다룬다는 느낌? 역시 눈에 의존하지 않는 훈련이 잘 먹힌 거려나.”
“뭐, 그럴지도 모르지.”
레온은 그 말에 수긍하듯이 답했지 만,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 다. 그의 움직임이 좋아진 이유는 3 주 전, 엘시드가 직접 보여줬던 동 작을 복습했기 때문이었다.
세 번의 검격.
처음에는 좀 어긋났지만. 두 번째 는 완벽했고, 세 번째에는 그 완벽 함마저 초월해버렸다.
‘내 몸이 그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
었다니…!’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다고 생각 했다. 매일같이 단련해온 몸이다. 전 력을 다한 검이라고 해봤자, 큰 차 이는 없으리라고, 누구보다 더 멍청 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수 있 어.’
손가락을, 손목을, 어깨를, 허리를, 무릎을, 발목을.
입으로 백날 설명해도 알 수 없는 ‘모범답안’을 보았다. 그 이상적인 움직임이 아직 감각에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그 답안을 보고 습득하면
될 일이었다.
실제로 몇 동작만 개선했을 분인데 도 레온의 기량은 상당히 진보한 상 태였다.
“흠, 그럼 제 차례군요.”
그때, 두 사람의 훈련을 지켜보던 체자레가 걸어나왔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카렌이 되물 었다.
“휴식시간도 없이 계속하시려구 요?”
“예, 오러는 거의 안 쓰지 않았습 니까.”
“그건 그렇지만….”
카렌은 좀 질린 기색이었지만, 체 자레는 오히려 밝게 웃는 얼굴로 그 를 돌아보았다.
“용사님의 정신력이면 문제없습니 다. 안 그렇습니까?”
“..후 ”
손바닥의 땀을 닦아낸 레온이 다시 검을 쥐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카렌과의 훈련은 철저하게 몸만 사 용했기에, 소모한 체력만 좀 회복하 면 그만이었다. 물을 몇 모금 마시
고 잠깐 심호흡에 집증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 시작하시죠.”
“아주 좋습니다!”
레온이 중단으로 검을 들어올리자, 체자레가 철구를 분리한 쇠사슬을 두 손에 거머쥐었다.
그와 동시에 두 색의 오러가 피어 올랐다.
우우웅…!
체자레의 오러는, 그 전과 마찬가 지로 은백색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레온의 것은 황금색이었다.
태양과 달.
두 오러가 서로에게 공명하듯이
‘웅웅’ 떨렸다.
‘이제야 좀 안정됐군.’
레온은 제 검에 흐르는 황금색의 오러를 내려다보았다.
오러유형화.
이 경지에 도달했던 것은 지난주였 지만,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체자레와의 수 련 또한 그때부터 시작된 일과였고 말이다.
아직 능동적인 활용이 힘들다보니
체자레의 수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었다.
“갑니다!”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 이 뻗어나온다.
이미 그 경지가 익스퍼트에 달한 체자레다. 쇠사슬의 끝이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고, 레온의 몸 주위 를 휩쓸듯이 몇 방향에서 동시에 휘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