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66
“전에 말했지? 보스를 해치운 다음 에 조직을 해산시켰다고. 암살자들은 모두 블레인 바깥으로 내쫓아버렸 고.”
“ 설마.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한 레온이 두 눈을 크게 뜨자, 그녀는 다 숨기지 못한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두더지〉의 심장을 도려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죽어가면서 그 입에 머금었던 웃음 도.
“조직 소속의 암살자였어. 루베나 일대를 관리하던 놈■이니, 백작과 따 로 연결점이 있었더라도 이상할 게 없지. 그러다가 나랑 마주친 게 운 이 안 좋았던 거고.”
“루베나 백작은 우리들이 오지 않
길 바란다고…?”
“내 추측이지만. 아무리 큰 영지라 도 상단을 완벽하게 묻는 건 부담스 럽고, 호위병력도 충실한 편이잖아. 자기가 불러놓고 빨리 내보낼 수도 없을테니, 불미스러운 일을 만드는 게 최선 아니겠어?”
추측이 반 이상이지만 그럴 듯한 말이었다.
만약 루베나 백작이 제 영지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면, 그게 완성 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고 할 게 분명했다. 자기가 주문해놓고 화물을 빼돌리려고 한 것 또한 그러한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톰상단은 그 화물을 지켜 낸 것도 모자라서 마적을 토벌해버 렸고, 결국 루베나에 들어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루베나 백작 입장에서는 일이 상당 히 귀찮아진 거다.
“•••위험하겠는데.”
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레온이 중얼거렸다.
루베나 백작은 스톰상단이 그의 예 상을 벗어난 시점에서 그 위험도를 몇 단계 높였으리라. 방심하기는커녕 더욱 철저하게 말살할 수 있는 준비
를 갖출 것이다.
그렇다면 레온도 수단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아끼다가 뭐가 된다 는 말처럼, 쓸 때는 과감히 써야했 다.
“카렌, 다녀와야할 곳이 생겼어.”
레온은 그 즉시 결단했다.
발카스가 그 웅장한 성곽으로 인해 서 성채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다면, 루베나에도 제법 멋들어진 별명이
존재했다.
야천도시.
영지의 동서쪽을 모두 높다랗게 치 솟은 산이 감싸서, 해가 떠오르는 건 늦고 가라앉는 건 빠르다. 밤하 늘을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루베나의 밤은 빠르면서도 깊었다.
오후 4, 5시부터 땅거미가 질 정도 였으니, 태양을 좋아하지 않는 뱀파 이어에게 적합한 환경이었다.
푸스스스스…
희미한 안개가 그림자를 타고 흐른 다.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이 좋고 나브 고를 떠나서 영(Astral)적 감지능력 이 부족하면 볼 수 없는 형태다.
교묘하게 햇볕을 피한 안개가 어딘 가로 숨어들었다.
묘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는 빈민가 의 폐허.
그 안쪽에 검은 머리카락의 귀공자 가 한 명 앉아있었다. 척 보기에도 귀한 태생에 잘 교육받은 것이 분명 한 기품, 와인과 같은 색깔의 눈동 자가 인상적이었다.
“—돌아왔는가, 로만.”
귀공자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
가 흘러나오자, 그 주변을 떠돌던 안개가 모이면서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고풍스러운 집사복을 걸친 중년인.
로만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정중하 게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전하는 무슨. 다 망한 일족에 무 슨 왕 타령인가.”
“후후, 저한테는 언제까지고 왕자님 이십니다.”
언제나처럼 핀잔을 주고받은 주종 이 피식 웃었다.
이 시답잖은 회화도 벌써 200년째 였다.
뱀파이어의 귀족, 노스페라투 3대 혈통 중 왈라키아의 피를 계승한 자 가 바로 이 귀공자였다.
웃음기를 거둔 로만이 진지한 목소 리로 말했다.
“반경 1킬로미터 내에 백작의 수하 들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닷새쯤은 버틸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가.”
귀공자, 테페스는 안도하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거느려야할 흡혈귀는 로만 하 나분만이 아니었다. 망한 일족이라고 자학해도 그 수를 헤아리면 일백은 된다. 그런데 둘밖에 없다는 것은, 테페스의 처지가 결코 온전하지 않 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내 죄가 크구나. 안일하게 안주한 땅을 찾으려고 한 것이, 이러한 재 앙을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
“전하, 그 죄는 간악한 자의 것이 옵니다.”
“죄는 떠넘겨도 책임은 내 것이다. 두 번 말하지 말라.”
로만은 그 명을 듣고 나서야 더 대
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상황이 너무 암울했기에 할 이야기 가 없었고, 없는 희망을 지어내서 말할 정도로 나약하지도 않았기 때 문이다.
그때 였다.
허공을 응시하던 테페스의 두 눈이 움찔거렸다.
“음?!”
“ 전하!”
그의 반응을 본 로만이 다가서려고 했지만, 테페스는 그를 한손으로 멈
추고 두 눈을 감았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보기 위해서 였다.
뱀파이어의 권능 중 하나다.
피를 나눠준 권속에게 감각을 잇는 것. 스스로의 의지로 준 피가 아니 었지만, 그 근원이 테페스에게 있는 한 어느 정도의 정신간섭은 가능했 다.
“••••••하.”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누군지도 모를 자의 시야를 공유하 던 테페스가 웃었다.
“ 하하하하하하하! ”
자포자기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유쾌한, 즐거움을 참지 못한 웃음이었다. 최근 몇 년간 보지 못 했던 테페스의 홍소에 로만이 두 눈 썹을 움찔거렸다.
이 바깥에 들릴까봐 우려스러울 정 도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웃음소리는 금방 멎었다.
“좋군. 아주 좋아.”
테페스의 눈동자에서 다 꺼져가던 투지가 타올랐다. 반격의 실마리가
될 만한 사건을 봤다.
그는 그 희소식을 심복과 공유하고 자 입을 열었다.
“로만, 여신께서는 아직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나보군.”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백작의 끄나풀 중 하나가 붙잡혔 네.”
로만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푼이들 말씀이십니까?”
“ O ”
테페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말을 계속했다.
“성력을 사용하는 자에게 붙잡혔더 군. 순혈도 아닌 놈들을 단숨에 무 력화시킨 걸 보니, 교단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게 틀림없네. 그 정도 인물이라면 나에 관련된 정보 쯤은 파악하고 있을 게 분명해.”
“오오! 잘 되었군요. 그때까지만 버 티면 되겠습니다!”
“50년만에 또 교단에 신세를 지겠 군.”
영문 모를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서 오고갔다.
뱀파이어가 어째서 신성교단의 도 움을 바라는지, 그들과 잘 알고 있
다는 듯이 말하는지.
누군가가 들으면 제 귀를 의심할 내용들이었다.
왈라키아의 왕자, 테페스는 어느새 밤하늘로 다 뒤덮여있는 루베나의 성벽을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은 모 르겠지만 영적인 시야를 볼 수 있는 흡혈귀에겐 보였다. 성곽 전체를 둘 러싸고 있는 결계의 벽. 대량의 은 을 사용해서 만들어놓은 결계는 그 혼자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 다.
“•••안드레이 루베나, 가증스러운 노 ”
테페스의 붉은 눈동자가 선명한 분 노를 머금는다.
고위 흡혈귀답게 그 시선에는 저주 가 담기지만, 여기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저택에 닿을 정도는 아 니었다.
그리고 저주 따위로 만족할 만한 원한도 아니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거 라.”
곱상하고 긴 손가락에서 붉은 기운 이 솟구친다.
〈혈조(Blood Claw)〉.
뱀파이어의 넘쳐흐르는 생명력을 압축해, 힘의 칼날로 바꾼 형태. 오 러를 따로 수련할 필요도 없이〈오 러웨폰〉과 동급의 파괴력을 발휘하 는 게 그들이었다.
테페스는 이걸로 놈을 갈기갈기 찢 어버리고 싶었다.
“내 손으로 직접 처형해주마, 안드 레이.”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 원 한을 갚으리라.
루베나 영지의 빈민가에서 두 흡혈 귀가 이를 갈았다.
레온 일행의 도착까지 앞으로 10일.
사건의 진상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 져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열흘 후였다.
스톰상단의 행렬은 순조롭게 길을 따라 루베나 백작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몇 점의 구름이 맑은 하늘 에 떠다니고, 바람 또한 선선하게 불어서 말들의 땀을 식혀주었다.
그 전까지와 달리 상행을 위협하는 요소는 없었다.
발카스에서 루베나로 통하는 길은 그 옆에 국경선이 있어, 잡다한 마 물이나 도적 따위는 접근하지도 못 했다. 성채도시의 순찰대가 하루 걸 러서 한 번씩 돌아다니는 구역이다. 간이 큰 걸로 유명한 현상범들도 이 주변에는 얼씬거리지 않는다.
음지에 군림하는 세력이라고 해도 그 영향력은 결국 음지에 동용되는 것. 군대와 국가권력에 직접 대항하 기에는 여러모로 힘이 부족할 수밖 에 없었다.
이 안전지대는 그러한 사정 위에 성립된 것이었다.
상인들은 이 길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잘 정돈되어있는 도로를 그 저 나아가기만 하면 될 분인, 예정 그대로 진행되는 상행은 실로 이상 적인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모험가와 용병들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지겨워… 지겹다고 말하는 것도 지겨워….”
창문에서 눈을 뗀 카렌이 무기력하 게 몸을 뒤척였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무려 열흘이다.
위험할 일이 없으니 식사할 때 빼 고는 마차에서 나올 일이 없고,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볼거리도 없이 밋밋하기만 한 평원분.
자극적인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참 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뭐, 나도 별 차이는 없겠지만.’
레온은 그 모습에 괜히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라고 해서 이 상황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 달 전이었다면 그도 카렌처럼, 어쩌면 카렌보다 더 심한 꼴을 보여 줬을지도 모른다. 마차 안에서 검을 휘두를 순 없는 노릇이었고, 오러를 통제하는 훈련 역시도 마차의 불규
칙적인 흔들림 때문에 꽤 위험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레온은 난생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좀 알겠냐? 너 지루하지 말라고 수 다까지 떨어주는 검이, 나 말고 어 디 있겠어?]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엘시 드가 대놓고 생색을 내자 레온의 두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그를 위해서 수다를 떤 줄 알겠다.
엘시드 덕분에 여행길이 심심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저 뻔뻔한 모습을 보니 고맙다는 말이 쏙 들어 갔다. 처음부터 그냥 수다스러웠을 분이면서 말이다.
‘아, 그거 참 고맙네.’
그래서 레온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 말에 대답했다. 일일이 발끈해봤자 더 놀림받을 뿐이니, 아무 반응도 돌려주지 않는 식으로 맞받아치게 된 것이다.
물론 엘시드는 그 태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맞아! 은혜를 모르면 짐승이나 다 를 게 없지!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뱀파이어 로드의 초 대장을 받아서 그 성에 홀로 찾아갔 다고 말했었나?]
‘연회장에 들어선 부분까지.’
[오, 그랬지. 나는 그 초대장이 함 정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흡혈귀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겁도 없이 놈 들을 방문했다. 요망한 뱀파이어 레 이디들이 날 유혹했었지만, 위대한 영웅은 취할지언정 취해지지 않는 법. 꿋꿋이 계속 걸어갔지.]뱀파이어를 상징하는 능력은 아주 많았다.
종족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인 흡혈,
박쥐나 짐승으로 변하는 변이, 물질 적인 실체를 흩어버리는 안개화, 불 사신처럼 보이는 재생능력 등등.
잘 알려진 능력도 있고, 잘 알려지 지 않은 능력도 있다.
그중에서도〈매료〉는 꽤 유명한 편 이었다.
‘세 자릿수면 별로 안 많은 거 아 니야?’
[그들 전부가 지휘관급이나 고관대 작, 이름 있는 기사와 마법사라고 한다면?]레온은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 다.
일반적으로〈매료〉는 하급 중에서 도 하급의 능력이었다. 좀 단련된 사람이라면 가볍게 떨쳐버릴 수 있 는, 시선이나 한 번 끌어당기면 다 행인 걸로 취급되는 힘.
하지만 고위 뱀파이어의〈매료〉는 그 격이 달랐다.
[한 번 걸리면 잘 풀리지도 않고, 풀거나 죽여봤자 또 다른 놈들이 홀 리니까 꽤 오랫동안 애를 먹었지.]뻔한 함정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이유였다.
뱀파이어는 그 능력이 유격전에 특 화되어있는 존재라, 경계태세를 강화 하는 것 정도로는 막거나 잡을 수 없었다 <
위기는 곧 기회이며, 기회는 곧 위 기라고 했다.
로드릭은 그 말대로 뱀파이어들의 요새를 단신으로 찾아가, 다 이겼다 고 방심한 놈들을 몽땅 죽여버렸다.
웅장한 성채가 세워져있던 곳은 잡 초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로 변했고, 로드를 포함한 고위 뱀파이 어의 9할이 전멸했다.
뱀파이어가 역사에서 그 모습을 감 춘 것도 그때부터였다.
[몇 놈은 살아서 어딘가로 도망쳤 다던데, 교단의 추적대가 쫓아갔으니 제 명에 죽지는 못했을걸. 설마 300 년이 지나고서 또 나타날 줄은 몰랐 다만.]‘지금의 내 실력으로 상대할 수 있 어?’
[음? 문제없지.]레온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엘시드 가 바로 대답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성검의 빛에 ‘태양’ 오러까지 더해 지면 순혈 뱀파이어는 네 앞에서 횃 불 앞의 건초나 마찬가지야.]피가 다 섞이지도 않은 담피르조차 제압할 정도였다. 순혈 뱀파이어는 그 빛에 닿기만 해도 잿더미가 될 게 틀림없었다. 문자 그대로 상성관 계가 최악이다보니 역량을 따질 것 까지도 없이 레온이 일방적으로 유 리했다.
오러를 낼 틈도 없이 기습으로 쓰
러진다면 모를까, 전투가 성립한 시 점에서 그 승패가 결정되어버린다.
‘그런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적이다.
레온은 그 위험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만, 엘시드가 한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듯했다.
과소평가는 안 좋지만, 과대평가도 좋을 게 없다.
침착하게 제 기량을 발휘하면 된 다.
“아! 보인다!”
그때, 카렌이 벌떡 일어나서 마차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그 반응을 보 아하니 슬슬 루베나가 보이기 시작 한 모양이었다.
레온도 그 뒤를 따라서 마차 지붕 으로 올라갔다.
금속으로 뼈대를 세운 지붕은 두 사람 정도로는 끄떡하지도 않았다.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균형을 잡은 레온과 카렌이 저 멀리 나타난 루베 나의 성벽을 바라보았다.
‘꽤 높은데?’
성채도시라고 불리는 발카스에 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변방에 있는 성치고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 성벽 주변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엘 시드가 말했다.
[결계다. 엄청난 양의 은을 사용해 서 성벽에 흡혈귀를 막는 술식을 새 겨놨군. 그 이외에도 다른 용도가 있는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흡혈귀를 막는 결계라고? 그럴 리 가.’
기존의 예상과는 퍽 다른 이야기였 다.
루베나 백작이 뱀파이어를 조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