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70
백작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이 두 눈을 부라렸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단장의 얼굴은 바위처럼 굳건했다.
눈썹 한 가닥도 까딱하지 않고, 구 스타프가 말했다.
“그 뱀파이어들은 저희를 상대하려 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지?”
“간단합니다. 그들은 저희들과 싸울 때에는 막거나 피할 뿐, 살상을 목 적으로 한 공격은 시도하지 않았습 니다. 위력적이라 할 만한 공격들도 전부 건물을 노린 것이었지요.”
그 말뜻을 알아들은 백작의 미간이 크게 일그러졌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제 생각을 과신한다. 그 말마따나 백작은 두 뱀파이어의 목적을 제멋대로 추측하 고 있었다.
외부에서 온 자는 죽이지 않는다.
백작의 휘하에 있는 자만은 확실하 게 죽인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마법구 조물의 존재까지 알아내, 토벌대와의 전투를 이용해서 파괴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가면 더 농락당하기만 할 분
이었다.
‘우리들에게 그 이유를 따져볼 생 각도 없겠지. 뱀파이어들이 왜 그렇 게 행동하는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 테니까.’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속담도 있지.]아니나 다를까, 백작은 그들 일행 을 더 추궁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강경하게 날이 선 말투 로 쏘아붙였다.
“됐네. 내가 더 말해봤자 죽은 기 사들이 돌아오지는 않겠지. 오늘밤부 터 자네들은 손을 떼주게. 일을 그
르쳤으니 약속했던 보상은 줄 수 없 고, 상황이 정리되는대로 떠나주게 나.”
“예, 백작님.”
백작은 그들에게 물러가라는 말도 없이 등을 돌렸고, 레온 일행은 조 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쳐서 응접실을 나섰다.
다들 태연한 얼굴이었지만, 등줄기 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들은 다시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문까지 닫 은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쉬고서 말하 기 시작했다.
“후, 들킨 줄 알았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아무리 백 작이라고 해도 물증 하나 없이 우리 를 압박하긴 좀 부담스럽겠지.”
“이렇게까지 해도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 겠지.”
“성철쇄기사단이 빨리 와줘야할 텐 데.”
엿새만에 끝나버린 게 조금 아쉬웠 지만, 그들은 할 수 있는 선택지에 서 최선의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이제 성철쇄기사만 제때에 찾아오 면 그만이었다.
“자, 그럼 오늘도 다녀올까?”
레온의 왼쪽 어깨에 턱을 괸 카렌 이 속삭였다.
사용인들을 물렸다고 해도 이 저택 에 출입하는 자들은 모두 백작의 눈 과 귀를 거쳐야했다.
오직 그녀만이 그 이목으로부터 자 유로울 수 있었다.
성철쇄기사와 접선하는 장소와 방 법도 알고 있으니, 레온은 저택 안 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괜찮았다. 그 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그녀의
기척이 즉시 사그라졌다.
언제 봐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은신 술이었다.
‘늦어도 이틀 내외로 찾아와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이틀 내외 라고 한 것은 레온의 직감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찾아오 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이 세상 누구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이 예약된 용사로서의 감이 경 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철쇄기사는 그 다음날까
지 찾아오지 않았다.
* * *
“레온, 두 명이 왔어!”
이틀 후였다.
언제나와 같이 접선장소로 나갔던 카렌이 돌아와서 손가락 두 개를 치 켜세웠다.
두 명, 나쁘지 않다.
가능하면 셋 이상이 찾아와주기를 바랐지만, 레온 스스로도 그 가능성 을 높게 점치지 않았다. 한 명만 출
동해도 블레인의 〈바스타드〉같은 조직을 때려부수는 게 가능한 인력 이다. 세 명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낭비나 다름없었다.
“만나러 가자.”
먼저 그 실력을 알아봐야한다.
B랭크 이상인 것은 확실하겠지만, 성철쇄기사 안에서도 두 부류의 강 자가 존재했다.
성법을 쌓아을린 자와 무예나 오러 에 중점을 둔 자.
체자레의 경우는 그중 후자에 가깝 다고 할 수 있겠지.
레온은 그 걸음으로 방을 나서서,
한 메이드에게 시내에서 식사를 하 고 오겠다고 말했다. 제 행적을 밝 힘으로써 백작의 의심을 흐려놓기 위함이었다.
“예약제 식당이라니, 머리를 잘 굴 렸는데.”
카렌은 그와 함께 대로변을 거닐면 서 말했다. 성철쇄기사와 접선하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기발했다.
번화가의 한 식당 예약부에 이름을 남겨놓는 것.
두 사람은 이미 외워놓은 길을 따 라서 그 식당을 찾아, 문 앞에 서있 는 종업원에게 이름을 밝혔다. 물론
본명을 쓴 것은 아니었다.
“노엘 (Noel) 입니다.”
레온(Leon)을 거꾸로 쓴 것이 그 암호였다.
“아, 어서 오십시오. 4층에 방을 예 약하셨군요? 식사메뉴는 어떻게 하 시겠습니까?”
“오늘의 추천메뉴로 부탁드립니다.”
“네 분 모두 추천메뉴로, 알겠습니 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서 4층 방으 로 올라가자, 그곳에서는 두 명의 선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끔한 차림새를 한 남녀.
그 연령대는 외형만 보고 판단하자 면 20대 후반 정도일까. 콤마 몇 초 만에 두 명을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레온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 다.
‘무기도 없이 앉아있는데 빈틈이 안 보여….’
[둘 다 상당한 실력자로군.]체자레급은 아니지만, 어느 쪽이든 A랭크는 될 터다. 카렌과 함께 다니 면서 그 존재감을 느껴본 레온이었 기에, 두 사람의 역량을 눈어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철쇄기 사.
대륙 최강의 무력집단답게 그 구성 원의 강함이 터무니없다. 레온은 한 번 묵례하고, 건너편 의자에 앉으면 서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힘을 빌리고자 한 레온이라고 합니 다.”
“예, 형제님. 체자레 주교님께 많이 들었습니다. 제 이름은 데미안이고, 이쪽에 앉아있는 분은 안젤라라고 합니다. 말을 할 수 없는 분이니, 부 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갈색 머리카락에 녹색 눈, 잔잔
한 분위기를 지닌 남자가 정중하게 그들을 소개했다.
데미안과 안젤라.
두 사람의 이름을 곱씹어본 레온이 입을 열었다.
“현 상황은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 까?”
“으음, 글쎄요.”
잠시 생각하던 데미안이 씩 웃으면 서 말했다.
“형제님과 테페스 공이 싸움으로 위장한 파괴공작을 반복한 것 정도 겠군요.”
“…테페스를 알고 계시는군요?”
“네, 왈라키아 일족의 봉사노역형은 꽤 유명합니다.”
그런데 250년을 고생하고 난 후에 또 이런 일에 얽히다니, 그들도 참 불운한 일족이었다.
데미안은 그 처지에 연민하면서 말 을 계속했다.
“혹시 빠트린 게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주셨 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이야
기도 아니었다.
왈라키아 일족이 백작에게 사로잡 혀서 가축처럼 사육당하고 있다는 말에, 두 성철쇄기사의 얼굴이 굳어 졌다.
그런 식으로 생명력을 착취하는 마 법계통은 한 가지분.
흑마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좀 알겠 군요.”
데미안의 음성이 한층 더 가라앉았 다.
생각 이상으로 이 상황이 심각하다 는 증거였다.
마법적인 지식이 부족한 레온이나 엘시드와 달리 데미안의 식견은 웬 만한 마도학자 수준으로 깊었다.
“뱀파이어는 육(肉)과 영(靈)의 구분 이 존재하지 않는 종족. 그들을 이 용해서 힘을 축적하려는 겁니다. 흑 마법의 드레인은 영체에 가장 잘 통 하는 수법이니, 빈민들의 피를 먹여 서 힘이 늘어난 뱀파이어를 다시 쥐 어짜는 거지요.”
“그런 게 가능합니까?”
“보통이라면 안 됩니다. 피를 많이 마신다고 무한히 강해진다면 뱀파이 어가 이미 세상을 정복했겠지요. 피
의 대량섭취는 그들을 자멸시킬 수 있는 금기 중 하나입니다.”
하나…… 하고 운을 뗀 데미안이 설명을 덧붙였다.
“백작에게 있어서 뱀파이어의 생사 는 아무래도 괜찮겠지요. 그의 목적 은 뱀파이어라는 여과기를 통해서 그 힘을 흡수하는 것. 힘을 다 발아 들인 후에는 뱀파이어가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겁니다.”
그의 옆에서 경청하던 안젤라가 세 손가락을 폈다. 그러자 데미안이 그 뜻을 설명했다.
“이 사건의 위험도는 3급입니다.
여러분의 전폭적인 협력을 부탁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3급이요?”
“도시 단위의 재앙을 의미합니다. 형제님께서 해결하신〈도시 삼키기〉 도 3급이지요. 2급은 국가 단위의 대재앙을, 1급은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여태껏 마왕 이외 에는 그 수준에 해당하는 게 없었지 만요.”
그래서 위험도는 사실상 3급이 최 대치였다.
2급 위험도라면 성철쇄기사 절반 이상이 모이거나, 각국의 협조를 요
청해야할 상황이다. 그 정도의 사건 이 빈번하게 벌어졌다면 세계는 이 미 난장판이 되었으리라.
데미안은 곧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상황을 더 지켜볼 만한 여유는 없겠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느 끼고 있었다.
도시 안에 가득찬, 불온하기 그지 없는 공기. 그 기류가 점점 강해지 다못해 태풍의 눈처럼 루베나를 휘 감아버린 걸 말이다.
아슬아슬하다.
바늘로 한 번 찌르면 터질 듯한 폭 풍전야.
“오늘밤에 루베나 백작을 취조합니 다. 그 취조에 불응할 시, 교단의 이 름으로 심판하겠습니다.”
네 사람은 아무도 그 결정에 반대 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기까지 앞으로 8시간 정도.
결전의 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루베나의 밤은 바르다.
오후 5시부터 산 너머로 떨어진 해 는 곧 빛을 꺼트려, 도시 전체가 어 둠으로 덮였다. 태양 때문에 안 보 이던 별빛들이 제 낯을 드러내고, 달이 그 빈자리를 대신한다.
뱀파이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
는 시간대였다.
폐허에 숨어있었던 두 뱀파이어, 테페스와 로만이 시가지로 나와서 한 건물의 옥상에 훌쩍 뛰어올랐다. 도약과는 좀 다른,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낮 시간이라고 해서 그들도 잠만 잔 것은 아니었다.
테페스는 제 능력으로 만든 환영을 써서 레온과 소통했고, 그 과정에서 성철쇄기사가 도착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안젤라님.”
테페스의 앞으로 나선 중년인, 로
만이 입을 열었다. 옥상에 먼저 와 있었던 성철쇄기人}, 안젤라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말을 할 수가 없다보니 고 개만 한 번 끄덕였다.
“이야기는 전해들었습니다.”
로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전혀 불쾌해하는 내색도 없이 현 상 황을 정리했다.
“저와 왕자님의 역할은 수용소에서 귀하와 공투하고, 그 후 수감자들의 탈출을 돕고 합류하는 것. 맞습니 까?”
안젤라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
였다.
두 명의 고위 뱀파이어는 강대한 전력이었지만, 백작도 그 정도를 감 안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뱀파이어 에게 잘 먹히는 함정이나 제압수단 을 다수 준비해두었을 터.
반드시 그들이 노릴 수밖에 없는 장소, 수용소라면 더더욱 그럴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로만이 직접 확인해본 사항이었다.
“수용소를 지키는 병력은 많지 않 습니다. 하나 익스퍼트급 기사가 한 명 상주하고, 태양의 빛을 재현하는
마법결계가 온 사방에 깔려있어서 저희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결계의 축을 파괴해주면 우리도 접근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안젤라 혼자 공략하라는 거 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 치의 동요도 내비치지 않았다.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고, 목표물의 빈틈을 찾 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게 전부였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 체 격에, 사제복과 플레이트 메일을 뒤 섞어놓은 것 같은 차림새.
성철쇄기사로서의 안젤라는 항상 이 모습이었다.
철컥.
그녀가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으 자, 은빛 건틀릿의 표면이 한 번 마 찰하면서 쇳소리를 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한 쌍의 건틀 릿.
그것이야말로 안젤라가 수십 년을 함께한 파트너였다.
이 철권에 부서져나간 머리통이 몇 개인지, 분쇄해온 악이 얼마인지는 그녀 자신도 잘 모른다. 언젠가는 그 피가 마르는 날이 올 거라고 믿
으면서 계속 나아갈 분이었다.
“•••3분 전입니다.”
그녀와 달리 성법에 능통한 데미안 은 다른 역할을 맡았다. 레온 일행 과 함께 백작을 추궁하고, 가능하다 면 무력화하거나 그를 붙잡아두는 것.
하지만 그들만으로 백작을 제압하 는 것은 어렵다.
안젤라는 최대한 발리 수용소를 공 략하고, 그 안에 구금된 사람들을 풀어준 후에 합류해야했다.
“안젤라님?”
돌입시간이 다 되었을 때, 안젤라
는 몇 번의 손짓으로 뱀파어들을 뒤 로 물러서게 했다.
그녀는 성철쇄기사 안에서도 요령 이 없는 편이었다.
무기술도 잘 맞는 게 없어서, 결국 주먹질로 때워야했고.
우우웅一!
빛이 모인다.
안젤라의 오른주먹을 기점으로 막 대한 힘이 모여들면서 그 주변을 짓 누르고, 성력과 오러가 공명하면서 소용돌이쳤다.
〈홀리피스트 (Holy-Fist)〉.
수많은 강자들이 모여있는 성철쇄 기사단에서 두 주먹만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한 자. 주먹을 한 번 내질 러서 성문을 부순, 그 일화는 아직 까지도 어느 도시에 구전되고 있다.
___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기합을 내지 르면서, 안젤라가 휘두른 주먹 끄트 머리에서 섬광이 폭발했다.
*
도시 어딘가에서 터져나온 굉음이 땅을 울렸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는 몰라도 엄청나게 강력한 수법이 리라.
레온은 그 파괴력을 어림하면서 내 심 감탄했다.
힘의 밀도만 따지자면 그가 펼치는 〈메라크〉보다 떨어지나, 총량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스치기만 해도 박살날 게 뻔한 기술이었다.
“안젤라군요.”
몇 걸음 앞에서 나아가던 데미안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
“조금 전의 그 진동 말입니다.”
그녀와 몇 번 협동임무를 수행했던 그였기에, 그 자그마한 주먹이 얼마 나 무시무시한지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