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77
우우우응一!
예리하게 선 칼날을 따라서 빛이 피어오른다.
〈오러웨폰〉, 검으로 펼쳐냈으니〈오 러소드〉라고 불러야할 기술이었다.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홀러나온 오러가 칼날 위에 흐르면서 투명한 빛을 머금었다.
그 숙련도는 이미 베테랑 기사의 영역에 도달해있었다.
아직 오러의 양이 부족해서〈오러
파이어〉에는 닿지 못하나, 이대로면 반 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그때 였다.
“훌륭하십니다!”
어느새 연무장에 온 건지, 노기사 길버트가 감격한 얼굴로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연미복에 안 어울리는 근육이 부담 스럽게 꿈틀거렸다.
리안은 그 모습에 괜히 실소하면서 검을 회수했다.
“몇 번이나 봤으면서 뭐가 그렇게 훌륭한가요.”
“겸손해하실 것 없습니다, 전하.”
길버트는 그가 가져온 수건을 내밀 면서 말했다.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연령대에 그 정도로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사 람은, 만 명 중에 한두 명도 되지 않을 겁니다.”
“만 명 중에 한두 명…입니까.”
“그것도 전하와 같이 고귀한 혈통 으로 태어나, 용맹정진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과장이 좀 섞였지만, 틀린 말도 아 니었다.
근골(筋#)은 그 피의 형질로서 유 전되는 경우가 많고, 어릴 적부터 생 계를 걱정하지 않으며 좋은 스승과 무예를 전수받을 수 있는 경우는 더 욱 드물었다.
거기까지 감안해서 수를 헤아리자 면, 만 명이 아니라 백만 명을 데려 와도 리안과 같은 성취는 없을 터였 다.
“글쎄요.”
하지만 리안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는 생각하 지 않습니다.”
“ .••전하.”
그의 속내를 짐작한 길버트가 독려 하듯이 말했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 습니까. 그날의 승부는 어디까지나 요행. 전하께서는 힘을 억제하는 단 약까지 드시고, 상대방을 다치지 않 게 제압하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 까?”
“비유하자면 손발이 묶인 상태로 배수진을 친 짐승과 싸운 거나 다름 없습니다. 그것도 3년 내내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상대이니, 미미한 방심
이 생길 수밖에 없었겠지요. 다시 한 차례 겨뤘더라면 분명히 전하께서 승리하셨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말대로였다.
리안은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 지만,〈순신법〉으로 빨리 끝내려고 한 것 자체가 방심이었다.
체력의 우열은 그렇게까지 큰 것도 아니었다.
한두 번의 유효타로 뒤집을 수 있 는 수준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리안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레온에게 비전검술이, 강체술이, 오 러가 없다고 얕보았기에 정면승부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럴 듯한 장면을 연출해서 그 순간에 결정타를 꽂아 넣으려고 했다.
그 판단이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내가 이겼다, 리안.
자신만만하게 휘둘렀던 검이 역으 로 부러져, 목 앞에 칼이 들어왔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동년배에게 맞이한
패배였다.
“내가 진 겁니다, 길버트.”
“ 전하!”
리안은 한 손을 들어올려서 그를 멈추고, 계속 말했다.
“내가 제안한 내기였고, 내가 언급 한 조건이었어요. 그러니 그 패배는 나의 미숙함이 불러온 결과입니다. 방심했다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그걸 부정할 순 없어요.”
처음에는 그 역시 패배를 받아들이 지 못했다.
방심했다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오러를 쓸 수 없었다고.
온갖 이유를 다 들먹이면서 스스로 의 패배를 변명하고, 한 번 더 겨룬 다면 설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 다. 그래서 며칠 후에 다시 레온을 찾아가서 내기와 관계없이 한 번 더 결투를 신청하려고 했다.
‘•••설마 그 다음날에 떠나버렸을 줄 이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리안이 쓴웃 음을 머금었다.
그가 찾아갔을 때, 레온의 방은 텅 비어있었다. 멍한 얼굴로 방 안을 둘
러보다가 결국 헛웃음마저 터트리고 말았다.
이기고 도망치다니?
마지막까지 한 방 먹었다는 생각에 겨우 승복할 수 있었다.
‘ 졌다.’
생각지도 못한 패배에, 그의 심신이 뒤흔들렸다.
심마(心魔) 였다.
마왕도 아니고 황제도 아니라, 3년 내내 완승했던 상대에게 역전패했다. 그날 이후로 리안의 가슴속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하나 뚫 려 있었다.
사명감으로도 메꿀 수 없는 구멍이 었다.
잃어버린 황위를 되찾아야한다. 예 언대로 이 세상의 사악을 토벌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을 되새겨봐도 공허함 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게 목숨을 건 사람들을 위해서라 도, 그럼 안 되는데.’
아무리 검을 휘둘러봐도 뜨거워지 는 것은 몸뿐이고, 마음은 전혀 뜨거 워지지 않는다.
층격적인 첫 패배가 그의 자신감을 꺾어버렸다.
뛰어난 재능 덕분에 그 상태로도 계속 성장해서 익스퍼트의 경지를 앞두고 있지만, 발걸음은 점점 무거 워졌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는 힘들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레온 형.’
그가 있었다면 조금은 더 나아졌을 까.
레온이 사라지고 난 후, 리안은 왕 립 아카데미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다. 리안에게 진심으로 도전해주는 사람 은 레온밖에 없었고, 진심으로 상대 할 수 있는 사람도 그분이었다.
그나마 클로에와 이야기할 때면 기
분이 좀 나아졌지만, 그 자리를 나오 면 또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 전하.”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길버트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이 이상 말해봤자 의미는 없다. 괜 히 상처만 덧날 분이라고 생각한 길 버트는 아예 화제를 바꿔버렸다.
안 그래도 그에게 전달해야할 이야 기가 있었다.
“제국에 남겨놓은 자들로부터 온 소식입니다. 마침내 그 찬탈자가 대 규모 숙청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수 도 곳곳에 고위 귀족들의 머리가 걸
려 있다더군요.”
“고위 귀족까지…?!”
“예, 아무래도 자신의 즉위를 지지 하지 않았던 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리안의 안색 이 창백해졌다.
현 황제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선황제를 죽이고 그 제위를 찬탈한 자. 놈은 어디선가 불러들인 병력으 로 그 이외의 황위계승권자를 몰살 하고, 세 명의 공작을 우군으로 끌어 들여서 체제를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흐른 피만 하더라도
만 단위다.
아무리 국력이 강한 제국이라고 해 도 부담스러운 출혈인데, 그걸로 만 족하지 않고 또 숙청이라니?
“•••미쳤군요.”
“예,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미 ‘광황 제(狂皇帝)’라는 속칭마저 돌아다닌다 고 합니다.”
“하아.”
한층 더 답답해진 가슴을 두드린다.
예언의 날까지 아직 한 달은 남아 있는데, 그 사이에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가 짐작조차 안 됐다.
리안 케일럼 글라디우스 폰 클라이 드
타락한 제국을 새로 쌓아올리는 검.
오늘따라 그의 숨겨진 이름이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전하, 나쁜 소식만 있는 것 도 아닙니다.”
“ 뭐죠?”
“신성교단이 움직였습니다.”
길버트가 제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얼마 전에 새로운 성녀가 임명되 었다는 말은 들으셨지요? 8대 엘라
한, 그분이 신성교단 본부를 빠져나 와서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성녀님께서? 어째서죠?”
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 이유를 되물었다. 아직 용사는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성녀가 본부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으로 나올 이유가 무엇이 겠는가.
그러나 길버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즉답했다.
“당연히 전하를 만나러오는 게 아 니겠습니까?”
“ 나를?”
“예, 신성교단에도 클라이드 황실과
같이 예언은 전해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보력은 클라이드의 첩보부대와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 지 않지요.”
“그렇습니까….”
길버트의 대답은 그럴 듯했다.
하지만 리안은 왠지 아니라는 생각 이 들었다. 성녀가 그를 찾아올 생각 이라면, 그가 왜 신분을 감추고 있는 지도 알 텐데 조심성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을까?
만약 그가 성녀와 합류하여 제 신 분을 곧바로 드러낸다면, 광황제는 모든 일을 멈추고 추격대부터 보낼
게 분명했다.
“길……
그렇게 말하려던 리안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하려던 말이 얼마나 잔혹한지 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내가 용사가 아니라면?’
성녀는 그를 찾아오는 게 아니고, 그는 용사와 아무 관련도 없는 인간 이라면?
여기까지 그를 따라온 길버트와 신 하들은 뭐가 되겠는가.
강대한 제국과 미친 황제를 상대로
맞서싸울 각오를 한 건, 어디까지나 리안이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 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믿음이 무너지면, 그들은 더 싸 울 수 없으리라.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리안은 필사적으로 제 안색을 정돈 하고,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도로 집어삼켰다.
앞으로 한 달.
한 달만 더 기다리면 그의 운명이 도래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이 불안감을 참고 견디 면 된다.
“8번째 성녀님이라.”
리안은 애써 태연한 기색으로 말했 다.
“어떤 분이실지 참 기대가 되는군 요.”
검 자루를 쥔 그의 손가락은 미미 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타이탄 산맥.
거인왕이 군림하고 있는 마경(魔境) 이며. 드래곤도 그 위를 함부로 날아
다니지 못한다는 땅.
웬만한 삼림보다도 몇 배는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하늘을 을려 다볼 수 없다는 게 바로 이 타이탄 산맥이었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땅.
그 가치를 알아본 수련자들이 가끔 산맥 내부에 제 거처를 마련하지만, 그중에 대부분은 며칠 버티지도 못 하고 부리나케 도망치기 일쑤였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강력한 마 물들과 짐승들.
무성한 나뭇잎으로 가려진 하늘 아
래의 숲은 언제나 칠흑과 같이 어둡 다. 그런 공간에서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생활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 方 으 으 O_”
”1 I I 厂 –
그리고 그 타이탄 산맥의 변두리에 서, 레온은 벌써 석 달도 넘게 생활 하고 있었다.
가시거리가 5미터도 안 되는 어둠 의 숲.
그 안에서 두 눈을 감은 레온이 검 을 내리그었다.
키잉!
순간적으로 금빛 섬광이 뿜어져서
어둠을 벤다.
키에에에에엑!
괴상하게 생긴 마물이 그대로 둘로 갈라졌다.
박쥐와 늑대를 합쳐놓은 듯한, 이 괴상망측한 마물은 산맥 안쪽에서 빠져나오는 놈들이다.
생존경쟁에서 낙오당한 패배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맥 밖의 마물 보다 몇 배는 강력하다.
“이걸로 끝, 인가.”
놈을 마지막으로 벤 레온이 검을 들어올리자, 칼날에 맺힌 빛이 사방
으로 퍼지면서 어둠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후에 드러난 광경은 가 관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마물들.
그 사체에서 새어나온 피가 웅덩이 처럼 고이고,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흘러나와서 성검 안으로 빨려들어간 다. 지금 축적한 힘만 하더라도〈메 라크〉를 서너 방을 쏘아낼 수 있을 정도.
처음에는 그 양에 경악했지만, 3개 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슬슬 될 것 같은데?”
마물들의 힘을 다 흡수한 레온이 검을 치켜들었다.
몇 달 사이에 그의 오러는 질과 양 모두 엄청나게 늘었고, B랭크의 한 계를 넘어서 그 너머에 도달해있었 다.
레온의 오러를 받아들인 성검이 황 금빛으로 타올랐다.
그러고는.
화아악!
황금의 아름다운 〈오러파이어〉가 칼날 위에 피어올랐다.
“오오…!”
레온은 그 영롱한 빛에 사로잡힌 것처럼 감탄사를 토했다. 그저 빛무 리가 칼날 주변에 머무르는〈오러소 드〉와 달리〈오러파이어〉는 실제의 불꽃과도 같이 일렁거렸다.
아름다운 형상이지만. 그 안에서 요 동치는 힘은 터무니없다. 마스터 미
만의 경지에서 발휘할 수 있는 최대 의 파괴력.
한 번 휘둘러서 거대한 바위를 찢 는 것도 가능하리라.
[오오…는 개불! 벌써부터 잔재주에 만 혼이 팔려서는.]
그러나 엘시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기분에 초를 쳤다.
[〈오러파이어〉는 〈오러블레이드〉처 럼 다 압축하지 못해서 홀러넘친 오 러가 불꽃처럼 뿜어져나온 거다. 근 본부터가 완전하지 못한 기술이라는 뜻이지. 한 방으로 승부를 볼 때면 모를까, 지속성으로 쓸 만한 기술이
아냐.]
“음, 오래 쓸 만한 기술이 아니기는 하네.”
〈오러파이어〉의 성공에 흥분한 것 도 잠시, 레온은 그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던 황 금색 불꽃이 사그라진다.
겨우 10초쯤을 유지했을 뿐인데 오 러의 2할이 소모되었다. 전투 도중 이 아니라 대기 상태였음에도 불구 하고 그 정도다. 지금 당장 실전에서 〈오러파이어〉를 운용한다면 30초 내 외로 탈진하고 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온이 몇 달 전 의 기억을 떠올렸다.
‘체자레 주교님도 〈오러파이어〉가 필요한 순간에만 잠깐씩 사용하셨지. 상시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만큼 힘의 소모가 심 하다는 건가.’
[그 말대로다.]
엘시드는 그의 속내를 읽고 맞장구 쳤다.
[오러를 확실하게 무기 주변에 붙 들어놓는〈오러웨폰〉이나 물질화 상 태로 고정시키는〈오러블레이드〉와 는 달라. 억지로 힘을 눌러담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