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성체(聖體) (2)
“저쪽으로 옮겨라.”
며칠 후. 게벨이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며 아이작에게 지시했다. 그의 곁에는 이미 장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이작은 시키는 대로 장작더미를 옮기다가 그 장작들이 모두 반듯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잘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숙련된 솜씨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아이작은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떠올렸다.
퍽, 퍽.
게벨은 장작을 기계처럼 반복해서 패면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정확히 장작의 중앙을 노리는 도끼는 빗나가거나 한 번에 쪼개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아이작이 문득 입을 열었다.
“게벨 씨.”
“왜?”
“제게 검술을 가르쳐주세요.”
퍽. 게벨은 나무 쪼개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장작을 서너 개 더 패다가 아이작을 돌아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거 때문에 날 따라다니던 거였냐?”
“꼭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내가 왜 칼을 쓸 줄 안다고 생각하는 건데? 탈영병이라서?”
게벨이 오래된 소문을 들먹였다.
아이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이 수도원에 있는 이유는 모르지만 아이작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멧돼지를 반으로 쪼개버린 건 주먹으로 한 거였어요?”
“네가 무서워서 잘못 본 거겠지.”
그렇지. 고작 이 정도 말로는 안 넘어올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게벨 씨가 가끔 버리라고 한 통 가득 가져오던 쥐 사체들을 봤어요.”
가끔 게벨이 버리라고 따로 지시하던 쥐 사체들. 아이작처럼 함정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직접 잡은 듯한 쥐 사체들은 모두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상처를 입고 죽어 있었다.
“전부 정교한 솜씨로 뭔가에 깔끔하게 찔려 있었어요. 칼처럼.”
“왜 창이나 꼬챙이라고는 생각 안 하고? 그게 더 일반적일 텐데.”
게벨은 아이작이 그걸 알아봤다는 것에 놀랐지만, 불쾌해하는 대신 흥미로워했다. 과연 아이작이 뭐라고 대답할지 기대된다는 눈치였다.
아이작은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던져 보기로 했다.
“게벨 씨는 성기사잖아요.”
“왜 성기사라고 생각하지?”
“손목 안쪽에 있는 그 문신 때문에요.”
게벨은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매만졌다. 하지만 그 역시 딱히 그 문신을 숨기고 다니지는 않았다. 어린 아이작이 알아봤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한스는 그걸 칼과 초승달이 교차하는 문양이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초승달을 찌른 칼 모양이죠?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문양이요.”
“…….”
초승달을 찌른다.
태양이 빛의 법전의 상징이듯, 초승달은 불사교단, 그중 불사 황제의 상징이다.
즉, 게벨의 문신은 불사교단의 신이자 교주인, 불사 황제 ‘베셰크’를 찌르겠다는 선언과 같다.
게벨이 속했던 ‘아발란체 성기사단’이 극도로 전투적인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여명군 참전 기사단 목록 중에서 그 문신을 본 적 있어요. 12차 여명군에 참전한 성기사단이라던데…….”
“별걸 다 알아봤군.”
“여명군 얘기는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잖아요.”
게벨은 착잡한 표정으로 도끼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애들이라고 무시할 게 못 되는군. 수도원장 말고는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는데…….”
게벨은 딱히 숨길 생각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도끼를 집어 들었다. 아이작은 그가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다시 장작을 팰 뿐이었다.
뭔가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게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요?”
“그래서 뭐?”
“검 쓰는 법 가르쳐주실 건가요?”
물론 성기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 검술은 아니다. 오히려 검술은 성기사가 되는 과정에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성과에 가깝다. 대다수의 성기사단은 폐쇄적인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서 먹고 자라면서 신앙에 세뇌된 자들만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곳이 성기사단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신앙심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름 없는 혼돈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켰다간 산 채로 불태워질 것이다.
아이작이 성기사가 되려면 성기사단 바깥에서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세운 뒤 들어가야 했다.
“내가 성기사인 거랑 칼 가르쳐주는 거랑 뭔 상관인데? 가서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라. 탈영병이 탈영 성기사가 되겠군.”
탈영했다는 건 맞는 건가? 이미 게벨은 성기사라는 자리에서 발을 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동료를 모두 잃은 것이 그를 초연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오지의 수도원에서 장작이나 패고 있지.
하지만 아이작은 그가 검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장비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검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는 언제고 다시 검을 쥘 사람처럼 보였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도원에 몸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작이 바라보고 있자 게벨은 피식 웃으면서 도끼를 콱, 두꺼운 장작 안에 꽂아 넣었다.
“뽑아봐라.”
“네?”
“칼 가르쳐달라며? 무거운 전투용 도끼도 아니고 손도끼다. 칼은 이것보다 훨씬 무겁지. 아직 뼈도 다 안 자란 녀석이 칼을 들 생각부터 해? 웃기는 소리.”
***
아이작은 머뭇거리며 도끼 앞으로 다가갔다.
게벨은 도낏자루를 쥐고 끙끙거리다가 나자빠지는 아이작의 모습을 예상했다.
“이런 가난한 수도원에서는 검사가 될만한 몸을 만들기도 어려워. 밥이 제대로 나오느냐, 아니면 네가 체력단련을 하느냐? 맨날 앉아서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는데 단련이 되겠냐?”
“이 도끼를 뽑으면 칼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봐서. 바위에 박힌 성검도 아니고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바위는 아니지만 체중을 실어 이리저리 비틀어도 꿈쩍도 안 할 정도로 깊이 박아 놓은 상태였다. 게벨은 아이작의 몸집만 봐도 그가 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게벨은 뭔가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게벨은 아이작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작은 단지 나이에 비해 성숙할 뿐인 아이였다.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단련해 왔던 그는, 지금 아이작의 체격으로는 가르쳐 봤자 근력 운동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녀석이라면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줄지도.’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도낏자루를 움켜쥐었다. 도낏자루의 높이가 아이작의 얼굴까지 올 정도여서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작은 거의 도끼 목 부분을 잡고 힘을 주었다.
움찔. 장작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게벨은 설마 했지만, 역시나 도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봐라, 괜히 헛소리 말고 경전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러면 수도원장님이 너를 대학 성당에 추천해주실 수도 있으니…….”
게벨은 웃으며 말했다.
아이작은 충분히 영리하고 성실했다. 굳이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옆에 두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다음 순간, 아이작이 장작이 박힌 도끼를 번쩍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아이작이 몸통만큼이나 커다란 장작을 들어 올리자 게벨의 눈동자가 커졌다.
도끼를 뽑는 게 아니라 아예 장작째로 들어 올린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걸로는 충격을 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작은 장작이 박혀있던 도끼를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도끼가 단숨에 장작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도끼는 그걸로 모자라 땅에 목까지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박혔다. 아이작은 손바닥이 얼얼해지는 충격을 느꼈지만 애써 참았다.
“후우…… 들어 올리는 건 몰라도 뽑는 건 어렵네요.”
“아니, 뭔…….”
게벨은 어이없어하다가 아이작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게벨에게 당황했지만 일단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이작의 가느다란 손목과 빈약한 근육을 확인한 게벨은 그를 들어 올려서 체중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떻게?”
아이작은 시선을 회피하며 모르는 척했다.
[‘짐승의 완력(임시)’ 특전]아이작이 역병 멧돼지를 포식하고 얻은 특전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일시적인 효과였지만, 게벨과의 내기에서 승리하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아이작도 알고 게벨도 안다. 아이작도 이 힘을 드러낼까 말까 고민했지만, 이 내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든, 앞으로 검술 단련을 위해서든,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보여 줘야만 했다.
완력이 충분하지 않은데 검술 단련을 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게벨은 어떻게든 합리적인 상황을 찾기 위해 궁리하다가 물었다.
“그 많은 쥐들을 다 잡아먹기라도 한 거냐?”
“…….”
“아니, 설령 그걸 다 먹었어도 이 체격에 그 힘은 말이 안 되는데…….”
의외로 예리한 질문 탓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게벨은 곧바로 자신의 의견을 부정했다.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 세계에선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을 때 당연히 다다를 수밖에 없는 편리한 납득 수단이 있었다.
게벨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역시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나?”
“기적이요?”
그 순간 아이작은 게벨의 말과 얼굴에 스쳐 지나간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게벨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나?’라고 과거형으로 말했다.
‘기적이 일어났나?’라는 현재형이 아니라.
즉, 게벨은 아이작에게서 기적으로 의심되는 무언가를 본 적 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그의 표정.
환희와 희열에 찬 그 얼굴은 자신의 기대했던 것이 나타났을 때 짓는 표정이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것을 봤을 때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게벨은 서둘러 표정을 지우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말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가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자 아이작은 대답을 채근했다.
“들어 올렸으니까 검술 가르쳐 주실 거죠?”
게벨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이름 없는 혼돈이 작은 승리에 만족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주어졌습니다.]늦은 저녁, 도서실에서 책을 읽던 아이작에게 승리 포상이 주어졌다.
아이작은 그 메시지를 듣고 작게 미소 지었다.
‘검술을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은 모양이군.’
낮에 도끼를 들어 올렸을 때는 승패가 바로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늦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메시지가 뜬 걸 보니 결국 게벨도 인정한 것 같았다.
‘단순히 도끼를 들어 올린 거 하나만으로 이렇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했겠지.’
게벨의 마음을 돌린 것은 이미 아이작이 쌓아 놓은 이미지 덕분이었다. 똑똑하고 성실하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라는 이미지. 거기에 자신의 검술을 잇고 싶다는 의욕까지 내비치며 재능까지 발휘하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튼 잘됐어.’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이 자신에게 어떤 포상을 내렸는지 확인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에게 ‘벽 속의 쥐’ 특전을 부여했습니다.] [이제 촉수를 통해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감각 공유?’
아이작은 그 명칭을 듣고 호기심을 느꼈다. 아직은 주변에 눈이 많기 때문에 당장 써먹기는 어려웠다. 아이작은 주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밖으로 향했다.
‘어디 보자, 한번…….’
아이작은 구석진 곳에서 촉수를 꺼내 보았다. 그 순간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촉수가 느끼는 시야와 소리가 중첩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벽 속의 쥐 / 촉수를 통해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약간 흐릿한 경계를 사이로 두 시야가 중첩되어 있을 뿐, 많이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두 눈을 감으니 촉수 쪽 시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작은 촉수를 움직이다가 바닥의 작은 틈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아이작의 발밑은 고해실이 있는 층이었다. 게벨이 수도원장과 고해실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곳을 노린 것이었다.
게벨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촉수는 허술하게 뚫린 벽의 빈틈을 타고 뻗다가 게벨과 예브하르가 있는 벽 근처에서 멈췄다. 작게나마 귀를 만들어 낸 촉수를 통해 둘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
“장작에 박힌 도끼를 들어 올렸다구요?”
“예. 수도원장님.”
당연하지만 아이작이 일으킨 일은 수도원장의 귀에 들어갔다.
“그냥 타고난 힘이 센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적이라기에는 좀 사소해 보이는데.”
“다릅니다. 수도원장님.”
어두컴컴한 고해실 안에서 게벨은 이마를 짚은 채 중얼거렸다.
“아이작은 성체(聖體)일 확률이 높습니다. 기적을 몸 안에 품고 있는 자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