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화로 장인 (1)
물론 외모가 잘나면 불가사의한 믿음과 신뢰를 주게 된다는 것은 울스텐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아이작에 대한 질문을 수도원의 다른 하인이나 관료, 심지어 성기사와 사제들에게까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울스텐은 그들이 전부 아이작에 대한 미친 광신도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잘생긴 것은 물론이고, 경건한 목소리 한방으로 고대신에게 홀린 사람들을 깨우쳤으며, 단신으로 천사를 무찌르고, 칼을 대충 휘두르자 언데드가 수수깡처럼 부러져나갔다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물론 소문에는 과장이 덧붙기 나름이지만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아이작이 얼마나 잘났는지 설파하니, 울스텐에게는 떨떠름할 뿐이었다. 일반적인 성배기사에 대한 존경을 넘어서 어딘가의 수상한 교주 같은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이단심문관은 좀 다를까 했는데 역시 제정신은 아닌 것 같군.’
울스텐의 싸늘한 반응에 이솔데는 당혹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실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라서요. 이런 사람이다 싶으면 그 이상을 보여주고, 저런 사람인가 싶으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을 보여 주는지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외견 정도로군요.”
“흐음.”
이솔데의 대답에 울스텐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다들 입을 모아 찬양하기 바쁜 성배기사를 이단심문관이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하다니. 울스텐은 호기심이 들었지만 계속 캐물을 수는 없었다.
이솔데가 질문의 방향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질문을 돌려보죠. 화로 장인께선 여기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울스텐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장인이 물건을 만들러 왔지, 뭐 때문에 왔겠나? 의뢰받은 물건이 있었지.”
“화로 장인이 의뢰 때문에 바다를 건너요?”
화로 장인들이 게르토니아 제국에서 사라진 이유는 빛의 법전과의 트러블 때문이기도 했지만, 화로 장인들의 물 공포증이 유난 맞았기 때문이었다. 단단하고 다부진 체구를 가진 드워프들은 물에 빠지면 조약돌처럼 가라앉았다.
“꽤 짭짤한 벌이였거든.”
울스텐은 당당하게 말했다.
천박한 대답이었지만 이솔데는 울스텐이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제국에는 화로 장인이 만든 단검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귀족들이 줄을 섰다. 돈으로 부릴 수 있었다면 진작에 화로 장인들은 제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솔데의 호기심은 아이작에게로 향했다.
아이작은 이 화로 장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게르토니아 제국에서 유일하게 화로 장인을 보유한 이 성배기사는 대체 뭘 만들려고 하는 걸까?
***
울스텐은 폐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돌조각을 밟을 때마다 음산한 소음이 폐광 안에 울려 퍼졌다. 옆에 선 에이단이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폐광의 어둠은 그마저도 삼키는 듯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화로 장인.”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어둠 속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그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울스텐과 에이단은 흠칫하며 멈춰 섰다.
울스텐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 겨우 대답했다.
“……자네가 그 이름 높은 성배기사로군.”
울스텐의 대답에도 아이작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울스텐은 에이단에게 눈치를 줘서 좀 더 횃불을 앞으로 비추라고 지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이작의 다리 언저리뿐이었다.
“대화하기에는 조금 먼 거리 같은데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
“우선 저는 질문 몇 가지를 할 겁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우리 거리를 어떤 식으로 좁힐지 결정하도록 하지요.”
그 말에 에이단이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작 님, 화로 장인께서는 저와 성배기사님을 신뢰하여…….”
“나를 초대한 건 자네일 텐데.”
울스텐이 에이단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사실 원래 그였다면 이런 대우를 받자마자 바로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등을 보이는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쥐고 심연 속으로 끌고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솔데가 했던 말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랬던가. 성배기사에게서 느낄 법한 기분이 아니었다.
“초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우선 질문하겠습니다.”
아이작은 화로 장인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세상의 화로 장인께서 무엇 때문에 바다를 넘었을까요? 빛의 법전 교단과 갈등이 생겨서 교류가 거의 끊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울스텐에게는 다행히도 이미 이솔데에게 받았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솔데에게 말했던 대답이 그대로 아이작에게 통할지는 알 수 없었다.
“장인이 의뢰받은 물건을 만들러 왔지, 뭐 때문에 왔겠나?”
아이작은 말없이 울스텐을 응시했다. 울스텐은 그 보랏빛 시선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마치 긴 더듬이를 그의 뇌 안에 밀어 넣어 내면을 샅샅이 훑는 듯한 느낌이었다. 만약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강제로 움켜쥐고 끌어낼 것만 같은.
“만들려던 물건이 뭡니까?”
울스텐은 결국 입을 열었다.
“……신을 만들려고 한다네.”
“신?”
아이작은 눈썹을 찌푸렸다.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제가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칼센 밀터를 신으로 만드는 계획에는 무수히 많은 사제들이 개입해 있었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깔려 있었다.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해서, 어떤 사악한 신앙을 막기 위해서, 봉사를 대가로 보상을 받기 위해서…… 하지만 울스텐의 말에는 다른 이유가 깔려 있었다.
“신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란 말이군요?”
“음, 바로 알아듣는군.”
이것은 아이작이 이미 세상의 화로 엔딩을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상의 화로 교단은 엘릴 교단과 마찬가지로 백제국으로 분류된다. 다만 그들은 하늘의 태양을 신의 상징으로 삼는 대신 지하의 들끓는 용암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신은 스스로의 몸을 진정한 형태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땅거죽 아래에 있는 ‘세상의 화로’에 들어갔으며, 마침내 그 제련이 끝났을 때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재밌는 것은 그들은 바로 그 신이 빛의 법전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다른 신도들은 빛의 법전은 이미 신께서 하늘에서 굽어보고 계시다고 말하지만, 세상의 화로 교단은 저것은 진정한 신의 모습이 아니며, 재탄생이 완성되는 시기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사실상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다른 교리를 지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섞이지 못하고 별개의 교단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이런 교리를 가진 세상의 화로 교단이 가진 최종 목적은 하나.
“세상의 화로가 깨지는 날 당신께서는 땅거죽을 벗고 찬란한 형태를 드러내신다. 지금 빛의 법전이 신이랍시고 섬기는 것은 빛바랜 태양이야. 진정한 신이 스스로를 재탄생시키는 동안 그들을 기만하고 있을 뿐.”
빛의 법전 사제들이 듣는다면 기함할 만한 소리였다.
그런 얘기를 고대신과 천사, 주교를 썰어 버린 성배기사 앞에서 하고 있으니 옆에서 듣고 있던 에이단은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울스텐 역시 평소라면 다른 신앙의 신자들 앞에서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답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에게 장인으로서의 철학을 들려줘야 했다.
“그러면 세상의 화로를 섬기는 장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나? 그저 대지 거죽 아래 신이 스스로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 아니지. 우리는 장인이야. 신께서 우리에게 창조와 변화의 기적을 선물하신 까닭은, 우리가 직접 당신의 육신을 만들라는 뜻이다.”
“……그건 세상의 화로 교단의 공식 입장은 아닌 거죠?”
“허어? 묘하게 눈치가 좋군. 그래. 나처럼 생각하는 장인이 많지는 않지. 불경하다고도 하고.”
많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세상의 화로 교단 안에서도 과격파 내지는 급진파로 분류되는 집단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이단으로 분류되기까지 하는.
아이작은 울스텐의 실체를 알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 주변에 자꾸 이런 놈만 꼬이는군…… 이름 없는 혼돈 때문인가?’
게벨은 파문당한 성기사고, 헤사벨은 아이작이 강요하긴 했지만 배교자에, 이솔데는 교단이 썩었다고 부르짖는 속 꼬인 이단심문관이며, 울스텐은 신을 만들겠다고 자처하는 사제다. 어쩐지 철저한 마이너리티만 아이작 주변에 꼬이는 느낌이었다.
아이작부터가 몸 안에 이름 없는 혼돈을 품은 거짓 성배기사이니 끼리끼리 모이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군. 목적만 맞다면 밑바닥끼리 힘을 합쳐야 할 테니.’
울스텐도 신을 만들겠다고 설치는 만큼 실력은 확실할 것이다. 무명 성서를 만든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결국 칼센이 실패한 것을 보면 신을 만드는 데는 실패한 모양이군.’
아이작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번에는 울스텐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자네가 대답할 차례인 것 같군. 나는 여기 무슨 일로 초대했지? 보호가 필요해서 오기는 했네만, 자네 목적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아이작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우선 움직이면서 이야기하지요.”
***
아이작과 울스텐, 에이단은 점점 더 깊은 폐광 안으로 향했다.
그들이 멈춰 선 곳은 벽에 박혀 있는 타천사 앞이었다. 수십여 미터에 이르는 여덟 장의 날개로 이루어진 천사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형상으로 벽에 굳어져 있었다. 몸 대부분은 바위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전부 꺼내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울스텐은 타천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게…… 그 타천사로군. 돌이 된 천사라니.”
“본 적 없습니까? 타천사로 이미 무명 성서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리스헨 헨드락이 가져다준 조각으로 만들었을 뿐이네. 그때에는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
울스텐은 장인의 심장이 뛰는 건지 눈을 떼지 못하며 투박한 손을 뻗어 타천사의 굴곡을 더듬었다.
그 손길은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타천사는 귀하디 귀한 재료다. 신마다 천사를 벌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빛의 법전의 타천사처럼 선명하게 흔적이 남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울스텐은 당장이라도 타천사를 바위에서 꺼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듯했지만, 아이작의 시선 속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네가 나한테 시키고 싶은 일이 뭔가? 어차피 나는 뭔가를 만드는 재주밖에 없는 장인일세. 굳이 여기까지 데려와서 이걸 보여 주는 걸 보니 뭔가를 부탁하고 싶은 모양이지?”
“정확합니다.”
아이작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뭔가?”
“말로 설명드리기는 어렵고…… 나중에 제가 조악하게 만든 도면이라도 보여드리겠습니다. 갑옷 비슷한 것인데 아마 전에 만들어보신 적 없는 형태일 겁니다.”
전에 만들어본 적 없을 것이라는 말에 울스텐은 코웃음 쳤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화로 장인이었다. 세상의 화로 교단에도 성기사와 비슷한 존재들이 있었다.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 전사들에 대해서 모르는 모양이군. 그들이 입는 갑옷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일반인이 입는 갑옷 따위는 별것도 아니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작은 그가 도면을 보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했다.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형태의 갑옷을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