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화로 장인 (2)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부탁드리고 싶군요.”
“뭔가?”
아이작은 에이단을 가리켰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에이단은 갑자기 두 사람의 시선을 받자 당황하며 허리를 바로 세웠다.
“저 친구에게 약속한 물건이 있습니다. 소금 의회에…….”
“그건 안되네.”
갑자기 울스텐이 딱 잘라 말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이작은 의아한 듯 물었다.
“뭘 만들어달라는지 듣지도 않고 말입니까?”
“보나마나 소금 의회에 성물 하나 만들어달라는 거겠지. 무명 성서 같은 거 말이야.”
정확했기 때문에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화로 장인이 다른 신앙의 성물을 만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신앙의 천사나 사제들조차도 화로 장인이 만든 성물을 더 좋아했다. 어차피 화로 장인이 만드는 성물은 포장지에 불과하고, 그 안에 무엇을 채우느냐는 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그릇을 만들어도 그 안에 물을 채우느냐 피를 채우느냐는 그릇을 가진 자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울스텐은 그 그릇을 만드는 것조차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에이단, 이 친구가 나한테는 한 번도 부탁 안 했을 것 같나?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야.”
“왜죠?”
“애초에 무명 성서는 나 혼자 만든 게 아니야. 자네도 여기까지 왔으면 알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손이 닿았지. 배교자라고 욕먹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필요한 재료도 다양해. 고작 타천사 하나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네.”
그건 아이작도 예상하고 있었다.
불사 교단, 빛의 법전, 세상의 화로, 붉은 성배,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교단들이 힘을 합친다는 게 애당초 기적이었다. 무명 성서는 원한다고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다시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원하는 것은 무명 성서가 아니었다.
“혹시 다른 성물을 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소금 의회의 신은 지금 소금 사막 아래 매장당했어. 신의 전언도, 축복도, 허락도 받지 않고 만들어진 성물이 과연 제대로 된 성물일 것 같나?”
울프텐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보나 마나 안에 잡귀나 꼬여서 엉망이 될 거야. 소금 의회 놈들은 그걸 또 좋다고 섬기겠지. 그런 와중에 무명 성서? 단체로 고대신이나 섬기다가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겠군.”
쇠르에서 고대신이 벌였던 일과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투였다. 그리고 실제로 소금 의회가 곧잘 하는 행동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이작은 웃고 말았다.
지금 소금 의회는 온갖 미신적인 행동과 금기로 중구난방이었다. 제대로 된 교리를 잃어버린 탓이었다.
에이단은 단호한 울스텐의 말에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아이작은 굳이 어려운 신을 섬기지 말고 제대로 된 신…… 그러니까 이름 없는 혼돈 같은 걸 섬기면 어떻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금 의회도 소금 의회 나름대로 필요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일단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친구를 위해서라도 그런 건 함부로 만들면 안 된다니…….”
“일단 만들어놓으면 제가 제대로 된 성물로 만들겠습니다. 약속한 바가 있으니까요.”
아이작의 말에 에이단이 눈을 번쩍 떴다.
‘제대로 된’ 성물로 만들겠다고? 그것은 연락이 두절된 그들의 신과 다시 연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소금 의회의 얼마 안 되는 사제들조차 모르는 방법을.
실제로 소금 의회로 엔딩까지 본 아이작은 간단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경악 어린 시선을 받으며, 아이작은 부드럽게 부탁했다.
“이제는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슨 성물을 만들지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촉매로 활용할 거라서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기왕이면 작고 의식용으로 사용 가능 한 것이면 좋겠군요. 제가 대략적인 형태를 알려드리죠.”
울스텐은 아이작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협력하기로 했으니 돕기로 하지. 그럼 두 개나 만들어줘야 하는데, 대가는 뭘로 지불할 생각인가?”
“화로 장인을 싼값에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작은 타천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이 바다를 건넌 이유가 돈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여기에 머무는 동안 당신이 무엇을 만들든 필요한 물자를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장비와 시설도요. 사실 타천사 정도라면 타협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 아닌가 싶군요.”
울스텐은 아이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자신이 바다를 건넌 이유를 밝혔다. 화로 안에 들어간 자신의 신을 장인의 손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라고. 즉, 아이작은 그것을 돕겠다는 뜻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배교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신께 맹세할 수 있나?”
아이작은 미소 지었다.
“빛의 법전께 맹세하죠.”
***
귀한 타천사 조각을 제공한다고는 해도 화로 장인을 고용하는 것 치고는 싼값이다. 화로 장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국의 귀족과 상인들은 눈이 뒤집힐 테니까.
타천사의 크기는 충분했다. 화로 장인과 소금 의회,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나눠줄 수 있다. 어차피 시장에서 눈에 띄지 않게 유통시키려면 조금씩 유출시켜야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는 없으니 빛의 법전을 걸었을 뿐이다. 결코 ‘어쩌다 보니 마음이 바뀌어서’ 맹세를 어겼을 때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정말 아니다.
하지만 함께 곁에서 걷고 있는 에이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저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이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울스텐은 타천사 앞에 내버려 두고, 아이작은 에이단을 데리고 광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작이 든 루앗딘 열쇠의 불빛이 환했기 때문에 어둡지는 않았지만, 폐쇄된 지 오래된 폐광 특유의 답답한 공기가 에이단의 가슴을 옥죄어 왔다.
에이단은 슬슬 아이작이 ‘용건은 끝났으니 여기서 죽어 줘야겠다’라면서 칼을 휘두르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아이작이 밖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이작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여길 자신의 무덤으로 삼을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아이작이 멈춰 섰다.
“뭐가 안심이지?”
“예? 어, 이제 밖으로 나가시는 것 같아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통로를 걷지 않았어. 여전히 어둡고 깊은 폐광을 걷고 있지. 어떻게 나가는 길이라는 걸 알았지?”
에이단은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이작은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함부로 대답할 수 없어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나 아이작은 에이단이 하지 못한 대답을 대신 했다.
“그야 여기 와본 적 있으니까 잘 모르는 길도 잘 알겠지. 안 그래?”
에이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소금 의회가 헨드락 영지에서 맡았던 역할은 무엇일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면 대신 말해주지. 소금 의회가 하는 일이다. 당연히 운송과 밀수를 했겠지.”
화로 장인조차 소금 의회의 도움을 받아 바다를 건너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바다의 선원들 중 태반은 소금 의회 신도들이다. 바다에서만큼은 누구도 소금 의회의 눈을 피해서 움직일 수 없다.
반대로, 빛의 법전의 눈을 피해 불사 교단이나 붉은 성배 클럽의 물자나 사람을 들여보내려면 소금 의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소금 의회는 황금우상과 마찬가지로 백제국에도 흑제국에도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거리낄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에이단 베어베크, 자네는 무엇을 몰래 들여오러 이 폐광을 들락날락거렸을까?”
이번에도 아이작은 답을 알면서 에이단에게 물었다.
에이단은 입 다물고 있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숨을 가쁘게 쉬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제 리스헨 헨드락이 죽고, 칼센 밀터도 사라지면서 그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무기와 장비들…… 입니다.”
아이작은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에이단은 추가로 더 말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또?”
“예? 그, 그것뿐입니다.”
“시체나 뼈다귀 같은 거 안 가져왔어?”
에이단은 무슨 흉흉한 말을, 하는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다가 그가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고 사색이 되어 다급하게 손을 저어댔다.
“언데드요?! 소금 의회가 이번 일에 끼어들긴 했지만 그만큼 정신 나간 짓을 하진 않습니다! 지방 영주가 무기를 사들이는 것과 언데드를 숨겨오는 것은 죄의 수준이 다르다구요!”
정색하고 말하는 것을 보니 진심이었다. 소금 의회 신도의 말이었기에 아이작은 혼돈의 눈을 쓸 필요도 없이 믿었다.
리스헨은 이곳에서 반란 비슷한 것을 준비 중이었다. 아마 칼센 밀터라는 새로운 신을 만들고 국가를 세우려고 했으니 필요한 게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썩지 않는 무기부터 비축해 두려고 했을 테고.
폐광은 그런 물자를 숨겨 두기 좋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불사 교단의 도움도 받았으니 병력도 숨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 정도까지 엇나가진 않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새로운 신을 세우는 거지, 불사 교단에 투신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마 자신만의 논리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이런 음모가 으레 그러하듯, 칼센 밀터가 사라지고 붉은 살점의 선지자와 트러블이 생기면서 제거당했고.
“그 장비들은 어디 있지?”
아이작은 에이단의 어깨를 감싸 쥐며 물었다. 에이단은 얌전히 리스헨이 숨겨 둔 도토리 창고를 향해 안내했다. 아이작은 에이단이 어둠 속에서도 능숙하게 길을 안내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소금 의회는 밀수꾼이나 선원 정도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큰 효용이 있다.
오직 신도들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비밀.
울스텐이 성물을 만들고 나면 아주 쓸모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울스텐의 안내를 받아 다시 폐광 안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 에이단과 아이작은 널빤지로 막아놓은 갱도 앞에 도착했다. 널빤지에는 초라하게 ‘위험! 폐갱’이라고 적혀 있는 경고문이 전부였다.
“출입구와 그렇게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 깊은 곳에 방치 해두면 관리하기도 힘들고, 혹여 광산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아이작은 칼로 단숨에 널빤지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드나든 지 오래된 폐광인데도 용케 무너지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작은 갱도 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갱도 안쪽은 제법 넓었다. 커다란 공동 안쪽에 나무 상자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아, 저기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봤던 때와 똑같…….”
아이작은 덜컥 에이단을 멈춰 세웠다. 에이단은 그대로 우뚝 선 채 앞을 바라보았다.
절그럭.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에이단은 문득 공기가 쌀쌀하다는 것을 느꼈다. 동굴 안이 원래 좀 춥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 언데드? 설마 그럴 리가…….”
“사령술이군. 리빙 아머(Living Armor)다.”
어둠 속에서 절그럭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갑옷과 칼들이었다.
에이단은 사색이 되어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는 거짓말 하지 않았…….”
“알아. 그냥 속은 거겠지. 그리고 리빙 아머는 군대로 쓸 만한 것이 못 된다.”
망령들은 전술적 행동을 이해 못 하고 단순한 행동밖에 하지 못한다. 망령에 주박을 걸어 놓고 단순한 파수견, 내지는 병장기들을 관리하는 하인 정도로 쓰기 위해 세워 놓은 것 같았다. 놀랄 것도 없었다. 이미 불사 교단은 자기네 사제도 고대신 하나 부려 먹기 위해 수도원 지하에 몇십 년이고 짱박아 놓는 놈들이었으니까.
리빙 아머들은 침입자를 감지한 듯 여기저기서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작에게 위협이 될 만한 놈은 보이지 않았다. 리빙 아머를 파괴하는 것은 언데드 퇴치 기적을 쓰거나 갑옷에 숨어 있는 주술 촉매를 제거하면 간단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아까운 병장기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어, 밖에서 사람을 불러올까요?”
“아니.”
아이작은 에이단을 힐긋 보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하는 걸 잘 봐라.”
에이단은 루앗딘 열쇠를 검집에 집어넣고 왼손을 툭툭 털었다. 그때 리빙 아머 하나가 소리도 없이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둘이 교차하는 순간, 아이작은 왼손으로 리빙 아머의 가슴에 손바닥을 꽂아 넣었다.
콰드드드득.
촉수가 갑옷을 꿰뚫고 그 안의 촉매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촉수에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갑옷에 깃든 영혼까지 거칠게 탐식했다.
촉수가 삽시간에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수십 가닥으로 번져나간 촉수는 단숨에 갑옷 안을 가득 메우고 심지어 구멍이란 구멍 곳곳으로 튀어나와 흩어지기 시작한 영혼을 게걸스럽게 훑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리빙 아머들이 발작적으로 영적인 비명을 질렀다.
[어두운 성찬례가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