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소금 의회 (1)
‘노르덴? 왜 갑자기?’
다른 사람도 아닌 주교의 소환이었기에 아이작은 즉시 노르덴 항으로 향했다. 교단 상층부에 아이작을 비호할 만한 뒷배는 후안 주교뿐이었다. 인간이야 어찌 됐든 아이작을 이 자리에 꽂아 넣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환에 내심 찔리는 구석도 없잖아 있었다.
사실 아이작은 최근 소금 의회에 관련된 일로 에이단을 노르덴 항에 보내둔 상태였다.
‘소금 의회를 포섭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설마 들킨 건가?’
노르덴 항은 소금 의회의 거점 도시 중 하나였다. 소금 의회는 황금우상처럼 그들을 국교로 삼은 국가가 없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거점 도시를 두고 있었다.
물론 소금 의회 신도 대부분이 선원인 이상, 항구라면 소금 의회 신도가 반드시 있다. 다만 그중에서도 이른바 ‘의원’들이 모이곤 하는 장소가 있었다. 노르덴 항이 그런 거점 중 하나였다.
이사크레아 령과 가까우면서 소금 의회를 조종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앞으로 북해 무역로를 장악하려면 중요한 거점이 될 테니까. 때문에 아이작이 이사크레아 영지를 떠나면 바로 향할 곳도 바로 노르덴이었다.
‘뭐가 어찌 됐든 일단 만나봐야겠군. 어르고 달래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대화를 하든, 맞서든, 어쨌든 만나 봐야 했다.
아이작은 서둘러 말을 박찼다.
***
“성배기사가 도착했습니다. 주교님.”
후안 주교는 노르덴 외곽의 한 지방 유지의 저택을 빌려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도 빛의 법전 성당이 있긴 했으나, 낡고 빈곤해진 성당은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창가에 앉아있던 늙은 주교가 고개를 돌렸다.
“오, 우리 이사크레아 경이 오셨군. 영주 생활은 마음에 드시오?”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였다.
아이작은 이전에 순순히 교단의 뜻에 따르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주교가 직접 불만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는 잠시 처신을 고민하다가 일단 예의부터 차리기로 했다.
“주교님을 뵙습니다.”
아이작은 다가가 교범대로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성호를 그은 뒤, 후안 주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후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꺼낼 말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진한 재주와 부족한 믿음 탓에 주교님의 신뢰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성심성의껏 신도들을 열정으로 대하고 있으니 제게 실망스러운 점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실 아이작은 영주로서 대단히 잘 해내고 있었다. 헨드락 가문이 이전에 하던 짓에 비하면 영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새로운 길이 닦이며, 치안도 보장되고 있었다. 아이작은 영지 관리 측면에서는 떳떳했으나, 상대방은 주교였다. 단순히 영주로서 해야 할 일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흐음.”
아이작의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후안 주교는 한층 누그러진 표정을 했다.
“이사크레아 경이 영주가 된 지 얼마나 됐지?”
“반년 정도 됐습니다.”
“아직 한참 영지 안정에 힘을 쓸 때군. 사실 사제들을 통해 이사크레아 경이 얼마나 영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들었네.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너무나 많이 눈에 띄더군.”
실망? 아이작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미 상당히 피폐해진 영지였기 때문에 이미 잘 굴러가고 있는 영지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르바리들을 경비대로 만든 것 때문인가? 아니면 이단 신앙자들을 수도원에 들인 것? 신앙 교리를 은근슬쩍 입맛대로 바꿔서 고친 것? 타천사 조각을 빼돌린 것? 수도원 지하에 이름 없는 혼돈의 성역을 만든 것?’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많았다. 그중 뭘 지적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몇몇은 지적이 아니라 당장 성기사단이 쳐들어왔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바르바리를 경비대장으로 만든 것이라면…….”
“바르바리? 아아, 그건 아무래도 됐네. 변경이라면 그 정도 일은 있을 수 있지. 치안 유지야 영주의 마음이니까. 내가 엄중하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신앙심에 대한 것이오.”
아이작은 역시나 했던 부분에 지적이 들어오자 긴장했다. 그가 뭐라 변명할 말을 준비하는 사이 후안 주교의 말이 이어졌다.
“무려 반년 동안 기부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더군.”
“제가 기도회에서 한 말들은…… 예?”
“반년, 무려 반년일세. 그 긴 시간 동안 신앙심을 증명할만한 기부금을 교단에 한 푼도 바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
아이작은 잠시 혼미해지려던 정신을 부여잡고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시중을 드는 부제와 경호를 서는 성기사도 있었지만 아무도 후안의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게 교단의 타락을 상징하는 건가 했지만, 생각해보니 교단은 오직 기부금과 황실의 지원금으로 굴러간다. 기부금이 반쯤 강제로 뜯어내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같은 교단 사람들끼리는 이런 태도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교님. 제가 이런 일은 잘 몰라서…… 그리고 영지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았습니다.”
“쯧!”
후안 주교는 언짢다는 듯 혀를 찼다. 아이작은 없는 돈이라도 만들어 내서 뜯어내라는 수작인가 했다. 물론 아이작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은 많았다. 황금우상 상단에 투자해 둔 자금만 해도 어마어마했으니까. 아이작은 그 사재라도 털어서 입을 막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주교의 생각은 아이작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물론 이사크레아 경은 순진무구한 성배기사이니 이런 일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내가 이번 기회를 빌어서 우리 성배기사에게 가르침을 전해주기로 했지.”
“예?”
“보고 있으면 머리는 좋은데 이쪽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것 같더군. 그러니 내가 직접 알려줘야지.”
아이작은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 대단히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를 질책하거나 심문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게 아니라…… 돈 뜯어내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여기까지 불렀다 이건가?’
이미 많은 돈을 벌어들인 아이작이지만, 후안이 가르쳐 줄 지식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상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노르덴 항은 거점 항구에 어울리지 않는 쇠락한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상당히 번성했던 곳이었지만 세상의 화로 교단과의 무역이 단절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건물만 무성하게 늘어서 있을 뿐, 빈 거리와 한적한 항구의 모습이 소금 의회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후안 주교는 비탈진 길을 따라 말을 타고 내려가면서 아이작을 향한 설교를 이어 나갔다.
“우선 영지에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아서 기부금을 낼 여력이 없다고 했었나? 그건 자네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뜻이네.”
“모쪼록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돈을 쓰는 사람과 돈을 버는 사람, 둘 중에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이작이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후안은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은 듯 일방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당연히 돈을 쓰는 쪽에 권력이 있네. 심지어 돈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돈을 불러오기도 하지. 많은 돈을 써서 영지를 개선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돈이 누군가에게 흘러 들어갈 것이 아닌가?”
후안은 순진무구한 성배기사를 향해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예를 들어 다리를 고친다면 석공과 돌을 파는 상인에게 돈이 들어가겠지. 대충 금화 일천 닢 정도 들어간다고 쳐보세. 그 막대한 돈을 쓰겠다고 나선다면, 석공과 석재상들이 줄을 서서 모여들겠지.”
“……그렇겠지요?”
“그럼 자네는 교단을 위한 일이니 신앙심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자에게 일을 맡기겠다고만 해도 교단에 적지 않은 기부금이 들어올걸세. 심지어 듣자 하니 자네는 영지에 길도 닦고, 가도를 뚫고, 다리뿐만이 아니라 성벽을 고치고 수로까지 재정비했다더군!”
후안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자네 영지에서 기부금이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네. 그 말인즉슨 다리를 고치는 데 든 비용이 전부 인건비와 자잿값으로만 나갔다는 것 아닌가?”
‘……당연한 거 아닌가?’
보통 그걸 뇌물 수수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이작은 돈이 남는다 해도 자신이 챙긴다면 모를까 딱히 교단에 그걸 기부할 생각 따위는 한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신도로서도 그만한 액수를 받았다면 응당 교단에 절반은 기부하는 것이 옳거늘! 자네 영지의 부족한 신앙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만큼만 이야기하겠네.”
아이작은 문득 자신의 수도원에 들어온 ‘기부금’들이 꽤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이작은 그것을 당연히 영지를 위한 세금쯤으로 여기고 전부 영지를 고치는 비용으로 썼다. 아직 영지가 엉망이니 영지를 위해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후안에게 알려 주진 않았다.
“그리고 자네가 이사크레아 영지의 수도원장이자 영주가 되었을 때 근방 귀족이나 상인, 지주들이 선물을 보내왔지?”
“아, 예. 몇 개 받았습니다만, 경황이 없어서 일단 보관해두고 있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주교님께 드리겠…….”
아이작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지만 후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몇 푼 안 되는 선물 따위는 자네가 가지게! 중요한 건 선물을 누가 어떻게 보냈는가일세. ‘이사크레아 수도원장’에게 보낸 건가, 아니면 ‘이사크레아 영주’에게 보낸 건가?”
아이작은 이런 질책을 받는 것이 어색해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게 중요한 건가? 둘 다 같은 사람 아닌가?
아이작의 혼란을 읽은 듯 후안이 꾸짖는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수도원장에게 보내는 것이라면 빛의 법전의 가호를 빌며 선물을 바쳐야 하고, 영주에게 보내는 것이라면 당연히 새로운 땅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니 선물을 바쳐야 하네! 그런데 자네는 수도원장이자 영주이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받아야겠나?”
아이작은 그래도 주교 앞이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수도원장으로서 받아야지요.”
“이런 멍청한 놈. 수도원장으로서 한번, 영주로서 한번, 이렇게 두 번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미친놈인가?’
아이작은 이 욕심보 터진 기괴한 논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후안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수도원장과 영주의 업무가 엄연히 다름에도 자네는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있네! 아니면 자네가 둘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 있나? 아니겠지. 자네처럼 순진하게 일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니 또 그럴듯했다. 일을 두 배로 하면 당연히 돈도 두 배로 받아야지.
돌이켜보니 정말로 그렇게 두 번 보낸 자들도 있긴 했다. 아이작은 그것이 오류라고 생각해 하나씩은 돌려보냈지만 그런 자들은 정말로 후안 주교 같은 자들의 생각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돈 밝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가치관의 혼란이 급격하게 찾아왔지만, 후안의 교육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번만 보낸 자에게는 서신을 보내게. 수도원장에게 보냈다면 영주의 명의로, 영주에게 보냈다면 수도원장의 명의로. 그리고 선물을 보내지 않은 자가 있다면 기록해두고 절대로 잊지 말게. 그놈들이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이야. 빛의 법전께서도 그런 놈은 잊지 않고 지옥으로 보낼걸세.”
‘역시 미친놈인가?’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지옥으로 보내는 신이라면 좀 정신 나간 신 아닌가? 골루와루 같은 놈이라면 모를까.
후안은 준엄하게 말했다.
“자네도 기억해두게. 돈을 쓰는 것도 권력, 돈을 버는 것도 권력,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권력이네. 하지만 그중 가장 안 좋은 것은 번 돈을 가지고만 있는 것이야. 번 돈을 쥐고만 있으면 괜한 적을 만들 뿐만 아니라, 돈을 더 벌 기회까지 놓치는 꼴이거든. 돈이라는 건 끊임없이 돌아야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황금우상 상단도 아니고 빛의 법전 주교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들을 줄은 몰랐지만, 꽤 그럴싸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는 자본의 순환이 경제를 총체적으로 성장시킨다는 논리야말로 사실상 자본주의의 기초 아닌가.
‘결국 뇌물로 받은 돈을 먹지만 말고 위로도 상납하라는 뜻인 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