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소금 의회 (3)
“당신이 선장인가?”
“아, 아니. 저는.”
에이단은 허겁지겁 뭐라고 말하려다가 뒤에서 누군가 툭 차는 발길질에 허리를 똑바로 폈다. 그는 이내 다른 선원들과 눈을 마주치고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는 ‘용맹한 연어’ 호의 에이단 베어베크입니다. 순풍이 함께 하길. 빛의 법전 주교님께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에이단은 가까스로 차분함을 되찾고 품위를 갖춰 말했다. 비록 바닷물에 젖은 몸이 품위를 대폭 떨어뜨리고 있었지만, 귀족들과 나란히 하던 말투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작은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에이단이 진짜 선장일 리는 없고, 갑자기 위에서 높으신 분이 오니 적당히 말실수 안 하고 접대할 만한 사람을 불러온 것이다. 아마도 히야니스라는 남자가 진짜 선장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실제로 대화 내용을 돌이켜보니 에이단이 선장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한 적 없었다.
‘에이단이 이 배에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제대로 찾아왔군.’
아이작의 목적과 후안의 목적이 비슷하다면 이 배에 에이단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나 히야니스가 에이단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그의 얼굴이 금방 사색이 되었다.
“괴, 괴물 말씀이십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선원들은 바다에서 조금 큰 파도나 고래를 보고 착각하기도 해서…….”
에이단의 말에 후안이 속삭이자 어린 사제는 우습다는 듯한 비웃음과 함께 전달했다.
“그렇다면 이 항구에 왜 이렇게 배가 많이 정박해 있단 말이냐? 필시 항구에 들어왔다가 떠나지 못할 사정이 생긴 것이겠지. 태풍이 올 시기도 아니고, 풍랑이 거칠지도 않다. 괴물 때문 아니냐?”
에이단은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이작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해도 스치듯 자꾸 마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작은 에이단을 약간 도와주기로 했다.
“주교님. 잠시 여쭐 것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후안은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이작과 함께 잠시 뒤로 물러났다.
“만약 정말 괴물이 나타났다면 저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요청했지, 굳이 숨길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저렇게 부정하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단심문청의 첩보력을 얕보지 말게. 이사크레아 경.”
후안은 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 말이 맞네. 저 앞바다에 있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소금 의회의 명천사인 ‘익사자 왕’이네. 기록에는 있지만 근 30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지. 하지만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더군.”
“예? 그러면 천사를 토벌하려는 겁니까?”
아이작은 자신이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토벌했다는 이유로 후안 주교가 뭔가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는 전사가 아닌 음모가 타입인 데다 유리한 전장에서 싸웠기에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 다른 천사라면 어림도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바다에서, 본체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 소금 의회의 천사를 상대하라고?
아이작에겐 그런 무지성적인 자살 계획 따윈 조금도 없었다.
“자네 천사를 토벌해봤다고 자만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익사자 왕은 붉은 살점의 선지자와 다르네. 뭍으로 기어 올라왔다면 모를까 바다에선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되네.”
다행히 후안은 미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작을 매도하기까지 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후안을 바다로 밀어 버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그러면 왜 여길 찾아오신 겁니까?”
“듣자 하니 익사자 왕이 신도들에게 뭔가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한다더군. 그래서 배들이 떠나지 못하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중이라고 들었네. 소금 의회의 의원들까지 모여서 익사자 왕의 요구를 들어줄지 말지 회의 중이라고 하더군.”
후안 주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요구 말입니까?”
“정확하지는 않네. 워낙에 쉬쉬하는 중이라…… 뭘 어떻게 결론 내리든 우리와는 상관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이번 기회에 적당히 선물을 받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조언을 해주러 온 걸세. 교단까지 정보가 들어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소금 의회의 천사 때문에 항구가 봉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후안 주교는 그걸 눈감아 주는 것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러 왔다는 것이다.
항구 봉쇄로 손해 보는 것도 소금 의회고 익사자 왕과 빛의 법전이 맞붙으면 손해 보는 것도 소금 의회지만 어쨌든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소금 의회다.
“당연히 소금 의회가 ‘예 그럼 우리 쪽 천사 좀 퇴치해 주십쇼’ 하면서 배를 빌려줄 리가 없으니 꽤 짭짤한 돈을 지불할 걸세. 이게 바로 이단을 교화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비법이지. 알겠나?”
후안은 진지하게 아이작에게 가르침을 전달했다.
“명심해두게. 이단 놈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어떤 이유에서건 양심의 가책 없이 돈을 뜯어낼 수 있는 빌미가 된다는 것을!”
‘가책을 느낄 양심이 있기는 한 건가?’
아이작은 되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어쨌든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히야니스와 에이단도 뭔가 상의를 마친 건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후안은 그들이 얼마나 불러야 적당히 눈감아 줄 것인지 비용을 가늠하며 다가갔다.
후안이 다가오자 에이단은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방황하는 이교의 신도들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시니 이 감당 못 할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후안 주교님.”
에이단은 겸손한 태도로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괜찮다면 배에서 대화를 정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주교님의 은혜에 대한 ‘성의’를 표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
배는 겉보기와 달리 꽤 컸다. 다만 오랫동안 항구를 떠나지 못하고 정박해 있던 탓인지 짐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후안은 선장실로 가서 고급스러운 술과 약간의 ‘성의’를 선물 받았다.
그가 ‘선물’을 살펴보는 사이, 아이작은 잠시 밖으로 나와 배를 살펴보았다.
선원들은 여전히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고 있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이작이 갑판 위를 걸어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다렸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먼저 찾아오실 줄 몰랐습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나도 네가 선장이 된 줄은 몰랐다만.”
그제야 에이단은 아직도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선장 외투를 부담스럽다는 듯 들썩였다.
“아, 으음.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선장이 아닙니다. 이 배의 선장과 대화하느라 잠시 머물고 있었을 뿐이죠. 술이 안 들어가면 말을 안 하려고 하는 통에 며칠 동안 계속 마셨더니 머리가 부서질 것 같군요.”
“히야니스?”
“아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그분이 ‘용맹한 연어’ 호의 선장이자 소금 의회 의원 중 한 분이십니다.”
소금 의회는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을 수 없는 만큼 의회의 의원들이 중요한 정책과 교리를 결정한다. 물론 신의 교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으므로 심각한 갈등이나 대립이 있는 경우에만 회의로 결정하며, 그마저도 애매모호한 미신으로 떡칠된 결론을 내놓는 경우가 흔했다.
아무래도 의원들 대부분이 선장 아니면 선주들이라 미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럼 성물을 보여줬겠군.”
“아, 예! 정말…… 작동하는 성물이더군요.”
에이단은 기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투명한 유리병 안에 정교한 작은 배가 들어있는 모형이었다. 오직 화로 장인의 손끝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예술품이자 성물이었다.
[표류자의 고향(희귀)] [병 안에 바닷물을 담으면 배모형의 선수(船首)가 늘 바닷물을 담았던 그 장소를 향한다.]대단한 물건은 아니고 광휘석 목걸이처럼 실용적인 조금 특이한 나침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소금 의회의 성물이며, ‘새롭게’ 만들어진 성물이라는 점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바닷물을 담그고 기도문을 외우자 성물이 완성됐습니다. 기록에 이런 성물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는 있었는데, 소금 사막이 만들어질 때 제작 방법이 분실되어서…… 아마 이게 만들어진 건 거의 천 년만일 겁니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과거의 지식과 유물, 유적들을 갈증 난 듯 찾아다닌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성물을 만들어 내는 기술의 발견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이 천년 전에 사라진 지식이라면.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아이작은 과거에 소금 의회로 플레이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네필림이라 해도 아무 준비 없이 다른 신앙의 성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표류자의 고향’은 소금 의회 신도라면 간단한 기도문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이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소금 의회가 그에게 큰 호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에이단은 선망하는, 혹은 갈증이 나는 듯한 눈길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이작은 그 눈빛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시선을 돌렸다.
북해의 회색빛 바다가 불길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의회 일이 마무리됐고 성물도 완성됐다면 됐어. 그보다 북해의 괴물 이야기는 뭐야? 그거 익사자 왕 이야기 맞지?”
“……예.”
에이단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했다. 지금 잠들어 있어야 할 명천사가 왜 깨어나 있나 생각했지만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칼센 밀터의 실종으로 인한 나비효과가 본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건가?’
아이작은 일단 그렇게 추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익사자 왕이 소금 의회에 뭔가 곤란한 것을 요구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뭐지?”
“그건…… 제가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아이작의 말에 순종하는 에이단이지만 이 사안에서만큼은 말을 아끼는 듯했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거짓말을 못 하니 곤란한 상황이면 아예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입 다물기를 선택한 소금 의회 신도들에게서 대답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의 방향에서 들려왔다.
“제가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성배기사 나으리.”
복도 모퉁이에서 회백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후안 주교와 아이작을 상대하던 선원, 아니 선장, 히야니스였다.
“익사자 왕은 소금 의회에 인신 공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인신 공양.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 의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신앙을 빠르게 충족시킬 수 있어서 고대 신앙이 만연하던 시절에는 가장 흔하게 강력한 의식을 발휘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였다. 하지만 아홉 신앙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후 엄격하게 금지된 풍습이기도 했다.
즉, 인간 제물을 바치는 것은 고대 신앙과 아홉 신앙을 구분하는 가장 큰 구분점 중 하나다. 붉은 성배가 식인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쾌락을 위한 식재료일 뿐이지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식재료가 된 사람 입장에서는 뭐가 다르냐고 묻겠지만.
“인신 공양? 정말인가?”
하지만 만약 익사자 왕이 인신 공양을 요구한 게 진짜라면 놈이 천사로서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타락하기 직전이라는 뜻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금 의회 전체가 고대 신앙 수준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다.
즉 소금 의회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앙들이 그들을 적대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습니다. 익사자 왕은 인간 제물을 요구했습니다. 의회는 아직도 그걸로 갑론을박 중이죠. 천사의 명령을 거역해도 괜찮을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히야니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에이단은 사색이 되었다.
표면상으로나마 빛의 법전 소속인 아이작에게 그것을 밝힌다는 것은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에이단은 설마 히야니스가 주교와 아이작을 제거하기 위해 배로 끌어들인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히야니스를 바라보았다.
그때 배가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창밖의 회색빛 바다가 느리게 흘렀다.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일부러 이 배 안으로 끌어들였군.”
“예.”
히야니스는 초조한 듯 대답했다.
“저는 익사자 왕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때마침 이렇게 빛의 법전에서도 그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와주시기까지 했으니 차마 도움을 거절할 수 없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성배기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