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바다 깊은 곳에 (2)
쾅! 묵직한 굉음이 배를 뒤흔들었다. 바다에서 나무를 구해 깎았을 리는 없으니 분명 어떤 배의 돛대였을 것이 분명한 커다란 나무가 어인들의 손에 엮여 있었다.
놈들은 바닷속을 빠르게 헤엄치다가 이 ‘공성추’를 배에 충돌시켜서 가라앉힐 속셈으로 보였다. 물 밖에서는 그들이 불리하겠지만, 물속에서라면 선원들이 익사하기만을 기다리면 되니까.
이번 충돌은 제법 타격이 있었는지 일부 선원들이 휘청거리며 주저앉을 정도였다. 벌써 선체 일부가 파손되었다.
“갑판장!”
“예!”
히야니스의 자세한 지시가 없어도 갑판장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고 선원 몇 명과 함께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선체를 복구하고 물을 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허겁지겁 선원들이 어인 대응책으로 마련된 준비물을 갑판 위로 끌고 왔다.
“투망을 던져라!”
선원들이 일제히 투망을 던졌다. 넓게 펼쳐진 그물에 빠르게 배 주변을 돌던 어인들이 뒤엉켜 걸려들었다. 흐름이 꼬이자 어인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투망에 걸린 어인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면서 선원들은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 어어?”
투망 안에 걸린 어인들이 발버둥 치며 상처를 입거나 자기들끼리 물어뜯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멈췄던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다른 어인들끼리 합세해 그물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물을 쥐고 있던 선원들이 손을 다치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히야니스가 급히 외쳤다.
“그물 버려!”
그물은 바다에 그대로 빠지지 않도록 돛대에 감겨 있었다. 하지만 어인들이 그물을 당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자 배가 기울며 끌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선원 한 명이 서둘러 칼을 뽑아 그물을 끊고서야 겨우 배가 수평을 찾았다.
그제야 히야니스는 이 어인들의 공격이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해역이 시커멓게 물들고 있었다.
수백, 아니, 수천의 어인들이 그들의 배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직 기적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선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성배기사님, 도와주십시오!”
***
‘아니, 억지로 끌고 온 건 자기들이면서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해?’
갑작스러운 도움 요청을 들은 아이작은 황당했지만 같은 배에 탄 이상 그들의 운명이 아이작의 운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작이라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마음대로 기적을 펑펑 써댈 수 있는 후안 주교라면 모를까.
히야니스도 비슷하게 판단한 듯 후안 주교에게 서둘러 다가왔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들을 상대할 기적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후안 주교도 아이작과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돕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뱃놈들이…… 고작 물고기 대가리 하나 상대 못 하면서 천사를 잡겠다고 나댄 거냐?!”
“익사자 왕을 상대할 방법은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어인 따위에게 쓸 수도 없고, 써도 통할 만한 상태가 아니군요.”
히야니스는 초조한 듯 후안을 재촉했다.
“무례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살아 돌아가야 후안 주교님께서도 돈을 더 받던가, 아니면 받은 돈이라도 챙겨서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후안은 눈을 부라려 히야니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후안 입장에서도 더 투덜거려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배가 두 동강 나 버리면 구조되기 전에 어인들이 심해 속으로 모조리 끌고 갈 테니까. 모두의 시선, 심지어 동행한 어린 사제까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기까지 하자 후안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난간으로 향했다.
모두들 빛의 법전 주교가 무슨 기적을 행사해 어인들을 쫓아낼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자신의 신을 매장해 버린 빛의 법전을 싫어하는 동시에 선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막강한 기적을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후안에게로 향했다.
아이작의 머릿속에도 이런 무리 생물들을 상대할 때 발휘할 수 있는 기적들 몇 가지가 떠올랐다. 주교급이라면 바다를 끓어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데친 새우 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속을 응시하던 후안은 이내 안 좋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사크레아 경.”
“주교님?”
“자네가…… 자네가 좀 해결해 주게.”
아이작은 무슨 말인가를 후안에게 되물으려 했다. 하지만 후안의 간절한 표정을 본 아이작은 그가 그런 질문에 답할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고기 공포증이 있든, 뱃멀미를 하는 중이든 상관없었다.
아이작은 당황한 어린 사제에게 후안을 넘겨주고 성큼 히야니스를 향해 다가갔다.
“물에서 싸우는 데 도움 될 만한 기적 알고 있나? 수상 보행이든, 수상 호흡이든, 소금 의회가 사용할 수 있는 기적 중에서.”
“그걸 어떻게…….”
히야니스는 놀란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소금 의회에 사제는 극소수다. 전승되는 지식이 적은 데다 신내림 수준으로 우연히 각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중 누가 사제인지 엄격하게 숨기는 편이었다.
“익사자 왕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둔 게 있다길래 대충 짐작했지. 천사를 상대하려면 성물이나 기적이 필요할 텐데, 사제 정도 되지 않으면 그걸 제대로 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파도의 교리’를 쓸 수 있기는 합니다. 이걸 쓰면 움직이는 동안 물 위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멈춰 있는 동안에는 가라앉게 되니 주의하십시오.”
히야니스는 아이작의 양손을 붙잡고 작게 기도문을 외웠다. 짧은 기도문이 끝나고, 아이작은 입 안에서 짠맛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소금 의회의 기적이 몸 안에 스며든 것이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기적이 스며들자마자 이름 없는 혼돈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어쩌라고? 발에 문어 발이라도 달아줄 건가?’
그 사이 그물에서 빠져나온 어인들이 재차 대열을 정비해 공성추를 장비하고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기적을 시험해 볼 틈도 없이 바로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
수면에 발이 닿은 순간 기분 이상한 출렁임이 느껴졌다. 균형을 잡느라 머뭇거리자 바로 천천히 발이 수면 아래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속 뛰어야겠군.’
발을 움직이자마자 바로 미끄러지듯 아이작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딱한 지면에서 달리듯 달리면 팡팡 물을 차내는 이질감이 심했다. 아이작은 바로 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이 움직이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인들은 공성추를 들고 배를 향해 달려들려다가, 물 위에 떠 있는 아이작을 보고 뭐라고 날카로운 고주파를 내뿜었다. 이내 놈들은 공성추로 아이작과 배를 함께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빠르게 헤엄쳤다.
[홀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숭고한 여정 효과가 강화됩니다.]순간 아이작이 루앗딘 열쇠를 꺼내 수면을 갈랐다.
화아아아아악!
뜨겁게 달아오른 루앗딘 열쇠가 수면에 닿자 맹렬한 수증기와 함께 물보라가 치솟았다. 루앗딘 열쇠는 소금물에 절여진 단단한 공성추를 비스듬하게 잘라 냈다.
“────!!”
어인들 사이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해에서 지내는 어인들의 피부는 차갑다. 때문에 놈들은 약간 높은 온도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루앗딘 열쇠의 온도는, 비록 수증기를 조금 유발할 정도라 해도 놈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적당히 겁먹고 도망가주면 좋겠는데.’
아이작은 손바닥이 얼얼한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정면으로 저 단단한 공성추를 칼로 찍었다간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아서 적당히 귀퉁이만 자르고 뒤따르던 어인들을 베었다. 다행히 숭고한 여정 효과가 강화된 탓인지 공성추도 생각보다 깊숙이 벨 수 있었다.
물 위로 익거나 베여 나간 어인들이 떠올랐지만, 놈들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잘려 나간 공성추를 메고 물속 깊은 곳으로 잠수한 놈들은 다시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아이작이 물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본 듯했다.
그사이 다른 어인들이 아이작을 덮쳐 왔다. 하지만 물 위로 계속해서 미끄러지듯 달리는 아이작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작이 검술을 쓸 필요도 없이 루앗딘 열쇠를 물에 담근 채 달리기만 해도 어인들은 비명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개중 덩치가 제법 큰 몇몇이 삼지창을 꼬나쥐고 목숨을 각오한 듯 일제히 공격해 왔다. 그제야 아이작은 제대로 검을 들고 이삭 검술:여덟 갈래를 사용했다.
여덟 줄기의 칼날이 수면 위를 찢어발겼다.
새하얀 수증기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어인들의 토막 난 시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사실 정상적인 전장이라면 이렇게 싸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아이작이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적의 수가 이렇게 많으면 그 질량 자체가 폭력이다. 뭍이었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시체 더미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시체는 모조리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아이작은 머리 위에서 적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
일방적인 학살을 펼치는 아이작의 모습에 배 위에서 선원들의 환호와 응원이 터져 나왔다.
히야니스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그는 신음하듯 에이단을 향해 말했다.
“자네한테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군.”
“……사실 저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에이단은 사실 아이작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처단할 때는 그 자리에 없었고, 불사 교단이 침공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미묘하게 장소가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빙 아머는 제대로 싸웠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작에 대해 전할 때에는 그가 싸우는 방식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가 세운 업적에 치중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작이 싸우는 모습은 온갖 것을 다 봐 온 히야니스의 상식을 초월했다.
“말이 안 되는데. 저게 정말 갓 스물이 된 성기사 맞나? 엘릴의 소드마스터들이 저 성배기사를 보면 환장하겠군.”
“그 정도입니까?”
“당연하지. 일단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나? 그런데 저 성배기사는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그것도 멈춰있으면 발이 빠지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싸우고 있어. 심지어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는 상급 검술까지 사용하면서.”
히야니스는 흥분과 놀라움을 감추기 힘든 듯 중얼거렸다.
“거기에 수상 보행 기적 외에는 다른 기적은 쓰지도 않고, 생소한 전장에서, 수면 아래서 튀어나오는 낯선 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격하고 있지. 루앗딘 열쇠가 있다 해도 상식적으로 저건 말이 안 돼. 두려움이라는 게 없나?”
조금의 두려움이라도 품고 발을 멈춘다면 아이작은 즉시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 혹은 뜨거움을 견디고 수면 위로 올라온 어인이 발을 잡아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작은 거침없이 어인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투에도 서서히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끝이 없군.’
사실 아이작의 상황은 좋지만은 않았다.
슬슬 그의 체력이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기적으로 가볍게 만든 갑옷이라 해도 이렇게 죽어라 달리면서 검술까지 쓰는 데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이작의 동작이 느려진 어느 순간, 거대한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바다가 거의 수직으로 일어서면서 아이작의 몸이 단숨에 뒤집혔다. 균형을 잃은 아이작의 몸 위로 파도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그를 덮쳤다.
날카로운 갈기를 가진 거대한 어인이었다.
수상 보행의 기적이 무력하게도 아이작은 그대로 거대한 어인과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이작은 개구리를 닮은 어인들을 보았다. 바닷속에서도 놈의 톱날 같은 송곳니가 보였다. 놈은 손이 루앗딘 열쇠에 꿰뚫려 익어 가고 있는데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기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다.
아이작은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포식할 가치가 있겠군.’
아이작은 수면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뒤, 왼손을 어인의 가슴팍에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