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바다 깊은 곳에 (6)
익사자 왕은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그건 누구지?]익사자 왕의 질문은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고 있었다.
히야니스는 에이단과 같은 반 인신 공양파였기 때문에 그를 잘 알지만, 옌코스를 비롯한 다른 선장들은 에이단이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당당하게 말했다.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성벽조차 기어오르는 도둑이자, 소금 의회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광신도이며, 목적을 위해서 다른 신앙의 사제 수발도 기꺼이 드는 유연한 사고를 갖춘 상인입니다.”
뒤에서 에이단의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익사자 왕은 더 설명하라는 듯 침묵했다.
“고고학 지식도 훌륭하고, 고어도 좀 알더군요. 저만큼 훌륭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차피 저를 보낼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렇다고 다른 선장들을 보내시겠습니까? 그들은 이미 저승 한번 갔다 온 시점에서 인생의 운을 다 썼다고 봅니다.”
이제는 옌코스와 히야니스도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에이단은 독신입니다. 죽어도 슬퍼해 줄 가족이 없다고 하더군요. 최고 아닙니까?”
파도가 출렁이다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짙은 구름 때문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작은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짠 냄새가 더 강해진 것을 느꼈다. 천사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 모든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익사자 왕처럼 솔직한 천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소 거칠어진 파도, 음산하게 흘러가는 구름, 바람에 실려 오는 짠맛.
모든 것이 익사자 왕의 감정을 얼굴 대신 보여 주고 있었다. 정작 그는 파도 아래서 군청색 눈을 불태우고 있을 뿐이지만.
“……저런 말로 과연 설득이 될까요?”
에이단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두 선장을 향해 속삭였다. 그는 고고학자이자 상인으로서 안 가 본 데가 없다. 고고학자가 사실상 도굴꾼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후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불안하지요. 당신이 우리보다 어떤 면에서 더 탁월한지도 잘 모르겠고.”
옌코스는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이작의 등으로 향했다.
“하지만 성배기사가 저렇게나 당신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으니 믿는 수밖에요.”
사실 그녀는 아이작이 아이작 자신을 추천할 줄 알았다. 그가 열거해 놓은 조건을 듣고 보니 그 이상으로 적합한 상대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에이단을 언급했을 때에는 실망감마저 느꼈다. 아이작은 애초에 다른 신앙 소속이라 보낼 수 없는데도.
“희생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사제가 되기로 한 시점부터 목숨을 바다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이 의식을 다시 치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거죠.”
옌코스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히야니스 역시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익사자 왕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히야니스는 긴장감을 누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익사자 왕과의 대화를 위해 멈춰 있던 사이, 용맹한 연어호를 뒤쫓아온 배─거의 50여 척이 주변에 늘어서 있었다.
‘이 정도면 노르덴 항에 있던 배들은 거의 다 나온 셈이군.’
만약 계획대로 익사자 왕과 싸워야 했다면 저 배들 중 약 절반은 적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옌코스와 포탄을 나누고 있을지도. 하지만 익사자 왕에 비하면 배 몇 척쯤은 문제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의도치 않게 익사자 왕을 포위한 형태가 됐는데.’
옌코스는 포위가 아니라 보호라고 항의하겠지만, 익사자 왕과 싸울 생각을 하고 있던 히야니스는 포위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는 문득 다른 배의 선장들이 자지 않고 이 대화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히야니스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옌코스 의장님?”
“예?”
“해류의 움직임이…… 아니, 잠깐만. 뭐 좀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히야니스의 머릿속에 별로 가정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제발 자신이 착각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조용히 뒤로 빠졌다.
***
[그건 너의 추천인가, 소금 의회의 결정인가?]긴 침묵 끝에 나온 익사자 왕의 대답이 나오자, 아이작은 옌코스에게 통역해주었다.
“성배기사가 추천했고, 소금 의회는 받아들였습니다.”
익사자 왕은 의회가 결정했다는 말에 순순히 반응했다.
게는 그걸로 임무를 다했다는 듯 거품을 더 이상 피워올리지 않고, 난간 밖으로 기어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바다에서 거품이 들끓어 오르며 우렁찬 익사자 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위험에 기꺼이 뛰어들 자를 요구했고, 너희들은 지원자를 제안했다. 나는 여기에 내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겠다. 이 의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 나누리라.]바다를 진동시키는 그의 목소리는 선언이자 도발이었다. 그의 선언에 호응하듯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은 요동치며 더욱 빠르게 흘렀다.
[의식을 시작하자!]“바로 말입니까?”
아이작은 익사자 왕의 빠른 움직임에 당황했다. 천년을 기다린 끝에 내린 결정이다. 솔직히 좀 더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오래 끌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해꾼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이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길 바라는 자들도 있을 테니까.]아이작은 문득 구름이 익사자 왕의 머리 위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불안정하게 바람이 몰아닥칠 뿐, 파도가 잔잔해서 느끼지 못했는데 그들은 사실 이미 태풍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이작은 익사자 왕이 왜 태풍을 미리 불러냈는지 알아차렸다. 외부의 방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이미 접촉한 시점부터 우리를 주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방해를 막으려면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지. 에이단 베어베크라는 자는 여기 있나?]“예. 여기 있습니다.”
에이단은 여전히 과연 자신이 이 일에 합당한 자인지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의식이 영예로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며, 거부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만약 자신의 죽음이 의회가 다시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에이단은 아이작이 준 성물을 손에 꼭 쥐고 앞으로 나섰다. 바다에서 거대한 촉수 하나가 흘러나오더니 에이단의 이마에 바닷물을 한점 찍었다.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에이단은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아이작이 급하게 그를 붙잡았지만,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의 육신과 영혼을 우르반수스에 맞게 강화하는 중이다. 우르반수스와 이 세계는 영적인 밀도가 맞지 않는다. 어지간히 강한 영육을 갖추지 못하면 영혼이 짓눌려 터지거나 빙의당할 테니까.]아이작은 에이단을 편하게 눕혀 놓았다. 옌코스도 갑자기 시작된 의식에 당황했지만, 사제답게 걸맞는 의식의 보조를 위해 성물을 꺼내 들고 기도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에이단의 머리맡에 무릎 꿇고 앉아 그의 몸에 축복과 가호를 걸기 시작했다.
***
촤아아아아…….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면서 익사자 왕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수백여 미터에 이르는 몸통과,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촉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둘러싼 배들이 일제히 휘청거리며 비명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 문어 다리에 비하면 내 촉수는 차라리 귀엽군.’
하지만 두 번째로 보는 아이작은 경외감보다 딴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내 촉수가 빈약하거나 못하다는 게 아니라, 적당하게 아담해서 좋다는 뜻이었지. 촉수는 크기보다 강도와 기술이 중요한 법이라니까?’
변명하듯 둘러댄 거긴 했지만 아이작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익사자 왕의 촉수가 거대하고 섬세할지 모르지만, 그 근간은 결국 생물의 살점이다. 하지만 아이작의 촉수는 강철도 씹어먹는 괴물이었다.
아이작은 흘러내리는 바닷물 속에서 군청색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째선지 다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궁금하군. 성배기사. 너는 무엇을 위해 이 위험을 부담하고 있나?]‘위험이랄게 있나? 통역해주는 게 전부인데.’
라고 생각하려던 아이작은 그것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작은 어떤 상황에서건 살아남을 자신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신앙의 천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게다가 의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여파가 얼마나 클지 모르고, 실패한다면 실망한 익사자 왕이 때마침 그 장소에 있었던 다른 신앙의 성기사와 주교를 안주 삼아 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할지도 모른다.
“짧은 시일 안으로 큰 변화의 시기가 도래할 겁니다. 제 보상은 그때 소금 의회가 협조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아이작이 처음부터 가졌던 목적이었다.
아이작은 여명군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 변화에 둔감한 익사자 왕이 여명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불사 교단에 대해서도 굉장히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익사자 왕보다도 700년이나 어린 신생 교단이니 당연했다.
[모호한 요구로군.]“선명한 요구입니다. 제 편에 서달라고 요구할 때, 소금 의회는 제 편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소금 의회가 여기저기 눈치 보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아이작은 일부러 당장 받을 수 있는 성물이나 보물이 아니라, 미래를 제안했다. 익사자 왕으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소금 의회의 신이 자리를 비운 지금, 그들을 일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익사자 왕뿐이었으니까.
[좋다.]아이작이 희열에 찬 미소를 짓기 전에 익사자 왕이 말을 이어갔다.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는 어딘가 공허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었다.
[빛의 법전은 혼혈을 인정하지 않을 텐데, 몰래 숨어있는 것인가?]“아무래도 그렇지요. 어쩌겠습니까?”
[소금 의회는 네 피의 죄를 눈감아줄 수 있다.]익사자 왕의 은근한 회유에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이작더러 지금이라도 빛의 법전을 배교하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사실 아이작은 애초부터 빛의 법전이 아니기 때문에 배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죄송하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질투가 강한 분이라.”
빛의 법전은 비인격신이기 때문에 질투가 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그것을 대충 아이작의 완곡한 거절 정도로 이해했다.
그는 실망한 기색도 없이 중얼거렸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에이단보다 아이작을 대신 전령으로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옌코스가 그렇게 느꼈듯, 이 임무에 훨씬 더 적합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별로 사후세계에 발을 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또 발을 디뎠다간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니…… 응?’
아이작은 문득 익사자 왕이 지나치듯 한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익사자 왕이 내뱉은 단어 하나가 사소하지만 신경 쓰였다. 그러나 그가 익사자 왕에게 무슨 말인지 되묻기 전에 그의 선언이 다시 이어졌다.
[그럼 의식을 시작하겠다.]아이작은 궁금함을 억누르고 원활한 의식을 위해 뒤로 물러나 있기로 했다. 이제 통역사가 할 일은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소금 의회의 사제와 천사가 진행할 것이다.
그때 등 뒤에 무언가 물컹한 감촉이 닿았다. 익사자 왕이 그가 물러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여기 남아서 의식을 도와주면 좋겠군.]간단한 도움 요청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다시 한번 얕은 위화감을 느꼈다.
‘행운이 두 번이나 올 리 없었다는 것은, 첫 번째 행운이 있었다는 뜻이다.’
자신만큼이나 뛰어나고 비범한 다른 신앙의 성기사가 기꺼이 익사자 왕의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의 행운이. 그리고 아이작은 기나긴 세월이면 몰라도 ‘몇 년 사이’라면 그 정도 성기사는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칼센 밀터? 칼센 밀터가 익사자 왕과 만났었나?’
익사자 왕은 불사 교단조차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존재다.
그런데 그런 그가 칼센 밀터는 어떻게 알고 있지?
“아이작 님! 의식을 중단하십시오!”
아이작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배 후미에서 히야니스가 다른 배와 장거리에서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발광 신호기를 든 채 소리 질러대고 있었다.
발광 신호기에 비친 그의 안색이 창백했다.
“속았습니다! 익사자 왕은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