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익사자 왕 (1)
“무슨…….”
순간 아이작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히야니스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시간이 없었다. 계속 신경 쓰이던 위화감과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 없다’라는 가정만으로 움직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가 몸을 튕겨 떠오른 순간, 아슬아슬하게 익사자 왕의 촉수가 그의 몸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용맹한 연어 호의 난간과 갑판이 박살 나면서 배가 크게 출렁였다. 옌코스는 경악하며 다급히 에이단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아이작은 돛대를 붙잡고 착지하면서 생각했다.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 없다고? 왜? 전령을 보내서 신을 깨울 생각이 아니었던 건가?’
익사자 왕의 촉수가 다시 아이작을 노리고 날아왔다. 문어의 얼굴은 표정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흐물거리는 점액질로 뒤덮인 표피 아래 얼굴은 무표정할 뿐이었다. 다만 거칠어진 바람과 파도가 그의 다급해진 감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콰쾅! 아이작은 다시 회피했지만 용맹한 연어호의 돛대가 한 번에 박살 나 부서졌다. 이걸로 범선인 용맹한 연어호는 다른 배가 끌어 주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 바다 위에 완전히 고립됐다는 뜻이었다.
아이작은 지금 주어진 단서와 상황들을 조합했다.
‘소금 의회는 익사자 왕의 전언을 오역해서 혼란스러워하다 못해 분열한 상태였지. 결국 의회가 양분되어 익사자 왕을 처단하기 위해 배를 끌고 나왔고. 그 와중에 어인들의 습격을 당해서 침몰하기 직전, 익사자 왕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전언이 오역임을 밝혀주고 사후세계로 전령을 보내는 달우물 의식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작은 문득 되짚어 보다가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시당초 아무리 익사자 왕의 사투리가 심해도 의식에 참가할 자원자와 인신 공양에 바칠 제물을 헷갈릴 정도로 모호할 정도로 말할 수 있나? 중요한 의식인 만큼 익사자 왕은 정확하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애당초 일부러 모호하게 말한 것이라면?
‘설마 오역은 내가 한 것이었나?’
실제로 아이작은 원문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소금 의회 의원들은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오해하기 쉬운 시적인 단어들로 채운 익사자 왕의 전언을.
“이 새끼, 진짜 인신 공양을 받을 생각이었나!”
***
아이작의 분노 담긴 일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히야니스는 이를 갈았고, 옌코스는 눈을 부릅뜨고 숨을 멈췄다. 익사자 왕은 촉수 휘두르기를 멈추고 아이작을 응시했다.
더 이상 아이작을 잡기 위해 촉수를 휘둘러댔다가는 통째로 배를 가라앉힐 판이었다. 때문에 그는 아예 촉수들로 용맹한 연어호를 둘둘 감았다.
배가 으스러질 듯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은 에이단을 보호하기 위해 루앗딘 열쇠를 꺼내 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발산되자 촉수들이 넘실거리며 주변에서 멀어졌다.
아이작은 깨달은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전언을 애매하게 전해서 소금 의회를 분열시켰지! 소금 의회에서 인신 공양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놈과 목숨 걸고 항의할 놈을 걸러내고 싶었을 거야! 그래서 항의할 놈들이 바다로 나오면, 모조리 침몰시킬 생각으로!”
간단한 숙청 방법이다.
왕이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벌이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신하가 있다면 바로 제압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뻔한 일이다.
신으로부터 연락이 두절된 천사는 교단의 새로운 신이 되기로 한 것이다.
[억지를 쓰는군. 성배기사. 그러면 내가 왜 너희들을 어인들로부터 구했겠나?]폭로를 당하는 입장임에도 익사자 왕의 말투는 담담했다. 어차피 아이작이 탄 배를 붙잡았으니 구구절절 변명할 필요 없으나, 한번 들어나 보자는 투였다.
거기에는 압도적인 존재의 내려다보는 시선이 깔려있었다.
아이작은 발악하듯 외쳤다.
“애초에 어인들의 습격이 네 지시였으니까!”
이 정도 어인들의 규모와 조직력은 비정상적이다. 그것은 히야니스도 이미 지적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사가 개입했다면 말이 된다. 익사자 왕은 다른 소금 의회 신도들로부터 욕먹지 않기 위해 대신 손을 더럽혀 줄 용병을 구한 것이었다.
“인신 공양을 받고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어인들도 구원해주겠노라고 약속해줬겠지! 그들이 잃어버린 신을 대신해주겠다고! 소금 의회와 어인들을 아우르는 신!”
어인들의 뿌리는 소금 의회와 같다고 했다. 다만 그들은 바다로 돌아가 다른 고대신을 섬기는 길을 선택했고, 소금 의회는 바다 위에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 익사자 왕이 다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 경우에는 익사자 왕이 어인들의 신으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구해줬다고? 어인들의 노래가 ‘반역자’들만이 아니라 네게 충성을 바칠 의원들까지도 수장할 판이었으니까 개입한 거였겠지! 너는 소금 의회를 가능한 온전한 상태로 먹고 싶었을 테니까!”
실제로 옌코스 의장이 탄 배는 익사자 왕이 나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났다. 익사자 왕으로서는 자신의 편이 될지도 모르는 선원들까지 바다에 처박혔다가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인들이 사이렌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서야 그들을 제압해 구원하는 연출을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히야니스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바다에 처바히고, 옌코스 같은 순응파만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이 이 배에 타면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동시에, 활로도 만들어졌다.
달우물 의식이라는.
“그리고, 이제는 달우물 의식을 빙자해서 제물을 바칠 생각이겠지. 가장 간단하게 신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신이 되고 싶었나, 익사자 왕?”
[하하…….]익사자 왕은 느리게 웃음소리를 냈다.
[남의 신앙에 쓸데없이 상관해서 명을 재촉하는구나, 살아있는 죄악아.]***
툭, 투투툭.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하늘은 형태를 마구잡이로 일그러뜨리며 태풍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갑판을 난타했다. 그 와중에 익사자 왕과 아이작은 서로에게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마주 보았다.
[역시 이런 음모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그 해골 놈들이 부추길 때 그만둘 걸 그랬군.]익사자 왕의 말에 아이작은 이번에도 불사 교단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칼센 밀터가 접촉했을 때 불사 교단이 함께 했던 모양이다.
익사자 왕은 딱히 그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변명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군?”
[오랜만에 한 대화가 즐거워 받아 주었다만, 구구절절 변명해줄 필요는 없어 보이는구나.]익사자 왕의 말에는 여전히 내려다보는 교만함과 여유가 담겨있었다.
처음 아이작을 잡으려 했을 때만 해도 그에게는 당혹감의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와서 이런 여유를 보인다는 것은, 이제 숨길 생각도, 필요도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게 일반적인 천사와 인간의 관계였다.
천사는 인간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의 전령이자 의지의 대변자로서 선언하고 전달할 뿐이다.
[들어라!]아이작은 머리가 쨍할 정도로 아픈 의지가 전달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은 그것이 이름 없는 혼돈이 의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앙을 사용해 의지를 전달하는 방식. 하지만 이름 없는 혼돈보다 훨씬 투박하고 거칠었다.
대신, 익사자 왕은 오역의 여지 없이 정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은 끝났다!]폭풍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배를 정신없이 뒤흔드는 풍랑 속에서 각 배들은 두려운 자연의 경이와, 폭력적으로 전달되는 익사자 왕의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갑판 위 난간에 매달렸다.
[나는 대답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대신, 너희들의 앞길을 인도하려 한다!]달우물 의식에 대해 전해 들은 선장들은 당혹감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사후세계로 전령을 보내기로 한 것 아니었나?
벌써 의식이 끝났나?
설마, 우리의 신은 돌아오지 않는 건가?
그들은 ‘대답 없는 아버지’에 경악하느라 뒤의 내용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옌코스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
“에이단을 선실 안으로 데려가십시오!”
익사자 왕의 선언이 끝나자마자 아이작이 강하게 외쳤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인 에이단을 보호하고 있던 옌코스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작과 익사자 왕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변명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대놓고 배교를 선언했다.
옌코스는 아이작의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일부러 의견이 분열될 가능성이 있도록 모호한 표현을 내놓은 것이었다고?’
실제로 그들이 이곳에서 익사자 왕을 만났을 때 들은 말들은 느리게나마 통역해 봤을 때 의미가 와전될 여지가 없는 직관적인 표현들이었다.
그때 히야니스가 옌코스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히야니스는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해류가 배들을 통째로 옮기고 있습니다. 벌써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 한복판입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왜…….”
옌코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리다가 아이작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익사자 왕은 교단을 삼키기 위해, 일부러 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숙청’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익사자 왕에게 찬성하든 반대하든, 소금 의회 의원 절반 이상이 모여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소금 의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히야니스가 발악하듯 외쳤다.
“전투를 준비해야 합니다, 옌코스 의장!”
인신 공양을 하고 익사자 왕을 새로운 신으로 받들 것이냐, 아니면 감히 배교를 저지른 타락한 천사 익사자 왕을 처단할 것이냐.
어느 쪽이든 옌코스에게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이었다.
그녀가 애당초 인신 공양을 소극적으로 찬성했던 것은 오직 현상 유지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선택을 내리지 못 하고 있었다.
익사자 왕을 잃는다는 것은, 신이 완전히 떠나는 것은 물론 그들 곁에 남은 유일한 천사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히야니스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옌코스를 붙잡아 끌어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옌코스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며 커틀라스를 뽑아 들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칼끝이 히야니스에게로 향했다.
“당장 물러나라, 히야니스. 아직 의식이 진행 중이니까.”
***
아이작은 배 다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다른데 일일이 신경 쓰면서 싸우기엔 익사자 왕은 너무나 거대한 적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고 잠들어 전성기보다는 약해졌다고 해도, 그는 태풍을 불러내는 권능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 특화된 바다라는 전장.
아이작은 배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저항할 생각인가, 성배기사?]익사자 왕은 촉수를 휘둘러대는 대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바닥이 단단해서 착각하는 것이라면, 심해에 처박은 다음 폐에서 공기를 다 빼낸 후 대화해도 좋겠군.]익사자 왕이 거대한 촉수 하나를 들어 올려 배를 쪼갤 듯이 내려쳤다.
루앗딘 열쇠에서 거세게 불타오른 불길이 촉수와 맞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