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익사자 왕 (2)
콰아아아아!
익사자 왕의 촉수와 맞부딪친 루앗딘 열쇠에서 열기가 맹렬하게 피어올랐다. 아이작이 아끼던 신성력을 집어넣어 강화시킨 덕분이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모두의 시선에 경악과 놀라움이 담겼다. 그들 모두 익사자 왕이 촉수를 휘두를 때만 해도 바다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것은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아이작은 이것은 자신이 강해진 것보다, 익사자 왕이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놀랍군.]콰드드드드…… 루앗딘 열쇠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촉수를 하얗게 익히고, 체내 수분을 들끓게 하는데도 익사자 왕의 말투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작을 차분하게 짓누를 뿐이었다.
이미 아이작의 발아래 갑판은 부서져 깨지기 직전이었다.
“심해에 처박고 대화하겠다더니, 배를 침몰시키기는 싫은 모양이지?”
[하하, 내 신도들을 해칠 이유는 없지 않겠나.]익사자 왕은 자신의 배교에 소금 의회 신도들이 찬성할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아이작은 그제야 주변 선원들이 꼼짝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익사자 왕을 없애 버리겠다는 각오로 온 자들마저 이 상태다. 히야니스도 정작 익사자 왕을 만나면 자기들 편 절반 이상은 적이 될 것이라고 했으니 진작 각오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심지어 에이단을 보호하고 있어야 할 옌코스마저도 히야니스를 향해 칼을 뽑아 든 것이 보였다.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 너는 대체 누굴 위해 싸우는 거냐?]아이작은 루앗딘 열쇠를 꽉 움켜쥐었다.
익사자 왕의 거대한 촉수들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 거체를 보았을 때만 해도 저런 것과 싸우려고 한 히야니스가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자신이 그 짓을 하게 생겼다.
소금 의회 대다수가 익사자 왕의 의견에 찬성한다면, 아이작은 누굴 위해 싸우고 있단 말인가.
아이작은 역시 괜히 끼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눈 딱 감고 있을 걸 그랬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폭로를 시작한 것은 히야니스였다. 히야니스가 진실을 폭로한 시점에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간 것이다.
애초에 아이작은 익사자 왕의 공격에 반응한 것뿐이었다.
‘나를? 그러고 보니 왜 나를 잡아두려고 했던 거지?’
익사자 왕은 촉수를 거두었다가 다시 강하게 횡으로 휘둘렀다. 이번에는 맞부딪치는 대신 회피했다. 익사자 왕이 배를 완전히 침몰시키려 들지 않는다면 피할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쥐새끼 잡기에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듯했다.
[성배기사를 잡아라.]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명령에 아이작의 동선에 끼어있던 선원 몇 명이 주춤거리며 움직였다. 아이작은 금방이라도 벨 듯이 검을 들었지만 결국 휘두르진 않았다. 그들의 의욕 없는 움직임 정도는 간단한 체술만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작의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나를 잡으려고 한다. 내가 인신 공양을 방해해서? 아니야. 정작 제물인 에이단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아.’
원래 달우물 의식에 지원할 예정이었던 에이단은 이미 옌코스의 수중에 있었다. 만약 인신 공양을 하려는 것이라면 지금 그대로 사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목적이…… 나라고?’
아이작은 당혹스러운 가능성에 발을 잘못 내디뎠다. 출렁이는 배와 미끄러운 갑판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가 주춤한 순간, 익사자 왕의 촉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아들었다. 아이작은 타격을 감수하고 맞부딪칠 것을 각오했다.
그때, 갑판 한쪽의 선실 문이 벌컥 열렸다.
순간 익사자 왕의 촉수가 경련하듯 튕겨 올라갔다.
“이게 무슨 빌어먹을 난장판이야?!”
화를 내며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후안 주교였다.
***
“배가 대체 왜 이렇게 흔들리는 거냐?! 침몰이라도 하는 거냐?”
후안 주교는 의식이 벌어지는 동안 술에 잔뜩 취해 잠들어 있기라도 하려 했던 건지 멀리서도 술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하지만 태풍이 몰아닥치고 촉수가 배를 두들겨 패는 상황에선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사제복에는 격렬한 뱃멀미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신성한 주교용 사제복이 구토로 더러워진 모습을 보면서 아이작은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지금만큼 후안이 반가운 적이 없었다.
그는 다급히 후안 곁으로 달려가 옆에 숨었다.
“뭐, 뭐야. 이사크레아 경? 무슨 일인가?”
“역시 주교님! 당신의 권위가 필요한 때입니다!”
“무, 무슨 소리냐? 아니, 잠깐만, 이게 뭔…….”
뒤늦게 배 위의 참상을 본 후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배는 촉수에 칭칭 감겨있고 돛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박살 나고 부서진 잔해 사이에 황망한 얼굴의 선원들이 서 있었다.
그는 뒤늦게서야 아득한 위쪽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얼굴을 발견했다.
[예상외의 손님이 한 명 더 있었군.]익사자 왕은 생각지도 못한 거물, 빛의 법전 주교의 등장에 당황한 듯했다.
물론 그의 당혹감은 후안이 두려워서라기보단 생리적인 것이었다.
자신들의 신이 소금 사막 아래 매장당하던 기억이 선명한 익사자 왕은 다른 소금 의회 신도들보다 빛의 법전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강했다.
그 두려움을 눈치챈 아이작은 후안 주교를 방패 삼아 뒤에 섰다.
후안이 거품을 물면서 기절할까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이작에게 속삭였다.
“이게 무슨 난리냐? 무슨 이교도 의식을 진행한다더니 다 틀어지기라도 한 거냐?”
“익사자 왕이 인신 공양을 요구했습니다.”
“인신 공양?!”
후안의 목소리는 과하게 컸다. 그는 되려 익사자 왕을 향해 사납게 노려보았다. 신앙심의 발로인지, 아니면 아직 남아있는 술기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익사자 왕은 일단 공격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둘을 응시했다. 주교가 발휘할 수도 있는 기적을 경계하는 듯했다.
‘천사를 소환할 수 있는 것이 주교급부터던가?’
천국에 속한 짐승들, 신수를 소환하는 것은 사제나 이단심문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교급부터는 천사를 소환할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물론 그 소환 요청을 천사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천사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적은 구구절절한 사연과 특별한 의식과 시기가 맞지 않으면 성공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천사의 변덕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면 기도문 한방에 즉흥적으로 출현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익사자 왕이 절대로 바라지 않는 상황일 터였다.
‘제발 후안이 기적을 발휘 못 한다는 걸 들키지 말아야 할 텐데.’
다행히 후안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신 공양이라는 단어에 분노하는 것도 잠시, 그는 대양 한가운데서 성기사 한 명과 함께 이교도들에게 둘러싸여 천사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현실을 알아차렸다.
“익사자 왕! 그대의 기나긴 기다림은 무릇 빛의 법전 신도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숭고한 신앙심의 발로였거늘, 어찌하여 타락한 길을 걷는 것이오!”
그는 엎드려 싹싹 비는 대신 훈계조로 천사를 꾸짖었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즉흥 연기에 아이작은 속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기적 하나 발휘 못 하면서 이렇게 뻔뻔하지? 역시 주교 짬밥은 허투루 먹는 것이 아니다…….
“루앗딘께서도 그대의 신앙심에 탄복하여 소금 사막을 녹이고 잃어버린 성전(聖殿)을 돌려줄 날을 가늠하고 계셨소! 다시는 거짓을 입에 담지 않겠다던 맹약을 잊은 것이오?”
후안은 일부러 빛의 법전에서 가장 오래된 명천사이자 시조 격 되는 루앗딘을 언급했다. 또 소금 사막 아래 갇히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자중하라는 협박 섞인 경고였다. 물론 루앗딘은 후안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관심조차 없을 확률이 높았지만.
하지만 아이작은 익사자 왕이 후안의 협박에 굴복하리라는 기대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익사자 왕은 너무 멀리 왔고, 너무 오래 기다렸다.
배가 점점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더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난간을 붙들지 않고는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침묵하는 익사자 왕의 태도와는 다르게, 감정이 더욱 격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 되겠습니다. 주교님. 일단 몸을…….”
아이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배가 크게 흔들렸다.
익사자 왕이 분노를 참지 못한 듯 촉수로 바다를 내려친 것이다. 거의 90도로 꺾인 배는 침몰할 듯이 휘청거렸지만 가까스로 가라앉는 것은 면했다. 대신 선원들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빠졌다.
‘아무래도 주교의 등장이 역효과인 것 같군.’
다행히 후안은 아이작 덕분에 바다에 빠지는 것은 면했다.
“미안, 미안하네. 아무래도 나는 도움이 안 되겠군…….”
후안은 창백한 표정으로 난간에 매달려 숨을 헐떡였다. 아이작은 씁쓸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후안은 자신을 보호할 기적을 하나 보여 주지 못했다. 익사자 왕도 이 정도면 눈치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늙은이는 빠져있어라. 엉뚱한 희생자를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익사자 왕은 다시 한번 격하게 배를 흔들었다. 이제 그는 뒤가 없다는 듯, 오히려 배 한 척쯤은 희생시킬 수 있다는 듯 배를 촉수로 쥐어짜기 시작했다.
이대로 산산이 조각나면 그대로 바다에 빠질 판이었다.
그때 아이작은 히야니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히야니스는 난간에 매달려 있었지만, 여전히 눈빛이 형형하게 산 채로 익사자 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애당초 그가 익사자 왕을 잡으러 왔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여전히 포기한 눈빛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이를 악물다가, 이내 바다 위로 뛰어들었다.
***
쿠르르르르…… 물거품들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이작은 시커먼 심해 아래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하얀 손들을 보았다.
어인들이었다.
바다 밑에서 익사자 왕의 명령을 기다리며 수천 명의 어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작을 보자마자 민첩하게 밑으로 끌어당기려 했다. 그러나 아이작이 루앗딘 열쇠를 꺼내 휘두르자 거품 섞인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아이작의 몸이 튕겨지듯 물 밖으로 올라왔다.
물 밖으로 나온 아이작은 갑판 위에 있는 히야니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파도의 교리 축복을 걸어 준 것이었다. 아이작이 배를 보호하기 위해 뛰어내렸다는 것을 알아본 그는 미안함과 감사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감사와는 별개로 이제 아이작은 맨몸으로 익사자 왕과 맞서야 할 처지였다.
배라는 유일한 방어 수단을 잃은 아이작을 향해 익사자 왕이 촉수를 휘둘렀다. 아이작은 파도의 교리를 이용해 거친 파도 속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어인들이 익사자 왕이 만들어낸 해류에서 탈출하려 했던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시도였다. 아이작은 자신이 타고 오르려던 파도가, 애당초 익사자 왕의 거대한 촉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렇다 할 방법도 없이, 아이작은 그대로 수면 아래로 처박혔다.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수상 보행의 기적이고 뭐고 아이작은 속절없이 심해 밑바닥으로 끌려 들어갔다. 다행히 그에겐 심해인 장군을 포식하고 얻은 수중 호흡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바다에 들어오고서야 익사자 왕의 전신을 볼 수 있었다.
바다 위에서도 거대하다고 느꼈던 몸이지만, 시커먼 물 밑에서 보게 된 그의 전신은 그 자체로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네 이야기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익사자 왕은 촉수를 뻗어 아이작을 소중하게 감싸듯이 둘러싸며 속삭였다.
[나는 정말로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었다. 소금 의회에서 합당한 자를 데려온다면 말이지. 인신 공양은 어디까지나 내게 있어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너를 만나는 순간 깨달았지.]익사자 왕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소금 의회의 아이들은 우르반수스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육신은 순수하게 그 세계의 압력에 짓이겨질 거야. 허락받지 않은 것들을 감히 용납하지 않는 세계니까.]사후세계에 산 육신을 가지고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그에 맞춰 단련되거나, 신의 초대를 받아 육신이 개조되거나, 애당초 거기에 맞게 태어난 존재들뿐이다.
이를테면 천사와 인간의 혼혈인 네필림이라던가.
[하지만 너를 본 순간 모든 계획이 달라졌다.]계획?
[불사 교단의 해골들은 칼센이 아홉 번째 신앙이 되면 소금 사막을 깨뜨려주겠다고 약속했지. 그러나 그 약속은 깨졌다. 이제 그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익사자 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아이작을 거대한 눈으로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너라면 내가 신성으로 도약하는데 충분한 제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신성을 획득하여 비어있는 아홉 번째 권좌에 도전하겠다! 그리하여 천년의 기다림을 마침내 끝낼 것이다!]그의 말투에는 희열마저 느껴졌다.
“…….”
아이작은 자신의 심장 아래서 싸늘하게 불타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이 ‘익사자 왕’을 처단하길 원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