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익사자 왕 (3)
익사자 왕의 거체에 압도당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익사자 왕은 자신의 포효에 겁먹으리라 예상했던 아이작이 이전과 다른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자 의아함을 느꼈다.
심해는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다.
과거 어부에 불과했던 시절을 잊어버린 익사자 왕에게, 대부분의 인간의 눈이란 숨통에 물이 들어차 고통스러운 눈, 이미 썩어 부유하는 자의 흐리멍텅한 눈,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자신을 보고 그저 자비를 갈구하는 경외감 섞인 눈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중 어떤 눈으로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생소한 눈빛에 익사자는 오히려 감정을 읽지 못해 당혹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당혹감을 느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다.
익사자 왕의 지시를 받고 복수심에 불타는 어인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물 위에서 일방적으로 그들을 도륙하던 때와 달리 이제 아이작은 물속에 갇힌 몸이었다.
물속에서 아이작은 무슨 수를 써도 그들보다 빠를 수 없었다.
수십 개의 하얀 손들이 아이작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들이닥쳤다.
아이작은 곧바로 루앗딘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어인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냈다. 그 들끓는 열기에 화상을 입은 어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계속해. 저놈은 열기를 피워올리지 못한다.]루앗딘 열쇠의 열기를 피워올렸다간 아이작의 몸도 끓어오르는 바닷물 속에 익어버릴 터였다. 수증기 정도의 열기는 막을 수 있어도 끓는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인들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작은 그 말대로 루앗딘 열쇠를 뽑아 들었지만 열기를 끌어올리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씩 웃으며 몸을 튕겼다.
아이작의 몸이 순식간에 어인들의 코앞으로 들이닥쳤다. 순간적으로 물거품이 생길 정도였다. 포식 효과 때문이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에 어인들은 그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콰득. 검날이 뼈를 부수고 살갗을 갈랐다.
가슴을 찔린 어인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창날들이 어인의 몸을 관통하면서 그마저도 멎었다. 다른 어인들이 내지른 창이었다.
어인들은 자신의 편이 찔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공격을 펼쳤으나, 아이작은 자신이 처음 찌른 어인을 교묘하게 가림막 삼아 공격을 회피했다.
‘이상하군.’
익사자 왕은 아이작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물에 빠진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아무리 단련된 자라도 물에 빠지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특히 아이작처럼 단련된 기사는 더더욱 그랬다. 검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술은 팔만 휘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발의 움직임과 단단히 디딜 지반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역시나 아이작은 검술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놀라울 정도로 잘 버티고 있었다.
설령 대단한 평정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잘 다스린다 하더라도, 이 정도 격한 움직임과 상황에 빠졌으면 조금이라도 초조함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쯤 숨도 못 쉬고 있어야 하는데 저 여유 있는 움직임은 뭐란 말인가?
‘그저 익사할 때를 기다리는 버티기에 불과하다!’
퉁. 그때 익사자 왕은 어인이 가까스로 제대로 찔러넣은 창이 갑옷에 미끄러져 빗나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저 갑옷이 문제인가?’
아이작이 입고 있는 갑옷에서는 상당한 기적의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억눌리고 비틀린 기이한 기운이었지만, 흘려넘기기는 힘든 힘이었다.
아이작 역시 사방에서 내지르는 창날을 전부 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교묘하게 창날이 틈새를 찌르지는 못하게끔 교묘하게 회피하며 흘려넘겼다.
‘안 되겠군.’
익사자 왕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촉수를 뻗었다.
익사자 왕의 촉수는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덩치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다. 가까이 있던 아이작은 촉수가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파괴력을 느꼈다.
아이작의 온 사방에서 촉수가 순식간에 덮쳐 왔다. 예상할 수도, 알더라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촉수가 들이닥치자 어인들 몇몇마저 휘말려 산산조각 났다.
빠져나갈 틈 따위는 없었다.
그 순간 아이작의 몸이 흐릿한 핏빛 형상으로 바뀌었다.
‘무슨?’
익사자 왕의 촉수가 허무하게 물살을 갈랐다.
핏빛 형상은 빠르게 소용돌이에 뒤섞여 흩어졌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아이작의 형상으로 다시 나타났다. 익사자 왕은 아이작이 처음으로 기적을 발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적? 아니, 빛의 법전에 저런 기적이 있던가?’
빛의 법전은 소금 의회보다 오래된 신앙이다. 익사자 왕은 빛의 법전에 저런 기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익사자 왕의 거대한 촉수가 몇 번 더 허무하게 바닷물 속을 갈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매번 아이작은 핏빛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며 촉수를 회피했다. 그러나 익사자 왕 또한 아이작이 몇 번이나 회피하긴 해도, 물 밖으로 나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몸의 형태를 바꾸기는 해도 소용돌이에 휩쓸려 다시 심해로 처박히는 것이다.
‘피비린내? 이건 확실히 빛의 법전의 기적이 아니다.’
익사자 왕의 후각은 상어만큼이나 민감했다. 그는 아이작이 형상을 바꿀 때마다 혈향이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익사자 왕은 이제 아이작이 빛의 법전의 성기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작은 어인들을 상대할 때에도 빛의 법전의 기적을 쓰지 않았다.
파도의 교리를 빌려 쓰고, 오직 루앗딘 열쇠를 들고 휘둘렀을 뿐이었다.
[이놈, 너 뭐 하는 놈이냐!]당연히 아이작에게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아이작이 순순히 제물이 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역시 못 알아보는군.’
아이작은 익사자 왕의 당혹감을 보면서 예상대로라고 느꼈다.
헤사벨은 소금 의회에 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왈라이카 공국이 내륙국인데다 두 신앙 사이에 별다른 교차점이 없기 때문이다.
익사자 왕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게다가 익사자 왕은 외부 세계의 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사실 붉은 성배는 익사자 왕이 잠든 이후에 나타난 신앙이니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법이다.
반면, 아이작은 익사자 왕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았다.
‘제물로 삼아? 네가, 나를?’
아이작은 실소했다.
익사자 왕이 자신을 제물로 삼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아이작이 느낀 감정은 분노도, 공포도 아니었다.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같잖음’이었다.
아이작은 익사자 왕을 처음 봤을 때 순수한 경외감을 느꼈다. 게임에서 본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으니까.
히야니스가 저런 존재를 상대하겠다고 말했을 때에는 우습다고까지 느꼈다.
어차피 익사자 왕과 싸울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아이작은 익사자 왕과 싸울 전략을 세우지 않았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전략 따위는 세울 필요도 없었다.
싸우기로 마음먹은 순간 아이작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역량, 도구, 장비, 지원들을 고려해서 익사자 왕을 공략할 수십 가지 방법들이 떠올랐으니까.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붉은 살점의 선지자와 싸울 때보다 쉽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자신이 패배할 가능성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익사자 왕을 게임 속에서 수십 번 공략해 보았다.
지금 아이작이 가진 역량으로는 지려야 질 수 없는 조건이었다.
쿠르르르르.
익사자 왕은 아이작을 잡는 것이 맨손으로 물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전략을 바꿨다. 그가 무슨 기적을 발휘하는지는 몰라도 몸을 액체나 기체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물의 흐름을 조종하면 그만이었다.
물속에서 둥근 수류(水流)가 형성되며 붉은 탄원으로 형성된 아이작을 가두기 시작했다. 익사자 왕은 거대한 입을 벌려 물을 빨아들였다. 통째로 먹어 치우려는 생각이었다.
어인들도 그 생각을 깨달은 듯 그 물살에 휘말리지 않게 허우적대며 벗어나기 시작했다.
둥근 수류는 이내 익사자 왕의 거대한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이빨들이 날카롭게 바글거리며 아이작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 흐름에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신, 오히려 단숨에 익사자 왕을 향해 물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익사자 왕 입장에서는 파리가 달려드는 것만큼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달려들어서 뭘 어쩔 건가, 칼이라도 휘두를 건가? 설령 몸 안에서 루앗딘 열쇠의 열기를 끌어올리더라도 그에게는 소용없었다.
고작 성물에 담긴 기적 따위, 기적 그 자체인 천사와 비견할 수 없었다.
[……어리석은 놈!]익사자 왕은 아이작을 입 안에 넣자마자 바로 나가지 못하게 다물어버렸다.
그대로 수천 개의 이빨로 아이작을 씹어 삼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씹어 삼켜 버리면 한 끼 식사도 되지 않는다. 정당한 제례 의식을 통해 자신의 희생양으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입 안에 들어온 이상 아이작도 저항할 방법이라곤 없을 터였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제물로 만들 생각이었다.
꿈틀.
익사자 왕은 기분 나쁜 이물감을 느꼈다. 입 안에서 칼이라도 휘두르는 건가 하기에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이내 그의 입 안에서 피가 번져 나왔다.
‘이게 무슨……?’
익사자 왕은 섬세한 기적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대신 그 강대한 육신 자체가 기적이다. 그의 촉수는 무한대로 자라나고, 재생력에는 끝이 없다.
칼 몇 번 휘두른다고 통증을 느낄 육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익사자 왕은 아이작의 몸이 다소 상하더라도 팔다리 정도는 끊어 놓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입안을 굴려 아이작을 씹으려 한 순간, 익사자 왕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역한 느낌에 아이작을 뱉어 버리고 말았다.
시커먼 핏물 속에서 아이작의 기묘한 실루엣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실루엣은 아이작보다 훨씬 컸다.
그제야 익사자 왕은 자신의 입 안이 온통 뜯겨나간 것처럼 벗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작의 기묘한 실루엣은 바로 익사자 왕 바로 자신의 살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익사자 왕’을 일부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이 정도만 먹어도 포식 특전이 주어지는군.’
아이작은 기분 좋은 소리에 미소 지었다. 원래 일부 포식 정도로는 특전이 주어지지 않는다. 심장이나 핵심적인 부위, 혹은 아주 많은 살점을 먹어야 포식 특전이 주어졌는데, 천사라서 그런지 일부만으로도 특전이 전해졌다.
[촉수의 길이가 대폭 상승합니다.] [촉수의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대충 다 먹어 치우면 무슨 특전을 줄지 예상이 되는군.’
지금은 일시적이지만 많이 먹으면 촉수의 능력이 영구적으로 대폭 강화될 것이 분명했다. 아이작은 사방에 퍼진 핏물 속에서 어인들이 다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은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거리낌 없이 왼손에서 뻗어 나온 촉수를 휘둘렀다.
길게 뻗어 나온 촉수가 사방 10m에 있던 어인들을 단숨에 이빨로 물어뜯고 찢어발겼다. 어인들은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일방적인 대량 살육에 경악하며 물러났다.
아이작은 찢겨 나간 어인들을 촉수로 다시 먹어 치우며 배를 불렸다.
물속이라서 검술을 펼칠 수 없었던 불리한 환경은 촉수가 나온 순간 다시 일방적인 도살장으로 바뀌었다.
[너는…….]익사자 왕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아이작은 그를 보고 비웃으며, 다시 빠르게 달려들었다.
피 맛을 본 짐승이 달려드는 듯한 모습에 익사자 왕은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작이 다가오면서, 그의 촉수가 두 가닥, 세 가닥으로 나뉘기 시작하는 것을 본 순간 그는 더 이상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심장을 저미는 듯한 섬뜩함이 그의 본능을 장악했다.
여덟 갈래로 갈라진 아이작의 촉수가 사나운 뱀처럼 그의 살점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