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익사자 왕 (5)
어부왕의 그물로 끌어올린 다음, 포경 장비들을 동원해 익사자 왕을 사냥한다.
이게 히야니스가 세운 불경하면서도 투박한 전략이었다.
어부왕의 그물까지는 그럴듯하다 생각했지만, 기껏 동원한다는 것이 포경 장비라는 것에 익사자 왕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고작 고래잡이용 작살 몇 개 정도로 천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하지만 그것은 익사자 왕의 착각이었다.
포경 산업, 일명 고래잡이는 지난 천년 이래 익사자 왕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발달했다.
“발사!”
배들이 각도를 잡기 무섭게 발리스타에 매달려 있던 포경 작살들이 일제히 익사자 왕을 향해 날아갔다. 어부왕의 그물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저 커다란 덩치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쾅, 쾅쾅!
익사자 왕은 자신의 몸통을 단숨에 후벼파는 거대한 작살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닻만 한 작살들이 몸에 꽂히고 있었다.
과거 포경이라 함은 해안으로 고래 떼를 몰고 가서 작살을 던지거나 좌초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작살들은 아예 고래를 끝장내고 그대로 항구까지 끌고 가기 위한 장비들이었다.
익사자 왕은 그 모습을 보면서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천년에 걸쳐 심해 속에 처박혀 말조차도 섞지 않고 짐승 수준으로 쇠락해 갔다. 하지만 그동안 신도들은 자기 나름대로 그들을 비호하는 기적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전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있는 대로 다 쑤셔 박아!”
소금 의회 선원들은 눈을 질끈 감고 작살을 쏘았다. 익사자 왕은 피하거나 촉수를 휘둘러 막아 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맞기만 했다. 처참하게 피 흘리는 익사자 왕을 보면서 울면서 작살을 쏘는 선원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 신이 떠난 뒤 여전히 이 세계에 남아 소금 의회를 지키는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 왔다. 물론 익사자 왕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심해에 잠든 채로 보냈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소금 의회 신도들은 신과 자신들을 잇는 끈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끈을 자기 손으로 끊고 있었다.
“1함대 작업 끝났습니다!”
“2함대 종료!”
작살 작업이 끝났다는 알림들이 연달아 이어지자 히야니스는 다음 수순을 지시했다.
“작살 박았으면, 1함대부터 즉시 대열에서 이탈한다!”
배들이 일제히 대열을 빠져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의 포경이라면 항구로 끌고 가기 위한 작업이 될 테지만, 이 함대의 이탈에는 방향성이 없었다.
아니, 온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작살에 꽂혀있는 익사자 왕을 산산이 찢어 놓기 위한 작업이었다.
빠아아아아! 작살에 매달린 밧줄이 맹렬한 진동음을 냈다. 포경선들은 돛과 노를 총동원해 익사자 왕을 자기들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퍽, 퍼퍽.
처참한 소리와 함께 익사자 왕의 살점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작살과 함께 거대한 상처를 남기고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부왕의 그물에 뒤엉켜 살점이 통째로 끌려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익사자 왕은 산채로 분해되고 있었다.
[그렇군.]익사자 왕은 찢겨져 나가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능지처참을 당하는 당사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투였다.
[이게 의회의 결정이군.]익사자 왕은 소금 의회가 만들어지기 전, 소금 교단으로 불리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신으로부터 단절되어 남겨진 그들은 신의 의지 없이 자신들끼리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대신 그들은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 의회를 만들었다.
신도들 모두의 의지로 결정한 일이라면 신의 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면서.
때문에 익사자 왕도 소금 의회의 결정을 존중해 왔다.
그리고 지금 소금 의회가 그의 사형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었다.
배교자에게 합당한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아이작은 산산이 찢기는 익사자 왕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히야니스는 이미 승부가 결정 났다고 본 듯했다. 하지만 아이작의 생각은 달랐다.
‘이걸로 익사자 왕이 끝장난다면 좋겠지만…….’
익사자 왕의 재생력은 무한에 가깝다. 지금 저 풍경이 끔찍해 보일지 몰라도, 그가 마음먹고 반항하기 시작한다면 함대 절반은 즉시 바닷속에 처박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익사자 왕이 죽는다면 그것은 익사자 왕 스스로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자신의 죄를 깨달으면서 죗값을 뉘우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그것도 아이작이 고려한 공략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럴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그때 아이작은 익사자 왕의 몸이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드드득, 드드드드득.
어부왕의 그물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작이 곧바로 외쳤다.
“밧줄 다 끊어!”
배의 이탈을 독려하면서 맹렬하게 돛줄을 잡아당기던 히야니스는 아이작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들었어도 아이작의 말에 바로 반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갑자기 익사자 왕을 풀어주라는 지시를 들어주기는 어려웠으니까.
아이작은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수면을 박차며 가장 가까이 있던 밧줄들을 끊었다. 팡.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밧줄들이 끊어져 나가며 채찍처럼 수면을 긁었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배들이 튕겨 나가듯 앞으로 쏘아지며 선원들이 나동그라졌다.
몇몇 배들이 전복될 듯 휘청거리는 것을 본 히야니스는 아이작이 밧줄을 끊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아이작을 나무라기 위해 뭐라 하려던 순간, 익사자 왕이 허공에서 몸을 맹렬하게 뒤틀었다.
펑. 소금 의회의 가장 귀중한 성물 중 하나인 어부왕의 그물이 산산이 찢어지며 배 수십 척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굉음이었다.
그 커다란 배들이 마치 낙엽처럼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말이 안 나오는 정적도 잠시, 수십여 척의 배들은 단 한 순간에 허공과 바다에서 뒤엉키며 박살 나고 흩어졌다.
콰두두두두두!
공포스러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단단한 배마저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나는 상황 속에서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이 견딜 재간 따위는 없었다.
곤죽이 된 잔해들과 피, 살점 따위가 뒤섞여 빗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아이작이 줄을 끊었거나, 이미 닻이 뽑혀있던 배, 운 좋게 상태가 안 좋아서 밧줄이 끊어진 배들만이 살아남았다. 히야니스가 탄 용맹한 연어호는 바로 그 운 좋은 배 중 하나였다.
하지만 히야니스는 결코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뜬 눈으로 지옥을 봐야 했으니까.
철퍽철퍽. 갑판 위로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사람의 파편들과 부서진 배들이 쏟아져 내렸다. 커다란 돛대가 제대로 꽂혀 버린 배 한 척은 기울어지다가 기어코 침몰했다.
히야니스는 귀가 먹먹했다.
아까 익사자 왕이 배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을 때 귀가 멀어 버린 것 같았다.
혹은 정신이 나갔거나.
“……야니스!”
나는 어쩌자고 천사를 상대하려고 한 거지? 근방에 있던 성배기사가 단신으로 천사를 추방했다는 소문 때문에 천사를 얕봤나? 정말 성물과 포경 장비들만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교단이 천년 전 해상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천사가 그렇게 우스웠나?
“히야니스!”
전멸.
히야니스의 머릿속에 그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소금 의회가 가진 가장 크고 비싼 배들이 거의 다 여기에 몰려왔다. 게다가 선장을 비롯한 그 희귀한 사제들까지.
그 모든 자산들이 무가치하게 바닷속에 처박힐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전해 줄 사람조차 남지 않고.
그리고 이 비극을 유도한 사람은 바로 히야니스 본인이었다.
“히야니스, 정신 차려!”
뻑! 히야니스의 뺨이 돌아갔다.
그제야 히야니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옌코스가 피범벅이 된 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히야니스가 정신을 못 차렸다고 생각한 듯 한 번 더 후려갈겼다.
“됐습니다. 정신 차렸습니다. 그만 때리세요. 이빨 나갔습니다.”
“정신 들어?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다음 전략 정도는 있겠지?”
옌코스는 충격적인 풍경에 놀라지도 않은 듯 다음 전략을 물었다. 문득 히야니스는 그녀가 고고학에 능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남들보다 훨씬 더 익사자 왕에 대해 해박하다. 익사자 왕을 상대하게 된다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제야 히야니스는 옌코스가 그렇게 익사자 왕과 대적하기를 거부하던 이유를 이해했다. 그리고 익사자 왕과 대적하기로 했을 때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히야니스는 울 것 같았다.
“다음 전략은 없습니다.”
“없다고? 천사를 상대하면서 이게 전부라고?”
“예.”
있긴 있었다.
하지만 이 참상을 본 순간 두 번째, 세 번째 계획 따위는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물고기 밥과 바다 쓰레기를 늘릴 뿐이다.
저 압도적인 힘의 천사를 상대로는 그가 준비한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옌코스는 말없이 히야니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책망도 원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군.”
히야니스는 울면서 옌코스의 시선을 따라갔다. 옌코스는 하늘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바다 위,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대답 없는 신 대신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
아이작은 함선들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광경은 이제 소금 의회와 익사자 왕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익사자 왕은 이때까지 소금 의회가 미묘한 입장을 보이고 소극적으로 저항하더라도 관대하게 기다려 주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치열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소금 의회 선원이 한 명도 죽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처참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관계의 끝을 선언했다.
그 말은 이제 익사자 왕이 소금 의회의 천사가 아니며, 심해의 괴물이 되었음을 뜻했다.
물론 소금 의회의 신은 그를 타천사로 만들 수도 벌을 줄 수도 없겠지만.
어부왕의 그물은 찢어진 상태로도 익사자 왕을 붙잡기 위해 마지막 남은 기적을 쥐어짰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익사자 왕은 흘러내리듯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바다는 익사자 왕과 선원들의 피로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몸은 구멍 나고, 찢어지고, 토막 나고, 난도질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바닷물이 스며들기 무섭게 마치 구멍 난 자리를 메우듯 상처가 치료되었다.
익사자 왕의 군청색 눈동자가 희번덕거리며 아이작을 향했다.
“까고 있네.”
아이작은 쥐톨 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히야니스를 향해 손짓을 보냈다. 소금 의회의 사기는 바닥났을 테고, 공격할 수단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기대했던 어부왕의 그물마저 박살 난 상태라면 그들이 여기 없는 편이 나았다.
소금 의회의 배들은 머뭇거렸지만 결국 천천히 미끄러지듯 멀어지기 시작했다. 익사자 왕도 소금 의회가 물러나는 것까지 쫓아가서 박살 내진 않았다. 아니면 그들이 물러나더라도 곧 쫓아가서 전부 침몰시킬 자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거나.
[왜 나를 막는 거냐. 내가 고대신이 되려는 것 같아서? 아니, 고대신이라는 표현도 우습군. 빛의 법전이 고개를 들기 전까지만 해도 고대신들은 그냥 이 세상의 신들이었다!]익사자 왕은 부글거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그들은 수천 수만 년간 이 땅을 지배했던, 신이자 질서 그 자체였다! 루앗딘이 만들어 낸 빛의 시대는 고작 천년밖에 안 된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인데!]“천년이 걸려서 겨우 여기까지 왔지.”
아이작은 루앗딘 열쇠를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영지 하나를 먹어 보니까 알겠더라고. 사실 지금도 미개해 죽겠다고 생각 중이야. 눈만 뜨면 이 무식하고 모자란 광신도 놈들을 어떻게 정신 차리게 만드나 하고 푸념하지.”
익사자 왕은 갑자기 시작된 아이작의 넋두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나마 이 새끼들이 사람을 제물로 안 바치고, 각자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자기들 도덕 기준에서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는 생각 정도는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이작은 루앗딘 열쇠를 다시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피와 비 때문에 칼이 미끄러웠다.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되는 건지.
하지만 이게 바로 아이작이 마음 편하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아이작이 이름 없는 혼돈의 속내를 알기 전까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고대신이 수천 수만 년을 지배해왔다고 그때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라…… 수천 수만 년에 천년을 더해 겨우 지금 수준으로 진보한 거다. 너는 그런 미개한 시대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런 꼴을 눈 뜨고 못 보겠다.”
그는 빛과 질서를 원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루앗딘 열쇠에서 붉은 열기가 다시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