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익사자 왕 (7)
우득, 우드드드득.
끔찍한 소리가 촉수 안쪽에서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익사자 왕은 생전 느껴 본 적 없는 고통에 신음하며 촉수를 다시 펼치려 했지만, 펼쳐지지 않았다. 마치 다리 안쪽에서 무언가 강력한 것이 촉수를 역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뭐냐? 이게 대체 무슨…….]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아이작이 갑옷째로 으깨지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근육과 살점이 조각나고 찢어지는 소리였다.
그가 산채로 씹어 먹히는 소리였다.
익사자 왕은 그제야 자신을 짐승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던 그 본능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의지로 아이작, 아니, 이 정체 모를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미련 없이 다리를 잘라 버렸다. 그의 수족 가운데 가장 많은 힘이 담겨 있는 다리였지만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다리를 자르자마자 통증이 덮쳐 왔지만, 산채로 씹히고 삼켜지는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고통이었다.
익사자 왕은 수많은 전투와 고난을 겪어 왔다. 이보다 심한 상처는 몇 번이나 입었다. 하지만 이 고통은 그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그가 잘라 낸 다리는 꿈틀거리며 점점 안쪽으로 압착되어 갔다. 마치 거대한 다리가 작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모습에 익사자 왕은 숨도 쉬지 못했다. 그것이 가만히 있는 동안 공격한다는 선택지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마침내 다리가 살점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때,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익사자 왕이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조개? 아니, 말미잘?’
처음 봤을 때에는 껍질을 쓴 말미잘을 떠올렸다.
아이작의 갑옷 아래 관절마다 촉수들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싸우던 아이작의 갑옷이었기에 그것이 ‘아이작이었던 것’이라는 것만 유추할 뿐,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익사자 왕의 기나긴 생애에서 얻은 지식으로도 알 수 없었다.
촉수들은 조개관자 같은 빨판으로 갑옷들을 이어 붙이며, 어색하게 사람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여전히 불 꺼진 루앗딘 열쇠를 들고 있었다.
그것의 투구가 삐걱거리며 익사자 왕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몇 번 어색하게 휘청거리다가 금방 자신의 형태에 적응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의 움직임은 말미잘이 처음으로 사지를 가지고 보행하는 법을 익힌 것만큼이나 기괴했다.
우스운 동작이었으나, 익사자 왕은 차마 그것과 맞서지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익사자 왕은 문득 아이작이 그리워졌다.
이윽고 아이작의 껍질을 뒤집어쓴 괴물은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저것이 과연 달린다고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는 몸의 순서를 바꾼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머리가 앞장서고, 그 위치에 팔 또는 다리로 보이는 것을 내딛는가 하면, 몸통이 뒤따르고, 다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팔이 나타나 수면을 밟았다. 관절이 없는 익사자 왕조차도 이런 기괴한 움직임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악의의 방향은 분명했기 때문에 익사자 왕은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대신 그는 수류를 이용해 아이작을 밀어내는 동시에 자신의 몸을 뒤로 물렸다. 다행히 촉수 괴물은 아이작의 갑옷 안에 갇힌 것처럼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녀석은 이대로는 익사자 왕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루앗딘 열쇠를 휘둘렀다. 그 동작에는 아무런 형식도, 열기도 없었다.
말 그대로 마구잡이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익사자 왕은 그 안에서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아이작의 팔이 순간적으로 거의 수십 미터 가까이 늘어났다. 말도 안 되는 변화에 익사자 왕은 경악했지만 대비할 틈조차 없었다.
퍼버버버벅!
총 여덟 곳. 그의 몸 전체에 붉은 상흔이 순식간에 새겨졌다.
‘강해. 아니, 그뿐만 아니라…….’
익사자 왕은 그 공격을 눈으로 쫓지도 못했다. 심지어 상처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그가 무한한 재생력과 거대한 몸을 가지지 않은 천사가 아니었다면 이미 지금 단면을 따라 조각조각 났을 것이다.
심지어 상처는 날카롭게 베인 게 아니라 짐승 무리가 물어뜯은 것처럼 거칠게 패여 있어서 재생조차 쉽지 않았다. 그 단면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과 병균들이 득시글거리며 재생을 방해했다.
[너는 대체…… 뭐냐, 아이작?]익사자 왕은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아이작이 앞에 나설 때만 해도 그는 분명 숭고해 보였다. 모두를 보내고 자신을 단둘이서 맞서는 상황에서조차도 겁먹지 않고 당당한 내면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익사자 왕은 자신이 작아지는 것조차 느꼈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무엇인가.
그 고결하던 모습 아래, 저런 괴물이 숨어 있었나?
[그게 너의 질서를 비호하는 신이냐, 아이작?]익사자 왕은 자조하는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
한편, 아이작은 묘한 기분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음…… 몽유병 같은 기분이군.’
익사자 왕의 촉수에 휘감겼을 때만 해도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익사자 왕을 게임 속에서 여러 번 잡긴 했지만, 패배한 적이 더 많았다. 자신은 있었지만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으니 져도 이상하진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은 자신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에게는 위기의 상황이 되면 튀어나오는 촉수 괴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촉수 괴물이 얼마나 만능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을 상대로는 충분히 강하지만 익사자 왕 같은 천사를 상대로는 맥도 못 추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익사자 왕이 자기 팔을 희생하면서까지 물러나는 걸 보니 힘이 통하는 것도 같았다.
‘울스텐이 잘한 건가? 아직 잘 모르겠는데.’
그 와중에 갑옷은 쪼개지거나 촉수가 무분별하게 폭주하지 않는 봉인구 역할을 맡고 있었다. 화로 장인의 손길을 탄 갑옷은 평상시에도 이미 훌륭한 갑옷이지만, 이런 ‘유사시’ 상황이 되면 촉수를 통제할 수 있었다.
아이작의 실수로 주변 모든 사람들을 다 잡아먹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다소 개선의 여지는 있겠지만 뭐……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몸이 촉수 괴물로 변해도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긴 한다는 점에서 이미 울스텐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역시 라이칸스로프를 위한 갑옷도 만드는 세상의 화로 대장장이다웠다.
‘하지만 설마 상급 검술까지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촉수 괴물이 루앗딘 열쇠를 들고 익사자 왕을 공격한 기술은 분명 아이작 자신의 상급 검술인 ‘여덟 갈래’였다.
촉수 괴물 주제에 검술을 쓴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아이작은 촉수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검술을 만들었다.
그 말은 어쩌면, 애초에 아이작의 검술은 촉수 괴물로 변했을 때에 최적화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언제 끝나는 거지?’
원래 이런 ‘폭주 상태’는 주변에 있는 위협적인 대상을 완전히 다 포식해야 끝났다. 그렇다면 익사자 왕을 완전히 다 포식해야 끝이 날 텐데, 그게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완전히 촉수에게 맡겨 둔 상태로 끝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익사자 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
“주교님! 뭔가 좀 해보십시오!”
바다 너머에서 일어나는 광경은 소금 의회 신도들 눈에도 들어왔다. 다만 그들은 아이작이 익사자 왕의 촉수에 사로잡혔으며, 루앗딘 열쇠가 빛을 잃었다는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에 그들은 침착함을 잃었다. 심지어 아무 것도 못하던 후안에게까지 매달릴 만큼.
하지만 갑갑한 것은 후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도 눈물을 흘릴 만큼 지금 이 상황이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다.
‘이 시련은 성배기사가 극복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신의 안배가 아니었단 말인가?’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작이 또 한 번 이단의 천사를 베고 그 숭고한 목적을 드높일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사로잡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교님, 제발 뭔가 좀 해보란 말입니다! 빛의 법전께서는 성배기사님을 버리신 겁니까?”
‘네 놈들 천사니까 네놈들이 알아서 해봐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소금 의회의 신을 소금 사막 아래 매장한 것은 빛의 법전이다.
빛의 법전의 사제인 후안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잔인할뿐더러 무책임한 말이었다.
‘아이작이 이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라면, 나는 대체 여기에 왜 왔단 말인가?’
후안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 시련에서 무슨 역할을 맡고 있단 말인가? 무의미한 비난을 받는 역할? 아무것도 못하는 절망감을 느끼기 위해서? 성배기사라는 걸출한 영웅 하나를 눈앞에서 희생시켜 자신을 꾸짖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그 순간 찌르는 듯한 깨달음이 자신을 찾아왔다.
‘이 시련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후안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배는 폭풍 한가운데였지만, 빛이 들었다면 가장 잘 들었을 자리를 찾아 자리 잡고, 언제 꺼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로자리오를 손에 움켜쥐었다.
바다 저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익사자 왕이 그 거대한 촉수를 휘둘러 바다를 긁고 있었다. 그 촉수 아래 아이작이 어떤 끔찍한 일을 겪고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실로 신화적인 풍경에 후안은 두려움에 사로잡힐까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빛이시여, 제발 제 눈을 가린 어둠을 거둬주소서.”
아주 오래전, 잊고 있던 빛의 숭고함과 질서의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아직 풋내나는 사제였던 시절, 기적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기적을 청원하던 시절을. 아직 순수했던 시절에 밝히던 촛불의 아름다움을.
“당신의 진리가 없는 세상은 어둠과 공포로 가득하나이다. 제발 당신의 우리에서 벗어났던 자식이 돌아올 수 있게 길을 밝혀주소서. 당신의 여린 촛불이 바닷바람에 꺼지지 않게 도와주소서…….”
작은 기도 소리가 낭송되던 어느 순간, 바다 너머에서 여명의 불빛이 반짝였다.
***
문득 아이작은 자신을 향해 신앙심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신도들보다 몇 배는 농도 짙고 신실한 신앙심. 간절한 염원이 담긴 기도가 자신에게 부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앙심은 선명한 물리적 형태를 담아 기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이 기적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광휘의 날개?’
아이작의 등 뒤에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제들은 절대로 발동할 수 없는 기적. 평범한 인간조차도 약한 천사에 비견될만한 힘과 권능을 갖게 된다는 막강한 기적의 힘이 그의 몸에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도합 네 장의 날개가 아이작의 등 뒤에서 돋아났다.
‘설마?’
이런 기적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주교급 이상뿐이다.
아이작은 신앙심이 이미 멀리 떨어진 소금 의회 상단의 배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담겼다.
“뭐야, 하면 되잖아. 영감.”
그 압도적인 기적의 힘이 몸을 장악하자 촉수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아이작은 몸이 회복되기 무섭게 몸과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반응하듯 구름 위에서 꿈틀대던 심연의 손아귀도 기척을 감추었다.
바다를 내딛으려던 아이작은 자신의 몸이 이미 수면으로부터 약간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움직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광휘의 날개는 이미 자연스럽게 그를 떠받치고 있었다. 다시 뜨겁게 타오르는 루앗딘 열쇠의 열기가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증발시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익사자 왕도 보고 있었다.
아이작이 앞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광휘의 날개가 그의 몸을 밀어냈다.
루앗딘 열쇠의 칼끝이 익사자 왕에게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칼끝은 너무나도 쉽게, 익사자 왕의 미간을 관통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뭐?’
이번에야말로 겨우 대등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작은 흠칫했다. 설마 이번에도 끌어들이기 위한 속임수였나 생각했지만, 이번에 입힌 상처는 확실하게 치명상이었다. 특히나 광휘의 날개로 인해 루앗딘 열쇠 또한 강화되면서 그 열기와 불꽃이 두 배 이상 커진 상태였다.
아이작은 문득 루앗딘 열쇠를 보면서 익사자 왕이 묘하게 칼에 집착하던 것을 떠올렸다.
‘이 칼에 무언가 의미가 있었나?’
군청색 눈동자마저 하얗게 익어가는 열기 속에서, 익사자 왕은 간절히 기다려 왔던 순간을 받아들였다.
그는 마치 아이작을 향해 경배하듯 촉수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나를 문으로 삼아…… 달우물 의식을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