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우르반수스 (3)
“……저를 선택한 이유 말씀이십니까?”
이름 없는 혼돈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아이작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견했던 상황이었다. 익사자 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가 이미 전달된 듯했으니, 아문달라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자신이 이름 없는 혼돈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친절하게 구냐는 것.
‘이름 없는 혼돈은 다른 신들에게 미움받는 게 아니었나?’
어쩌면 아이작 개인에 대한 호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정이 있든 간에 아문달라스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고, 그에 따라 원하는 것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소. 물론 당신은 뛰어난 재능이 있지. 머리도 제법 굴릴 줄 알고. 하지만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당신도 이제 우르반수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짚이는 바가 있을 것이오.”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을 처음 만났던 때를 생각해보았다.
그는 네임리스 카오스의 플레이 가능한 여덟 신앙을 모두 클리어한 후, 이름 없는 혼돈이라는 새로운 히든 신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작이 이름 없는 혼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혼돈이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 아이작은 우르반수스에 대해 어떤 익숙한 개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우르반수스라는 개념은 조금…… 게임 같지 않나?’
이를테면 ‘네임리스 카오스’라던가.
게임 네임리스 카오스는 지금으로부터 아주 약간 미래 시점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신앙을 선택하고, 해당 신앙의 승리를 위해 질주한다.
그 안에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만큼의 세계가 있다. 아이작은 플레이어중 한 명으로서 승리하기 위해 몇백 번을 죽어 가며 재시작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승리를 쟁취하기란 아주 어렵지만, 어떤 신앙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크게 바뀐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이작은 언제든 다시 게임을 재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작은 게임 ‘네임리스 카오스’가 기묘하게도 우르반수스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나를 권속으로 끌어들인 건가?’
게임 내 컨트롤을 잘하는 사람은 아이작보다 많을 것이다. 스피드런을 해서 최단기간 클리어한 사람도 수두룩했다.
최적화된 공략을 잘 짜서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그들에 비해 이룬 업적은 한가지.
모든 신앙을 플레이하고 성공해 봤다는 것.
하지만 곧 아이작은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냥 우연이겠지.’
역사를 개변한다, 시간을 되돌린다, 게임을 재시작한다 같은 개념은 얼마든지 있는 개념이다.
우르반수스가 역사를 뒤집어씌울 수 있는 세계라면 게임과 개념이 겹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만약 우르반수스가 네임리스 카오스라면.
혹은 그와 비슷한 개념이라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닥쳐오든, 아이작은 우르반수스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
“짚이는 점이 떠오른 모양이군.”
아문달라스는 자못 즐겁다는 듯 말했다.
“……제가 승리할 것 같아서 거기에 올라타고 싶다는 겁니까?”
“비슷하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소?”
소금 의회가 원하는 것.
네임리스 카오스에서 표현된 소금 의회 승리 조건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작의 목적과 상충되지 않았다.
“소금 사막을 깨부수고 부르는 자를 깨우는 것.”
“그렇소. 우리는 언젠가 나타날 그 존재를 ‘꿈꾸는 자’라고 불러왔지…….”
단순히 소금 사막을 파헤치는 것만으로 부르는 자를 깨울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금 사막 아래 매장된 신은 외부에서 깨울 수 없다. 부르는 자를 깨우기 위해서는 함께 꿈꾸는 자만이 가능하다…… 라는 것이 소금 의회의 교리 해석이었다. 이중 ‘함께 꿈꾸는 자’는 우르반수스에 대한 은유였다.
하지만 소금 의회 중 누구도 살아서 우르반수스에 발을 딛지 못했다.
아이작을 대리인으로 보내기 전까지는.
“만약 당신이 우리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있다면…… 소금 의회에 당신이 ‘꿈꾸는 자’가 맞다는 계시를 내리도록 하겠소.”
아이작은 생각지도 못한 아문달라스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저 말은 아이작을 거의 제 2의 선지자, 혹은 구원자로 신탁을 내리겠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이미 다른 교단의 성기사인 데다, 다른 신앙을 가진 외부인인데도.
아이작이 기대했던 ‘소금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휘하에 거느리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지금 소금 의회는 사후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요.”
“당신 손에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들려 보내면 되지. 걱정 마시오.”
“……제가 다른 신앙인인데도 말입니까?”
아이작의 말에 아문달라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하지. 우리도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는 않소. 외부자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어찌 즐겁겠소이까. 하지만 익사자 왕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그대를 보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소.”
아문달라스는 아이작 앞에 손가락을 세우며 갈증 나는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혼돈은 언제나 변화를 불러오기 때문이오. 언제나.”
그녀는 씩 웃었다. 송곳니가 날카롭게 빛났다.
“변화가 달갑지 않은 것들도 있겠지. 하지만 약자는 언제나 변화를 갈망하거든. 아마 우리 말고도 혼돈의 개입을 바라는 자들이 있을 거요. 이미 그대의 정체를 알아보고 접근한 자도 있지 않았소?”
아이작은 단박에 붉은 성배 클럽의 거울 시녀를 떠올렸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굳이 자신이 가진 패를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아직 아문달라스의 정확한 정체를 확인하지도 않았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소금 의회의 전폭적인 협력 외에?”
“그건 그냥 부차적인 것이지요. 애당초 저는 소금 의회에 답변을 얻기 위해 친해지려고 했던 겁니다.”
아문달라스의 입가가 씰룩였다.
“좋소. 저승까지 와서 물어볼 정도라면 보통 질문이 아니겠군. 궁금한 게 뭐요?”
아이작은 에이단을 통해 소금 의회와 접선을 만들 때부터 사실상 이 순간을 고대해 왔다.
그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고, 조사도 진행해 봤지만, 관련된 역사는 집요하게 삭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지금에서야 그것이 인위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우르반수스가 개입해서 관련된 역사를 지워 버린 것이리라.
“300년 전, 백사병이 창궐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이작은 아홉 신앙들이 집요하게 지워버린 역사의 편린에 대해 물었다.
“이름 없는 혼돈은 왜 자신의 신도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살한 겁니까?”
아문달라스는 표정 없이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놀라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그녀의 침묵에 초조함을 느끼고 답변을 재촉했다.
“말씀해 주시죠. 백사병에 관한 기록의 삭제는 인위적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오늘 우르반수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설명이 되는군요.”
루앗딘을 배에 태웠느냐 안 태웠느냐, 그 사실만으로도 어떤 고대 제국의 흥망이 갈라지고 한 신앙이 몰락 직전까지 갔다.
그것이 우르반수스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름 없는 혼돈에게 벌어진 일 또한 우르반수스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특정 역사를 지웠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만약 모른다면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아니, 답변 못할 것은 아니오. 다만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망설였소.”
아문달라스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혼돈. 이름 없는 혼돈. 그래. 지금은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구려. 하기사, 그 존재는 항상 수천의 이름을 가져서 명명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지.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흠. 이름 없는 혼돈이 신도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살했다고 하셨소?”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비록 여기 못 박혀있는 몸이지만 역사는 계속 흘러들어오오. 이름 없는 혼돈은 자살하지 않았소. 그건…….”
아문달라스는 다시 또 생각하려는 듯하다가 복잡하다는 듯 손가락을 휘저었다.
“이건 지워진 역사가 아니니 직접 보시오.”
***
아이작의 눈앞에 어떤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바다 끝에서 산맥 끝까지, 끝 모를 대절벽에서 아득해지는 들판의 풍경까지, 샛노란 사막에서 하늘까지 나무가 닿는 삼림까지. 아이작은 그 모든 것을 달렸다. 그는 영광된 원과 퍼져가는 빛을 형상화한 빛살, 빛의 법전 깃발을 들고 들판을 질주하는 한 성기사였다.
온 세상에 빛의 법전의 영광과 질서가 가득했다.
“300년 전 풍경이오.”
그의 바로 옆에 아문달라스가 종자 차림을 하고 따라오며 말했다. 언덕 위에서 아이작은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 아래 펼쳐진 세계를 보았다.
빛의 법전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빛의 법전의 권세가 최절정에 달하던 때지. 반역자 엘릴과 불순한 세상의 화로는 바다 건너 섬으로 쫓겨났고, 비천한 오크 무리 올칸 규율은 세상의 변방으로 도망쳤고, 붉은 성배는 뒷골목과 사창가에 숨었소. 바야흐로 빛의 시대라 할 만하지.”
이 시기에는 아직 불사 교단이 없는 것 같았다. 알려진 세상과 ‘중심’이라고 할만한 모든 땅들은 빛의 법전 지배 아래 들어와 있었다.
아이작은 이 화창한 번영 속에서 이름 없는 혼돈이 어떻게 그 재앙을 퍼뜨렸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 없는 혼돈의 신도들은 어디 있습니까?”
“안 보이시오?”
아이작은 아문달라스의 목소리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밟고 있는 언덕이 흙으로 된 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얕은 언덕을 이룰 만큼 쌓인 시쳇더미였다. 그리고 그 시체 언덕 주변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시체가 실려 와 쌓이고 있었다.
학살당한 것인가 했지만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아문달라스는 개미 떼처럼 시체를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마을에 역병이 돌았소. 마을 주민들은 빛의 법전 사제들에게 구원을 청했지. 하지만 사제들은 기적을 거부했소.”
“기적을 거부했다고요?”
“병마에 시달리는 것은 이단의 증거이기 때문이오. 사제들은 마을 사람들이 역병신을 섬겼다고 생각했지. 헛소리라고 생각하오? 만약 이단이 아니라면 죽어서 천국으로 가 빛의 법전을 섬기게 될 텐데 무엇이 문제겠소?”
이윽고 시체가 충분히 쌓이자 사람들은 기름을 뿌리고 시쳇더미에 불을 붙였다. 이미 시체 언덕 위까지 기름을 뿌려둔 건지 불은 빠르게 번졌다. 문득 아이작은 다가오는 불길 사이로 아기를 안은 주민을 발견했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그 순간 아기를 안고 있던 주민이 아기를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가려 했지만, 다음 순간 아이작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번화한 도심의 시장이었다.
아이작은 아문달라스를 노려보았다. 상인 모습을 한 아문달라스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 아기도 역병에 걸렸습니까?”
“아니오. 건강한 아기였지.”
“그러면 뭐가 문제인…….”
“하지만 역병에 걸릴 수도 있잖소. 역병에 걸렸다는 것은 이단이라는 뜻이오. 그럼 천국에 못 가지. 순수한 아기인 채 죽어야 천국에 갈 수 있잖소.”
아이작은 기괴한 논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문달라스는 앞으로 걸어갔다. 시장은 번화하고 상인들은 활기찼다. 하지만 아이작은 아까처럼 들판을 보던 것처럼 평화로운 시선으로 시장을 볼 수 없었다.
시장 사이사이 골목에는 빈민들이 구걸하고 있었고, 종교적 상징을 온몸에 문신처럼 박은 남자가 연신 뭔가를 중얼거렸다. 시장 중심에서는 주교 인증이 박힌 면벌부가 경매에 올라 판매되고 있었다.
아이작은 뭔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제가 물어본 건 이게 아닐 텐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요. 단 하나의 체제가 압도적으로 권력을 차지하면 경직되고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하지요. 300년 전 빛의 법전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고.”
아이작은 짜증스럽다는 듯 아문달라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결국 과거의 일입니다. 지금도 교단이 깨끗하다고는 말하지 못 하겠지만, 옛날 일인데 딱히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혼돈의 신도들은 어디 있고, 또 이름 없는 혼돈은 그들을 다 죽인 겁니까?”
그 말에 아문달라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본 사람들 전부가 혼돈의 신도들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