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우르반수스 (4)
아이작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역병 치료를 거부하던 사제들, 자식이 천국에 가지 못할까 봐 갓난아기를 불 속에 던지던 농부, 면벌부를 팔던 상인, 구걸하는 빈민들…… 그들이 전부 어떻게 이름 없는 혼돈의 신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느새 아이작은 아문달라스와 함께 수도원을 거닐고 있었다.
아문달라스는 조용한 수도원 복도를 걷다가 아이작을 향해 손짓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손끝에 조용히 무언가를 속삭이는 경건한 모습의 수도사들이 보였다.
아문달라스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해설해 주듯 말해 주었다.
“정확히는 세상의 종말을 바라는 자들이오.”
“……종말을 바라는 자들?”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종말을 부르짖는 광신도들은 늘 있었다. 그들은 종말이 코앞까지 닥쳐왔으니 당장 그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고 부르짖곤 한다.
“그런데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어떤 자들일 것 같소? 가난뱅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자들? 핍박받는 자들? 뭐, 그들도 멸망을 원하기는 하겠지.”
아문달라스는 시장의 풍경을 다시 보여 주며 말했다.
“하지만 의외로 저런 강대하고 신앙심 깊은 자들도 세상의 종말을 원한다오. 자신들이 이룩한 영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 있느니, ‘그 뒤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를 원하는 거지.”
수도사들은 어떤 이름을 속삭였다. 아이작의 귀엔 그 이름이 마치 지워진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것이 이름 없는 혼돈의 원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소름이 돋았다.
백사병은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발병한다.
저들은 죽을 것이다.
아문달라스는 수도사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들은 빛의 법전이 ‘세상을 완전히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대에 이 영광된 왕국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그들은 이 아름다운 작품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소. 그리고 혹여라도 죄를 더 짓기 전에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
“설마, 그래서.”
“설마가 아니라 당연한 거요. 빛의 법전은 영원한 왕국이 천국에 있다고 말하지. 그에 비하면 언제 죄를 지을지 모르는 이승은 불안하고 불편할 뿐. 권력자들과 사제, 부자들도 마찬가지요. 그들은 이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 일조했으니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고 믿었지. 그래서 많은 왕과 귀족. 사제, 부자들이 ‘끝’이 다가오길 바랐소. 가난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대로 이 압제와 고통이 끝나기를 바랐고.”
아문달라스는 다시 손을 휘저어 장소를 옮겼다. 이번에 그녀가 찾아간 장소는 드넓게 펼쳐진 사막이었다. 피라미드 형태의 제단이 보였다.
아이작은 그것을 본 순간 눈앞에 떠오른 어떤 한 장면에 대한 기시감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아이작의 반응을 본 아문달라스는 표정 없이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의 기억에 침식된 적이 있는 모양이오?”
아이작은 자신이 꾼 악몽과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이 피라미드 제단 위에서 펼쳤던 의식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정말 있었던 일인 모양이군요.”
“그렇소. 아까 본 자들 중에서는 유달리 종말을 간절히 바라던 자들이 있었소. 그들은 얌전히 종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불러들이기로 했지.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 사이에서 퍼지던 신앙, 혼돈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소.”
아이작의 머릿속에 다시 번개같이 그 섬뜩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기울어지고 일그러지는 세상과 사람의 가죽을 관문 삼아 기어 나오는 괴물들, 산더미처럼 바쳐지는 인간의 시체들. 제정신으로 볼 수 없는 풍경들.
“……혼돈이 원래 그런 신앙입니까?”
“아니. 그럴 리가. 하지만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세상 모든 것은 우르반수스의 영향을 받지. 혼돈의 신도들은 간절하게 세상의 멸망과 이 질서의 끝을 바랐소. 그렇다면 그 기적의 형태 또한 정상적일 수가 없지.”
그 결과가 촉수 괴물들과 무너지는 세상의 풍경이다.
아이작은 자신이 발휘하는 기적들이 왜 다 이 모양인지 깨달았다.
그것들은 과거 종말을 바라던 자들이 남긴 흔적이다.
아이작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우르반수스의 흔적인 셈이다.
“그러던 와중 한 사람이…… 이 전대미문의 의식을 준비했지.”
아이작은 바로 노란 옷을 입은 남자를 떠올렸다. 늘 사후세계에서 간절한 집착으로 아이작을 응시하는 남자. 아이작은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으며, 언젠가 그와 마주치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게 누굽니까?”
“모르오. 그의 이름 또한 함께 지워졌으니까. 안다 해도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지금 이곳 또한 우르반수스니까.”
이 우르반수스 어딘가에도 바로 그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있다. 아문달라스는 그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잠시 말이 없다가 미련이 남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미친 사이비 종교 따위가 널리 퍼질 리가 없을 텐데요.”
“그렇소. 그렇게 많이 퍼지진 않았지.”
아문달라스는 아이작의 예상을 비웃듯 말했다.
“대략 당시 세계 인구의 1/3 정도에게만 퍼졌소.”
그 수치에 아이작은 입을 다물었다.
전 세계 인구의 1/3을 지워 버린 백사병.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이 백사병을 퍼뜨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세상의 멸망을 꿈꾸던 미친놈들의 계획이 성공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 멸망은 세상이 아닌 그들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 아이작은 문득 이런 터무니 없는 기적을 신도 한 명의 힘으로 해낼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신의 도움 없이는.
“혼돈도 이 모든 것에 동의한 겁니까?”
“그럴 것이오.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전대미문의 천재 주술사라 하더라도 그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오. 그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여버린다는 것은.”
“왜 그런 짓을?”
“모르겠군. 신들은 수많은 미스터리를 만들지. 하지만 백사병만큼은 다른 신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거요.”
결국 다시 원점이다.
백사병을 만든 것은 이름 없는 혼돈이 아니지만, 결국 거기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름 없는 혼돈은 대체 왜 백사병으로 자신의 교단을 몰살시키는 데 동의한 걸까.
‘결국 신도 우르반수스의 압력엔 견디지 못했던 건가?’
***
어느새 아이작은 다시 소금 사막의 배 갑판 아래로 돌아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소. 아이작.”
그녀는 피곤한 모습으로 몸을 소금 바닥에 뉘며 말했다.
“백사병은 혼돈의 신도들이 원했던 결과물이오. 빛의 법전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든, 괴로운 현생을 벗어나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든, 바라는 결과는 찾아왔소. 이름 없는 혼돈이 왜 그것에 동의했는지 알 수 없을 뿐.”
그것만큼은 신의 의지다.
그저 흘러들어오는 정보밖에 볼 수 없는 아문달라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작은 아문달라스가 최대한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충분히 답변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문달라스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경고했다.
“다만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소.”
아문달라스는 손톱으로 바닥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강한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과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뜻이오. 사후세계와의 경계가 얇아지고 있다는 뜻이지. 우르반수스가 당신을 물들일 수도 있다는 뜻이오.”
“……예전에 지인에게 들은 적 있습니다.”
에이단도 비슷한 뉘앙스로 말한 적 있었다. 기적의 힘이 강해질수록 개인의 자유 의지는 사라지고 신앙인으로서의 집단의지가 자신을 장악할 수가 있다고.
“그때 저는 ‘그 정도는 어떤 집단을 들어가도 일어나는 일 아니냐’고 대답했었지요.”
“그렇소. 우르반수스고 뭐고 다 집어치우면 평범하게 동조압력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원래 집단은 이질감을 견디지 못하니까.”
그러나 아문달라스는 눈을 번뜩이고 아이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탁월하오. 기이할 정도로 이질적이지. 당신 한 명에게 수천 년, 수억 명 단위의 압력이 전해질 거요. 당장은 크게 강하지 않으니까 우르반수스의 압력이 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혼돈의 힘을 빌려서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위험할 거요.”
아이작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아문달라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이작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름 없는 혼돈의 힘 덕분이다. 하지만 그 힘에 완전히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유 없이 주어진 힘인 만큼, 이유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신앙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온전한 내 힘이 아니니까.’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에 대해 생각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호의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호의를 쉽게 거둘 것 같지도 않다. 솔직히,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을 믿고 목숨을 거는 짓도 많이 했다. 사실 누구보다 믿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세계…… 우르반수스는 다르다.
아이작은 이제 자신이 가진 촉수와 기적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았다.
멸망을 간절히 바라던 자들.
그리고 노란 옷을 입은 남자.
이름 없는 혼돈이 백사병으로 전 세계 인구의 1/3을 죽여 버렸다는 뜻은, 세계의 1/3이 아이작을 향해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이질적인 사후세계가 아이작을 향해 ‘자신들과 같으라’고 압력을 넣는다면, 과연 그가 버틸 수 있을까?
아문달라스는 그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걱정하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알아주니 고맙소.”
“별일 없을 테니까 그냥 안심하라…… 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이야기로군요. 일단 제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해야겠군요.”
아이작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의지가 다른 의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상은 느낀 적 없었다. 하지만 아문달라스가 말하는 현상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자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아문달라스는 아이작을 보면서 씩 웃었다.
“신중한 모습이 마음에 드오. 익사자 왕은 가치 없는 희생을 한 게 아닌 듯하군.”
문득 아이작은 익사자 왕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 전투는 아이작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한 그의 절박한 발악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제가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달우물 의식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 이상으로, 아문달라스는 아이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분명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다.
아이작은 그것이 궁금했지만, 아문달라스는 입술을 가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전부 다 밝힐 수 없소. 특히 당신에 대한 것은 언급하는 순간 원치 않는 것들이 몰려올 수 있으니.”
그녀는 웃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당신이 놈들과 달리 이 세계의 영속성을 바란다는 것을 믿소.”
아문달라스의 말에 아이작은 익사자 왕이 그를 이 세계에 보내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영속성을 나처럼 너 또한 바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무슨 뜻…….”
“자. 돌아갈 시간이오. 이미 너무 많은 비밀을 누설했군. 나는 이쪽에서 한동안 고생할 테니, 당신은 그쪽에서 열심히 고생하시구려.”
아문달라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아이작의 어깨를 가볍게 툭 밀쳤다.
다음 순간 아이작의 시야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