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오래된 미래 (2)
‘일단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봐야겠군.’
아이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사자 왕이 사후세계로 가는 ‘문’이 되었던 탓에 돌아올 때에도 그의 몸을 기준으로 좌표가 설정된 것 같았다. 익사자 왕의 사체가 해류를 타고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해변에 좌초되어 썩어 가던 중 아이작이 돌아온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로 돌아왔다면 상당히 곤란했을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지금도 난처한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기가 차고, 파도가 거칠다.
식생을 보아하니 북쪽에서 주로 자라는 키가 큰 침엽수들이 많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 아이작이 출발한 노르덴 항 인근의 북해를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운 좋으면 다시 노르덴 항 주변의 해안으로 돌아온 거고, 재수 없으면 엘릴이나 세상의 화로가 있는 킬마르 인근일 수도 있겠군.’
둘 다 백제국에 속한 신앙들이니 죽일 놈 살릴 놈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잡혀있을 수도 있었다. 우르반수스의 정체를 알고 나니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작은 각지에 흩어져 자신만의 임무를 진행하고 있는 권속들을 향해, 의지를 집중해 쏘아 보냈다.
붉은 성배와 관련된 일을 진행하고 있던 헤사벨이, 고대신의 은거지를 찾는 임무를 맡은 지힐렛이, 이사크레아 영지를 경영하고 있던 카일이 각각 빠르게 반응을 보내왔다.
가장 먼저 의지를 보내온 것은 헤사벨이었다.
‘돌아오셨군요!’
‘그래. 그런데 아직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내 위치가 가늠이 되나?’
‘북쪽이라는 것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헤사벨은 부르면 즉시 달려올 듯한 충성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애당초 생선이나 배를 탄다는 개념 자체를 낯설어하는 완벽한 내륙 국가 사람이다. 아이작은 헤사벨에게 소금 의회에 자신이 있는 방향을 수색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헤사벨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럴 필요 없을 겁니다.’
‘왜? 이 기회에 나를 이 바다에 아예 담가버리려고?’
‘예? 무슨 말씀을…… 소금 의회는 이미 아이작 님을 수색 중입니다. 아이작 님이 돌아오셨으니 이미 계신 곳을 향해 가고 있을 겁니다.’
아이작은 그러니까 소금 의회가 자신을 어떻게 찾느냐고 말하려다가 문득 오른손에 무언가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너무 꽉 쥐고 있어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물건이었다.
‘……!’
그것은 사공, 아니, 우르반수스의 익사자 왕이 아이작에게 마지막에 넘겨준 물건이었다.
그때 해안가 한쪽에 배 한 척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 배 한 척을 필두로 해안가를 따라 샅샅이 수색하던 배들이 줄줄이 연이어 따라 들어왔다. 아이작은 선수에 매달리다시피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아이작과 눈이 마주친 에이단이 반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
아이작이 있던 섬은 북부 스반바르 군도의 무인도였다. 스반바르 군도는 세상의 화로 교단의 영향을 받는 아를 부족 동맹의 세력권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털 날리는 짐승들이 탄 순찰선이나 경비대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소금 의회가 교묘하게 숨어다니며 아이작을 찾아다닌 덕분이었다.
익사자 왕이 죽던 그 순간, 소금 의회의 사제들은 일제히 모두 사후세계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신성의 기운과 확신,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한 신성함을 느꼈다고.
그 뒤로 그들은 48일에 걸쳐 아이작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48일.
그게 아이작이 사후세계에 잠깐 발붙인 동안 현실에서 흐른 시간이었다. 아이작은 이 어마어마한 시간 낭비에 깊은 분노를 느꼈지만, 어차피 촉수 괴물의 폭주 여파로 한동안 앓아누웠을 것을 생각하자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들이 아이작이 돌아오자마자 단번에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특별한 성물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날 찾아냈다는 거군.”
“예. 맞습니다!”
에이단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익사자 왕의 사체 주변에서 아이작 님이 돌아오실 것이라 생각해 주변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취가 심각하고 아를 동맹의 경비대와 마주치면 곤란해서 숨어 있었죠. 그러던 와중 이 성물이 반응하며 움직이는 걸 보고 바로 돌아온 겁니다!”
에이단이 손에 든 것은 아이작이 만들어 준 적 있는 성물, ‘표류자의 고향’이었다.
[표류자의 고향(희귀)] [병 안에 바닷물을 담으면 배 모형의 선수(船首)가 늘 바닷물을 담았던 그 장소를 향한다.]정말 보잘것없는 성물이라 생각했는데 그 성물은 기묘하게도 아이작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작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표류자의 고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이단은 설명을 시작했다.
“의식을 잃은 사이, 저 또한 우르반수스 안에 빨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의도치 않게 생환 의식을 치른 것이지요.”
“생환 의식을 치렀다고? 그러면…….”
“예. 저 역시 우르반수스 안에서의 기억이 없습니다만, 깨어났을 때 사제로서의 기적이 허용되었더군요.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니나……. 하야니스 선장이나 옌코스 의장은 달우물 의식을 준비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저승에 발을 담갔다 뺐다는 점에서 에이단은 사제로서의 의식을 치른 셈이다.
이건 예상치 못한 이득이긴 했다. 아이작을 믿고 따르는 에이단이 단순히 상인이나 고고학자를 넘어서 사제의 지위까지 얻은 것이니까. 심지어 보통의 사제보다 기적의 힘도 훨씬 더 강하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르반수스에서 돌아오고 나니, 표류자의 고향이 이상하게 변했더군요. 물은 하얗게 탁해졌고, 배는 한 곳을 가리키지 못하고 기울어진 채 하늘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딱 방향을 가리키더군요. 그래서 그 방향을 따라왔더니, 아이작 님이 계셨던 겁니다!”
아이작은 에이단이 든 성물을 살펴보았다. 그 안의 물 색깔은 아이작이 보았던 소금 사막에 찰랑거리던 것과 닮아 있었다.
“이건 사후세계의 물이다.”
“예?!”
에이단이 기겁하면서 성물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처럼 그것을 소중하게 감싸고 들여다보았다. 천년 가까이 단절되어있던 사후세계를 증명하는 물건이다.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아이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익사자 왕이 준 표류자의 고향도 들어 올렸다. 거기에도 같은 물이 담겨 있었다. 아이작은 아문달라스의 말이 떠올랐다.
‘증거를 함께 보내겠다고 하더니 소박한 걸로 보냈군.’
하지만 아이작은 소박하다며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성물은 그 자체의 기능보다 거기 담긴 역사와 사건이 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때가 있었다.
아이작이 가진 가장 귀중한 성물인 ‘분열 예식’은 단순한 단검이었지만, 엘릴의 심장을 뽑은 뒤로 천사도 찢어 버리는 주술 도구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후세계의 물이 담긴 성물이 평범하리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일단 당장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문달라스가 나를 꿈꾸는 자로 계시할 증거로 내려보내겠다고 했으니 어딘가에 쓸모는 있겠지. 일단 이 섬부터 빠져나가고…….”
그때 아이작은 에이단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아니, 잠깐, 그 전에 아문달라스? 그건 누굽니까? 알려지지 않은 천사입니까? 그리고 꿈꾸는 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좀 말해 주십시오! 아이작 님!”
***
아이작은 귀찮게 매달리는 에이단을 떼어내고 선실로 들어왔다.
에이단에게 설명 못 해 줄 것도 없겠지만, 나중에 히야니스나 옌코스 같은 의회 선장들을 만나면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할 것이라는 예감을 강하게 느꼈다. 어차피 아이작은 귀환하기 전에 노르덴 항에 다시 들러야 했다.
“펜과 종이 좀 가져다주게.”
아이작은 잔심부름을 맡은 선원에게 종이와 펜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금 의회 사제들은 그들의 학구적인 탐구심 때문이든, 혹은 목마른 신앙심 대문이든 아이작에게 우르반수스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호기심과는 별개로, 아이작 역시 자신의 기억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우르반수스는 이렇든 저렇든 앞으로 나와 깊게 연관될 것이다.’
아이작은 우르반수스의 풍경을 생각나는 대로 그려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소금 사막은 우르반수스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우선은 가장 먼저 눈에 띈 구조물, 피라미드였다.
너무 거대해서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던 피라미드.
그것은 우르반수스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으레 그렇듯이, 물리적 실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어떤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어쩌면 그 피라미드 자체가 우르반수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피라미드 부분 부분에 존재하던 눈에 띄는 장소들이 각 신앙들의 사후세계라고 봐도 되겠지.’
아이작은 피라미드 곳곳에 눈에 띄었던 기이한 공간들을 떠올렸다. 그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각 신앙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벽체를 타고 흐르는 붉은 강은 붉은 성배에서 흘러넘치는 피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불이 타오르는 균열은 세상의 화로, 깨진 조각들이 질서를 이루는 공간은 엘릴, 이런 식으로.
당연히 피라미드 하부의 소금 사막은 소금 의회의 사후세계이리라.
소금 사막은 그 위에 서 있을 때에는 아주 거대해 보였지만, 막상 피라미드를 내려다보는 시점이 되자 손톱만큼이나 작았다. 아이작은 그 외에도 피라미드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들을 체크했지만,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신앙들을 뜻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다만 최상단의 태양이 빛의 법전을 상징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바로 그 ‘질서’가 주변을 침식하는 검은 무리들을 물리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검은 무리는 불사 교단인가?’
하지만 아이작은 곧 스스로 부정했다. 불사 교단의 사후세계는 우르반수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후세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으니까.
‘그러면…… 이름 없는 혼돈일 가능성이 높겠군’
문득 아문달라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르반수스에는 아홉 신앙의 사후세계만 존재한다고 했지.’
여덟이 아닌 아홉이다.
그렇다면 우르반수스 어딘가에는 이름 없는 혼돈의 사후세계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300년 전에 전멸해 버린, 그 신도 전체가 몰려 있는 사후세계가 우르반수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작은 피라미드 어디서도 그럴만한 장소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본 우르반수스의 풍경 속에서, 내키진 않지만 추측되는 장소가 바로 떠올랐다.
피라미드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침식하던 무리들.
주변을 침식하던 그 검은 무리들이 바로 300년 전 자살한 이름 없는 혼돈의 사후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복잡해진 아이작은 일어서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사후세계의 지도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그림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추상적인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당장 선명하게 만들어야 할 것은 아이작의 앞길이었다.
‘내 목적은 여명군에서 활약해 성지를 탈환하여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로를 인정받고 찬사받으며 잘 먹고 잘사는 것.
이렇다 할 것도 없이 깔끔한 목표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빛의 법전은 성지를 탈환하려 하고, 불사 교단은 성지를 지키고자 한다.
다른 군소신앙들은 이합집산에 따라 그걸 협력하거나 방해하지만, 결국 성지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많은 결과가 바뀐다.
신앙들이 아이작의 목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말은 성지 때문에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는 거지.’
그 결과가 게임과 완전히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아이작은 여러 번 게임의 엔딩을 보았지만, 게임은 엔딩 이후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 주지는 않았으니까.
결국 성지를 차지하는 것이 우르반수스의 어떤 우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이작은 머리가 복잡해지기 전에 다시 정리했다.
그는 누굴 섬기자고 이 세계에 온 것이 아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고, 빛의 법전이고, 불사교단이고, 어쩌고…… 이득이 되면 취하고, 방해가 된다면 치울 뿐이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복잡한 관계들을 하나둘 지웠다.
모든 권력, 천사, 신앙, 시간, 그리고 관념들을 지웠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만 남았다.
이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모두의 목적이 분명하다면, 내가 이용해 먹기도 쉽다는 뜻이겠군?’
즉, 그의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