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화제의 영애 (4)
피가 비처럼 흩뿌려졌다.
지저분하게 씹어 먹히는 수렵단장의 파편이 뒤뜰 곳곳에 떨어졌으나, 그마저도 촉수가 남김없이 포식했다.
처참한 광경에 살아남은 인간사냥꾼들은 발작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아아아아!”
팡, 팡. 헤사벨의 석궁이 남은 놈들의 머리통을 바닥까지 꿰어 엎드리게 만들었다. 이내 포식을 마친 촉수는 다시 저 너머의 색채 아래로 사라졌다.
‘이런.’
어두운 성찬례의 효과로 부근에 있던 인간사냥꾼들은 전부 공포에 사로잡혀 넋을 잃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렵단장이 마지막에 발동한 기적은 제 몸을 피 안개로 변화시키는 붉은 탄원이었던 것이다.
놈은 피 안개가 된 상태에서도 어두운 성찬례의 영향을 받은 건지, 패닉에 빠져 루주베르크 상공을 휘저어대다가 사라졌다.
아이작은 혀를 차며 재빨리 바닥에 머리가 박혀 있는 인간사냥꾼을 뽑아냈다. 놈은 한쪽 눈에 화살이 관통당한 상태였지만 다른 한쪽이 남아 있으니 상관없었다.
“네놈들 대장은 어디로 갔냐?”
대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아이작의 눈이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꺼풀을 비집고 나온 가느다란 촉수들이 순식간에 인간사냥꾼의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곧 아이작은 그들의 작전과 유사시 행동 방침, 그리고 원래 어떤 계획이었는지까지 샅샅이 알아냈다.
그리고 혀를 찼다.
“탑으로 간다고?”
놈들은 이솔데가 숨어 있는 장소를 이미 알고 있었다.
***
후드드드득, 콰득, 쿵.
피 안개 형태로 미친 듯이 방황하던 수렵단장은 이내 그 기적의 힘을 잃고 원형으로 돌아갔다.
수렵단장은 지붕에 떨어져 구르다가 이내 마당의 흙바닥에 충돌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도망치려다가 텅 빈 손목으로 바닥을 짚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제야 정신이 약간 돌아온 것 같았다.
심연의 손아귀에 집어삼켜진 순간, 그는 전에 없는 공포를 느꼈다.
어두운 성찬례 효과 때문이었으나 그는 절대로 다시 그 경험을 또 겪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부턴가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인간사냥꾼이 된 뒤로 한 번도 흘려본 적 없는 눈물이었다.
‘안 되겠어. 다시 그 괴물하고 맞설 수는 없어.’
그는 숨을 헐떡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붉은 탄원을 발동하기 위해 자른 손목은 재생되지 않았다. 붉은 성배에게 바친 제물이니 당연했다. 형태는 복구할 수 있었지만 거대한 촉수에게 혈액마저 대거 빼앗겼던 터라 완전하다곤 말할 수 없었다.
손목을 잃고 부하들도 잃었다.
그리고 그가 모셔야 할 천사인 붉은 살점의 선지자마저.
‘원래 계획대로 했더라면…….’
원래 계획은 탑에 은거 중인 이솔데를 기습해 납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연회가 열리자, 탑보다 훨씬 더 납치하기 쉬운 장소로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해 계획을 바꿨다. 그런데 상대가 미끼였을 줄이야…… 심지어 그런 괴물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일단은, 일단 도망쳤다가 재정비하고…….’
탈출할 경로를 다시 찾아보던 수렵단장은 문득 눈앞에 뭔가 거대한 것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들이 습격하기로 되어 있던 바로 그 탑이었다.
수렵단장은 홀린 기분으로 비틀거리며 탑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벼락 치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애초에 저 연회는 그들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자신은 바보같이 그 미끼에 낚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솔데 브란트는, 아니, 붉은 살점의 선지자께서는 아직 여기에 계신단 말인가?’
그는 비틀거리며 탑 앞으로 다가가다가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달콤한 냄새.
아직 남아 있는 갈애의 교리 냄새이기도 했지만, 붉은 살점에게서 풍겨 오는 냄새이기도 했다.
수렵단장은 낭떠러지에서 구명줄을 잡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수렵단이 전멸하고 자신은 처참한 부상을 입었지만, 만약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구출한다면, 그녀의 살점 일부라도 얻을 수 있다면 즉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살길은 이것뿐이었다.
수렵단장은 탑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당연히 잠겨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미친 듯이 문을 두들기다가 이성을 되찾았다.
서둘러야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손목이 잘린 부위를 열쇠 구멍에 욱여넣었다.
흘러내린 피가 열쇠 구멍 안에서 바싹 굳으면서 잠금장치를 풀었다. 안 그래도 적은 피를 더 소모해야 했지만, 문이 열리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이솔데를 인질로 잡기만 하면…….
그때 그는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처투성이 백색 갑옷에 은은하게 불타는 검을 든 사람이었다.
수렵단의 암살 목록 상위권에 기록된 자인만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수련단장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성배기사?”
쾅. 성배기사가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이미 진이 빠져있던 수렵단장은 그대로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버르적거리며 겨우 허리를 세운 수렵단장은 덜덜 떨리는 눈으로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북해에서 수장됐다고 알려진 성배기사가 왜 저기 있단 말인가?
아리엣 계곡에서 인간사냥꾼들을 전멸시키고,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추방하고, 익사자 왕을 물리쳤다는 그 성배기사다.
사지 멀쩡한 상태에서도 맞설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저벅. 그때 성배기사가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 하하.”
수렵단장은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거짓이었는지,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이 수렁 같은 함정에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가오는 성배기사 앞에서 불가해한 세상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흐, 흐하, 흐하하…….”
그러다 문득, 그는 묘한 냄새를 맡았다.
탑에 들어오기도 전에 맡았던 냄새.
붉은 살점의 냄새.
그가 추종하며 섬기는 천사의 권능이 성배기사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렵단장은 완전히 나가 버릴 것 같은 정신 속에서 오직 그 한줄기 향기만을 구원으로 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 그를 사로잡았다.
“저의, 천사를!”
그는 미친 듯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중얼거렸다.
“저의, 천사를, 배알합니다!”
***
아이작은 탑에 도착했을 때 목격한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수렵단장은 지면에 머리를 박다가 기절한 건지 피를 한 웅덩이 흘린 채 기절해 있었고, 아이작의 갑옷을 입은 이솔데가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러 바깥까지 나왔어요?”
“어차피 문도 열렸고, 혹시라도 싸우게 되면 탑 안보다는 밖이 더 편할 거 같아서…….”
이솔데는 무거운 갑옷이 거치적거리는지 팔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경량화에 근력 증가 등 온갖 편의성 기적이 걸린 갑옷이었지만 편한 가죽옷만 입고 다니던 이솔데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듯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갑옷은 이솔데를 탑에 남겨 두고 아이작은 연회에 참가하기로 했을 때, 혹시나 싶어서 빌려준 갑옷이었다. 만약 그 갑옷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덤비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본적으로 성기사 갑옷은 착용자 몸에 맞춰지는 기적이 있어서 이솔데가 입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이솔데의 모습은 아이작에게 다른 이유로 부담스러웠는데, 그 갑옷은 사실상 아이작의 껍질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안쪽에는 촉수들이 엮여서 근력과 내구성을 증가시키고 있었는데, 감각을 공유하는 덕분에 이솔데의 몸 윤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덕분에 수렵단장이 이솔데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갑옷의 단단함을 믿기도 했고, 갑옷 근처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뭣보다 애당초 이솔데는 납치하기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본인의 실력 자체 그렇게 허접하지도 않은데다, 정 어려우면 아궁이 짐승만 소환해도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녀가 원했다면 즉시 실력 있는 기사들을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다. 방심한 건지 혼란에 빠져 실수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상태가 멀쩡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 같았다.
“이 자는 저더러 ‘천사를 배알합니다’ 같은 말을 하더군요. 붉은 살점 때문에 그런 걸까요?”
“흐음, 그런 것 같군요. 자세한 건 알아봐야겠습니다만.”
아이작에게는 상대가 죽어도 상관없다면 기꺼이 써먹을 수 있는 신뢰도 100%의 심문 수단이 있었다.
수렵단장이라면 아는 정보가 많을 것이다.
“음, 그러면 심문은 맡기지요. 그런데…….”
이솔데는 묘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굉장히 잘 어울리시는군요.”
아이작은 격한 전투를 치르느라 옷 곳곳이 흐트러지고 피가 묻긴 했지만, 여장이 망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꽤 잘 어울리는 외모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꼽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옷을 바꿔입은 두 남녀는 한참 동안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허공에서 시선을 헤맸다.
***
일리야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손이 뒤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깨어난 기척에 뒤뜰에 서 있던 아이작이 고개를 돌렸다. 똑같은 드레스 차림에 놀라운 외모였지만 인상은 처음 봤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아무런 감정도 찾아보기 힘든 냉막한 얼굴이었다.
“잠깐, 이건 무슨…….”
일리야는 따지려다가 뒤뜰에 아이작만이 아니라 디트리히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얼어붙었다. 그는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디트리히에게 다시 인사했다.
“공작 전하, 오해가 있으시다면…….”
“오해? 그대가 내 딸을 혼자 불러낸 자리에 왈라이카 인간사냥꾼들이 숨어 있었는데 무슨 오해가 있을지 궁금하군. 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네.”
일리야는 이를 갈았다.
정황상 모든 것이 그를 의심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 친구를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사냥꾼들에 대해서는 저도…… 잠깐, 그 인간사냥꾼들은 어떻게 됐지요? 그놈들을 심문해 보십시오. 저는 모릅니다!”
“놈들은 전부 도망쳤다.”
대답한 것은 아이작이었다.
“내가 공녀가 아닌 데다 제압하기도 힘든 것 같으니 그냥 도망치더군. 추적대를 보냈지만, 한밤중에 달아나는 인간사냥꾼들을 잡기는 힘들겠지.”
당연히 찾기 힘들 것이다.
수렵단장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미 뒤뜰의 양분이 되었거나 촉수가 맛있게 먹어 치웠으니까.
일리야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작의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배기사? 설마 아이작 이사크레아 경입니까?”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아이작이 아니라 디트리히였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일리야의 얼굴을 걷어찼다. 어지간한 귀족들도 씹어먹는다는 이단심문청의 동부지부장의 이빨이 뒤뜰에 쏟아져 내렸다.
“지금 네가 질문할 입장이라 생각하나!”
일리야가 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작은 약간 미안함을 느꼈다.
일리야가 아이작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수렵단장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결과를 통해 일리야가 진짜로 인간사냥꾼들과 무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리야를 바짝 바닥에 엎드리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일리야는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바닥에 댔다.
“억울…… 아니, 죄송합니다. 결코 공녀님을 위험에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용히 전달드려야 할 메시지가 있어서 부르려 했을 뿐입니다.”
“조용히 전달할 메시지?”
“갈애의 교리에 관한 것입니다.”
“이솔데가 붉은 살점을 먹었다는 것? 그거라면 이미 해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