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뱃속의 칼날들 (2)
아이작은 검을 들어 올렸다.
연습용 검이라지만 제법 묵직한 것이 진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르네가 자연스럽게 돌 하나를 주워 들고, 그들 사이로 던졌다.
돌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순간이 신호가 되었다.
아이작과 바슐의 몸이 동시에 움직였다.
쩍.
한순간 정원의 풀들을 파르르 떨게 만드는 파공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작과 바슐은 서로 놀란 눈빛을 교환했다.
정확하게 맞물린 자리에 교차한 두 검은 다시 움직일 때를 노리고 있었다.
아이작은 재빨리 튕기듯 거리를 벌렸다. 바슐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아이작은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슐은 이미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듯 굳은 표정이었다.
아이작도 깨닫기 위해서는 다시 검을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당연히 바슐은 그 검을 걷어 내고 아이작의 손목, 혹은 머리를 노렸다. 그러나 아이작은 그것 을 어째서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걷어 내려는 시도 따위는 소용없을 정도로 강하게 내려쳤다. 손목이 부러지거나 머리가 깨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만한 타격이지만, 바슐은 오히려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아이작이 휘두르던 검은 이제 오히려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바슐의 움직임에 당황하지 않고 폼멜을 휘둘러 콧등을 노렸다. 그러나 미처 힘을 얻기 전에 바슐의 왼손에 막혔다.
턱. 바슐의 왼손에 손을 봉쇄당한 아이작은 그의 어깨를 빗맞추고, 바슐은 아이작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역시 황실 근위 기사단의 수석 기사님이시군요.”
아이작은 담백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간신히 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하지만 바슐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검을 아이작의 목에 댄 채 치우지 않고 물었다.
“칼은 누구한테서 배우셨습니까?”
“제가 수도원에서 신세 질 때 은혜를 베푸신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귀한 분을 만나셨군요.”
바슐은 아이작의 목에서 목검을 떼고 물러났다. 그제야 숨을 죽이고 있던 르네가 짝짝짝 박수를 쳤다.
“형편없는 대결이었을 텐데 박수까지 치실 것 있습니까?”
“아뇨.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적어도 바슐 수석 기사님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하신 거잖아요? 황실 근위 기사단의 말입인 제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때 바슐이 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르네. 성배기사님은 지금 실력을 숨기고 계시다.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천사를 퇴치하셨겠나? 내가 다치실까 봐 자제하시다가 실수하신 거지.”
“엥, 그건 수석 기사님도 마찬가지…….”
르네는 경망스럽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바슐이 이긴 게 명백한 대련에서 봐줬다고까지 하면 성배기사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도 바슐이 전력을 다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한 게 맞는데 억울하군.’
물론 촉수도 쓰지 않고, 기적도 사용하지 않고, 상급 검술도 쓰지 않고, 소지한 성물도 쓰지 않고, 소환수도 불러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순수한 검술싸움에서는 일방적으로 패배한 것이 사실이었다.
성기사를 제외하면 제국 최강이라 할 수 있는 황실 근위 기사단 수석 기사를 상대로 이겨 먹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지만.
하지만 이 대련에서는 그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바슐의 눈이 가늘게 호선을 그리며 아이작을 응시했다.
“어쩌겠습니까, 성배기사님? 이번에는 조금 더 진지하게 대련해볼까요?”
무언가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이작은 이다음부터는 생사를 오가는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저, 저, 저요! 저도 해볼래요!”
르네가 호들갑을 떨며 바슐의 연습용 검을 빼앗듯 쥐었다. 그녀는 호기롭게 검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리며 아이작을 겨냥했다.
“한판 해봅시다, 성배기사님! 천사를 물리친 솜씨를 보여주세요!”
바슐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아이작은 받아들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날, 아이작은 르네의 손에 무참한 연패를 겪었다. 상급 검술은 쓰지 않았지만, 쓰더라도 이길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쓰린 패배 속에서도 얻은 것은 있었다. 르네에게서 얻지는 못했지만.
바슐이 쓰는 검술은 아이작에게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아이작은 바슐과 처음 겨뤘던 첫 동작을 몇 년 동안 수천, 수만 번 반복했으니까.
바슐은 아발란체 검술을 쓰고 있었다.
***
‘나는 네게 기초만 가르쳤지만, 분명 아발란체 검술의 기초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다. 나와 똑같은 검술을 쓰는 사람일 테니까.’
아리엣 수도원에서, 아이작이 아직 수도원의 고아에 불과했던 시절.
게벨은 아이작에게 검술을 가르치면서 단 한 가지 당부만을 했다.
‘마주친 즉시 그 자리에서 죽여라.’
그게 아이작에게 검술을 가르친 대가이자 아이작의 안전을 위한 당부였다. 왜냐면 상대방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아이작은 오늘 바로 그 아발란체 검술을 쓰는 또 다른 상대방을 만났다.
‘……문제는 하필 그 사람이 검술 실력만 놓고 보면 게르토니아 제국 최강자라는 건데.’
게벨은 마주친 즉시 그 자리에서 상대를 죽이라고 당부했지만, 아이작은 그럴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수로 황실 근위 기사단의 수석 기사를 마주치자마자 죽인단 말인가. 촉수를 쓴다면 모르겠지만, 황제가 바로 벽 너머에 있는 저택 정원에서 괴물이 되는 꼴은 피하고 싶었다.
그건 그냥 자살행위였다.
게벨에게 많은 것이 고맙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자살행위에 뛰어들 만큼 고맙진 않았다.
다행인 점은, 바슐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점이었다.
게벨은 상대방도 아이작이 아발란체 검술을 쓰는 걸 보면 죽이려 들 것이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바슐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도 황제 폐하 면전에서 한창 떠오르는 성배기사이자, 브란트 가의 사위로 예정된 사람의 명줄을 끊는 짓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결국 피차 죽이기 껄끄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는 바슐의 말이 맞았다.
대련 덕분에 복잡한 생각은 깡그리 날아가고 한 가지 생각만 남은 것이다.
‘제국 최강자 급의 기사를 대체 어떻게 죽이지?’
물론 가진 힘만을 놓고 보면 바슐보다 강한 사람은 많다. 바슐이 아무리 강해 봤자 개인이다. 신의 총애를 받는 황제나 천사들과 소통하는 교황, 기적을 온몸에 둘둘 두른 성기사단 단장들…… 그들은 확실히 바슐보다 강하다.
하지만 개인의 검술만을 놓고 보면 제국에서 바슐보다 뛰어난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아이작은 천사를 상대하는 마음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총력을 다해야 했다.
***
솨아아아아…….
파도가 해변으로 몰려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늦은 밤 해안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파도 소리와 자잘한 모래사장은 작은 발걸음 소리도 감춰 주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바슐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작이 긴장한 보람도 없이 바슐은 루주베르크가 있는 방향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너무 먼 거리에서 발견한 데다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느긋하게 걸어왔기 때문에 그가 도착할 때쯤 아이작은 약간 지친 상태였다.
바슐은 대략 스무 걸음 정도 되는, 대화하기에는 어색하지만 서로 긴장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멈춰 섰다.
아이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른 적도 없는데 찾아오셨군요?”
“내가 혼자 있었으면 네가 찾아왔겠지. 이게 초대가 아니고 뭔가.”
스릉.
바슐은 느슨하게 검을 반쯤 뺐다. 언제든 휘두르겠다는 태도였다.
“참고로 굴마르 가의 여식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면, 이미 쫓아내고 왔다.”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아이작은 헤사벨의 기척이 저 멀리서 느껴지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둡시다. 당신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검술을 쓰고 있는 거 맞죠?”
“확인해봐. 나도 확인해볼 테니.”
검을 빼는 것과 찔러 들어오는 것이 한 호흡이었다. 너무나 조용하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져서 검을 뽑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스무 걸음의 간격은 바슐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이작은 이를 악물고 피했다.
불꽃이 튀고 갑옷 표면이 갈라졌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야말로 아이작을 죽이기 위한 공격이었다.
바슐은 아이작이 피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얼굴을 향해 찢듯이 날아오는 검에 더 놀랐다.
파르르륵! 쓰러질 듯 위태로운 자세에서 휘둘렀는데도 아이작은 바슐의 회색 머리카락 몇 올이 아슬아슬하게 잘라냈다.
아이작은 곧바로 이삭 검술: 여덟 갈래를 사용했다. 모래사장의 마른 모래들이 사납게 몸을 일으키면서 바슐을 향해 몰아닥쳤다.
바슐은 그 궤적 하나를 쳐냈다가 그 사나운 힘과 물어뜯는 듯한 끈적한 느낌에 놀랐다.
그러나 그 순간 공기를 터뜨리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작은 아득한 충격에 한순간 휘청거렸다.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균형이 전혀 잡히지 않는 걸 보아 반고리관이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바슐이 아발란체 검술의 전조 동작을 수행하면서 여덟 갈래를 모조리 쳐낸 것이다. 바슐은 아이작이 균형을 잃은 것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아이작은 괴물 같은 재생력으로 고막을 복구해 냈다.
가까스로 다시 공방이 시작되었다.
“겨우 이 정도가 아닐 텐데! 겨우 이 실력으로 천사는 어떻게 퇴치했지? 그 예쁘장한 얼굴로 미인계라도 썼나?”
“너 따위를 사냥하는데 미인계를 쓸 필요나 있을 것 같나?”
아이작의 비아냥에 바슐은 이를 악물었다.
“너 따위는 칼 한 자루로도 이길 수 있다!”
모래가 튀어 오르고 공기가 찢어졌다. 파도가 묵묵히 달빛을 박살 내는 가운데, 모래사장 위로 두 사람의 발자국과 검흔이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바슐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어쨌든 상대는 천사를 상대한 성배기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천사를 퇴치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비장의 한 수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미리 패를 보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는 일방적으로 바슐이 가져가고 있었다. 상처가 생기는 것도, 숨을 터질 듯이 몰아쉬는 것도 아이작뿐이었다.
하지만 바슐은 기이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작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
바슐은 사선으로 찌르기 동작을 시전했다. 아까 아이작은 이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쳐내다가 손목이 부러질 뻔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검날을 비틀어 빗겨냈다.
바슐은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설마 지금 나한테서 검술을 배우고 있는 건가?’
얼토당토않은 일이지만 아이작의 실력은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낮에 대련을 하던 아이작과 지금 목숨 건 승부를 하는 아이작은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 상처가 하나 더 생길 때마다, 폐를 쥐어 짜내는 숨이 터져 나올 때마다 그의 수준은 한 걸음씩 올라서고 있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은 비장의 수를 꺼내 들고 있지 않고 있었다.
그 무서운 성장세에 바슐은 갑작스럽게 두려움마저 느꼈다.
쾅! 바슐의 공격이 갑작스럽게 사나워졌다.
아이작은 단숨에 휘청거리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어느 순간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밀려온 파도가 그의 발목을 적셨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바슐의 검이 스산하게 빛났다.
콰드드드드득!
둘의 검이 다시 한번 맞부딪쳤다. 아이작은 무릎을 꿇을 뻔했다. 말도 안 되는 압력이 검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아니, 검만이 아니라 어깨, 머리, 척추, 그의 몸 전체에 전달되고 있었다. 사람을 짓이기는 듯한 힘.
“네 스승이 이 동작은 안 가르쳐준 모양이지?”
아이작은 이것이 상급 검술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발란체, 말 그대로 산사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폭력이었다. 아이작은 이대로 무릎을 꿇지 않으면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리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촤아아아악. 그때 밀려온 파도가 아이작의 발목을 적셨다.
그리고 아이작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
이삭 검술: 톱날찢기.
콰자자자작!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저 칼날을 맞대고 있을 뿐이던 검이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거기서 불타오르듯 폭발적인 기세가 피어올랐다.
아이작의 검은 순식간에 바슐의 검을 물어뜯듯 파고들었다.
“무슨……?!”
바슐은 재빨리 대응하려 했지만, 그의 몸이 기울어지며 힘의 균형을 잃었다. 평탄한 모래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아이작이 그보다 위에 있었다.
아이작은 파도를 타고 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파도의 교리?’
바슐은 뒤늦게 소금 의회의 변변찮은 기적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그는 어이없어하며 칼 한 자루만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따지려 했다.
그러나 이미 기세는 상대에게 넘어간 뒤였다.
산산이 부서진 검이 파도의 포말처럼 흩뿌려졌다.
그대로 찍어눌러 아이작을 끝장낼 생각이었던 바슐은 오히려 자신이 찍히는 위치가 되고, 그대로 검이 박살 나자 아이작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아이작은 바슐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찍어 내렸다.
산사태 같은 압력이 바슐을 찍어눌렀다.
까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