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종말처리자 (1)
바슐의 지도 아닌 지도에 아이작의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아이작은 이미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검술은 제대로 된 형식을 따른 것이라기보단 실전을 거친 임기응변의 모음집에 가까웠다. 게벨은 그에게 기초만 가르친 채로 내보냈는데, 아마 알아서 성장하길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칼센의 괴물 같은 재능을 흡수한 덕분에 아이작은 주변에 있는 마주치는 모든 검사들에게서 포식하듯 검술을 흡수해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걸로 성기사도 때려잡고 언데드도 때려잡고 천사도 때려잡았다.
아이작의 적은 사람보다는 괴물이 많았기 때문에 게벨의 말은 어느 정도 옳았다.
하지만 정통파 검사인 바슐의 눈에는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쩍, 쿠쿠쿵. 살벌하게 날아온 아이작의 검을 쳐낸 바슐은 언짢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살기가 너무 뚝뚝 묻어나온다. 적을 단칼에 베겠다는 마음은 알겠는데, 조금 갈무리하면 좋겠군.”
“직업상 마주치는 적들은 아무래도 다시 볼 일이 없는 놈들이 많아서…….”
자신의 비밀을 알아채는 자는 반드시 죽이든가 세뇌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서 그런지, 검술에서도 촉수만큼이나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의 검기가 전기톱마냥 물어뜯는 형상으로 피어오르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절제되지 않는 살기는 스스로를 지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과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네 검기는 독특한 만큼 눈에 띄어. 자제하는 법을 알아야 해.”
훅, 후웅, 쩌억.
아이작과 바슐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다가 마주 닿았다. 아이작이 사납게 피워내는 톱날 찢기의 검기 속에서도 바슐의 검은 평온했다.
그리고 이전에 맞부딪친 순간 박살 났던 것과 달리, 그의 검은 평온하게 꼼짝도 않고 있었다. 대신 은은한 청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격렬하게 진동하며 뒤로 밀려나는 것은 아이작의 검이었다. 급기야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작의 검이 뒤로 튕겨 나갔다. 팔이 올라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슐은 곧바로 아이작의 어깨와 목 사이로 검을 찔러넣었다.
아이작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스무 번째 완패였다.
바슐을 상대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검술만으로 바슐을 이길 가능성이 보이질 않았다. 따라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몇 발자국 더 나간 모습을 보여 주었고, 가늠이 된다 싶으면 더 아득한 경지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바슐은 아이작을 보면서 혀를 찼다.
“소름 돋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군. 너는 괴물이냐?”
“……괴물을 몇 번이나 쓰러뜨린 놈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이제 네 버릇이나 습관을 전부 파악해서 그렇다. 솔직하게 말하지. 이제는 네가 지금까지 배운 걸 싹 다 털어내지 않으면 날 이길 수 없다. 설령 엘릴에게 직접 사사받고 온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지금까지 배운 걸 싹 다 털어내다니, 그게 쉬운 일인가.
아이작은 바슐이 태연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얼마나 어렵게 쌓은 실력인데.
바슐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단점은 자꾸 꼼수를 써서 이기려고 한다는 점이다. 꼼수는 들키면 오히려 네 약점이 되는데, 나는 이미 네 버릇을 전부 파악했지. 즉, 이제 네 어떤 꼼수도 내게 통하지 않는다.”
바슐은 두 번째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두 번째는 이미 말했다시피 살기가 지나치다는 거다. 노골적인 살기는 검로를 훤히 보이게 만든다. 꼼수를 동원해서 그 단점을 커버하려는 것 같던데, 나를 봐서 알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상대라면 두 번 세 번은 통하지 않는다. 살기를 갈무리해.”
바슐은 어두운 눈동자로 아이작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미친놈이 악을 쓰며 칼을 휘둘러 봤자 겨우 한두 명이나 죽이고 제압당한다. 하지만 감정 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싸우는 군인은 하루 종일도 사람을 죽이지. 문명인이라면 정숙하고 품위 있게 살인을 하도록 해라.”
아이작은 바슐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단점들은 모두 아이작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진 단점들이었다.
아이작은 목격자를 만들면 안 되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갖 비겁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써서 목격자, 주로 적을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꼼수와 살의는 아이작이 반드시 품을 수밖에 없는 본능이었다.
인제 와서 그걸 털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이만큼 기어 올라왔다 해도 그 기본적인 배경은 바뀌지 않았으니.
“그래. 쉬운 일은 아니겠지. 내 부하였으면 그 멍청한 대가리를 두들겨가며 개조할 텐데, 내 전우를 이용해서 죄책감을 자극하고 협박하니 그럴 수도 없겠군.”
아이작은 바슐의 폭언에 기가 막혔다.
황제 앞에서는 여유 있고 나긋나긋해 보이는 기사인 것처럼 보이더니 이게 원래 모습인 건가? 아니면 몇 번 투닥거리다 보니 전장에 있던 시절로 돌아간 줄 아는 건가?
아이작은 다시금 바슐에 대한 살의가 솟구쳤다.
‘사실 기적을 쓴다면…… 지금도 바슐을 죽일 수 있긴 하지.’
“또 꼼수 생각을 하고 있군.”
바슐은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이작은 투덜거리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거 기분 나쁘니 하지 말라니까.”
“살기가 노골적으로 느껴지는데 어쩌냐? 황실 근위대는 전부 적의를 느낀 순간 즉시 반응하게 되어있다. 예전에 정원에서 대련했을 때 르네가 호들갑을 떨면서 끼어들었던 것도 너와 내 살의를 읽어서 그랬던 거다. 뭔진 모르겠지만 둘이 진짜로 한판 할 것 같으니 말리고 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그 호들갑 아가씨에게 그런 깊은 속내가 있었다니.
하긴, 말입이라도 황실 근위대다. 제국 안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 당연했다.
“그래. 꼼수 탓은 이제 안 하마. 하지만 엘릴 대사로 파견되기 전까지 살기는 정돈하는 게 좋겠다.”
“왜?”
“품위 없어 보이니까. 엘릴 왕국에서는 아주 중요한 거거든.”
농담이길 바랐지만 바슐의 얼굴에서는 농담의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작은 대체 살기를 어떻게 감춰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바꾸지 않고 그럴듯하게 포장할 다른 방법은 없을지부터 고민하는 자신을 보고 좌절했다.
‘꼼수부터 생각하는 이 버릇은 고칠 수 없나?’
“그리고 죽을 때 되면 너 혼자 죽어야지, 그 살의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애꿎은 주변까지 끌어들일 것 같다.”
바슐의 말에 아이작은 촉수 괴물을 떠올렸다.
죽어 사라지느니 세상을 집어삼키겠다는 맹포한 살의. 아이작은 어쩌면 그 촉수에게서 이미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슐은 거기까지 말하고 검을 집어넣었다. 아이작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가? 아직 암살 시도 안 끝났어.”
“……내 직위를 잊고 있는 모양인데, 나 황실 근위 기사단 수석 기사다.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황제 폐하께서 너를 아끼시니까 검술 교련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잠깐 나온 것뿐이야.”
황제를 걸고넘어지는데 아이작이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아이작은 아쉽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바슐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널 가르친다고 네 실력이 눈에 띄게 늘 것 같지 않다. 너무 빨리 늘었어.”
“아직 널 이길 가능성이 안 보이는데?”
“말했지만 그건 내가 네 습관을 전부 파악했기 때문이다. 검만으로 싸우는 한, 네가 나보다 강해지더라도 날 못 이길 거다. 획기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 한.”
결국 고작 며칠 남짓한 시간 사이에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가르쳤다는 말이다. 아이작은 자신이 정말 그 정도로 강해졌나 싶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바슐은 항상 아이작을 일방적으로 박살 냈으니까.
“그리고 내일부터는 그 ‘암살 시도’도 불가능할 것 같군.”
“왜? 목숨이 아까워졌나?”
“아니. 황제 폐하께서 오늘 수도로 돌아가신다.”
***
황제가 움직이면 황실 근위 기사단도 함께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간만에 괜찮은 훈련 상대를 만났던 아이작은 아쉬워졌다. 엘릴 왕국으로 떠나기 전에 확실하게 검술 실력을 다져 두고 싶었는데, 결국 결정적인 단점은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결국 여유를 가지고 정직하게 행동하라는 건데.’
아이작은 혼자서 검을 몇 번 휘둘러 보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래서야 엘릴 왕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바슐은 대충 얼마나 강한 거지?’
말하는 걸 보면 과거에는 게벨과 동기였거나 비슷한 급의 기사였던 것 같은데, 실력은 그 몇 배로 보였다. 게벨이 수도원에 은거하며 지냈다는 걸 감안해도 한 사람은 황실 근위 기사단의 수석 기사라니, 너무 차이가 나지 않는가.
‘바슐. 게임에서 봤던 네임드는 아냐. 황실 근위 기사들은 보통 엘리트 중간보스급 정도로 나왔던 거 같은데…… 검기를 쓴다면 거의 성기사단 단장 중에서도 상급 레벨이겠군.’
같은 수준의 검술이라도, 기적을 발휘할 수 있는 쪽과 아닌 쪽의 차이는 확연하다.
바슐은 검술 실력만으로는 대륙 최상급일 것이다. 하지만 기적이 개입한다면 성기사단 단장 중에서도 그와 대등하거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
아이작이 촉수를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의 강함이 차원이 다른 것처럼.
하지만 바슐은 엘릴 신도다. 그가 적극적으로 엘릴의 기적을 쓴다면, 게르토니아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강자일 것이다.
‘어째서 이런 놈이 네임드가 아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성배기사님, 혼자서 칼 그렇게 휘두르면 나쁜 버릇 들어요.”
그때 아이작에게 또 다른 근위 기사, 르네 로메르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발트제메르 황제의 이동에 맞춰서 짐을 싼 듯,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제대로 된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미 바슐 수석 기사님께서 제게 나쁜 습관이 있다고 지적해주시더군요.”
“어머나, 바슐 수석 기사님께서요? 어지간하면 칭찬만 하시는 분인데.”
“제 멍청한 대가리를 깨부숴서 개조할 수 있으면 했을 거라던데요. 그 예쁘장한 얼굴로 미인계를 쓰고 있냐는 말도.”
“어머, 어머.”
“우리는 비밀이 많은 것 같다는 말도.”
“어머어머어머.”
르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얼굴을 붉히며 입을 틀어막았다.
인자한 수석 기사를 연기하고 있는 바슐의 평판에 흠집을 내는 데 성공한 아이작은 만족했다.
검술로 못 이기면 혓바닥으로라도 이겨야지.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다. 이걸로 이제 바슐은 폭언을 일삼는 데다 외모 품평이나 하는 음흉한 사람이 됐겠지?
르네의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소문이 생성되고 있었지만, 아이작은 그 사실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쿠르르르르.
저택 뒤쪽의 후원으로 단출하지만 고급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마차가 나왔다. 황실 근위 기사들 외에도 경호에 참가한 듯한 기마병들이 마차를 호위하며 늘어섰다. 제법 화려한 행렬이었지만 최근 루주베르크에 워낙 화려한 마차들이 들락거렸기 때문에 이 정도는 눈에 안 띌 것이다.
눈에 띄는 뿔을 가진 황제가 몰래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리라.
‘그러고 보니 황제가 왜 굳이 몰래 방문했는지는 듣지 못했군.’
브란트 공작과 사촌 형제니 공식적으로 방문해도 상관없을 텐데, 마음 편하게 만나고 싶었던 건가?
선두에 말을 타고 서 있던 바슐이 르네를 향해 턱짓했다. 르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위해 마련된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럼 만나 뵈어 반가웠습니다. 성배기사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솔데 공녀님과 함께 뵐 수도 있겠네요!”
바슐은 별 인사 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마중에는 이솔데도 함께했다. 공작 일가가 모두 나오는 것은 지나치게 눈에 띌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황제의 이동은 언제나 엄중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발트제메르는 마차를 움직이기 전, 창문을 살짝 열고 아이작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조만간 임명장을 보내겠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아이작은 그의 말을 듣고 안도했다. 이걸로 황제파에 무게추를 다시 싣는 데 성공했다. 그가 목숨을 부지하면서 성공하려면, 교단과 황실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
빛의 법전의 성자인 동시에 황제의 특사, 군부의 지휘관.
이 정도면 날벼락 맞아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후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은밀하게 드나드는 뒷골목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응?”
그때 이솔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골목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 황제의 마차가 지나가는 동선 맞은편, 골목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구걸하기 좋은 포인트는 아니었지만, 경쟁에서 밀리면 그럴 수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배경처럼 흔한 모습이었다.
“뭐 이상한 게 있습니까?”
“아뇨, 그게…… 느낌이? 응? 아이작, 뭔가 좀 불길한데요?”
이솔데는 부정확한 근거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이단심문관이 그러다가는 생사람 잡기 쉬우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이솔데의 ‘느낌’이 충분히 근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 살점의 선지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으며, 붉은 성배 클럽의 주특기는 암살과 음모다.
‘황제 시해’라는 단어가 아이작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차가 속력을 내어 골목을 향해 달리는 동시에, 아이작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