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종말처리자 (3)
꿀렁.
그것이 떨어진 자리는 어느 운 없는 주택이었다. 놈이 떨어진 순간 건물은 무너지는 대신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 거대한 몸체가 꿀렁거리며 온 사방에 퍼졌다.
주택에 살고 있던 가족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하수구에서 날 법한 악취였다.
그리고 그 냄새가 마지막이었다.
놈의 몸은 건물 안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었다가, 마치 유령처럼 그대로 통과해 지나쳤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돌과 가구들만이 남았을 뿐, 생명체는 모조리 녹아 놈의 일부가 되었다.
오오오오오!
놈은 거리에 나오고서야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검은색이었지만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이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사족 보행하는 박쥐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머리는 달팽이처럼 생긴 부정형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종말처리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이름을 붙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혼돈의 밑바닥에서 찌꺼기를 먹어 치우는 괴물들 중 최상위 포식자였다.
종말처리자를 부르던 목소리는 이제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리던 장소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기척이 아까부터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콰르르릉! 번뜩이는 벼락이 거리를 쇄도하면서 종말처리자의 머리를 불태워 버렸다.
그을려 타버린 머리는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냈다. 이제 종말처리자의 관심사는 자신을 공격한 새로운 대상에게로 향했다.
“공격이 안 통하는 건가?”
“슬라임과 비슷한 괴물인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약간 더 밀도가 낮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바슐은 거리를 두고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을 눈여겨보았다. 거의 4층 건물만 한 크기에 액체와 기체,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이었다. 분명 하늘에 있을 때에는 좀 더 밀도가 높고 단단해 보였다. 구멍을 빠져나오기 위해 온몸을 비틀어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려워 보이자, 놈은 마치 빠져나갈 수 있는 일부분만이라도 보낸 것 같았다.
“그래도 본체보다는 약할 겁니다. 어쨌든 기적은 통할 테니까요.”
“흠.”
발트제메르가 할타바의 목덜미를 스다듬었다. 할타바는 뿔 사이에서 벼락을 튀기다가 한순간 우렁차게 포효했다. 아까보다 두 배는 굵은 뇌전이 종말처리자의 몸을 두들겼다.
종말처리자의 몸 곳곳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구멍들은 마치 물에 낸 구멍처럼 다시 허무하게 메워졌다.
종말처리자는 꿀렁대며 몸을 비틀더니 섬뜩한 눈동자를 휘꺽 돌렸다. 그 시선은 자신을 공격한 할타바를 향하고 있었지만, 놈은 적의를 가진 존재뿐만 아니라 생명체 자체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훅. 종말처리자의 몸이 갑자기 찾아온 밤처럼 들이닥쳤다.
“물러나라!”
병사들은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병사들은 종말처리자의 몸이 닿은 자리의 풀과 나무가 깨끗하게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발트제메르의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광이 놈의 접근을 저지했다.
암살자들이 단순한 괴물이나 인간이라면 모를까, 사후 세계에나 있을 법한 신화적 존재들이 개입한 사건에서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축복의 불꽃을 두른 채 자잘한 다면거미나 괴물들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싸울 수 있는 것은 기적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검술을 단련한 근위 기사들뿐이었다.
“계속 관심을 끄십시오. 황제 폐하. 저희가 놈의 약점을 노려보겠습니다.”
“황제를 미끼로 쓰다니?”
“반짝거리시니까 저희보다는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바슐과 르네는 양옆으로 갈라져서 종말처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단련한 몸이지만 저 몸 안에 무작정 몸을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바슐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르네에게 수화로 신호했다.
종말처리자의 기이한 빛깔 속엔 유독 더 짙고 단단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장기나 내장, 혹은 악마의 똥처럼 보이는 것들.
르네 역시 그것을 보고 곧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할타바의 벼락이 다시 불을 뿜었다. 콰드드드…… 벼락이 불태우고 지나간 자리에 종말처리자의 몸에 구멍 숭숭 뚫리면서 밀도가 낮아진 틈새가 생겼다.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틈이었지만, 바슐과 르네에게는 도로만큼이나 넓은 틈새였다.
신호도 없이 두 사람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종말처리자의 살갗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녹는 듯 따끔거렸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근위 기사단에만 전해지는 고유의 상급 검술이 발동했다.
황무지가 아무리 넓다 한들 그 한가운데 바늘이 있으면 벼락은 반드시 그 자리에 꽂힌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공간의 단축이 일어났다.
할타바의 벼락조차도 빗겨냈던 종말처리자의 내장에는 이미 두 사람의 검이 꽂혀있었다. 일그러졌던 공간이 단숨에 다시 팽창하면서 폭발적인 충격파를 일으켰다. 종말처리자의 부드러운 몸체가 터져나가듯 양옆으로 흩어졌다.
종말처리자는 흐느적거리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
“켁, 허억!”
상대적으로 미숙한 르네는 근위 기사단 상급 검술의 사용 여파로 죽을 듯이 숨을 토하며 무릎 꿇었다.
르네가 숨을 고르는 동안, 바슐은 끝났다고 확신하지도, 자세를 풀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종말처리자는 몸을 꿈틀거리며 다시 몸을 끌어모으려 했다. 바슐은 곧바로 검을 휘둘러 그나마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내장들을 잘게 토막 냈다.
그러자 종말처리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바슐은 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살갗에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녹아내릴 지경이다. 사체라 해도 가까이 있는 것이 좋을 리가 없었다.
“르네, 일단 여기서 나가자. 냄새가 지독하니…….”
그때 예민하게 곤두선 바슐의 신경은 곧 적의를 포착했다.
바로 발밑에서.
그의 발등을 뚫고 촉수가 튀어 올랐다. 촉수는 순식간에 바슐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으나,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로 촉수를 잘라 버렸다.
나뒹굴다시피 하며 떨어진 바슐이 본 것은, 어느새 기체 같던 몸뚱이를 바리바리 긁어모아 형체를 다시 만드는 종말처리자였다.
다만 이전과 달리 더 작고 단단하게 응축된 형태였다.
네 발 달린 박쥐 형태인 것은 변함이 없었으나 마치 문어 머리를 단 것처럼 얼굴에는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넘실거렸다.
발의 상처 때문에 바슐이 주춤하는 사이, 기력을 회복한 르네가 재빨리 그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종말처리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촉수를 뿜었다.
바슐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촉수를 칼로 쳐냈다.
‘이거 위험한데.’
놈이 아까보다 더 작은 형태를 갖춘 대신 훨씬 더 강력하고 빨라졌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온전한 상태라 해도 방심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발트제메르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 포격을 하려던 순간, 유독 굵고 사나운 촉수 하나가 바슐을 겨냥해 뿜어져 나왔다.
콰드드득.
다음 순간 누군가 끼어들었다.
“아이작?!”
아이작은 종말처리자의 촉수를 왼팔에 휘감은 채 확 끌어당겼다. 뚜둑거리며 근육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이 뽑아낸 것은 다름 아닌 괴물의 촉수였다.
“르네, 그 늙은이 빨리 데려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성배기사님의 사랑은 제가 지킬게요!”
아이작은 당황해서 무슨 헛소리냐고 말하려다가 싸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촉수를 뜯긴 종말처리자의 살갗이 기이한 빛깔로 일렁였다. 달려오면서 저 기이한 색채를 보고 의심했지만, 역시나 맞부딪쳐 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저 너머의 색채였어.’
아이작이 정체를 숨기거나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 때 사용하는 능력인 ‘저 너머의 색채’.
종말처리자는 그 구성 성분을 알 수 없는 물질이 응축된 괴물이었던 것이다.
아이작은 저 너머의 색채가 얼마나 응축되느냐에 따라 액체나 고체처럼 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놈과 닿은 순간 자신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이작이 왼손에 두른 저 너머의 색채에 더 압도적인 제어 권한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작의 손에 휘감겼던 촉수는 닿자마자 녹아내리듯 아이작의 것이 되어버렸다. 촉수를 뽑은 것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종말처리자의 판단이었다.
놈은 으르렁거리며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은 일단 오른손으로 루앗딘 열쇠를 꺼내 들었지만, 실제로는 왼손으로 싸울 생각이었다. 종말처리자의 촉수로 더러워진 척 저 너머의 색채를 두른 팔로 놈을 공격한다면 힘들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항하지 마라.’
종말처리자만 놓고 본다면 아이작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열상으로는 아이작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종말처리자는 그것을 부정하듯 거칠게 포효했다. 놈의 얼굴에서 폭발하듯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아이작은 그걸 왼팔로 막아내려다가 급히 칼을 휘둘렀다.
촉수 끝에는 종말처리자가 먹어 치운 인간의 뼈나 손톱, 이빨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이건 저 너머의 색채로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멍청해 보이는 게 쓸데없이 머리 쓰기는!”
까득, 쾅.
종말처리자가 휘두르는 촉수 다발 속에는 인간의 것만이 아니라 짐승이나 도저히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거대한 괴물의 이빨, 발톱, 아직도 꿈틀거리는 무언가들도 있었다. 촉수라기보다 소화가 덜 된 내장 기관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기세가 제법 사나웠다.
멀리서 지켜보던 바슐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상급검술을 쓰지 않는 한 아이작이 종말처리자를 뚫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기는 쓸 수 없고, 아이작이 가진 상급 검술 중에 지금 이 상황에 맞는 것은 없었다.
다음 순간, 종말처리자가 발악을 하듯 미친 듯이 촉수를 뿜어냈다. 거의 수백 가닥, 하나하나 사람을 가볍게 물어뜯을 수 있는 촉수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아이작의 오른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빛을 산산이 조각내 여러 갈래로 흩뿌렸다.
디트리히가 넘겨준 반지였다.
[깨진 크리스탈 비석조각(S)] [크리스탈 전장에서는 만 명의 전사들이 만 가지 방식으로 싸우다가 만 번의 승리를 맛보고, 만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비석은 전사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들의 몸을 오류 없는 움직임으로 짜맞춰 주고, 확실한 승리 혹은 죽음으로 인도한다.]아이작의 세계가 느려졌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반대로 급격히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치면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동선과 적의 공격 방향, 이동 시 피격 확률, 보폭, 검로 등을 파악했다.
쿵. 수백 가지 구상을 떠올린 후에야 비로소 아이작은 한 발자국을 디뎠다.
숨이 막힐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기이한 세계였다.
원래 게임에서 깨진 크리스탈 비석 조각은 시간이 느려지고 캐릭터만 빨라지는 효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달랐다. 아이작이 숨을 한 번 내뱉고, 발걸음을 한 번 옮기는 동안 머릿속에서 수백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머릿속 구상 속에서, 아이작은 수백 번 죽고 수백 번 패배했다. 그러나 수천 가지 상황 속에서, 아이작은 승리를 향해 갈 수 있는 단 한 방향을 향해 다시 한번 걸음을 뗐다.
그 움직임에는 작은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벨 수 있는 촉수는 베고 흘려보낼 수 있는 공격은 흘려보낸다.
아이작의 머릿속 신경이 바싹 타들어 갈 무렵, 비로소 세계가 정상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루앗딘 열쇠가 종말처리자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지글거리며 타오르는 열기 속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 왔다.
***
아이작은 혼란이 수습되기 전에 종말처리자의 살덩이를 가르고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놈의 내부에는 기체, 액체, 고체 상태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심장 비슷한 것이 있었다. 이미 놈의 심장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아이작은 바로 촉수를 통해 먹어 치웠다.
[‘종말포식자’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완벽한 역병 면역’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완벽한 독성 면역’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이게 만독불침인지 뭔지 그거냐?’
신체 능력이나 기적이 강해지진 않았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수확이었다. 촉수로 포식하는 것은 어차피 어떤 독이나 병균도 통하지 않지만, 아이작 스스로가 독을 먹는 것은 방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역병신 지힐렛과 싸울 때는 몸 안에 누적된 역병 저항이 다름 아닌 지힐렛 본인에게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역병이나 균, 독을 다루는 놈을 만나면 어떨지 알 수 없다.
[이름 없는 혼돈이 새로 포식한 먹이에 만족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주어졌습니다.] [‘저 너머의 색채’가 강화됩니다.] [‘저 너머의 색채’가 이제부터 사용하는 신앙에 비례한 물리력을 가집니다.]그보다는 이쪽의 포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