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부활의 성자 (2)
‘오월의 검?’
아이작은 빛의 법전에 소속된 명천사들 중 한 명을 떠올렸다.
‘최초의 성기사, 성 아르테를 말하는 건가?’
빛의 법전에는 명천사가 총 여섯 있다. 최초의 천사 등대지기 루앗딘을 시작으로 총 여섯이 탄생했다. 칼센이 일곱 번째로 예고되었으나 배교로 취소되었고, 다섯 번째 천사가 바로 성 아르테였다.
명천사가 되면서 오월의 검이라는 이름을 받은 아르테 반츠는 처음으로 성기사단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최초의 성기사라는 칭호도 가지고 있다.
모든 성기사단 검술의 모태는 성 아르테가 만들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이전에도 기적을 하사받은 기사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집단을 이루어 더 강한 기적을 이끌어 낸 사람은 아르테가 최초였다.
‘그런데 왜 하필 오월의 검이?’
오월의 검은 그 이름처럼 전장에서 소환에 응해 모습을 드러내는 천사이지, 직접 계시나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이작은 혹시라도 오월의 검이 자신을 심판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했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미리 알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의 침묵이 길어지자 사제에게서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작?”
“……삼가 받들겠습니다. 만방에 빛의 질서가 건재함을 퍼뜨리겠습니다.”
아이작이 겨우 대답한 덕분에 약간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지만, 마치 천사의 명령을 받는다는 열광에 목이 멘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처음 이들을 만날 때에는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사제들은 아이작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천사라…….’
천사를 만나는 것은 성자 지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뒷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성기사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피해 갈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신앙을 막론하고 천사들은 대개 백이면 백, 아이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떻게든 나의 진의를 보여준다면 용납해줄지도.’
원래대로라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일이다.
하지만 소금 의회와 붉은 성배의 일을 겪으면서, 아이작은 어쩌면 천사들도 나름 융통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천사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의 위치는 빛의 법전 내부에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
간단한 심문을 마친 뒤, 한결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사제들은 마저 무언가 회의를 이어 나갔다. 그때 아이작이 나가기 전에 후안 주교가 그에게 다가왔다.
“성배기사, 아니, 부활의 성자님.”
후안은 이제 아이작을 어려워하며 존칭을 붙이고 있었다. 단지 그에게 부활의 성자라는 칭호가 붙어서가 아니라, 북해에서 아이작이야말로 진정한 성기사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후안은 아이작을 가슴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멀쩡히 살아있는 그를 죽었다고 보고해 버렸으니 몸 둘 바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생각이 복잡해졌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용납하기로 했다.
그는 후안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후안 주교님. 저는 주교님의 제자가 아닙니까?”
아이작의 말에 후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하, 그, 그런가?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네.”
‘편하게 하라고 했다고 진짜 바로 편하게 하네.’
아이작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어쨌든 후안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성자 지정이 되기 전에도 후안은 아이작에게 호의적이었다. 돈을 조금 밝히긴 해도, 늘 입지가 불안정한 아이작에게 돈으로 꼬실 수 있는 주교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추기경이 되는 것까지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하니, 놓치면 안 될 인맥이지.’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정말 믿을 수 없었네. 분명 익사자 왕이 자네를 삼켜버리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았으니…… 한참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지. 그때의 심정이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자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심하기는 했지. 하지만 동시에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내가 서둘러 확인해봐야 한다고 저 치들에게 그렇게 주장했건만…….”
후안은 투덜거리며 뒤에서 상의 중인 사제들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은 그들이 최소한 대성당의 수도원장이거나 주교급쯤 되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후안은 다른 주교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아이작의 귀환은 후안에게도 정치적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작의 순교를 보고하면서 기적을 보여 주고, 추기경 자리까지 거론되고 있었으니.
“그래도 저치들이 자네를 의심하려는 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변호했네. 루주베르크의 그 약혼식장에서 보자마자 알 수 있었지! 내가 아니면 누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안은 정치적 타격을 감수하고 아이작의 귀환을 인정한 것이다. 아이작은 저 사제들이 뜻밖에 관대하게 넘어간 것이 후안 덕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명군 때문에라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설득됐군요.”
“응? 무슨 소리인가?”
“제 죽음으로 여명군에 대한 명분이 실리지 않았었습니까? 제 귀환이 교단의 행사에 누가 될까 걱정했습니다.”
“아아, 그건 걱정 말게. 확실히 명분이 희석되긴 했지만…… 얼마 전 황제에게 불사 교단의 암살시도가 있지 않았나? 그게 충분히 명분이 되어서 황제도 여명군에 적극 참여한다는 말이 있더군.”
흔쾌히 넘어간 게 이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이작은 암살 시도에 빛의 법전 교단이 개입했다는 황제의 의심을 떠올렸다. 너무 노골적인 증거긴 했지만, 증거는 증거였다.
“그리고 주교들에게 금화 한 상자씩 보내니 자네 성자 칭호를 뭘로 하면 좋을지도 물어보더군! 그래서 내가 부활의 성자라는 이름을 추천했지! 하하!”
“…….”
아이작은 막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거창한 칭호가 사실 금화 몇 상자 값이었으며, 후안이 지어줬다는 사실에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돈을 피처럼 아끼고 긁어모으는 후안이 자신을 위해 이만큼이나 썼다는 사실도 나름 숭고한…… 아무튼 그런 희생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아, 그리고 이사크레아 영지에 대해서는 걱정 말게. 자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고서 상속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긴 했지만…… 소유권을 주장하는 자는 없더군.”
“그건 의외군요.”
물론 집사인 카일이나 이웃 영지의 르하르트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긴 했지만 찝쩍거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의외였다.
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전 주인이었던 성배기사가 천사에게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거든. 저주받은 영지라고 아무도 손대려고 하질 않았지.”
“…….”
“그리고 일단은 반쯤 교단도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나. 내가 엄중하게 경고를 해뒀지. 감히 수도원 영지에 손댈 생각 말라고 말이야, 하하.”
아이작은 혹시 후안이 영지를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줄 알았을 때 그러려 했던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이사크레아 영지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후안 주교님. 혹시 왜 오월의 검께서 저를 방문하신다는 건지 아십니까?”
“으음, 글쎄. 사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알고 있겠지만 나는 주로 동부 교구에서 근무하고, 교단의 행정을 주로 손보고 있네. 행정 쪽에서 내가 겸임하는 직책이 네 개나 되지. 하지만 정작 천사들과 소통하는 건 다른 주교들이 주로 진행하거든.”
“주교님은 그런 데 관심 없으십니까?”
후안이 직접 천사와 소통하고 내부의 정보를 알려 줄 수 있다면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사를 직접 만나는 건…… 무섭잖나.”
“…….”
주교가 할 말인가, 하며 바라보았지만 후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농담이 아니야. 천사들께서는 지상의 일을 우리에게 맡기고 거의 개입하지 않아서 나 같은 놈도 주교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천사와 감히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
후안은 몸서리치며 중얼거렸다.
“오월의 검이나 등대지기, 찬양하는 불꽃 같은 천사가 내가 하는 일이 시원찮다고 ‘저놈 치워라’ 하면 감히 누가 거절할 수 있겠나?”
아무리 신앙심이 깊고 강한 권력을 쥐고 있어도 천사 앞에서는 평등하게 파리 목숨이다.
후안처럼 가진 게 많고 욕심 많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다.
아이작은 문득 비단 후안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주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천사를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면 천사를 주로 만나 뵙는 분들이 따로 있겠군요?”
“그런 셈이지.”
후안은 그렇게 말하며 힐긋 제단 앞에서 회의 중인 사제들을 돌아보았다.
아이작의 눈썰미가 가늘어졌다.
“저들입니까?”
“파수자 회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네.”
‘파수자 회의…….’
아이작은 모르는 단체다. 하지만 아이작은 실제 종교에서도 소수의 모임이 영향력을 넓혀 조직의 중추를 장악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저 안에는 주교도 몇 명 포함된 것이 분명했다.
“원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교리를 공부하는 모임이었는데, 어느새 영향력이 꽤 넓어졌지. 지금 교황 성하께서도 저들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다더군.”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군.’
천사와 소통하는 소수 모임.
어쩌면 그들이 교단의 실세일 확률이 높았다.
***
아이작은 오월의 검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천사라면 딱히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므로 아이작은 그냥 엘릴 왕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북해의 파도는 거칠었지만, 소금 의회의 선원들은 능숙하게 파도를 갈랐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배기사님. 아니, 부활의 성자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냥 성배기사라고 불러, 에이단. 여섯 글자는 너무 길어.”
에이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제법 선장 태가 났다. 여전히 학자와 상인, 그 사이 어딘가의 모습이 진했지만 선원들을 지휘하는 것도 바닷바람을 즐기는 모습도 꽤나 익숙해 보였다.
“벌써 익숙해진 것 같군.”
“으음, 말씀드려도 될까요. 기억은 못하겠지만 사후세계에서의 경험이 어딘가 저를 깊게 바꾼 기분이 듭니다.”
“바뀐 기분이 든다?”
“제가 잘 모르는 사이에…… 마치 수십 년 동안 배를 탄 선원처럼 바다와 소금 냄새가 편하게 느껴진달까요. 얼마 전에는 육지에 올랐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마치 사후 세계에서 제가 아닌 누군가의 삶이 스며든 것처럼요.”
아이작은 사후 세계에서 아문달라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동조압력. 그가 사후 세계의 힘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자신들의 의지와 목적에 동화되라는 압력을 받으리라던 것. 어쩌면 에이단은 바로 그런 압력에 노출된 것일 수도 있었다. 아이작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린 듯 에이단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 중이신지 압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에요. 저는 원래부터 부르는 자를 섬기고 소금 의회를 받들며, 바다와 소금을 사랑했습니다. 저를 잃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렇군, 알겠네.”
에이단의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제 그가 상당히 강한 사제인 동시에 능력 있는 선장이 된 것은 분명했다.
아이작에게는 분명히 이득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