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부활의 성자 (3)
“그런데 뭘 하고 계셨습니까?”
배가 엘릴 왕국으로 향하는 동안 아이작은 선미 쪽에서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선원들은 이름 높은 성배기사가 검술을 단련한다며 슬쩍슬쩍 훔쳐보았지만, 검에 조예가 없는 그들이 보기에도 아이작의 수련은 뭔가 이상했다.
“검술을 손보고 있었지.”
“조금…… 특이한 검술 같던데요.”
아이작이 휘두르는 검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다. 선원들은 대체 아이작이 누구와 싸우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새로운 상급 검술을 고안 중이었다. 상급 검술을 발동시키는 동작에 비효율적인 동작이란 없었다. 비효율적인 기술이 있을 뿐이지.
“칼에 살기가 너무 흘러서 문제라더군.”
“살기요? 흠, 살기가 넘치면 좋은 거 아닙니까?”
“병사라면 그럴지도.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검사에게는 다른 모양이야.”
바슐과의 대련으로 그의 실력은 크게 진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바슐이 지적한 지점을 극복하진 못했다.
괜한 조언을 들어서 스스로 벽을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가 아는 충분히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게벨이나 벡스터, 바슐 같은 자들은 모두 아이작처럼 살기가 철철 넘쳐흐르지 않았다. 필요한 순간 딱 날카롭게 방출할 뿐이었다.
아이작과 그들의 차이점은, 제대로 된 검술을 배웠는가 아닌가의 차이였다.
아이작은 기초 검술 외에는 제대로 검술을 배운 적이 없다.
‘즉, 충분히 연구되고 정제된 검술은 살기를 정제할 줄 안다는 거지.’
물론 아이작은 그들 대부분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니, 죽일 자신이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검술이 진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술이 정체되어있으면 그는 점점 촉수를 더 많이 드러내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다.
다른 검사들의 상급 검술을 흉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아이작의 몸에 무리를 준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제대로 상급 검술을 사용하려면 그 기술들을 녹여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발란체 검술의 ‘전조’가 ‘여덟 갈래’가 되었고, 신성을 베려던 시도가 ‘톱날찢기’가 되었듯.
아이작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상대를 죽이지 않기 위한 검이라…….’
일단 상대를 제압한다. 죽이고 말고는 그다음에 결정할 일이다.
“에이단, 잠깐 저 끝에 서줄 수 있겠나?”
에이단은 아이작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아이작의 맞은편 난간에 등을 대고 섰다. 그러나 아이작이 에이단을 바라보면서 자세를 잡기 시작하자 기겁하면서 몸을 숙였다.
“자, 잠깐만요. 아이작 님. 지금 저를 상대로 상급 검술을 시험하려는 겁니까?”
“괜찮아. 안 죽이는 게 목표니까.”
“아니, 그 말씀은 실수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뜻…….”
그때 아이작이 기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단은 얼어붙은 채 그의 검을 지켜보았다. 한참 떨어진 자리였지만 언제 그가 달려들지 몰라 얼어붙어 있었다.
문득 에이단은 아이작의 검이 자신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작 하나하나에 아이작이 진땀을 흘리고 있을 만큼 정성을 기울이고 있던 것이다.
에이단은 문득 그 동작에서 익사자 왕을 떠올렸다.
그가 바다에서 배들을 단숨에 들어 올려 내동댕이치던 모습을.
다음 순간, 아이작이 에이단의 눈앞에 서 있었다.
쿵. 아이작이 내리그은 검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짧은 동작이었지만 아이작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에이단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벤 것도, 부서진 것도 없었다.
“흠, 얼추 감은 잡았는데 아직 실전에서 써먹기는 어렵겠군.”
“지금 뭔가 하셨습니까?”
“응. 그래도 상대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점은 마음에 드는데.”
아이작은 손을 흔들며 털레털레 계단을 타고 선미에서 내려갔다. 에이단은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떠나가는 아이작을 보았다.
‘뭐지? 아주 빠르게 움직이신 건가?’
에이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둘러보다가 그제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그가 서 있는 위치는 원래 난간 쪽이 아니라, 아이작이 서 있던 곳 바로 앞이었다. 아이작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떼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에이단은 소름이 돋았다.
에이단은 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상급 검술이 신앙에 기대지 않고 기적에 비견할만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상급 검술이 ‘필요하니 하나 만들어야겠군.’ 하면 뚝딱 나오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년간 전통과 계승을 거쳐 하나씩 만들어진다는 것도.
‘성배기사님, 당신은 대체…….’
천재인지 괴물인지 모를 존재가 기사의 성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마치 엘릴 왕국에 거대한 해일이 밀어닥치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
엘릴 왕국.
기사도의 성지, 굴복하지 않는 전사들의 요새, 제왕들의 무덤, 신비로운 숲과 호수의 나라, 패왕의 마지막 안식처.
다양한 수식어들처럼, 게르토니아 제국에는 엘릴 왕국에 대한 온갖 신비롭고 환상적인 전설들이 전해진다.
엘릴 왕국에는 명예롭고 용기 있는 기사들이 무예를 겨루고,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호수로 가득한 자연 속에는 요정과 마법이 숨어 있다고. 심지어 신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드래곤들이 엘릴 왕국에 숨어 있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러나 엘릴 왕국의 수도, 알데온에 도착했을 때 아이작이 느낀 감상은 하나뿐이었다.
‘촌스럽군.’
알데온은 왕국의 수도라고 믿기 힘들 만큼 초라한 항구도시였다.
비교하자면 아이작이 잠시 머물렀던 노르덴 항 정도? 배는 많았지만 대부분 어선이었으며, 상선은 드물었고, 군선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국 북부 최대의 도시인 루주베르크와 비교하자면 민망하지만 약간 잘사는 어촌마을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변방 시골 영주인데 루주베르크에서 며칠이나 묵었다고 무슨…….’
“촌스럽지요?”
그러나 아이작의 반성이 무색하게 옆에서 에이단이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군.”
“예전엔 알데온도 굉장히 번창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내전이 길어지고 제국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퇴보했다는 모양입니다.”
아이작은 엘릴 신앙으로 플레이하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릴 왕국은 거의 백 년째 내전 중이다. 아니, 사실 그전에도 형태만 바꾼 내전이 계속 일어났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플레이어의 목표는 이 내전을 종식하고 여명군 원정에 참여해 엘릴의 심장인 ‘붉은 성배’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닥치는 대로 죽이고 훔쳐 오는 것이라, 단순하지만 어려운 목표였다.
에이단의 배가 알데온 항에 접안했다.
모처럼 들어온 큰 배에 항구에 있던 남자들이 슬렁슬렁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어서 아이작은 살짝 의심했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배의 정박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항구 노동자들이었군…… 아무리 기사의 나라라지만 노동자까지 칼을 차고 일을 하나?’
아이작과 에이단이 내리자 사무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선장이 누구요?”
“접니다.”
“배 이름은?”
“‘빛나는 성배기사’ 호.”
항해 내내 아무리 압박해도 바꾸지 못했던 배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되자 아이작은 에이단의 뒤통수를 치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다.
원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성배기사의 숭고한 여정과 빛나는 길’이라는 이름이었으나 다른 선장들이 아이작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겠다고, 자중하라고 조언해서 줄였다고 했다.
성배기사라는 이름에 사무원의 눈빛에 호기심이 빛났다.
이렇든 저렇든 엘릴 왕국은 성배기사의 고향이자 발원지였으니까.
“저 바다 너머에 성배기사가 나타났다더니 어지간히 유명해진 모양이군.”
“이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에이단은 당당하게 바로 옆에 서 있던 아이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작은 위엄있게, 최소한 당당해 보이려 애썼다. 그의 용모는 호감을 사기는 쉬워도 위엄을 사려면 적당한 사건과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흐음?”
사무원은 힐긋 아이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이작은 뭔가 질문이나 호들갑이 쏟아질 것을 대비했다. 그러나 사무원은 뭔가를 끄적끄적 적고는 퉁명스럽게 통보했다.
“특수무장인원 1인 입국. 확인했소. 징수와 금지물품 확인을 위한 세리가 곧 올 테니 선장은 대기하고 계시오. 밀무역이나 금지물품 수입을 방지하기 위한 거니 너무 놀라지 말고.”
사무원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돌아갔다. 아이작은 그 모습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만 그런 건가 했지만 에이단도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음…… 딱히 환영 인파라든가 국빈 방문을 환영하는 사절들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건 이상하긴 하군요. 아무리 급히 방문한 거긴 하지만 황제 폐하의 사절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고 미리 통보도 했을 텐데……? 안내할 사절 한 명조차 없을 수가?”
아이작은 막막함을 느꼈지만 어쨌든 엘릴 왕국을 지배하고 있는 알데온 왕가를 찾아가야 했다. 지금까지 반응을 봐서 박대하는 건지 무관심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유쾌한 신호는 아니었다.
“일단 알데온 성으로 가야겠군. 일단 성까지 찾아가면 무시할 수 없겠지.”
그때였다. 아이작은 너저분한 항구의 진창을 따라 다가오는 한 땅딸막한 여자 검객을 발견했다.
허리에 찬 검이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데다, 걷는 자세에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제법 수준 있는 검사처럼 보였다.
특히 아이작이 눈길을 끈 점은 그녀가 온갖 오물이 튀기 쉬운 항구에서 티끌 하나 발견하기 힘든 흰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절묘한 균형감각인지 예민함인지 알 수 없으나 솔직히 놀라웠다.
다음 순간 지나가던 수레가 맹렬하게 진창을 두들기며 여자에게 진흙을 흩뿌렸다.
아이작은 순식간에 너저분해진 여자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터벅터벅 아이작과 에이단을 향해 다가왔다.
“아이작 이사크레아, 맞나?”
여자는 얼굴에서 진흙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아이작은 고압적인 여자의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높였다.
“맞…… 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빛의 법전 교단에서 너를 수행하라고 부탁했다. 엘릴 왕국에 있는 동안 내가 길을 안내할 것이다.”
아이작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졌지만, 다행히 에이단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이분은 성배기사님이십니다. 부활의 성자, 이사크레아의 영주, 천사를 물리친 자, 브란트 공작과 혈연을 맺게 된 분이시지요. 정확하게 알고 계신 거 맞습니까?”
에이단의 길고 긴 설명에 여자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율리히다.”
아이작은 다시 뭐라고 하려는 에이단을 제지하고 손수건을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아이작 이사크레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율리히는 그 손수건을 빤히 바라보다가 얼굴을 대충 슥슥 닦았다.
혹은 진흙을 얼굴에 더 펴 발랐거나.
아이작은 이상한 사람이 수행으로 붙었다고 생각했다.
***
에이단은 배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항구에 남았다.
아이작은 율리히와 함께 알데온 성으로 향했지만,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일단 항구 근처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수행하기로 한 율리히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괜찮은 숙소? 모른다.”
“……알데온 성으로 가는 길에서 찾아보죠. 길은 압니까?”
“저기 보이니까 이대로 쭉 가면 되겠지.”
“그대로 직진으로 가면 바다에 빠집니다. 아니, 됐습니다. 알아서 할 테니 돈이나 준비하십시오. 교단에서 파견되셨다 하니 수행 비용 정도는 부담하겠지요?”
“돈? 없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주로 교회에서 지내지. 뭔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가져오지.”
“가져오다뇨? 교회에서요?”
“보통 저런 놈들이 좀 가지고 다니더군.”
아이작은 골목에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율리히를 급히 제지했다. 그녀가 돈을 빼앗을 능력이 있건 없건 엘릴 왕국에 사절로 파견된 첫날부터 강도질을 하고 싶진 않았다.
“제가 황금우상 상단에 맡겨둔 돈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황금우상 상단의 지부는 있을 테니 거기서 머물도록 하죠.”
대체 이건 뭐 하는 사람인지.
대체 수행하러 온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