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마녀사냥 (1)
그제야 레이나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듯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서둘러 답변을 덧붙였다.
“아, 예, 마녀사냥 말씀이시죠. 몇 번 있었습니다! 물론 마녀를 직접 잡는다기보다 마녀가 불러낸 소환수를 처단하거나 납치당한 아이를 되찾으러 갔던 것이지만요.”
“그때 마녀는 어떤 식으로 반응했지?”
“보통 짐승들이 멀리서 우리를 관측하는 걸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점점 그 수가 많아지고, 안개가 드리워집니다. 길을 잃는 인원이 나오기 시작하면 마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무서운 건 이 모든 것이 닥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거죠!”
“은밀하게라. 겪어본 적 있나?”
“예. 하지만 또 같은 수작에 당하진 않을 겁…….”
레이나는 호언장담하려다가 아이작의 시선이 다른 곳에 멈춘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까악.
마을 밖에서 보았던 까마귀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고개를 이리저리 꺾으며 아이작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푸드드득. 그때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까마귀 옆에 앉았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사이사이에 새들이 하나둘 날아들어 가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마, 마녀가?!”
“알데온 항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환영 인사를 여기서 받는군.”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작은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레이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아이작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이미 검을 꺼내 들고 있었지만, 나무 위의 새와 싸울 수는 없었다. 율리히는 어느새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 틈인지도 모르게 숲에는 안개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안개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수풀 너머에서 눈을 번뜩이는 짐승들도 점점 많아졌다. 이제는 새뿐만이 아니라 쥐, 여우, 다람쥐, 멧돼지, 늑대 따위까지 풀숲 사이에 우글거리며 아이작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감시가 아니라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왠지 모를 풍족함을 느꼈다.
‘수도원에 있을 때가 생각나는군.’
음산하고 인적 드문 숲을 뛰어다니며 야생동물을 마음껏 포식하던 시절…… 실로 마음 풍족해지는 풍경이다. 마치 고향에 온 듯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야생동물들 사이로 유독 커다란 염소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염소는 직사각형의 눈동자를 굴리며 아이작을 응시했다. 아이작은 그 커다란 염소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숲은 이래야지.”
메에에.
아이작의 중얼거림에 염소 한 마리가 대답하듯 길게 울었다.
염소는 이파리를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성배기사의 심장을 가져와.”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이 ‘마녀 헤카틀리 자매’를 처치하길 원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당신을 기다립니다.]야생동물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섬찟한 모습이었으나 아이작이 조금도 긴장한 기색 없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당황한 것은 레이나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정면에 있던 여우가 물러나려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아이작은 냉큼 여우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전문적인 사냥꾼도 야생동물을 맨손으로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작에게는 물건을 집어 드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서, 성배기사님?!”
‘음, 여기서 먹어 버리면 안 되지.’
아이작은 그대로 여우를 새 떼 사이로 던져 버렸다. 캥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새 떼가 날아올랐다. 어이없는 도발에 자극받은 야생동물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레이나가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가장 맨 앞에 우리를 이끄시는 엘릴!”
“오늘도 당신이 싸우시는 전장으로 나아갑니다!”
파르르르르! 레이나의 검이 기도문에 반응하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기도문을 외운 다른 기사 두 명의 칼이 역시 공명하듯 소리를 냈다. 그들은 빠르게 진형을 형성하고 달려드는 야생동물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엘릴 왕국에서는 기사가 곧 사제요, 성기사다.
기적의 종류는 제한적이지만 모두 투쟁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것들뿐이었다.
‘내버려 둬도 죽을 일은 없겠군.’
아이작은 기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염소가 사라진 방향이었다.
당황한 레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배기사님?! 어디 가세요!”
“마녀는 날 잡으러 왔다. 기꺼이 그 아가리로 들어가서 목을 따 줘야지.”
아이작은 힐긋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성배기사가 홀로 뛰어들었다고 전해. 엘릴의 군대가 움직일 차례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말이지만.
아이작은 에델레드의 기사단에 벌어지고 있을 일을 생각하며 뒷말을 줄였다.
***
아이작은 지난밤을 그냥 놀면서 보내지 않았다.
그는 마을 주변을 떠도는 야생동물을 붙잡아 저 너머의 기생충에 감염시켰다. 내부를 장악해서 포식할 정도는 아니고, 딱 눈과 귀를 공유할 정도로만.
마녀들은 아이작을 감시하기 위해 야생동물들을 보냈지만, 아이작은 오히려 그들이 어딜 보고 무엇을 듣는지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감염된 동물들 중에는 에델레드의 군대를 감시하기 위한 놈들도 있었다.
‘역시 포위망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군.’
마녀의 소환에 답한 짐승들과 숲의 방해, 늪의 저주 따위가 군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개중에는 제법 위험한 소환수들도 있었지만 알데온 기사단 수준이라면 큰 피해 없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역시 서둘러 오느라 놈들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했어.’
마녀들의 본거지가 있는 늪으로 간다면 훨씬 더 위험한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는 아무리 마녀들이라 해도 현지의 나무나 동물 따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짜 위험한 것은 저주였다.
지금도 기사들은 저주 때문에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 에델레드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마녀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면 결국 이깟 방해쯤은 금방 와해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 전에 날 끝장낼 생각이겠지.’
분열 예식 정도라면 마녀들이 탐낼 만한 성물이니까.
“깔깔깔깔깔!”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돌풍과 함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숲의 이파리와 풀잎들이 경련하듯 떨었다. 낙엽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파도처럼 아이작을 향해 닥쳐왔다.
아이작은 조용히 루앗딘 열쇠의 불길을 일으켜 세웠다.
파삭. 루앗딘 열쇠는 사악한 기운을 장작 삼아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불타는 칼날을 중심으로 바람이 갈라졌다.
흐트러진 낙엽 속에서, 다시 커다란 염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두 발로 서 있었는데, 발굽 사이에 커다란 수확용 낫을 들고 있었다.
“제 발로 내 아가리 속에 걸어 들어왔구나, 성배기사!”
“성배기사의 살점은 얼마나 야들야들할까?”
“머리는 따로 떼서 네 몸을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보여주마!”
염소는 머리를 파들파들 떨며 세 명의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마녀 헤카틀리의 목소리였다.
누가 누구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자매라고 불리긴 했지만 셋은 하나에서 분열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작은 흐뭇한 표정으로 염소를 향해 턱을 까딱했다.
“한번 씹어봐.”
***
메에에에!
염소는 폭소를 터뜨리듯 울면서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점점 덩치가 커지더니, 아이작의 코앞에서는 거의 4m에 이르는 덩치가 되어 있었다. 녀석은 그 덩치와 무게를 이용해 대낫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쾅! 동작이 커서 회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육중한 무게가 실린 대낫은 땅을 두부처럼 갈랐다. 놈은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바로 땅을 긁어내면서 재차 대낫을 휘둘렀다. 마치 허공이라도 베는 것 같은 엄청난 절삭력이었다.
‘마녀의 대낫…….’
염소 인간이 든 대낫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원념이 느껴졌다. 원념은 아이작을 끈적하게 붙잡으려 하는 동시에, 사물은 가차 없이 베어 냈다.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살벌하군.’
마녀들이 인신공양을 통해 직접 만들어 낸 일종의 저주받은 성물이었다.
엄청난 무게와 힘, 그리고 원념까지 깃든 대낫은 말 그대로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 내는 폭풍처럼 아이작을 향해 몰아닥쳤다. 거기에는 추수꾼의 솜씨만 있으면 될 뿐, 검술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루앗딘 열쇠라 해도 저 대낫과 부딪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아이작은 일단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헤카틀리 마녀들이 가진 무기는 염소 인간만이 아니었다.
아이작이 피하기만 하자 마녀들은 조바심을 느꼈다. 마녀들은 기사들이 개입하기 전에 서둘러 분열 예식과 성배기사를 가져가야만 했다.
메에에에에!
염소 인간의 몸이 돌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부풀어 오른 부위에서 상처를 찢고 또 다른 염소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다시 염소 인간을 배양하는 종양이 부풀어 올랐다.
염소 인간에 염소 인간의 몸이 자라고 그 위에 다시 염소 인간이 자라면서 마치 프랙탈 도형같은 형태가 되었다.
메에에에에에에에에!!
수백 마리의 덩치만큼 부풀어 오른 염소 인간은 이제 움직이는 산이나 다름없었다. 머리가 아플 만큼 큰 울음소리가 숲을 진동시켰다. 염소 인간은 수백 마리만큼의 힘과 무게로 숲을 휩쓸었다.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놈들이 든 수백 개의 대낫에서 뿜어져 나온 원념이 아이작을 순식간에 시커먼 늪으로 끌어당겼다. 늪 안에서 하얀 마녀의 손들이 팔을 벌리며 환영했다.
콰두두두두두! 거대 염소 인간의 공격이 순식간에 아이작이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어쭙잖은 환각이군.”
그러나 아이작은 단숨에 수백 마리 염소 인간의 환영 속을 돌파해 ‘진짜’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환각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익사자 왕의 촉수 공격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단순하고 느렸다.
이삭 검술: 여덟 갈래가 발동하면서 염소 인간의 거짓 환영들이 갈가리 찢어졌다. 환각 저주가 깨지는 바람에 염소 인간은 오히려 약점투성이가 되었다.
자신을 도륙 내기 위해 쇄도하는 시커먼 기운을 본 염소 인간이 거친 포효를 내뿜었다.
불길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몰아닥치는 것을 느낀 아이작은 움찔하며 멈춰 섰다. 뭔진 몰라도 강력한 저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섬찟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엄습했다.
마녀의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깔깔깔깔! 성배기사야, 어디 한번 재롱부리는 것 좀 보자꾸나!”
“저 도련님 같은 입이 거머리며 시궁쥐며 토해내는 꼴을 보겠구…….”
하지만 마녀들은 한참이 지나도 아이작이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자 의아해하며 말을 멈췄다. 설마 저주가 통하지 않았나 했지만, 그녀들은 분명히 제물을 아끼지 않은 저주를 정통으로 쏘아 맞췄다.
“꺼윽.”
이내 아이작의 입에서 시원한 트림이 흘러나왔다.
[‘광포화 들쥐’를 포식하였습니다.] [‘늪 거머리’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저주의 정체를 알아냈을 때만 해도 난처하긴 했지만, 그의 위 안에서 소환된 거머리와 쥐들은 목구멍까지도 올라오기 전에 소화 당했다. ‘죽은 신의 내장’이란 정말 아이작의 내장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신앙을 듬뿍 품은 동물들을 잔뜩 먹어 치우게 된 아이작이 중얼거렸다.
“알데온에서도 받지 못했던 환영 만찬을 여기서 받는군. 엘릴 왕국보다는 너희가 나를 더 환영해주는 거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