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마녀사냥 (3)
알림음과 함께, 아이작은 참았던 호흡을 탁 내뱉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엄청난 속도로 헤카틀리의 머리를 통째로 잡아 뜯었으니 손이 뭉개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음산하게 일렁이는 기운에 휘감겨 있다가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바슐이 그랬던 것처럼 순간적으로 검기를 손에 둘러 막아낸 것이다.
‘원래는 칼로 베려고 했는데…….’
분명 칼을 먼저 꺼냈다. 그러나 먼저 나간 것은 손이었다. 본능적으로 칼보다 손으로 더 쉽게 상급 검술을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동작은 바슐의 발검 동작을 참고했지만 아이작이 해낸 것은 완전히 달랐다.
바슐의 검이 내리치는 벼락과 같았다면, 아이작은 먹이를 사냥하는 포식자의 손길과 같았다.
상대방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불시에 당하는 기습. 아이작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촉수가 되어 담담히 헤카틀리의 머리를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간단하게 이루어져서 아이작마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광경이었다.
그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방적이어서 아이작마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때 얻은 깨달음이…… 이 정도였나?’
아이작의 검술은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율리히와의 대결에서 검기를 각성한 이후 확실하게 뭔가 달라졌다.
방금 이 동작도 바슐의 검술을 참고하긴 했지만, 배 위에서 만들었던 ‘익사자의 손’ 동작을 변용한 것이다. 순간적인 필요에 따라 순식간에 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걸 검술이라고 할 수 있나?’
무술도 결국 동물이나 자연현상의 영향을 받은 동작들이 있고, 아발란체 성기사단도 산사태에서 영감을 얻어 검술을 만들었으니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뭔가를 흉내 낸다기보다, 그냥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느낌인데.’
아이작 스스로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검기를 깨달은 이후 뭔가 다른 영역에 접근하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배기사.”
그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작은 고개를 돌렸다.
무수한 눈길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들판의 모든 기사와 병사들이 경악과 충격을 담아 아이작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다 함께 달려들어 잡던 마녀의 머리를 아이작이 나타나 단숨에 쥐어뜯은 것이다.
아이작은 그 충격을 이해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또 다른 감정도 느꼈다.
경외심.
존경과 애정을 넘어서, 인간이 극적으로 강대한 존재를 눈앞에서 목격할 때 느끼는 감정이 엘릴의 기사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맨 앞에 모르스 기드온이 있었다.
헤카틀리의 옆구리를 찍고 머리가 터질 뻔했던 모르스는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찌그러진 투구를 벗고 아이작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대는 진정 먼 타지에서조차 엘릴의 의지를 이은 성배기사입니다.”
모르스를 시작으로 다른 기사들도 투구를 벗고 무릎 꿇기 시작했다. 난처해하는 아이작 앞으로 에델레드가 걸어왔다. 에델레드 왕 앞에서 오해받을 수 있는 풍경에 아이작은 당황했다. 자칫 왕 앞에서 엉뚱한 사람이 충성을 받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
“폐하, 이건…….”
“존경받을 만한 기사가 존경받는 것뿐이오. 성배기사.”
에델레드는 투구를 벗고 아이작 앞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그대는 내 기사들을 구했소. 나의 존경 또한 받아주시오.”
***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마시오. 저 기사 광신도들은 강자라면 왕에게 바쳤던 충성맹세고 뭐고 없이 무릎을 꿇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니까.”
헤카틀리 토벌을 일차적으로 마치고 마을로 복귀하는 말 위에서 에델레드가 아이작에게 당부했다. 아이작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견제하는 건가 했지만, 자신은 게르토니아 제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정치적으로 위협이 될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에델레드가 기사들의 행동 자체를 탐탁잖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안나 게오르크가 거느리고 있는 부하 중 절반은 그녀 손으로 꺾어서 굴복시킨 장군과 기사들일 거요. 불과 3, 4년 전만 해도 우리 아버지께 충성하던 자들이지. ‘나를 꺾다니, 인정할 만하다! 네게 충성하겠다!’라니. 미칠 노릇이지.”
줏대 없다고 할 수도 있고, 강자에 대한 숭배에 미쳤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전통 때문에 엘릴 왕국은 늘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내분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왕인 에델레드가 기사들을 혐오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폐하까지 그러실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그 분위기에서 나 혼자 뻣뻣하게 서 있었으면 기사들이 뒤에서 무슨 소리를 할 줄 알고? 애송이가 고개까지 뻣뻣하다고 할거요. 차라리 대범하게 행동하는 게 저 치들이 더 좋아하지.”
기사도의 나라에서 태어난 기사 혐오자 치고는 아주 정치 감각이 없는 편은 아니다. 그는 거기에 덧붙여 아이작을 힐끔 훔쳐보곤 헛기침을 했다.
“다만, 흠, 오해하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사실 그대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더군. 내게도 어쩔 수 없이 엘릴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오. 지위가 있어서 무릎까지 바닥에 대진 못했을 뿐, 존경의 마음은 진심이었소.”
“……제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엘릴의 기사들은 마녀를 잡았을 겁니다.”
빈말이 아니라 아이작은 이미 먼 곳에서부터 싸움을 지켜봤다. 아이작이 늦은 것은 마녀가 도망갈 경로를 파악, 미리 앞을 지키고 있다가 덮치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헤카틀리가 엘릴 기사들과 싸움에 휘말리는 바람에 오히려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기생충들을 통해 싸움을 지켜볼 수는 있었다. 엘릴 기사들은 처음에 저주와 뿌리 거인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휘청거렸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되레 헤카틀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거의 굴복시키기 직전까지 갔다. 아이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르스나 또 다른 기사가 머리를 베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헤카틀리 자매와 엘릴 왕국의 싸움은 늘 그런 식이었다. 헤카틀리는 숲 변방에서 난동을 부리고 기사들이 오면 싸우다 도망칠 뿐, 기사단이 패배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아이작은 괜히 나서서 공을 가로챈 기분마저 느꼈다.
“만약 그랬다면 더 많은 기사가 죽었겠지. 기드온 장군도 죽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기사들이 당신에게 존경을 표한 것은 자네가 헤카틀리의 목을 베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오.”
“헤카틀리의 목을 베어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그건 부수적인 성취에 불과하지. 기사들은 존경받을 만한 강자를 존경했을 뿐이오. 강자가 스스로의 강함을 입증해 보였으니, 거기에 맞는 예우를 보인 것뿐이지.”
중요한 건 누가 헤카틀리의 목을 베었느냐가 아니다. 목을 어떻게 베었는가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작은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었다.
엘릴 기사들이 존경을 표할 만큼.
하지만 아이작은 그 존경에도 어쩐지 거부감을 느꼈다.
‘뭐…… 나쁜 건 아닌데 어쩐지 순진한 사람들 속이는 기분이군.’
솔직히 엘릴 입장에서 사악함으로 따지자면 자신이나 헤카틀리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싸우던 헤카틀리가 발작하면서 도망치던 것도 포식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였으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굳이 존경하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아직 마녀사냥이 안 끝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헤카틀리 자매 중 하나만 잡았을 뿐입니다.”
헤카틀리 자매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주와 소환술이 탁월한 덕분도 있지만, 가장 골치 아픈 것은 그 비틀린 생명력이었다. 헤카틀리 자매는 온갖 변용된 주술로 셋 중 둘을 죽이더라도 하나가 남아있으면 기어코 다시 부활해 셋이 되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짧으면 반년, 길게는 3년까지도 잠잠하겠지만 내버려 두면 언제고 부활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에델레드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성배기사를 잡으러 온 헤카틀리 자매는 하나뿐이지 않소. 셋이었다면 확실히 좋았겠지만, 그 정도로 어리석을 것 같지는 않소.”
그렇다고 마녀의 숲으로 쳐들어갈 수는 없다. 그곳은 마녀가 없어도 위험한 독충과 맹수들이 드글거리는 늪이었다.
거기에 대해 아이작은 생각해 둔 바가 있다고 말하려 했다.
그때 잘린 헤카틀리의 머리가 입을 쩍 벌리더니 그 안에서 독사가 튀어나와 아이작의 손목을 물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에델레드는 경악하면서 곧장 검을 꺼내 독사의 몸통을 베어 버렸다.
아이작은 휘청거리다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온 헤카틀리의 머리통이 깔깔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어리석다! 어리석다! 성배기사야, 너는 그 교만 때문에 죽는다! 천사도 피 흘린 자리에 저주가 남는 법이다! 마녀가 원한을 그냥 넘기겠느냐? 성배기사가 피 흘린 자리마다 역병과 가뭄이 창궐할 것이다!”
“이 마녀가!”
콰직. 뒤늦게 소란을 듣고 달려온 모르스가 헤카틀리의 머리를 밟아 터뜨렸다. 마녀의 웃음소리는 머리통이 완전히 으스러져 가루가 되고서야 겨우 그쳤다.
“아이작!”
에델레드는 황급히 아이작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 순간 아이작이 팔을 휘둘러 그의 손길을 쳐냈다. 에델레드는 손이 저릴 만큼 강력한 저주를 느꼈다. 그대로 손을 댔다면 손이 썩어 들어가는 심각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가 피 흘리는 자리마다 역병과 가뭄이 창궐할 것이라는 마녀들의 말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었다. 마녀들이 사력을 다해 퍼부은 저주가 아이작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강력한 저주에 당한 아이작의 표정은 평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얼굴 주변에 깃털이 돋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빼고는.
“괜찮습니다. 폐하.”
“하지만…….”
“그보다 인근의 빈집 하나를 마련해주십시오. 제 부하가 이미 이 저주에 대해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이 아이작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엘릴 왕국 북서부.
험준한 산과 험악한 기후, 그리고 야만적인 야생의 힘으로 오랜 세월 정복당하지 않은 숲이 있었다. 엘릴의 시대에 몇 차례나 불타고 베여 나갔지만, 순식간에 자라나는 식물들과 썩어 가는 늪의 악취,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안개가 항상 가득한 이곳에 주민들이 정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햇빛조차도 닿지 못하는 이 숲을, 주민들은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이렇게 불렀다.
마녀의 숲.
그리고 지금 그 마녀의 숲이 부산스럽게 떨고 있었다.
늪이 시취가 섞인 거품을 뿜고 새들이 비명 지르며 날아다녔다. 이파리들이 모두 경련하며 울부짖었다.
마녀 헤카틀리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흥얼흥얼 흘러나오는 주문에 맞춰서.
“성배기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죽은 쥐, 자른 지네, 그리고 까마귀 머리로 만들어졌지!”
“성배기사는 무엇을 먹고 살까?”
“잿가루, 썩은 생선, 그리고 자기가 싼 똥을 먹고 살지!”
헤카틀리 자매는 춤을 추며 연신 부글거리는 솥에 저주의 촉매들을 집어넣었다. 보기만 해도 꿈에 나올 것 같은 재료들이었다. 그리고 그 솥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남동쪽, 아이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강력한 신체 변형의 저주였다.
지금까지 그녀들은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겪어 왔지만, 단 한 번도 자매의 죽음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예전에는 보복을 위해 역병이나 기아에 시달리게 하다 죽였지만, 그녀들은 역병이나 기아는 너무 쉬운 죽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헤카틀리 자매는 상대방이 가급적 긴 시간 동안 고통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저주가 이 신체 변형 저주였다.
저주가 완성되는 순간 아이작은 그녀들이 원하는 기괴한 형상으로 탈바꿈하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을 먹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성배기사는 무슨 말을 할까?”
“입으로 방귀를 뀌고, 항문으로 말을…….”
헤카틀리 중 한 명이 펄쩍펄쩍 춤을 추다가 숨을 헐떡이며 멈췄다. 다른 자매도 멈춰서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뭐야, 왜 그래?”
그녀의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사실 묻는 헤카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쉬운 저주는 아니었지만 유독 이번 저주는 힘들었다. 대상이 강대한 신앙심을 품을수록 힘든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나 힘든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냥 좀 힘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숨을 헐떡이던 헤카틀리의 눈앞에 기괴한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마녀의 숲에서 온갖 끔찍한 꼴을 본 그녀조차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풍경이었다. 너울거리며 요동치는 그 풍경을 본 순간, 헤카틀리의 정신은 아득한 곳으로 가 버렸다.
우득.
헤카틀리의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자매여?”
그녀의 안색을 살피던 헤카틀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헤카틀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매의 어깨를 짚었다. 그 순간 그녀의 자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과 입, 귀 코에서 무수한 가닥의 촉수가 손가락처럼 바둥거리며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압력을 버티지 못한 두개골이 터져 나가면서 촉수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방금 전까지 ‘자매였던’ 그것이 순식간에 헤카틀리를 덮쳐 왔다.
헤카틀리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마녀의 숲에서 비명은 너무 흔한 일이었다.
[목표: ‘마녀 헤카틀리 자매(3/3)’ 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