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눈뜨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 (1)
불길한 암시가 담긴 저주를 당했지만, 오랫동안 변방의 골칫거리였던 마녀에게 망신을 주고 쫓아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3년은 마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기사들은 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큰 연회를 열려고 했지만, 아이작은 엄격한 태도로 거절했다.
“완전한 승리도 아니고, 쫓아낸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는 이전에도 엘릴 기사들이 이룬 것이 아닙니까? 이런 일로 승리를 자축하는 것은 부끄러울뿐더러, 진짜 적을 앞두고 우리를 태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작의 대답은 엘릴 기사들을 부끄럽게 만들면서 동시에 성배기사에 대한 숭고함을 다시 한번 칭송케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전투 도중 발생한 사상자들을 추모하고 위로하기 위해 소소한 술자리는 허락했다.
여기저기서 작은 술자리가 벌어지는 가운데, 마을 주민들이 여기저기 음식과 술을 날랐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작에게 마을 촌장이 다가왔다.
“성배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뭔가 드릴 것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가난한 마을이라 드릴 것이 없습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아이작은 칭송받기 위해서 이런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연회를 여는 것이 싫었다. 알데온 성이라면 에델레드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받았겠지만, 이곳은 가난한 마을이었다. 이런 곳에서 큰 연회를 벌였다간 마을 창고가 거덜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촌장도 그래서 아이작에게 감사하는 것이었다. 그에겐 마녀를 잡는 것보다 추수까지 버틸 식량이 더 절실했을 테니까.
촌장은 아이작의 손을 꼭 쥐고 몇 번이나 거듭하여 감사를 표했다.
‘괜히 변방 주민들이 고대신이나 마녀에게 빠지는 게 아니지.’
게르토니아 제국도 빈민이나 농노에 대한 착취가 상당한 편이지만, 엘릴은 그보다 더 미개하다. 농민이 경작한 밀을 먹으면서도 농사를 천하다 여기는 풍조 때문이다.
반면 헤카틀리를 섬기는 변방은 갓난아기를 바치거나 기괴한 잔치를 여는 것으로 짐승이나 숲의 산물을 안전하게 얻을 수 있다. 심지어 병자를 치료하거나(대개 마녀가 퍼뜨린 역병이지만) 변덕스러울지언정 가끔은 소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엘릴에게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원하는 것은 자기 손으로 쟁취하라고 말하는 무신에게?
‘에델레드가 기사혐오에 빠진 것도 당연하지.’
게임을 할 때, 아이작은 엘릴 신앙을 좋아했다.
쉽게 강해질 수 있는 것도 좋았고, 그 단순하고 호쾌한 방식이 마음에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엘릴 신앙은 소수계급을 위한 전사숭배에 불과했다. 강한 군대라는 게 멋있고 든든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자원을 생산하지 못하고 오직 소비하기만 하는 집단이다.
차라리 빛의 법전이 낫다. 그들은 위선적이지만, 최소한 집단을 위한 실리는 챙기니까
“아참, 숲으로 가면 죽은 짐승들이 여럿 있을 겁니다. 먹어도 되는 짐승들이니 수거해서 음식으로 사용하십시오.”
“예? 하, 하지만 기사님들이 마녀의 역병에 감염된 짐승들이니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고…….”
“괜찮습니다. 제가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헤카틀리를 시켜서 멀쩡한 것들로만 골라낸 녀석들이었다. 역병에 걸린 놈들은 깊은 동굴로 들어가서 썩게 만들었으니 병이 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성배기사가 하는 말이라면 해가 서쪽에서 뜬대도 믿을 수 있게 된 촌장은 다시 한번 또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한 뒤 돌아갔다.
“성배기사! 마침 여기 있었군.”
그때 교대를 하듯 에델레드가 찾아왔다. 그도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지만 아주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시끄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따로 조용한 숙소를 마련하라 일렀소. 괜찮다면 내가 안내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잠시 걸으면 좋겠는데요.”
에델레드는 갑작스러운 대화 제안에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침 나도 할 이야기가 있었소.”
***
“리안나 게오르크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작은 바로 다음 상대하게 될 적, 리안나 게오르크에 대해 물었다. 다른 기사들에게도 들어보긴 했지만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존경받아 마땅한 소드마스터인 동시에 쳐 죽여야 할 반역자.
아이작도 게임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아는 바는 있었지만, 그녀가 얼마나 강하고 무슨 능력을 사용하는지 정도만 알았다.
아이작은 자신이 상대할 적의 역사와 관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에델레드라면 좀 더 중립적으로 이야기해주겠지.’
바람이 불자 들판의 풀들이 부드럽게 출렁였다. 에델레드는 술기운에 멍한 눈으로 그 들판을 응시하며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리안나 게오르크…… 게오크르 가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겠군. 게오르크 가문은 유명한 무가요. 그녀의 아버지 비오 게오르크도 소드마스터였고, 증조할아버지도 그랬다더군.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엘릴과 함께 바다를 넘어온 가문이라고 우기던데, 진실은 아무도 모르오.”
‘하긴, 엘릴 왕국의 잘나가는 가문들은 전부 선조가 엘릴과 함께 이 땅에 넘어왔다고 주장하지…… 그리스 같은 곳이라면 신과 피를 섞었다고 주장했을 텐데.’
하지만 살아 있는 몸으로 천사가 된 엘릴과 피를 섞었다는 것은 그 자식들이 네필림이라는 뜻이다. 네필림은 죄악으로 취급받고 있으니, 진실이라 해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가장 최선은 엘릴과 전우였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게오르크 가문이 오래된 가문이라는 건 사실이오. 그 가문의 검술은 역사가 오래됐으니 정말로 엘릴께서 전우로 두셨을지도 모르지. 또한 오랜 역사 때문에 여러 가지 인연이 많지 않소.”
칼을 잘 쓰는 사람이 오래 살았다는 것은, 친구도 원수도 많다는 뜻이다. 특히 원수가 많을 확률이 높다.
아이작은 게오르크 가문이 왜 그렇게 많은 존경을 받으면서도 왕가가 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리안나 게오르크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많소. 하지만 게오르크 가문에 이를 가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지. 솔트아인 학살 때만 해도, 세상에, 그 어부들에게 엘릴의 보살핌이 있기를. 비록 선왕께서 명령한 일이지만 미친 짓이었소. 비오 게오르크가 그 일로 저주를 받아 죽었다지.”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에델레드는 헛기침을 하고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게오르크 가문은 원래 우리 집안…… 알데온 가문이 왕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한 공신이었소. 엘릴 왕국의 왕은 알데온이 맡지만, 성지를 지키는 숭고한 일은 게오르크 가문이 맡았지. 대신 성지수호자라는 특성상 자치권과 권력을 양보했고.”
엘릴 왕국은 세워진 이래 강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원칙 아래 몇 번이나 왕조가 바뀌었다. 현 왕조인 알데온 가문도 과거에는 찬탈자 가문에 불과했다.
반면 엘릴의 시신이 안치된 성지 엘리온은 수백 년간 꾸준하게 숭배받았다. 게오르크 가문은 오랜 시간 그 땅을 지키는 일을 해왔다. 엘릴 왕국 안에 또 다른 왕국이 있는 수준의 자치와 권력을 허락받으면서.
“그런데 내 아버지, 선왕 알프레드께서는 그게 마음이 안 드신 모양이오. 그야 뭐, 의심과 광기에 절어 친구도 외가도 죄다 죽여버린 분이니 그렇겠지. 그분 눈에 게오르크 가문이 어떻게 보였겠소?”
에델레드는 취한 탓인지 아니면 취한 척 본심을 드러내는 건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모욕적인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래서 게오르크 가문도 숙청하려고 하셨습니까?”
“아니. 선왕께선 광인이었지만 멍청하진 않았지. 역사가 깊은 개국공신인 게오르크 가문을 이유 없이 공격했다간 다른 귀족들의 동요가 클 테니까.”
에델레드는 한숨을 토해 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는 게오르크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기로 했소.”
문득 에델레드는 고개를 돌렸다. 달이 기울고 있는 서쪽이었다. 그곳에는 낮에 마녀사냥을 벌이며 뛰어다니던 숲이 있었지만,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부는 한 섬을.
“솔트아인이라는 섬이 있소. 그곳에는 소금 의회 신도들이 많이 살지. 소금 의회가 그 사막에서 내쫓겼을 때 많은 수가 먼 길을 돌아 그곳에 정착했다더군. 심지어 엘릴보다도 먼저 와서 살던 사람들도 있다 하오. 선왕은 그게 좋은 핑계가 된다 생각하셨지.”
“…….”
“솔트아인 변경백은 비록 많은 소금 의회 신도들을 주민으로 거느리고 있었지만 충직한 엘릴 신도였소. 그는 자신의 섬에 ‘이단 토벌’ 명령이 내려왔을 때 경악하며 필사적으로 그들을 변호했지.”
비록 다른 신앙인이지만 세금도 잘 내고 섬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엘릴 본토에도 소금 의회 신도들이 잡아 오는 해산물과 소금, 물자들을 공급받아 살고 있지 않냐. 이들을 몰아내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리고 이교도라도 약자들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치는 것은 죄악이다…….
“당연히 선왕께서는 들을 생각 없으셨지. 당신께서는 솔트아인 변경백의 변호를 ‘반역’으로 간주하고 비오 게오르크에게 토벌 명령을 내렸소. 차라리 그때 비오가 무시했다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비오 게오르크는 명령에 복종했소. 그는 기사니까. 그리고 알데온 가문의 수장은 기사왕이니까.”
에델레드는 그렇게 말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고 비오 게오르크는 맡은 일을 아주 잘했지. 솔트아인이 불타고, 500여 척의 배가 불탔소. 수백 명의 주민들이 학살당했지. 소금 의회 신도가 아닌 자들마저, 그들을 비호하고 숨겨주려고 했다는 이유로. 하지만 지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소.”
“끝이 아니라면…….”
“뒤늦게 솔트아인 변경백이 항복했지만, 선왕께서는 솔트아인에 배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봉쇄령을 내렸소. 그것도 비오 게오르크에게 맡겼지. 솔트아인은 영토는 넓지만, 토지 대부분이 돌섬인데다 소금기 섞인 바람 때문에 땅이 척박하오. 그런데 어획을 금지한 거지.”
에델레드는 음산하게 중얼거렸소.
“토벌? 그건 학살이 아니었소. 학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소.”
3년간의 봉쇄가 내려진 사이, 최소 수만 명의 주민들이 아사하거나 간접적인 이유로 죽었다. 봉쇄령 때문에 이 끔찍한 소식은 엘릴 왕국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3년 뒤 봉쇄가 풀리고 비오 게오르크가 다시 영지로 돌아가고서야 알려졌다.
그리고 즉시 게오르크 가문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비오 게오르크가 성지수호자라는 오만함에 젖어 광기로 물들어 학살을 저질렀다는 비난이었다.
물론 알데온 가문에서 퍼뜨린 소문이었다. 솔트아인과 비슷한 이유로 원한을 갖고 있던 다른 가문과 영지들 또한 그 소문에 찬동했다. 질투와 시기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비오 게오르크는 이후 실종되었다가 어느 날 바닷가 절벽 위에서 아사한 채 발견됐다. 이후 오랜 기간 방랑하며 수행하던 장녀, 리안나 게오르크가 일족의 추대를 받아 영지를 승계받았다.
“그제야 선왕께선 칼을 뽑아 드셨소. 게오르크 가문은 더 이상 성지 수호자의 자격이 없으니, 이제 엘릴의 왕이 성지의 수호자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리안나는 거절했다.
대신 그녀는 게오르크 가문에 아직 충성하는 기사, 우애를 품은 친구, 혹은 새롭게 맺은 동맹을 모아 알데온에 선전 포고를 했다. 동시에 솔트아인 변경백은 피를 토하며 엘릴 왕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엘릴 왕국의 분열을 읽은 마녀 헤카틀리 자매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선왕께서 피하고자 하셨던 분열이 더 끔찍한 형태로 찾아온 거요. 최소 네 개, 사실 그 내면을 뜯어보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지금 이 나라는 엘릴 신앙이라는 것으로 기워놓은 누더기나 다름없소.”
***
이후 엘릴 왕국에 끔찍한 내전이 벌어졌지만, 4년 전 선왕 알프레드 알데온이 고혈압으로 죽으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에델레드의 즉위는 왕국에 평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선왕과 비교되는 유약함 때문에 불안정한 평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것이 유약함이 아니라 엘릴 왕국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체제에 대한 반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델레드는 젖은 눈으로 아이작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겠소? 오늘 그대는 정말 큰일을 해주었소. 나라가 하지 못했던 일을 대신해 주고, 이 나라에 변화가 닥치리라는 것도 예고했지. 내가 꿈꾸었던 대로.”
“폐하.”
“그대는 이제야 간신히 내가 발견한 희망이오. 기사들은 내심 나보다 그대를 더 존경하고 있겠지. 하지만 어쨌든 그대가 이 나라에 변화를 끌어온다면 상관없소. 하지만 만약 그대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이 찢어진 나라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에델레드는 엘릴이 세우고 엘릴의 추종자들이 수백 년간 다듬은 체제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호전적인 칼날들이 주변에 득시글거리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폭군이었던 그의 선왕이 문제의 싹을 다 밟아 버려서 에델레드가 무사할 수 있는 것이지, 사실 그의 입지는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웠다.
단순히 왕이 되는 것이라면 쉽다.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해지면 되니까.
하지만 에델레드는 그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고 싶어 했다.
더 어려운 길이었다.
아이작은 그 모습에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과 동류의 존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에델레드는 사실상 외눈박이 세상에 던져진 두눈박이였다. 이세계에 떨어진 현대인인 아이작이 매번 느끼는 괴리감 또한 에델레드가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작은 에델레드에게 안타까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의 왕이 되십시오. 폐하.”
혐오하는 것을 파괴하려면 혐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이작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