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눈뜨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 (2)
“……무슨 말이오? 리안나처럼 소드마스터라도 되라는 거요?”
“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건 과정에 불과합니다.”
필요하다면 선왕이 밟았던 길도 밟아야 합니다,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건 에델레드에게 지나친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작의 말은 솔트아인 학살만큼이나 잔인한 속뜻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에델레드가 따지려 했지만 아이작은 말을 끊고 바로 이었다.
“강력한 절대왕정을 만들고 중앙 집정 국가를 세우십시오. 아예 왕과 왕의 친위대 말고는 누구도 칼을 들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 아무도 칼을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사들을 처절하게 몰락시키고 분해하십시오.”
엘릴 같은 존재가 왕이 된다. 그것이 바로 엘릴이 세운 체제를 파괴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엘릴이 세운 것을 파괴하려면 엘릴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됩니다.”
아이작의 말은 에델레드에게 기묘한 울림을 주었다.
그는 듣고서도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아이작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지금까지 엘릴 왕국에 세워졌던 무수한 왕정이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기사 계급을 몰락시키는 기사왕의 출현.
사실 강력한 왕은 강력한 기사들의 무력을 바탕으로 하니, 스스로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것이 체제 변경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군벌과 기사 집단은 강력한 중앙정권과 상비군만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다. 물론 엘릴 기사들은 강력한 무력이지만…… 결국 소드마스터 같은 영웅으로 둘 게 아니라 군대에 편입시켜야 옳아.’
오직 법과 행정에 의해서만 칼을 휘두를 수 있게 허락되어야 한다. 아이작은 이게 엘릴의 교리와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 기사의 존재감을 약화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엘릴 신앙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상관없잖아?’
아이작은 엘릴 신앙을 믿지 않는다. 당장 여명군 때에는 엘릴 기사들이 필요하겠지만, 이후 원정이 마무리된다면 몰락시켜야 할 집단이다. 그들에게 농부와 목수, 어부, 관료들이 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줘야 했다.
영원히 전쟁을 치르든가, 아니면 국가에 의한 평화를 누리든가.
둘 중 하나라면 칼잡이의 낭만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후자를 선택하는 게 맞다.
***
아이작의 생각이 에델레드에게 당장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르토니아 제국조차도 발트제메르 황제 대에 들어서야 겨우 중앙집권화를 시도하고 있는 실정이니까. 엘릴 왕국은 군벌들의 이합집산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그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소. 성배기사. 하지만 강력한 왕이 되어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건 이해하겠소.”
에델레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건 그 역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엘릴 왕국에서는 힘세고 잘 싸우는 놈 마음대로다.
에델레드가 기사를 싫어한다면 기사 중 가장 강력한 사람이 되면 된다.
물론 아이작은 그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뿌리박기 위한 것을 말한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과정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일단 국가 제도를 재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해야지요. 이건 모든 변화의 기초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무책임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해결법도 가지고 왔다.
“먼저 게르토니아 제국과의 무역을 재개해야 합니다. 제게 황금우상 상단과의 연줄이 있습니다. 제 보증을 설 수 있을 정도로 신의 깊은 상인입니다.”
“무역 재개. 좋군. 이건 나도 원하는 바요. 다만 싫어하는 자들이 있겠지만…… 음. 그건 앞으로 게오르크 가문과의 전쟁 향방에 따라 달라지겠군. 이건 성배기사만 믿겠소.”
그러다 에델레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선왕께서 소금 의회 신도들을 많이 해치셨소. 소금 의회가 우리 왕국에 가진 원한이 적지 않을 텐데 무역에 협조하겠소?”
섬나라인 엘릴 왕국은 해운을 통하지 않고선 무역이 불가능하다. 이는 선원들 대부분을 장악한 소금 의회를 적대한 시점에서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화해를 주선해 보겠습니다. 저는 소금 의회 수뇌부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에델레드 폐하께서 충분한 성의를 보여주신다면 소금 의회도 뜻을 받아들일 겁니다.”
에델레드는 감탄하는 눈빛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모든 문제를 미리 준비한 것처럼 척척 답변을 내놓는 아이작의 모습은 그에게 구원자나 다름없어 보였다. 사실상 지금 모든 문제를 아이작이 해결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미리 준비해 온 것이기도 했다.
“제도적 개선에 대해서는 게르토니아 법령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발트제메르 황제와 관계 개선을 통해 참고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엘릴이 이 나라에 들여온 법령은 700년 전 것이니 개선이 필요할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작이 이사크레아 영지에 만든 규정집을 들고 오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과격한 변화가 될 것이다.
아이작은 야만적인 결투 재판만 없앨 수 있어도 큰 소득일 거라고 생각했다.
“재정확보와 제도개선. 좋소. 다음은?”
“상비군을 확보하십시오. 군대는 돈 잡아먹는 괴물이지만, 소수의 기사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강력한 군대가 있어야 합니다.”
왕이 귀족에게 늘 흔들리는 이유는 병력이 필요할 때마다 귀족들에게서 사병을 빌려 쓰기 때문이다. 이건 발트제메르 황제조차 완전히 개선하지 못한 문제였다.
하지만 엘릴 왕국은 더 심했다. 소수의 기사들이 무력을 독점하고, 필요할 때마다 농민들을 징집해서 써먹는 정도였으니까. 이런 징집병은 기사들을 상대할 때에는 무력한 양 떼나 다름없다.
때문에 전쟁은 오로지 기사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훈련된 상비군이 항상 왕 곁에 머문다면 기사들에 대한 견제 세력이 확보된다. 궁극적으로 기사들은 군대의 한 직책 정도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엘릴 왕국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실력 확실한 장교들과 검술 교관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는 점이었다.
“상비군…… 확실히 돈 잡아먹는 일이겠군. 어렵겠지만 참고하겠소. 다음은?”
“자기 단련입니다. 폐하. 에델레드 폐하께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셔야 합니다.”
“…….”
지금까지 말했던 제도개선, 재정확보, 상비군 개설, 외교관계 개선 따위는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이야기였다. 제대로 실현되려면 짧은 기간으로는 불가능하다. 최소 3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을 봐야 할 일이었다.
그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 에델레드는 강해져야 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무슨 뜻인지는 알겠소. 하지만, 음. 솔직히 말하지.”
에델레드는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사실 한 번도 사람을 벤 적이 없소.”
아이작은 에델레드의 나이를 가늠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 14살에서 16살 사이일까. 현대였다면 고작 해 봐야 중학생 정도다. 그런 아이가 살인을 해 본 적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압박당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소드마스터도 사람을 죽이지 않을 마음으로 칼을 휘두르라고 하더군요.”
“그런 말을 하는 소드마스터가 있었소? 소드마스터라면 적어도 수백 명은 베었을 텐데.”
“조금 괴팍한 자이기는 했지요. 어쨌든 앞으로도 폐하가 사람을 베실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단련하실 필요는 있겠지요.”
아이작이 알기로 선왕인 알프레드 알데온은 소드마스터였다. 당연히 에델레드 역시 그 재능을 물려받았다.
아이작은 게임 내에서 묘사된 에델레드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보다 훨씬 더 피폐하고 상처 입은 모습이었지.’
하지만 지금 그에게 닥치고 있는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에델레드는 살아남는다. 엘릴 왕국에 걸맞은 강력한 왕이자 기사혐오자로서, 피로 피를 씻는 내전을 반복하며 선왕의 길을 밟아 간다.
마침내 소드마스터에 이를 정도로.
‘내버려 둬도 강해지겠지만…….’
아이작은 그의 미래를 약간 손봐주기로 했다. 어차피 재능이 있다면 자신이 조금 손봐주고 생색을 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제가 검술을 조금 알려드리겠습니다. 폐하.”
에델레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성배기사의 검술을? 검술이란 것은 함부로 알려 주지 않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아는 어떤 괴팍한 노인네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쩨쩨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까 그 소드마스터와 같은 사람이오?”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같은 기사단 소속이었습니다. 둘이 서로 죽이려고 벼르고 있지요.”
“이상한 사람들이군…….”
에델레드는 어리둥절해했지만, 아이작은 그의 앞에 서서 칼을 뽑아 들고 느리게 움직였다.
에델레드는 검을 휘두르며 그의 동작을 흉내 내 보았다. 폭력적인 선왕을 아버지로 두고 있던 에델레드는 당연히 오랜 시간 검술 단련을 해왔다. 이미 근력은 물론이고 기초는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였다.
“이건 제가 여덟 갈래라고 이름 붙인 동작입니다. 마치 날카로운 손가락들이 적을 움켜쥔다는 느낌으로…….”
아이작은 한 번도 누구에게 검술을 가르쳐 본 적이 없지만, 어렵사리 에델레드에게 검술을 알려 주었다. 에델레드는 어색하게 그 동작을 흉내 냈다.
그가 평소에 익히던 검술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소드마스터로부터 검술을 사사할 수 있는 기회는 흔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델레드는 곧 집중해 땀을 흘리며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이작!”
얼마나 지났을까, 에델레드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이작이 다가가자 들판의 한쪽이 난잡하게 잡아 찢은 것처럼 흉하게 상처 난 들풀들이 보였다.
검으로 벤 것 같은 반듯한 단면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흉내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세’만이라도 흉내 내기 시작한 에델레드를 보며 얼떨떨한 기분에 빠졌다.
‘게벨이 나를 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물론 에델레드는 기초를 완성한 상태다. 혹은 엘릴의 왕이자 신도로서 검술 재능에 추가로 버프를 받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아이작의 감탄을 게벨이나 바슐 등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검술을 알려 준 사람들이 듣는다면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아이작은 대륙 역사를 통틀어도 예외적인 천재였으니까.
에델레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만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제 세상에 하나밖에 없던 이삭 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또 한 명 태어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훌륭합니다. 계속 해보지요.”
“아, 알겠소. 아, 그, 그런데…….”
에델레드는 뭔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무심결에 아이작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무례한 짓이었소. 사과하오. 하지만 ‘성배기사’라는 호칭으로 계속 부르는 것은 조금 꺼려지는데, 이런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었고 하니…….”
아이작은 에델레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길래 이렇게 머뭇거리나 했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에델레드는 결국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소?”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뜻대로 하셔도 됩니다.”
허락받은 에델레드는 희희낙락하며 다시 검을 휘두르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던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고 가르쳐 주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은 에델레드를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이작 또한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수도원에서 게벨을 만나고 그를 통해 단련하기 시작했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하지만 아이작은 동시에 희망을 품기 시작한 에델레드를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가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델레드, 너는 네가 그토록 혐오하던 기사, 그리고 선왕과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혐오하는 것을 파괴하려면 혐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혐오하는 것들과 함께 몰락하고, 그 행복은 후대가 누리게 해야 했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은 원래 그렇다.
아이작은 그렇게 엘릴 왕국에 작은 혼돈의 씨앗을 심었다.
***
“헉, 허억…….”
그렇게 아이작에게 검술을 배운 에델레드는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칼을 휘둘렀다. 밤이 제법 깊어 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었기에 아이작은 슬슬 들여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델레드는 혼돈의 기세를 드러내는 것 이상으로는 진보하지 못했지만, 이미 충분히 예상을 초월한 성장이었다.
“헉, 이거, 뭔가 금방…… 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가, 금방 배가 꺼지는군.”
에델레드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작은 내심 켕기는 게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 겁니다.”
그때 아이작은 고개를 돌렸다.
‘서쪽 능선, 자작나무 옆, 검은 옷, 셋. 엘릴 기사로 추측.’
갑자기 헤사벨에게서 경고의 의지가 전해진 것이다. 아이작 또한 헤사벨의 눈을 통해 상대방을 관측할 수 있었다. 어디의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은 없었다. 다만 알데온 기사들은 아니고, 숨은 모습이 어설픈 걸 보니 인간사냥꾼들도 아니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서 쉬시지요. 내일부터 다시 알데온 왕성까지 먼 길을 가야 합니다.”
“아, 알겠소. 아, 아니, 알겠습니다. 선생님.”
에델레드는 자기가 말해 놓고도 뿌듯하다는 표정을 했다. 아이작은 무심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가까스로 손을 멈췄다. 왕의 머리를 쓰다듬다니, 정신 나간 짓이다.
‘헤사벨, 에델레드를 호위하고 있어. 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