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이단심문관 (3)
이단심문관.
섬뜩한 어감에 아이작은 긴장했다. 결코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이단심문관? 그놈들이 왜?’
“이단심문관이 왜 갑자기 방문한다는 겁니까?”
게벨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역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단심문관은 교단 내 감찰관 같은 존재들이다. 적보다 아군 속에서 위협을 찾는 직책이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예브하르는 섣불리 말하는 대신 힐끔 아이작을 보았다. 함부로 이야기하기 힘든 사안인 듯했다. 아이작은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고개 숙이며 물러났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자마자 바로 왼손에서 촉수를 뽑아냈다.
[벽 속의 쥐 / 촉수를 통해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아이작은 그동안 이 권능으로 수도원 곳곳에서 비밀과 속삭임을 쉬지 않고 엿들어 왔다. 남들에게 들켜선 안 되는 비밀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방문 이유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급보라더군요.”
예브하르는 갈까마귀를 통해 받은 편지를 게벨에게 보여 주었다. 휘갈겨 쓴 편지의 내용은 짧았다.
“급보. 위협 존재. 즉시 수도원 폐쇄 후 경계.”
짧지만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던 편지였다. 게벨은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듯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읽었다. 하지만 수도원에 위협이 되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이단심문관이 방문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 ‘위협’이 무엇이란 말인가?
예브하르는 우려 섞인 눈으로 게벨을 바라보았다.
“게벨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도원 자체에 이단 혐의가 있다면 갈까마귀를 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건 위협이 수도원 안에 숨어들었거나 찾아오고 있다는 뜻 같군요. 수도사님들은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작은 그 말을 들으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얘기인가?’
아이작은 이때까지 빛의 법전의 교리에 어긋나는 짓이나 이름 없는 혼돈과의 관계를 들킬만한 짓을 한 적 없다. 하지만 아이작이 촉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교단의 적이라는 증거였다.
만약, 아주 만약의 만약이라도 교단의 누군가가 아이작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면 이단심문관을 보내서 확인하는 것도 당연했다.
게벨은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담담히 예브하르에게 조언했다.
“이단심문관이 온다는데 제가 굳이 피한다면 더 의심스러운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일단 이단심문관을 맞이하도록 하죠.”
***
‘이걸 어쩐다.’
이단심문관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수도원은 온통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모든 노동을 중단하고 방으로 돌아갔고, 수도원 대문은 굳게 잠겼다. 저 문은 이단심문관이 방문하기 전까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작은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아이작은 이미 이런 상황에 대해 수백 번 고민하고 대비해왔다. 만약 의심받거나 쫓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아이작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 사람들을 싸그리 다 죽이고 먹어 치우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아이작은 옛날에 멧돼지에게 잡아 먹힐 뻔했던 동굴에 그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물자들을 숨겨 두었다. 변장할 수 있는 옷과 도주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까지 전부.
만에 하나라도 교단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단심문관을 보냈다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려면 바로 이대로 떠나면 된다. 어차피 먹을 것은 촉수를 통해 얻으면 되고, 살점 저장고 능력 덕분에 며칠 안 자고 안 먹어도 버틸 수 있으니까…….’
어차피 수도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다.
몸도 자랄 만큼 자랐고, 게벨도 검술을 다 가르쳤다고 했다. 기적은 아직 미숙하지만 이것은 촉수를 가지고 있는 한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떠나서 변방의 기사단이라도 들어간다면 제법 대우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이 자신 때문에 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사실 자신 때문에 오는 게 아닌데 도망쳐 버린다면? ‘어? 저 새끼 뭐 찔리는 게 있는 거 아냐? 좀 잡아 놓고 강도 높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같은 이야기라도 나온다면?
‘이래서 감찰관들이 싫다니까.’
온갖 뒤숭숭한 생각을 하게 만드니, 방문 그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아이작은 고민 끝에 일단 이단심문관이 도착한 직후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날 바로 지목하고 찾는다면 그때 가서 바로 도망치자.’
아이작은 이미 수도원 곳곳의 구조와 산의 지리를 익혀 두었다. 비밀스럽게 빠져나가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촉수의 도움을 얻는다면 이대로 쭉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다음이 문제겠지만.
아이작은 모처럼 준비해 왔던 성기사 수련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해져서 밖으로 나왔다.
그때 어두컴컴한 복도 건너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게벨이었다.
게벨은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뭔가 느낌이 달라 보였다.
“아이작? 무슨 일이냐.”
“수도원 분위기가 이상해서 가만히 있기 좀 그렇네요.”
“흠, 하긴. 수도사들도 분위기가 영 안 좋구나. 다들 예배당에 모여서 기도 중이다. 수도사들의 신심이 깊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단심문관들이란 족속들은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자들이니.”
게벨은 이단심문관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작은 문득 게벨에게 탈영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도 그 점을 문제 삼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에게 배교나 이단 혐의가 씌워질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수도원장이 어떻게 할지 게벨에게 물어봤던 건가?’
수도원장 입장에서도 아이작과 게벨, 교단에 대한 비밀을 두 개나 안고 있는 셈이니 찜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호해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우우우우우.
수도원 밖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요 며칠 사이 부쩍 늑대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또 짖어대는군.”
“먹을게 다 떨어져서 그런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산지기 말로는 요즘 산에 짐승들 수가 부쩍 줄어들었다고 하던데…….”
아이작은 내심 뜨끔했다.
아이작은 촉수를 포식시키기 위해서 틈나는 대로 수도원을 빠져나가 짐승을 사냥하곤 했다. 주변의 위험한 짐승들은 어느 정도 다 포식해 버린 덕분에 촉수의 능력은 정체된 상태였지만, 결국 아이작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생태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텐데.’
“조만간 마을을 들를 겸 사냥이라도 해야겠다. 수도원과 마을을 오가는 길이 위험해지면 안 될 테니.”
“예.”
평안한 척 다음, 그다음 날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이작은 게벨의 동요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도 자신처럼 이단심문관을 피해 도망칠 것을 고민 중이라는 것도.
‘대체 아발란체 성기사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숨어 살게 된 거지.’
“아이작. 아까 낮에 했던 이야기 말이다.”
그때 게벨이 아이작의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아이작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내가 너한테 검술을 가르친 것에는 속내가 있다. 너에게 검술을 가르쳐주면, 언젠가 네가 날 대신해서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지. 지금은 내가 죽일 수 없는…….”
게벨은 잠시 핏발 선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궤멸이 그자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고만 알려주마. 모두가 전장에서 죽고 오직 나만이 도망쳐서 살아남았지.”
“…….”
“즉, 네게 맡기고 싶은 것은 나의 사적인 복수다. 미안하구나.”
그러니까 게벨은 복수를 맡기기 위해 아이작을 가르쳤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아이작이 먼저 검술을 가르쳐 달라면서 접근했었고, 게벨 역시 그와 뜻이 맞았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게벨에게 복수하고 싶은 대상이 없었다면 아이작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까짓거 누구 한 명 죽이는 것쯤, 검술 강습료로 쳐주죠.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고 하니 제가 직접 찾아갈 필요도 없겠네요.”
아이작의 말에 게벨은 벙찐 표정을 했다. 이내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어떻게 수도원장님의 ‘믿음의 증명’을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독실한 교인처럼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그건 게벨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둘은 낄낄거리며 공범의 웃음을 지었다.
웃음이 잦아든 뒤, 아이작은 게벨과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단심문관은 저녁이 되기 전에 오겠다고 했는데 벌써 밤이 늦어지고 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일 아침에 올지도 모른다. 아이작은 그가 가급적 늦게 오기를 바랐다.
쿵쿵쿵쿵!
그때였다. 갑자기 수도원 정문에서 요란하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온 건가? 생각보다는 이르군.’
게벨은 굳은 표정으로 정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의 명령대로 문을 폐쇄했기에 문을 여는 데만도 한참 걸렸다.
그 와중에도 문 두드리는 소리는 요란했다.
“누구 없어요?! 제발! 문 좀 열어봐요!”
“한스? 한스 아니냐? 무슨 일이지?”
“게벨 씨!”
문을 두드리던 당사자는 다름 아닌 성인이 되어 마을의 대장장이 공방에 들어간 한스였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수도사들도 게벨을 도와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한스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쓰러졌다.
“한스!”
한스는 온통 피투성이에 전신이 상처가 가득했다. 다행히 대부분은 넘어지거나 긁히면서 생긴 것들로 치명상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습격이라도 당했어?”
“습격, 늑대들이 습격을…….”
게벨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 그래도 늑대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고 생각했는데 급기야 인간이 습격당하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한스가 왜 이 한밤중에 수도원을 오다가 늑대를 만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가 다급히 말했다.
“이단심문관! 이단심문관님이 위험하셔!”
***
아이작과 게벨은 다급히 산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지금 늑대들을 상대하며 위험에 처해있을지도 모르는 이단심문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단심문관이 길 안내를 요청했었어.’
아이작은 한스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대장장이 공방에서 일하던 한스는 이단심문관으로부터 수도원까지의 길 안내를 부탁받았다. 이단심문관이 찜찜하기는 했지만, 수도원에서 자란 교인으로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순응했다고 했다.
그런데 가던 길에 갑자기 늑대 떼가 나타나 둘러싸더니 그들을 습격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에 한스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은 한스를 보호하면서 도망칠 활로를 뚫어주었고, 수도원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한스는 반나절 가까이 산을 뛰어 올라와 수도원에 도착한 것이다.
‘한스를 살려주고 자기는 뒤에 남다니…….’
이단심문관에 대해 선입견을 가졌던 아이작은 약간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단심문관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그냥 늑대에게 습격당해서 죽었다면 더할 나위 없을지도?’
아이작 때문이든, 또 다른 어떤 위협 때문에 왔든 이단심문관이 그대로 죽어서 늑대밥이 된다면 근심거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후욱……!”
아이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주받은 피 때문에 도무지 늘지 않는 것 중에는 폐활량도 있었다.
게벨로부터 상급 검술인 ‘전조’ 스킬을 전수받기는 했지만, 아직 그 제대로 연습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당장 실전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스킬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산등성이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몸으로 함부로 사용했다간 얼마나 다칠지 알 수 없었다.
이 또한 아이작이 스스로의 상급 스킬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체구가 커지고 근육이 붙으면서 이전보다 체력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게벨처럼 한밤중에 산 위를 전력질주하면서도 멀쩡할 정도는 되어야 상급 검술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이 슬슬 처지기 시작하자 게벨은 이해한다는 듯 힐긋 눈짓을 주고는 앞서 달려갔다. 아이작은 이러다간 기껏 도착했을 때 숨이 차서 아무것도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악!
하늘 위에 갈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비행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그것이 수도원을 찾아왔던 갈까마귀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영리한 갈까마귀가 제 주인의 위치를 알려 주려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앞서가고 있는 게벨이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뒤, 촉수를 꺼내 들었다. 낮게 비행하던 갈까마귀는 순식간에 가느다란 촉수에 꿰였다.
아이작은 잠시 갈등했다. 이대로 갈까마귀를 죽이면 이단심문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능력을 발동했다.
[저 너머의 기생충 / 촉수에 닿은 상대의 살갗 아래 짧은 수명을 가진 기생충을 낳습니다. 기생충에 감염된 대상은 지속적인 고통을 입습니다.]촉수에 꿰인 갈까마귀의 몸 안으로 실지렁이 같은 촉수가 기어들어 갔다. 분리된 촉수는 순식간에 갈까마귀의 신경계를 장악하고 지배했다.
아이작이 지금까지 이름 없는 혼돈으로부터 얻은 특전 중 하나였다. 고통을 주기 위한 용도라고 나와 있었지만, 아이작은 다른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작은 그 촉수에 다시 ‘벽 속의 쥐’ 특전을 발동시켰다.
[벽 속의 쥐 / 촉수를 통해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순식간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갈까마귀의 시야가 아이작에게로 공유되었다. 아이작은 즉시 이단심문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