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안개 속의 악마 (1)
알데온 군이 성지 엘리온을 향해 움직이자마자 예상대로 곳곳에서 게오르크 기병대가 귀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르스와 델프릭 힐드는 엘리온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전령의 보고를 들었다.
“이미 우리 결속을 깨뜨리고 불안감을 심어준다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아쉬울 게 없겠지.”
“이제 게오르크 군과 우리의 경주가 되겠군요!”
델프릭이 길게 이어지는 기사들의 행렬을 보면서 말했다.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주력 기사들이 집중된 선봉대와 보급과 병력을 책임지는 본대가 바로 뒤따르기로 했다. 선봉에는 에델레드로부터 총지휘권을 위탁받은 모르스 기드온과 알데온 기사단장 델프릭 힐드가 다른 기사들을 이끌고 앞장서게 되었다.
본대의 주력군에는 에델레드와 아이작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본대라고는 해도 병력 수 자체는 차이는 크게 없었다. 본대에 총사령관인 에델레드가 있고, 보급물자와 병력이 더 많을 뿐, 기사들의 숫자를 놓고 보면 1군 쪽이 더 강했다.
모르스는 게오르크 군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말했다.
“경주라…… 게오르크 기병대는 순순히 엘리온 성채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아마 우리 선봉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기습을 시도하겠지. 기사들에게 매복에 주의하고 측면 경계병을 늘리라 이르게.”
암살에는 치를 떠는 엘릴 신앙이지만 전략 전술 단위에서의 매복이나 기습은 ‘영리한’ 행위로 여겨졌다. 소수의 병력으로 큰 병력을 상대하는 것은 ‘용감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큰 병력이 소수를 상대로 매복 따위를 하는 일은 없었다.
“흠, 처음부터 에델레드 폐하와 성배기사도 우리와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델프릭은 칼드부흐를 꺼내 온 에델레드를 떠올리며 말했다. 델프릭은 에델레드에게 충성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왕관 쓴 어린애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작으로부터 검술 교육을 받고 있는 에델레드를 보고, 그의 성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알데온 기사단의 수습기사 정도의 수준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에델레드의 나이 또래들은 마구를 청소하거나 기사들의 장비를 챙기는 정도가 평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성장 속도였다.
모르스는 델프릭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께서 친정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위험을 감수하시는 거다.”
“하지만…….”
“폐하까지 선봉에 서시면 그야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러면 지휘권이 모호해진다. 그렇다고 내가 찍어누르는 모양새가 나와도 곤란하지. 마녀사냥 때랑은 달라. 성배기사는 우리를 위해서 건의한 것이다.”
모르스는 전쟁 전문가고 힐드 남매는 전투 전문가다.
그런 둘을 위해 아이작은 일부러 에델레드를 본대로 빼놓았다. 사실 현대인인 아이작은 전쟁터에서 왕의 존재란 그냥 사기 진작용 토템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병사들이 격돌하는 전투 한복판에 있으면 저절로 감정이 격해지게 되어 있다.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세상을 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게오르크와의 화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어린 왕을 최전선에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은 아니다.
물론 그런 아이작의 생각을 모르는 모르스는 그저 그의 배려가 깊다고만 생각할 뿐이었지만.
“아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성배기사라도 우리와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솔직히 알데온 군 안에서 소드마스터인 리안나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작뿐이었다. 그렇다면 아이작은 선봉에 있는 편이 좋았다. 이미 선봉에 서겠다고 귀족들과 수십 차례 결투까지 하기도 했었으니까.
“혹시 본대가 공격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걸까요?”
본대에는 기사의 수가 부족하고 보급물자가 풍족하다. 거기다 알데온 군의 중심이 되는 에델레드 왕이 있었다. 전력에 비해 전공으로 삼을 대상이 충분하니 델프릭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모르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게오르크 군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을걸세. 놈들은 보급도 병력 보충도 안 되는 상황이야. 본대를 공격하느라 발목 잡혀있으면 우리가 먼저 요새를 포위하게 될 텐데, 그러면 놈들은 꼼짝없이 고립된 상태로 떠돌다가 와해하겠지.”
게다가 놈들의 뒤에는 영지가 공격당한 일로 이를 갈며 쫓아오는 기사들도 있었다. 본대가 한방에 박살 나서 에델레드까지 잡힌다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악재가 겹친다면 그냥 엘릴의 뜻이라고 봐야 했다.
결국 본대를 공격하는 건 도박수밖엔 안 된다. 모르스는 게오르크 군이 과감하기는 해도 그 많은 숫자의 기사들을 희생시키는 멍청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두두두두두. 그때 후미에서 급하게 말 한 마리가 달려왔다.
“모르스 장군님!”
다급하게 도착한 전령을 발견한 모르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이지?”
“에델레드 폐하가 계신 본대가 공격당했습니다!”
“뭐라고! 피해는?”
“완승입니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이사크레아 경이 적 기병대장의 목을 베고 본대와 함께 급습, 적 기병대 절반을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
***
인간사냥꾼으로서 활약한 바 있는 헤사벨은 정찰병으로 활약하기에 적합했다.
암살은 물론이고 잠입 능력이 뛰어난 데다, 고립되기 쉬운 정찰병이지만 어디서든 음식을 ‘현지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낮보다 밤에 활동성과 시야가 더 좋아지니 타고난 정찰병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야에 어제부터 이상한 움직임이 잡히고 있었다.
‘게오르크 기사예요. 아이작 님.’
헤사벨은 나뭇가지 위에서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기사를 내려다보며 의지를 보냈다. 게오르크 기사들이 알데온 군 본대 근처에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소수의 기사들이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게오르크 군도 어쨌든 정찰병이란 걸 운용할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수가 늘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본대에 충분히 매복 공격을 가하고도 남을 만큼의 숫자가 되어 있었다.
‘숫자는?’
‘대략 250에서 30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알데온 군이 보고를 통해 예상한 기병대의 수는 대략 600명 정도였다. 그들은 600명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일제히 엘리온으로 귀환한다는, 이런 시대에 과연 가능할까 싶은 기동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중 300명 정도가 본대 근처에 모였다는 것은 이 상황이 어느 정도 계획되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언덕 위 숲속에 위치한 기사들은 거슬리는 갑옷 부딪치는 소리 하나, 기침 소리 하나 내지 않을 만큼 은엄폐를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데리고 있는 말조차도 걸음을 조심했다. 그들이 얼마나 엄정한 군기와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 중 헤사벨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있는데, 머리에 예쁜 침 한 대만 꽂아줄까요?’
헤사벨은 전열 선두에 검은색 늑대 가죽 망토를 걸친 남자를 예의주시하며 말했다. 그녀가 든 석궁의 끝은 이미 남자의 뒤통수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아이작에게서 부정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암살 같은 짓을 하면 바로 에델레드가 비난받는다. 내버려 둬. 어차피 실패할 공격이야.’
헤사벨은 여전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엘릴의 방식이었다.
딱 한 사람 머리만 따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을 수 있는데 그걸 내버려 둬야 하나?
하지만 아이작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옳은 말이었다.
애초에 이 매복을 예상한 것도 아이작이었으니까.
그사이 알데온 군의 본대는 언덕 사이에 들어섰다. 선봉에 있던 검은 늑대 가죽 망토의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매복해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공격할 채비를 갖췄다.
그 순간, 그들이 목표로 삼은 알데온 군 쪽에서 누군가 툭 튀어나왔다. 이미 성배기사에 대한 인상착의를 들은 게오르크 기사들은 지금 달려오는 자가 성배기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정확히 매복한 위치를 향해서 달려오는 성배기사의 모습에 당혹감이 그들을 휩쓸었다.
매복이 들켰다는 당혹감,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하나 하는 동요, 동시에 고작 혼자서 돌격해 오는 적에 대한 경외와 놀라움.
온갖 생각의 혼란이 그들을 휩쓸었다.
덕분에 돌격 명령을 내렸어야 했던 기병대장의 모든 판단이 꼬여 버렸다.
“대장! 명령을!”
다급한 부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기병대장은 급히 손짓을 했다.
“전원 돌……!”
순간 기병대장은 달려오는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기이한 감정이 그의 심장을 사로잡았다. 한순간 심장을 쥐인 듯한 서늘한 공포에 숨통이 턱 막혔다. 덕분에 명령이 중단되면서 기병대원들의 발이 다시 한번 꼬였다.
두두두두두두, 쾅!
결국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온 아이작이 단숨에 숲을 향해 뛰어들면서 정확히 기병대장이 있는 위치를 타격했다. 기병대장은 뒤늦게 칼을 들어 그를 막아 내려 했지만, 칼이 맞닿은 순간 글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코 방심하지 않는 아이작은 첫수부터 검기를 뿜어 내며 기병대장의 칼과 갑옷, 몸통을 단숨에 갈라 버렸다. 흩뿌려지는 피와 갑옷의 모습은 기병들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남겼다.
황급히 다른 기사들이 창을 내질렀지만, 체계도 없고 어지럽게 흩어진 창은 아이작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아이작은 미끄러지듯 회피하면서 기사 두셋을 더 베다가 다시 횡으로 빠져나갔다.
“자, 잡아라!”
순식간에 기병대장을 잃은 기병대원들은 당황하면서도 성배기사의 가치를 잊지 않았다. 성배기사는 게오르크 군에게 있어서 에델레드만큼이나 중요한 목표였다. 그들은 황급히 아이작을 잡기 위해 말고삐를 붙고 숲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숲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느새 언덕 위로 치고 올라온 알데온 군의 본대였다. 아이작이 단신으로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사이 알데온 군 본대가 쫓아 올라온 것이다.
기병대원들은 뒤늦게 자신들이야말로 아이작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진 병사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내 무자비한 화살비가 그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
아이작은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거칠게 투레질하는 팬텀 스티드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간신히 말 흉내를 내는 부정형 신경다발 같던 외형은 이제 꽤 그럴듯한 붉은 털을 가진 말처럼 보였다. 안장만 있으면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말을 꺼낼 수 있다는 것은 편한 점이었지만, 아직도 그 기세가 흉포하기 짝이 없어서 아무래도 사람들 앞에서는 꺼내기 미묘했다.
덕분에 알 두아자드와 싸운 날 이후로 꺼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이번에도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이작은 숲속 곳곳에 흩어진 기병대의 전리품을 수거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기병대원들의 숨통을 끊는 일도 함께 이루어졌다. 게오르크 군은 그 질적인 수준에 맞는 질 좋은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체계는 좀 없어지겠지만 저들이 수집한 가슴받이 하나, 장갑 하나가 목숨을 지켜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략 200명 정도 죽였나?’
아이작은 차곡차곡 쌓이는 시체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직접 벤 목은 열이 넘지 않았지만 군대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살인 기계다. 아이작이 기병대장의 목을 베고 기선제압을 하자 제대로 된 검술은커녕 장비도 잘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200명의 기사들을 죽였다.
반면 본대의 피해는 사망자 31명에 중상자 90여 명이 전부였다. 사상자 대다수가 변변한 장비도 없는 징집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대전과였다. 보고를 들은 에델레드가 다시 집계를 해 오라고 했을 만큼.
하지만 아이작은 이마저도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예상보다 피해가 컸어.’
기병대의 사기를 꺾고 1차 사격이 쏟아졌을 때, 아이작은 그들이 곧바로 퇴각할 줄 알았다. 발각된 매복은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게다가 몇십 배는 많은 병력들이 창칼을 겨누고 있으면 기습으로는 어떤 전과도 올리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기동성을 살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엘릴의 신도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엘릴이라도 어리석은 싸움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방금 습격은 명백하게 어리석은 싸움이었다.
‘왜?’
“성배기사님, 시체는 어떻게 할깝쇼?”
아이작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시체를 수습하던 십부장 한 명이 물었다. 아이작은 대충 알아서 하라고 하려다가 그걸 자신에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엘릴 왕국은 보통 어떻게 하지?”
“보통은 묻습니다요. 하지만 성배기사님은 빛의 법전 출신이니 태워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요.”
화장은 미친 언데드 광인집단인 불사교단에 맞서는 빛의 법전 쪽의 전통이다. 엘릴 왕국 국민 대부분은 시체를 땅에 매장했다.
물론 엘릴이 빛의 법전을 섬기던 시절의 전통이 남은 소수 귀족들은 배에 사람을 실어서 불태우는 화장을 좋아했지만, 빈민들에게는 귀한 장작을 낭비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긴 엘릴 왕국이니 왕국 방식대로 하게.”
태우고 싶어도 봄장마가 시작된 엘릴 왕국은 비가 오지 않아도 습하고 축축했다. 지금 시체를 태우는 것은 괜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차라리 소수 경비 인원만 남기고 묻는 편이 나았다.
십부장은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거린 뒤 물러났다. 십부장이 돌아갈 때쯤, 에델레드가 말을 타고 다가왔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아이작이 먼저 말했다.
“병사들은 이게 엘릴의 승리라기보단 저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