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이단심문관 (4)
갈까마귀는 몸 안에 기생충이 파고들자 이질감을 느낀 듯 날개를 퍼덕였다. 하지만 기생충은 감각을 차단하여 갈까마귀를 안정시켰다.
“음?”
갈까마귀가 퍼덕이는 소리를 들은 게벨이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아이작이 이미 촉수를 회수한 뒤였다.
갈까마귀가 어떤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하자 게벨은 방향을 바꿨다.
“아이작, 이쪽으로 와라!”
“예!”
아이작은 게벨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이미 갈까마귀를 통해 주변의 상황과 가야 할 길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이단심문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온통 나무들이 쓰러지고 박살 나 엉망진창인 곳이 보였다. 근처에는 늑대 여러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늑대가 다섯, 여섯…… 아니, 여덟 마리? 꽤 많군.’
늑대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두터운 로브에 갑옷까지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작은 그가 이단심문관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먼 거리였지만, 이단심문관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쓰러지면 즉시 늑대 밥이 될 테니까. 아이작은 도착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호흡을 조절하며 움직였다.
‘오래는 못 싸울 것 같군. 저쪽도 아직 싸울 기력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때 문득 아이작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런데 왜 주변이 저렇게 초토화된 거지? 늑대들이 저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고…… 이단심문관이 그렇게 강한가?’
그렇게 강했다면 진작에 늑대들쯤은 가볍게 때려잡았을 것이다.
그제야 아이작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게벨 씨, 옆!”
쿠쿠쿠쿵!
달려가던 길 바로 옆쪽에서 거대한 바위라고 착각했던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게벨은 이 갑작스러운 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지만, 아이작이 경고한 찰나의 시간만으로도 대비하기에는 충분했다.
쾅!
게벨의 검이 번뜩임과 동시에 선혈이 흩뿌려졌다. 괴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겨울밤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나무 위에 쌓여 있던 눈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곰? 아니, 괴물인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게벨을 습격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곰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곰이라기에는 기형적으로 거대했다. 수도원 문이라도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은 덩치였다.
게다가 바람을 타고 풍겨 오는 맹렬한 악취가 심각했다. 평범한 짐승의 노린내가 아니었다.
아이작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역병 멧돼지를 잡았을 때와 같은 냄새다.’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언뜻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곰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병에 걸린 듯 털이 빠지고 살이 문드러진 흔적들이 보였다. 게벨이 낸 상처 정도는 통증도 못 느낄 것 같았다.
“아이작!”
게벨은 역병 거대 곰을 향해 마주 서며 소리쳤다.
“이단심문관을 살펴봐라!”
곰의 몸에는 이미 이단심문관에게 입은 것처럼 보이는 상처들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가 엄청났다.
하지만 아이작은 게벨을 걱정하지 않았다. 게벨이 보여 준 실력대로라면 단지 시간문제일 것이다. 저 덩치를 고려하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이작은 이단심문관을 향해 달려갔다.
***
크르릉, 컹!
늑대 떼는 쇠 냄새를 짙게 풍기는 이단심문관을 상대로 사납게 짖었다. 놈들은 이미 이단심문관을 수 시간째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상대는 피 흘리고 도망치면서도 벌써 동료들을 넷이나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무리 사냥 끝에 상대는 이미 다 죽어가는 꼴이었다. 늑대무리의 대장은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파스슥!
풀숲을 헤치며 튀어나온 아이작이 단숨에 대장의 목에 칼을 쑤셔 박기 전까지는.
이미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던 아이작은, 기습 효과를 위해 늑대 무리 중 가장 강해 보이는 녀석을 골라 바로 제압한 것이다.
늑대 대장은 놀라서 펄쩍 뛰어올랐지만, 이미 목 안을 파고든 칼 때문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만 녀석도 쉽게 가지는 않았다.
쨍강! 늑대가 강하게 몸부림치면서 아이작의 낡고 투박한 검이 부러져나갔다.
“이런 제길…….”
낡아 빠진 검을 너무 깊게 쑤셔 넣은 잘못이었다.
‘더럽게 단단하네. 이거 늑대 맞아?’
아이작은 부러진 검을 포기하고 놈의 사체를 걷어찼다. 다행히 이단심문관을 둘러싸고 있던 늑대들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아이작은 놈들의 대장이 당했으니 나머지가 그대로 도망치지 않을까 기대했다.
실제로 녀석들은 사기가 꺾인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검이 부러진 것은 아무것도 아닌 척하면서 슬금슬금 이단심문관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단심문관은 사람이 나타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봐요. 남는 칼 없어요? 칼 좀 잠깐…….”
“……천사?”
그러나 이단심문관은 칼을 빌려주는 대신 어처구니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쓰러졌다.
아이작은 어이없다는 듯 이단심문관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여자야?’
벗겨진 후드 아래 드러난 얼굴은 상당히 젊은 여자였다. 잠깐 정신이 팔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넋을 놓지는 않았다.
찢어진 후드 아래로 몇몇 심한 상처들이 보이긴 했지만 당장 목숨이 위태롭진 않은 듯했다. 이미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티다가, 누군가 나타나자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린 것 같았다.
‘차라리 잘됐군.’
아이작은 이단심문관이 손에 쥔 칼을 빼앗아 들었다. 가볍지만 균형이 잘 잡힌, 쓰던 것보다 훨씬 좋은 칼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칼을 쥔 순간 뜬 창에 깜짝 놀랐다.
[심판의 검(전설)] [빛의 법전의 축복을 받은 성검. 부정한 것에 닿으면 열이 발생해 화상을 입힌다. 검을 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으로, 대신 자격 있는 자가 쥐면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이거 내가 쥐어도 되는 거 맞아?’
아이작은 칼이 ‘부정한 것’에 닿으면 화상을 입힌다는 말에 움찔했다. 하지만 당장 칼을 쥔 손이 불탈 것 같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쥐고 있는 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며 힘이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검에 촉수가 닿으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를 짐작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좋아, 다른 칼도 없으니 조심하고…….’
아이작은 검을 꽉 쥐고 늑대들을 노려보았다.
늑대들은 다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던 사냥감 대신 다른 위협적인 적이 튀어나오자 기가 죽은 듯했다. 대장이 죽은 것도 그들의 사기를 꺾는 데 크게 한몫했다.
숨이 차올라 몇 번 칼을 휘두를 수 없었던 아이작은 내심 녀석들이 도망가길 기대했다.
그때, 기이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이작은 바람 속의 악취가 한층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악취가 사방을 뒤덮자 늑대들의 눈빛이 한층 더 흉포해졌다.
늑대들은 본능을 자극하는 강렬한 허기에 자극받고 있었다.
컹, 컹컹! 우우우!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로 놈들은 수적 우위와 기세를 확신했다. 여기서 사냥감은 눈앞에 보이는 저 인간뿐이라고.
이윽고 늑대 중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동시에 아이작은 수년간 반복해온 동작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가장 적게 움직이면서 가장 치명적으로.
아이작이 호흡 짧게 내뱉은 순간 칼날이 늑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턱.
갈비뼈에 잠깐 검이 걸린 듯했지만, 심판의 검은 명검답게 뼈를 단숨에 가르고 심장을 꿰뚫었다.
살 타는 냄새가 맹렬하게 풍겨왔다.
늑대를 가르고 빠져나온 심판의 검이 붉게 달아오른 걸 보니, 능력을 발휘한 듯했다.
하지만 늑대들은 무리 사냥에 능하다.
검이 묶인 사이, 다른 늑대 두 마리가 아이작의 다리와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갑옷도 없는 아이작은 이단심문관보다 더 손쉬운 먹이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아이작의 검이 다시 한번 기묘하게 움직였다.
스르르륵, 까득, 쾅!
검이 미끄러지듯 움직이자 양옆에서 달려들던 늑대 두 마리가 베이며 나가떨어졌다. 뒤늦게 울려 퍼지는 굉음에 아이작의 귀가 얼얼해졌다.
[아발란체 검술: 전조(상급)─????식 해석]“큭…….”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주변의 적들을 공격하는 기술.
바로 오늘 낮에 게벨이 보여주었던 아발란체 검술의 ‘전조’ 기술이었다.
아이작은 게벨이 펼친 기술을 낮에 단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연습도 없이 따라 한 것이다.
기술을 펼치는 것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지난 2년간 했던 연습 동작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면서, 그의 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 것이다. 너무 쉽게 사용할 수 있어서 마치 스킬을 발동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파는 작지 않았다.
손바닥 핏줄이 터진 듯 피멍이 들었고, 손등은 그을린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온몸의 격통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마음 놓고 쓸 수는 없겠군. 게벨이 쓴 것과 위력 차이도 커.’
아이작은 쓰러진 늑대들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게벨이 쓴다면 또 모를까, 아이작이 펼친 ‘전조’ 스킬의 위력은 고작 늑대 둘을 베어 넘기는 정도에 그쳤다.
‘검흔도 조금 다르고.’
마치 이빨로 잡아 물어뜯은 것처럼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검으로 벤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처참한 흔적이었다.
늑대들은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란 듯 얼어붙었다.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고 아이작을 포위하고 있었다.
수적 우위를 믿고 있다기보다는 무언가에 의해 정신을 억압받는 것 같았다.
전부 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 아이작도 각오를 다졌다.
‘어쩔 수 없군.’
물론 아이작도 결사 항전을 할 각오는 없었다. 어차피 호흡도 이제 슬슬 한계였다. 아이작이 힐끔 이단심문관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아이작은 느긋하게 왼손을 옆으로 천천히 펼쳤다.
보는 눈이 없다면 굳이 고생해 가며 검을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럼 누가 누구의 먹인지 한번 보자.”
손에서 진홍색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촉수가 느릿느릿 몸을 펼치기 시작했다. 촉수는 갈까마귀를 표적으로 삼았을 때처럼 거의 10m까지 늘어나는 동시에, 그 두께 또한 아이작의 팔뚝 정도로 굵어진 상태였다.
출렁.
촉수가 흐느적거리며 기괴한 형상을 드리우자, 늑대들은 자신들을 자극하던 역병의 저주 이상으로 두려운 무언가를 느꼈다.
휘리리릭, 콰득!
아이작의 촉수가 빠르게 날아가더니 아까 죽였던 대장 늑대의 사체를 집어 들었다. 촉수는 단숨에 촉수 안에 돋아난 빨판과 이빨들로 늑대의 사체를 분해해 집어삼켰다.
거대한 늑대의 사체가 피 몇 방울만 남기고 분해되기까지는 10여 초도 걸리지 않았다.
늑대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당장 도망치라는 본능이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공포에 얼어붙은 발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끄윽.
아이작은 짧게 트림하며 중얼거렸다.
“이세계에 와서 개고기까지 먹게 되는군.”
***
쉭, 콰득, 콰드득!
아이작은 마지막 늑대까지 쓰러뜨린 뒤 뒤통수에 촉수를 꽂아 넣었다. 늑대의 목덜미 안으로 파고든 촉수는 단숨에 가죽 안쪽을 헤집으며 살과 뼈를 빠르게 빨아들였다. 늑대는 가죽만 남긴 꼴이 되어 쪽쪽 빨려 들어가다가, 이내 그 가죽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역병 늑대’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야간 시야가 밝아집니다.] [약점 추적 능력이 향상됩니다.] [저급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이 정도 양이면 며칠 동안은 유지되겠군.’
아이작이 포식한 늑대는 총 다섯 마리. 나머지는 자신들이 포식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친 건지 보이지 않았다.
늑대를 사냥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대량 포식 덕분에 아이작이 전조 스킬을 쓰면서 입었던 자잘한 상처 또한 빠르게 치유되었다. 포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상급 검술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덜할 것 같기도 했다.
‘이단심문관이 기절해줘서 다행이야.’
검술만으로 상대했다면 좀 더 오래 걸렸을 것이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촉수까지 동원한다면 이 정도쯤은 압도적으로 짓누를 수 있었다. 웬수 같은 촉수라곤 해도 급한 상황이 되면 든든한 동료니까.
아이작은 이단심문관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얕았다. 서둘러 데려가지 않으면 점점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
쿵, 쿠쿵.
아이작은 소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벨이 있던 곳이었다.
‘아직도 싸우고 있나?’
아이작은 갈까마귀와 다시 시야를 공유했다. 갈까마귀는 하늘을 낮게 날아다니며 주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게벨은 아직도 그 거대 곰과 싸우는 중이었다.
다만 거대 곰은 온통 피투성이에 한쪽 팔도 떨어진 상태였고, 게벨은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승부가 어디로 기울지는 뻔했지만, 거대 곰은 여전히 흉포한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 게벨도 대단하군.’
아마 아이작이 거대 곰을 상대했다면 상처 없이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멧돼지를 상대했을 때처럼 아슬아슬하게 승패가 갈리거나, 이기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아이작은 문득 거대 곰을 보다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크고 사납고 난폭한 곰…… 하지만 저 녀석, 뱃속에 들어가면 특전으로 뭘 줄까?’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이 ‘더 큰 먹이’를 찾길 원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