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엘리온 전투 (5)
콰두두두두!
목을 잃은 기병대장이 말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면서 맹렬하게 돌진하던 기병대의 진형이 크게 흔들렸다. 기사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작의 모습에 경악하면서도 그가 치고빠지는 것이 아닌, 종으로 그들의 진형을 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저 미친놈 잡아!”
“아니, 무슨 소리야! 계속 돌격해!”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들이 뒤섞이면서 난장판이 만들어졌다. 기병대장이 죽으면 명령권을 승계받을 기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판단도 엉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본대가 휘청거리고 있으니 계획대로 알데온 군의 뒤를 쳐서 분쇄해야 한다! 아니다! 우리의 동료들을 해치고 또 눈앞에서 같은 일을 뻔뻔하게 벌인 성배기사를 처단할 기회다!
이도 저도 못 하고 갈팡질팡하면서 기병대의 대열이 크게 흐트러졌다.
왼쪽 눈의 상처가 아직도 덜 아문 기사가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저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우리 동료들이 개죽음을 당했다! 저놈 못 잡으면 우리도 못가!”
아이작에 의해 습격이 실패하면서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던 기병대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똑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원한 섞인 포효였지만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게오르크 군이 크게 당하고 있었지만 지금 아이작을 잡지 못하면 그들은 여전히 발목이 붙잡힌 채로 제대로 돌격 효과를 낼 수 없다. 결국 가까스로 판단을 내린 부대장이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성배기사를 먼저 잡아라!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혼자서 우리 게오르크 기사들을 상대할 수는…….”
부대장은 명령을 내리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혼자서?
기병대가 큰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아이작은 혼자서 공격하지 않았다. 그가 직접 손수 벤 기사는 열이 안될 정도.
부대장은 다급히 명령을 수정했다.
“기습! 기습이다! 기습에 대비……!”
퍽. 순간 숲에서 튀어나온 화살 한 대가 소리치던 부대장의 입을 꿰뚫었다. 목구멍에 화살이 박힌 부대장은 그대로 말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아이작에게 쏠려 있는 동안 숲에서 창을 든 병사들이 튀어나와 기사들의 등과 허리를 찔렀다.
수십 명의 기사가 거꾸러지고서야 기사들은 기습을 알아차렸다. 백여 명이 채 안 되는, 알데온 군 전부에 비하면 티도 안 나는 소수 병력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전장을 휘젓는 와중에 기사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기사들의 머릿속에 또 다시 ‘전멸’이라는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통상적으로 1/3의 병력만 잃어도 정상적인 전투 능력을 수행할 수 없는 부대로 판정, 전멸로 치부한다. 지난번에 아이작에게 당했을 때에는 그 이상의 끔찍한 타격을 입었었다.
사기가 급전직하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성배기사를 죽여라!”
이 전장의 귀신들은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오히려 더더욱 날뛰기 시작한다. 일부 기병대원들이 광기 어린 포효를 내뱉으며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옆구리에 창을 낀 채 돌격한 기병대원은 아이작이 회피해 동료의 말을 꿰뚫었으면서도 기세를 전혀 죽이지 않았다.
아이작에 집착하는 기사들은 기병대 전체의 숫자에 비하면 소수였다. 하지만 목소리 큰 소수가 선동하기 시작하면 결국 본능적으로 그것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대장을 잃은 상황에서는, 싫든 좋든 본능적으로 분위기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거 곤란해지는군.’
쾅! 콰드드득……. 아이작은 예상외로 기병대원들의 사기가 죽지 않자 빠르게 지치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의 창이 어깨를 스치며 상처를 남겼다.
이들 중에서도 상급 검술을 쓸 줄 아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아이작이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올랐더라도 수십 명이 상급 검술의 묘리로 체력을 깎는 것을 견뎌 낼 재간이 없었다. 다행인 점은 지휘관을 잃고 흥분과 원한에 휩싸인 기사들이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검기를 동원해 수십 명을 베어 낸다 해도 이대로 가면 체력이 먼저 고갈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작은 어쩔 수 없이 탈출할 기회를 엿봤다. 기병대의 돌격 기세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성배기사아아아!”
회백색 눈알이 번들거리는 기사 하나가 미친 듯한 포효를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아이작은 그가 휘두르는 철퇴를 루앗딘 열쇠로 휘감아 짧게 검기를 발동시켜 끊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이작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쾅. 아이작은 잠깐 휘청거릴 뿐이었지만 기사는 말에서 떨어지고 투구가 벗겨졌다.
‘이놈들은 목숨이 아깝지 않나? 목숨이 서너 개 돼?’
아이작은 욕설을 중얼거리면서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기사를 보고 멈칫했다. 기사의 철퇴는 손에 들린 것이 아니라 손목 부분 갑주에 땜질하여 이어져 있었다. 순간 아이작은 기병대원들이 이렇게 광기 어린 공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역시…….’
그 기병대원은 아이작이 분명 지난번 숲에서 죽였던 기사였다.
그때 아이작은 ‘죽은 기사들의 엄지손가락을 전부 자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시체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대비책을 세웠던 것이다.
예상대로 엄지손가락을 잃은 기사들은 이번 교전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자 이놈은 자신의 무기를 갑주에 연결해 버린 것이다.
‘이 시점에 벌써 불사 교단이 개입한 상태였군.’
그가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의심했던 최악의 가정이 확실해진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빛의 법전이 그들의 이득을 위해 엘릴에 개입했듯, 불사 교단도 당연히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엘릴에 개입한 것뿐이니까.
***
기사는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어 그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루앗딘 열쇠의 열기를 한껏 피워올리며 그의 머리에 꽂아버렸다. 맹렬한 불꽃이 기사의 머리를 불태웠다. 언데드라 할지라도 루앗딘 열쇠의 불꽃은 견딜 수 없었다.
그때 아이작은 서늘한 기세를 느꼈다.
다각, 다각, 다각. 시끄러운 전장 속에서 오직 한 마리의 말발굽 소리만이 시끄럽게 들려왔다. 곤두선 아이작의 감각이 강적의 접근을 경고한 것이다.
“물러나라!”
달려오는 기사가 내뱉은 포효에 썰물처럼 게오르크 기병대가 갈라졌다. 그 사이로 리안나 게오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병대원들은 본대와 합류 후 엘리온 성채로 대피해라!”
리안나는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후퇴 지시를 내렸다.ㄹ
“하지만 성배기사를……!”
기사 하나가 항의하듯 소리쳤다. 상급자의 명령보다 원한을 우선시하는 모습에 리안나의 눈에 불꽃이 확 붙었다. 본 적 없는 기세에 기병대원은 심장이 멎을 듯한 두려움을 느끼며 물러났다. 하지만 리안나는 기사의 목을 베는 대신 다그쳤다.
“본대가 후퇴할 기회를 못 잡고 있다! 원한 따위보다 전황 전체를 우선시해! 기병대가 합류하면 알데온 군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후 즉시 요새로 후퇴하도록!”
기병대원들이 돌격을 못 하던 이유는 아이작이 그들의 발목을 잡아서였다. 리안나가 이제 그 발목을 풀어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병대원들은 결국 분노에 씨근거리면서도 아이작에 대한 원한을 접었다. 게오르크 군 본대가 후퇴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한시라도 빨리 합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두두두두! 기병대원들은 옆에서 견제하는 징집병들의 공격마저 무시하고 전장으로 돌격했다.
기병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알데온 군의 전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게오르크 군에 충분한 타격을 입혔다. 오늘만큼은 알데온 군의 판정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다 싶었습니다. 성배기사!”
휘릭, 휙! 까가가각!
리안나는 검을 빠르게 돌리다가 단숨에 아이작을 향해 내리꽂았다. 아이작은 성검을 그대로 받아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대신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냉기가 얼마나 강했던지 루앗딘 열쇠를 관통한 냉기의 힘이 그대로 바닥을 찍으면서 하얀 서리가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화가 났군.’
리안나는 평소처럼 지친 표정 대신 사나운 눈으로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제 의도를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외국인이라 모르는 겁니까?”
아이작은 알지만 일단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이대로 서로의 힘을 소진시키다가 감정마저 마모시키는 것?”
“그래요! 에델레드가 생각하는 말랑말랑한 방법으로는 평화를 되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명예를 되찾아야 하고, 알데온 왕가는 반역자에게 충분한 응징을 가했다는 명분이 필요하니까!”
리안나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다시피하며 말했다.
“그러려면 어느 한쪽이 월등하게 이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제가 놀아주려고 귀한 우리 병사들을 성 밖으로 빼준 것 같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병사들의 목숨을 걸고 도박수나 걸다니!”
알데온 군이 뒤가 없는 것처럼 강공을 몰아붙인 것은 아이작이 기병대를 막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이 김에 기병대까지도 정리하겠다는 모르스의 계획도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아이작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리안나의 말마따나 도박수였다.
쉭, 쉬식! 리안나의 검이 날카롭게 스쳐 지나가자 냉기가 살갗과 폐부로 따갑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맞대응하는 대신 회피하며 적당히 견제했다. 촉수를 꺼내지 않고선 성검 루미아드를 상대할 방법이 없는데,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하기 힘든 상대에게 들켰을 때 리스크 있는 힘을, 그것도 대낮에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씀해보십시오! 빛의 법전은 기어코 여명군을 위해 엘릴의 피가 필요하다 이겁니까? 전부 짓밟고서라도 필요한 만큼 가져가겠다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리안나 게오르크.”
쩡! 아이작은 리안나의 검을 튕겨 내며 말했다. 리안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슬쩍 뒤쪽의 전황을 살폈다. 기병대가 무사히 본대와 합류하는지 확인한 것이다. 전황이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자 안심한 듯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질문? 한가하게 대화나 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쪽에 12차 여명군 참전 경력자가 있습니까? 지난번 여명군 말입니다.”
아이작은 리안나의 말을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엘릴 왕국은 100여 년 전 단교 이후로 공식적으로 여명군에 참전한 적이 없다. 하지만 수행을 나선 검사나 충직한 신도들이 자원병으로 참전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리안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제가 알려드릴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래요. 말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말씀드리죠.”
아이작은 그녀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칼을 천천히 바닥으로 내리며 말했다.
“불사 교단에서 인구를 늘리기 위한 방법 중에 ‘사망보험’이라는 게 있습니다.”
불사 교단은 자체적으로 인구를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징집, 납치, 회유 같은 여러 가지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고급 인력을 유치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바로 아이작이 말한 ‘사망보험’이었다.
“생전에는 기존의 신앙을 유지해도 되지만, 사망 직후 바로 불사 교단의 언데드가 된다는 내용이죠.”
대부분의 ‘사망보험’ 가입자들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가입한다. 하지만 의외로 이 계약을 파기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고해성사와 사죄 의식, 제물을 바치는 과정을 통한다면 동네 사제라도 파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정말 ‘파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이었다.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는 방심과, ‘혹시나’라는 두려움이 계약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면 누구라도 두려워지기 마련이니까.
“당신이 아는 사람 중에 여명군 참전 경력자가 있다면, 그자는 불사 교단과 계약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디 주의하셨으면 좋겠군요.”
리안나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작과 더 싸울 시간이 없었다. 후퇴해 전열을 정비한 알데온 군의 기사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안나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말을 타고 빙 돌아 요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배기사님! 괜찮으십니까?”
알데온 기사 한 명이 아이작에게 다가와 물었다. 수많은 기사들을 홀로 가로막다시피 했던 아이작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지만, 슬슬 허기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오늘 싸움에서 리안나가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으리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