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엘리온 전투 (6)
‘당신이 아는 사람 중 여명군 참전 경력자가 있다면, 그자는 불사 교단과 계약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으로 복귀하는 리안나의 귓가에 아이작이 남긴 말이 메아리쳤다. 당연히 그녀는 적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흔들릴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의 말에 반박 한 마디 못한 것은, 그녀 역시도 아이작과 비슷한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오르크 군 안에 외부세력이 있다.’
아버지 비오 게오르크의 사후, 수많은 일족들과 귀족들이 외부에서 게오르크 영지로 유입되었다. 사실 리안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불명예를 안고 죽은 비오 게오르크의 복수를 하고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 지극히 엘릴스러운 가치관과 목적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방식은 리안나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녀는 전통적인 방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넓은 들판 위로 수많은 깃발과 병사들이 늘어선 가운데, 용기 있는 젊은 기사들의 결투를 통해 그날 전장의 운세를 점치는 의식. 예상을 뛰어넘는 전술과 치명적인 위기 상황에서 태어나는 영웅들의 서사시…… 좋게 말하면 낭만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개하다.
리안나는 솔직히 미개하다는 평가에 찬성표를 던지면서도 전통을 존중했고, 또 사랑했다.
그래서 일족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많은 의견을 수렴했다. 하지만 그녀가 선왕 알프레드와 부딪치게 된 첫 전쟁은 증오와 복수, 살육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른들은 그것이 알프레드의 포악함과 게오르크 가문이 명예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명예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면, 대체 명예는 어디 있는가?
알프레드를 죽여야 명예를 되찾는다고? 명예가 그 추잡한 뚱땡이의 머리에 걸려 있단 말인가?
심지어 리안나는 알프레드를 죽이지도 못했다. 알프레드는 소드마스터였는데도 불구하고 기름진 음식과 과음을 일삼다가 고혈압으로 죽었다. 어쩌면 소드마스터에게는 역사상 처음 있을지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동안 리안나는 많은 의심을 했다.
‘게오르크 일족의 어르신들 중에서…… 증오를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번 전쟁 와중에 어떤 파벌에서 유독 두드러졌고, 이미 리안나는 의심되는 사람을 한 사람으로 좁힌 상태였다. 그것은 리안나로선 별로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게오르크 군의 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론이었다.
‘여명군 참전 경력자.’
‘불사교단과의 계약.’
‘사망보험.’
아이작이 남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퍼져 나갔다. 리안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 속에서 성으로 통하는 도개교를 건넜다.
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리안나! 리안나! 리안나!”
피해가 막심해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 거로 생각했던 리안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빌론 게오르크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 리안나를 꽉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가주님 덕분에 게오르크 군을 구했습니다!”
“숙부.”
그녀의 시야에 성채로 복귀한 기병대원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은 그들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성 밖에서 엘릴 왕국을 휘젓고 알데온 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그들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치열한 투쟁을 벌여 오던 그들은, 게오르크 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극적으로 나타나 구해 주기까지 했다. 전쟁영웅으로 찬사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리안나는 바로 그 기병대를 구해 낸 영웅이었다.
“숙부님, 잠시 이야기 좀…….”
“리안나 가주님, 피곤한 건 알겠지만 잠깐 부탁드립니다.”
빌론의 간절한 표정에 리안나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 저희 군은 사실상 패배했다가 가까스로 후퇴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사기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다들 불안감을 안고 잠들게 됩니다.”
그의 말이 옳았기 때문에 리안나는 병사들에게 화답해 주었다. 빌론이 그녀의 손을 잡아 올려 병사들의 환호에 답했다. 병사들의 환호성이 더더욱 커졌다. 그때 빌론이 소리쳤다.
“오늘 우리는 큰 위기를 겪었다!”
우렁찬 빌론의 목소리에 병사들의 환호성이 잦아들었다. 리안나는 갑자기 시작된 연설에 당황했지만 그의 말대로 사기 진작을 위해 조용히 있기로 했다.
“적들은 외국인에 이교도까지 끌고 들어와 엘릴의 전장을 더럽혔다! 놈들의 사력을 다한 간악한 술책에 우리 군은 잠시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뿐이었다!”
빌론은 우렁찬 포효를 이어 나갔다.
“우리에겐 놈들이 갖지 못한 영웅들이 있기 때문이다!”
“리안나!”
한 병사가 흥분을 참지 못해 소리 질렀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비슷한 누군가의 이름이나 명성 높은 기사들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기병대장의 이름이나 빌론의 이름도 있었다. 빌론은 환호성이 잦아들길 기다리다가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는 영웅들의 귀환으로 더 완전해졌다! 이제 우리 군에 패배는 없다!”
그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스쳤다.
“리안나 게오르크 장군의 영도 아래, 우리는 찬탈자 알데온 군을 섬멸하고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알데온 씨앗은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의 환호가 다시 터져 나왔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환호에 리안나는 숨을 쉬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환호와 찬사, 흥분에 익사할 것 같았다.
온 세상이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더 영웅다워지라고, 더 날카로워지고, 더 잔인해지라고.
바로 거기에 명예가 있다고.
“엘릴! 엘릴! 엘릴!”
그러나 리안나는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의 시선이 빌론에게로 향했다. 빌론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정말 엘릴을 배신한 것이냐고, 명예를 찾기 위해 명예를 버린 것이냐고, 당신이 진짜 불사 교단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느냐고.
그러나 리안나는 전시에 일족의 큰 어른을 심문하는 짓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빌론이 게오르크 군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 게다가 그가 거느린 기병대 파벌은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빌론의 실책을 밝혀내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묻더라도 늦지 않을 거야.’
논리적인 생각보다는 제발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리안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
“또 이런 무모한 작전은 하지 마세요. 선생님.”
에델레드는 병상에 누운 아이작 곁에서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막사 안에는 먹을 것과 칼, 방패들이 가득했다. 아이작이 오늘 소수의 병사들만을 이끌고 게오르크 기병대를 막아섰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면서, 수많은 귀족들이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많은 상처를 입고 병상에 드러누운 아이작의 쾌유를 기원하는 서신들도 남았다.
‘사실 상처는 다 회복됐지만.’
하지만 그 많은 상처를 입고도 바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었기에 일단 요양하는 척하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폐하. 저는 제 목숨이 제일 귀합니다. 제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됐으면 안 했을 겁니다.”
“그런가요? 저는 선생님이 알데온 군을 위해 희생이라도 하시려는 줄 알고 놀랐습니다.”
아이작의 계획을 듣고 병사를 내줬을 때 에델레드는 그가 그냥 유인책이라도 펼치려는 줄 알았다. 설마 직접 뛰어들어서 기병대장의 목을 벨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것이다.
“아무튼 저는 제가 제일 귀한 사람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오늘 확신하게 된 것들이 있으니 폐하께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아이작은 리안나에게도 한 이야기를 에델레드에게 전달했다.
게오르크 군 안에 외부세력이 있는데, 그것이 불사 교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아마도 군 고위관계자가 배교하고 죽은 기사들을 되살려내고 있는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높은 확률로 한두 명이 아닐 겁니다. 아마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책임자가 한 명 있고, 그가 거느린 파벌들이 줄줄이 아래에 파생되어 있겠지요. 아마 게오르크 기병대와 관련된 자들일 확률이 높겠군요.”
에델레드는 불사 교단이 끼어들었다는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불사 교단이라니, 그, 살점 없이 해골만 걸어 다닌다는 그것들 말입니까? 그것들이 게오르크 군 안에 있다구요? 저는 그런 건 보지 못했습니다만.”
“응? 아아, 폐하께서는 불사 교단을 보신 적 없겠군요. 이곳은 흑제국과 가장 거리가 먼 곳 중 하나니…… 불사 교단이라고 전부 바로 해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패 과정을 겪기 전까지는 꽤 산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죠.”
물론 이런 살점이 남아있는 단계의 언데드는 불사 교단에서 ‘천하고 냄새나는’ 계급으로 취급된다. 아이작은 기병대의 최소 절반 이상은 언데드일 것으로 예상했다.
‘세력이 거의 온전한 상태였으니.’
게오르크 기병대는 가장 강경하고 험하게 최전선에서 충돌해 왔다. 그것도 외지에서 보급과 머릿수도 채우기 힘든 상황에서 격전을 치러 왔으니 지금보다 훨씬 수가 적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싸운 게오르크 기병대는 거의 세력이 완전한 상태였다.
그 말인즉, 게오르크 기병대는 사실상 전원이 불사교단원이거나 사망보험 가입자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에델레드에게는 여전히 불사 교단이라는 개념이 낯설어 보였다.
“불사 교단이 대체 왜 우리 일에 참견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마지막으로 여명군에 참전한 것이 백 년도 넘었고 그쪽 일에 관여한 적도 없는데…….”
“폐하께서 모르셔서 그렇지, 불사 교단은 엘릴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리치도 엘릴 교단의 기사 하나를 듀라한으로 만들어서 끌고 다녔죠. 늘 인구가 부족하니 새로 ‘이민 제안’을 하기 위해 온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여명군 참전이 앞으로도 없도록 세력을 소진시키는 게 목적일 수도 있죠.”
에델레드의 생각과 달리 불사 교단이 이 일에 참견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강한 인간은 곧 강한 언데드로 이어지니까.
인재 영입은 불사 교단의 늘 중요한 관심사였다.
에델레드는 할 말을 잃었다가 항변하듯 말했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주셨습니까? 그들이 우리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면, 어쩌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저도 오늘 확신을 가진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전에 증거도 없이 게오르크 군에 불사 교단의 첩자가 있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나아가서, 게오르크 군에 일찌감치 그 일을 폭로했다면?”
“그야…….”
에델레드는 그때의 미래를 생각해 보고 입을 다물었다. 엘릴 왕국이 빛의 법전인 아이작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어찌 됐든 같은 뿌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백제국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사 교단은 다르다. 그들은 엘릴의 기준에서도 반드시 패퇴시켜야 할 악이며, 혐오해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여명군 초창기에만 해도 엘릴 왕국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가장 많은 기사들을 기꺼이 보냈다.
그런데 게오르크에 불사 교단 첩자가 있다? 그러면 이 전쟁은 한쪽이 끝장을 봐야 할 지경으로 치닫는다. 주로 게오르크 쪽이 학살당해야 마땅한 쪽으로.
그렇다고 게오르크 군에서 ‘아, 그렇군요. 그럼 우리 기사들 절반의 목을 내놓겠습니다’라고 반응할 리도 없다. 터무니없는 모함이라고 화를 내겠지.
당연히 게오르크 가문도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증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늦든 이르든 결국 결과는 같지 않습니까? 이 일이 알려지면 게오르크 일족을 멸족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 누가 불사 교단의 일원인지 모르는 이상…….”
“아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목적이 뭐였는지 기억하시죠?”
“응? 그야 엘리온 성채를 점령…… 아아, 설마!”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열 예식을 반납하고 성지 엘리온에서 신탁을 받으면 전부 해결됩니다. 엘릴께서 자신의 사자를 내려보내면 부정한 자를 가려내실 겁니다.”
***
다음 날, 게오르크 군은 요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조롱과 결투 신청이 이뤄졌지만, 어제의 큰 피해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지침이 내려온 것인지 게오르크 군은 응답도 하지 않고 성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이대로는 정말 공성전을 치르는 수밖에 없었지만, 알데온 군은 동요하지 않았다.
델프릭은 꼼짝 않는 게오르크 군을 보며 중얼거렸다.
“성배기사님 말대로 꼼짝도 않는군요.”
“어제 그 큰 피해를 입었고 후방을 교란할 기병대도 없으니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알데온 군은 이들을 상대로 어떻게 공성전을 치를 것인가.
아이작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안 하면 된다.
그날 오후, 게오르크 군은 알데온 군이 포위를 풀고 전원 철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