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역병신(疫病神) (1)
‘장단도 잘 맞춰주는군.’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의 메시지를 들으며 이단심문관을 들쳐 업었다. 서둘러 이단심문관을 수도원으로 데려가려면 게벨이 빨리 싸움을 끝내야만 했다.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게벨이 싸우는 현장의 배후로 우회해 접근했다.
쿵, 쿠쿵!
근처까지만 갔는데도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거대 곰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스치기만 해도 이세계로 보낼 덤프트럭만 한 덩치였다.
‘다행히 동작이 빠르지는 않군.’
부상 때문인지, 덩치 때문인지 놈은 한 곳에서 빙빙 돌며 게벨을 상대하고 있었다. 게벨은 빠르게 몰아붙이며 거대 곰의 상처를 하나하나 늘려 가고 있었다. 아이작은 이단심문관을 내려놓고 거대 곰의 배후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이작?!”
게벨은 아이작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재빨리 검을 치켜들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가 지난 2년간 수만 번도 넘게 반복했던 찌르기였다.
크르르릉! 거대 곰은 뒤늦게 아이작을 눈치채고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게벨은 아이작이 만든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게벨은 빠르게 달려들어 거대 곰의 목을 노렸다. 이미 게벨과 치열하게 싸우던 거대 곰은 아이작보다 게벨이 더 큰 위협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작을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된다고.
다만 아이작은 덜 치명적인 하반신을 노리고 있었다. 거대 곰은 두 가지의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이도 저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놈은 그저 마구 몸을 거칠게 휘저을 뿐이었다.
까가각!
게벨의 검을 막아 낸 거대 곰의 발톱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그 공격으로 거대 곰의 손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갔다. 게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대 곰의 목을 크게 베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작의 검 또한 거대 곰의 엉덩이를 꿰뚫었다.
섬광 같은 찌르기에 바람조차 멎는 것 같았다. 뒤늦게 몰아닥친 바람이 거대 곰의 털을 쭈볏 세웠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멍청한 놈.’
아이작은 검을 쑤셔 박은 뒤, 바로 상처 부위에 촉수를 밀어 넣었다. 두터운 가죽을 뚫고 침입한 촉수는 자연스럽게 곰의 내장들을 헤집으며 단숨에 심장으로 밀고 올라갔다. 아이작은 촉수를 통해 거대 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은 머리통만 한 그 심장을 단숨에 촉수로 쥐어 터뜨리며 빨아들였다.
꺼어어어어…… 거대 곰이 기이한 신음 소리를 내며 허우적댔다.
게벨은 거대 곰이 이상 반응을 보이자 의아해했지만,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단숨에 거대 곰의 목을 베었다. 두터운 목을 완전히 베지는 못했지만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촉수가 빠르게 거대 곰의 심장을 포식한 뒤였다. 거대 곰은 베인 목에서 피를 줄줄 쏟아내다가 이내 굉음을 내고 쓰러졌다.
[‘역병 거대 곰’을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괴력(임시)’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괴력?’
아이작은 고작 하나뿐인 특전에 의아했지만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서둘러 게벨이 다가왔다.
“아이작! 괜찮냐?”
“예. 똥침을 제대로 놓은 것 같습니다.”
게벨은 질린 표정으로 거대 곰을 내려다보았다.
“이 수도원에 살면서 이런 미친 괴물은 처음 봤다. 변방에나 가야 볼 수 있을법한 놈인데……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왔는지 모르겠군.”
“해체할까요?”
“아니, 병에 걸린 놈 같으니 먹을 수도 없고 가져갈 방법도 없으니 두고 가자. 수도원장님께 땅을 정화해달라고 해야겠군. 하, 이단심문관 그놈 때문에 이렇게 땀 흘릴 필요까진 없었는데.”
“놈이 아니라 년이더라구요.”
놈이든 년이든 이단심문관이 오는 것을 제일 찝찝하게 여길 두 사람이 이단심문관을 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게벨은 이단심문관이 여자라는 말에 놀란 듯했지만,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찜찜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단심문관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이 짐덩이부터 살려놓자.”
***
이단심문관은 아이작이 업고 가기로 했다. 거대 곰 포식 특전 때문인지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호흡도 거의 차지 않았다.
상급 검술 ‘전조’ 스킬을 사용하느라 소모되었던 HP도 어느새 회복된 듯, 몸이 편했다.
게벨은 칼만 몇 번 휘둘러도 헉헉대던 아이작이 갑옷을 입은 이단심문관을 업고도 훨훨 날 듯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했지만,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미 아이작의 기묘한 체력 낙차는 게벨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저 ‘젊은 게 깡패라니까’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이작은 그러고도 여유가 남아 이름 없는 혼돈의 포상을 확인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새로 포식한 먹이에 만족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주어졌습니다.] [다음 세 가지 포상 중 한 가지를 고르세요.] [이계의 청소부 / 이제 양손에서 촉수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심연에서 부르는 자 / 상대방을 환각에 빠뜨려 구속하고 느리게 만듭니다.] [혼돈의 자손 / ‘저 너머의 기생충’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생충이 숙주를 즉시 잡아먹고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혼돈의 자손’으로 변태합니다.]‘오랜만에 선택 포상이군.’
아이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아이작이 획득한 촉수의 능력은 ‘살점 저장고’와 ‘저 너머의 기생충’, ‘벽 속의 쥐’ 뿐이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몇 차례 그에게 퀘스트를 내리기는 했지만 수도원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거나 터무니없는 것들이었기에 거절한 탓이었다.
게임도 아니고 하나뿐인 목숨이다. 위험한 촉수의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는 그동안 아이작 본인의 체력을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전부 쉽게 눈에 띄는 능력은 아니군.’
‘이계의 청소부’도 이제는 전처럼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지난 4년간 촉수를 충분히 잘 숨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왼손과 가슴팍에서 나오는 촉수로도 이미 충분했다. 추가 촉수의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연에서 부르는 자’는 꽤 유용한 디버프 저주 스킬이었다. 적을 이 스킬로 약화시키고 상대한다면 굳이 촉수를 꺼내지 않아도 어지간한 적들은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선 위장용으로 좋았다.
‘혼돈의 자손’은 치명적인 몬스터 스킬 중 하나였다. 걸린 즉시 풀지 않으면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다가 즉사하면서 괴물이 튀어나오는 스킬이다. 그 그로테스크함과 전열 붕괴의 용이함 때문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단연 눈에 띄는 스킬이었다.
‘강력한 스킬이긴 한데, 숙주의 능력을 따라가는 것과 눈에 띈다는 점이 걸리네…….’
게다가 기생충을 미리 심어 둔 상태라야 하는데, 그러면 촉수가 이미 살갗 안까지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거의 이긴 거나 다름없다는 상태.
그래도 아이작은 고민 끝에 ‘혼돈의 자손’을 선택하기로 했다.
‘갈까마귀, 꽤 유용했지.’
복잡한 전장에서 갈까마귀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대단히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어차피 날뛰는 촉수 괴물의 도움보다는 은밀하게 하수인처럼 부릴 수 있는 종복이 필요한 때였다.
‘이단심문관도 감시해야 하고 말야.’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때에 따라서는 협박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이작은 자신의 목숨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아이작은 혼돈의 자손을 선택했다.
왼손 안에 깃든 촉수가 꿈틀거리며 새로운 힘을 흡수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작은 직감적으로 현재 갈까마귀의 몸 안에 들어있는 기생충이 언제든 그 숙주를 찢어발기며 새로운 형상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아직은 안돼.’
이단심문관이 깨어나면 갈까마귀를 찾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실험으로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수도원에는 쥐라는 훌륭한 실험 대상들이 널리고 널려 있었다.
***
아이작과 게벨이 수도원에 도착하자 수도사들이 황급히 문을 열어 주었다. 수도원은 있는 횃불과 등불들을 모두 밝혀서 빛의 법전을 모시는 곳이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이단심문관이 온다는 것 때문에 나름 준비를 한 듯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단심문관은 기절해서 이 장관을 보지 못했지만.
“이쪽으로.”
예브하르가 미리 준비한 병실로 이단심문관을 데리고 갔다. 그 모습을 수도사들이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라는 것을 알아본 수도사들이 당혹해하는 것이 보였다. 수도원은 금녀의 구역까지는 아니었지만,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이성의 출입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브하르는 이단심문관을 편하게 눕히기 위해 갑옷을 벗기다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이솔데 브란트?”
그의 말을 들은 게벨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브란트 공작가의 딸 말입니까?”
“예. 그녀의 성인식에 참여한 적 있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하신 분인가 봐요?”
아이작이 물었다.
브란트 공작가는 아이작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다. 지금 아이작이 있는 백제국, 게르토니아 제국의 황제도 브란트 공작가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수도원장이 딸의 성인식에 참가할 정도라면 확실히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빛의 법전 아래 높고 낮음이 있겠느냐마는, 브란트 공작가는 신심이 깊은 것으로 유명하지. 하지만 설마 그 외동딸이 험한 이단심문관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
이단심문관은 그 절대적인 권위만큼이나 적도 많다.
아이작이 은근슬쩍 품었던 마음처럼, 이단심문관을 죽여버리면 의심받을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결국 그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결론만 남았다.
지금 이솔데가 죽어 버리면 곤란해지는 것은 한두 사람이 아니란 뜻이었다.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늑대 밥으로 만드는 게 나았을 텐데.’
아이작은 속으로 후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일단 살려놓고 봅시다. 이 사람이 브란트든 바르바리든, 구해 놓고 죽여 버리는 헛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군요.”
게벨은 이솔데의 옷을 찢어서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에서 풍기는 악취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특히 게벨과 아이작은 익숙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예브하르는 늑대에게 물린 듯한 이솔데의 환부를 살펴보았다.
“수포와 변색, 부패해가는 흔적…….”
“역병이군요.”
아이작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예브하르도 뒷걸음질 쳤다.
생각해보면 늑대도 멧돼지도 곰도 다 역병이 걸린 상태였다. 그 정도면 이 산 전체에 어떤 역병이 넓게 퍼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이 감염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아이작은 섬찟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일부러 죽이지 않은 건가?’
몇 시간이 걸렸는데도 거대 곰과 늑대 떼가 이단심문관을 죽이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라면?
아이작은 역병의 냄새가 풍겨올 때 늑대 떼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역병에 감염된 이단심문관을 수도원 안에 넣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이다.
예브하르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치료부터 시작합시다. 게벨 씨, 마늘과 소금을 방 주변에 뿌려주십시오. 아이작, 지하실에서 거머리를 가져와라. 저는 수도사들과 함께 기도회를 준비하겠습니다.”
“거머리요?”
아이작은 엉뚱한 지시에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사혈 치료법을 펼쳐야지. 나쁜 피를 빼내야 역병이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겠느냐?”
‘이게 무슨 개소리야? 환자한테서 피를 빼낸다고?’
아이작은 목구멍까지 그 말이 올라왔다가 간신히 참았다.
이 세계는 기본 의료 상식이 부족한 중세다.
생각해 보면 그럴만했다.
어지간한 병이나 상처는 수도사들의 기적으로 치료되는 세상이니, 의학이 발달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하지만 이건 수도원을 겨냥하고 뿌린 역병이야.’
수도원을 향한 공격인데 기적에 대한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다. 아이작은 수도사들이 이 역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심지어 게벨조차도 예브하르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뭐라도 해야겠군.’
이단심문관 아가씨가 그렇게 귀한 몸이라면, 살려 두는 쪽이 두고두고 이득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