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엘릴의 전장 (3)
기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장군’이 리안나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작은 어이없는 기분으로 칼을 내렸다. 바로 며칠 전까지 칼을 맞대던 상대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 마주치니 같은 고향 사람이라도 만난 느낌이었다.
특히 당황한 것은 에델레드였다.
“어, 음. 리안나 경? 그러니까…… 전사하셨소? 빌론의 말로는 호수의 귀부인이 보호하고 있다고 했는데…….”
에델레드는 얼마나 당황한 건지 칼드부흐의 힘을 끌어 쓴 보람도 없이 벌벌 떨고 있을 정도였다. 아이작은 보고 있기 안쓰러워 어깨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리안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호수의 귀부인을 만나기는 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요. 잠깐 이곳에 머무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두려운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가 차마 오래 보지 못하고 다급히 내리깔았다. 소드마스터라 해도 감히 쳐다보지 못할 존재가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리안나는 당혹스러운 듯 물었다.
“저건, 그, 빛의 법전 천사지요? 감히 마주 보지 못할 섬광을 품고 계신 것을 보니 알겠습니다. 누굽니까?”
“칼, 아니 고양이도 맞댔으면서 못 알아보십니까?”
“설마 오월의 검이시란 말입니까? 아니, 대체…….”
그녀는 저 공중을 부유하는 존재가 자신이 고양이를 들어 올려 쫓아낸 존재라는 것을 알고 기겁했다. 다행히 오월의 검은 그 일에 대해 리안나에게 보복해야겠다거나 하는 속 좁은 천사는 아니었다.
[더 이상 방해는 없을 것 같으니 잘됐군. 움직여라, 아이작. 갈 길이 멀다.]“아, 예……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엘릴이 있는 곳. 거기서 칼루리엔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오월의 검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꽃 깃털로 이뤄진 날개들을 펄럭이진 않았다. 하기야 저 거대한 몸이 날개의 양력으로 날지는 않을 테니.
사후세계에서 걸어서 움직인다는 개념이 이상했지만 아이작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리안나 역시도 당혹스러워하며 그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아이작은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녀가 있다면 추가로 더 시비를 걸 정찰대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에델레드도 반색하며 리안나의 곁을 함께 걸었다. 그가 걸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호수의 귀부인께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은, 확실하게 죽은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군요.”
리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 숙부가 제 가슴을 찌른 것은 기억납니다. 찔리면 죽는 게 확실한 위치여서 다 끝났다고만 생각했습니다만, 그때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금빛 낙엽으로 가득 찬 숲과 산새들이 지저귀는 풍경은 그녀를 편하게 만드는 듯했다. 비록 저 숲 너머에서는 칼을 간 엘릴의 정찰대원들이 살벌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사실 엘리온 성채보다는 이곳이 더 마음이 편하군요. 호수의 귀부인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천국에 머물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에델레드는 생경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니까 이곳이 엘릴의 천국이란 말이지요.”
“그렇지요. 죽어도 다음 날이면 건강하게 되살아나니 언제든 강한 상대와 걱정 없이 힘을 겨룰 수 있으며, 성으로 돌아가면 멋진 풍경과 풍요로운 들판이 늘 펼쳐져 있습니다. 엘릴께서 주관하는 전쟁터에서는 그 어떤 음모나 비열한 짓도 할 수 없으니 이곳이 천국이지요.”
“그래도 살아서 성지를 가꾸는 것이…….”
리안나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았기에 에델레드의 말은 꽤 조심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교인이 천국에 입성했다면, 그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 죄를 지어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기껏 천국에 온 사람에게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바른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리안나의 말에서 괴리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우르반수스는 과거의 집합이다. 즉, 리안나가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이 풍경과 시간은, 실제로 존재했던 어느 시기라는 뜻이다. 되살아나는 것은 시간의 반복으로 생각할 수 있고.
“저는 영 마음에 안 드네요. 죽어도 전부 이파리가 되어버리고,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 식욕도 없을 테고, 다들 눈이 벌게져서 싸울 상대만 찾으러 다니는 게…….”
그때 헤사벨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평소 같으면 조용히 있었겠지만, 여전히 영혼 이탈에 의한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습이었다.
리안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아이작은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붉은 성배의 천국은 거대한 만찬장이다. 온갖 쾌락과 맛있는 음식, 향락이 즐비한 공간. 그리고 그 만찬장에 올라가는 고기들은 바로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다.
천국과 지옥은 한 공간 안에 있다.
‘그렇다면 엘릴의 지옥은…….’
아이작은 이 숲을 끊임없이 배회하는 기사들을 떠올렸다. 죽어도 되살아난다는 것은 영원히 죽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원히 투쟁해야 하지만, 영원히 강해질 수 없으며, 영원히 결핍과 굴욕에 시달리는 것만 남은 자들.
이 전장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승리자들의 천국이자, 패배자들의 지옥이다.
아이작은 리안나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리안나, 지금 이곳을 통치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아이작의 질문에 리안나는 별 이상한 것을 묻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엘릴이시지요. 엘릴의 천국을 다스리는 자가 엘릴 외에 또 있겠습니까?”
리안나의 대답에 아이작은 확신했다.
지금 이 시대는 아직 엘릴이 살아서 왕국을 통치하던 시기였다.
***
시간이 지나면서 영혼의 밀도가 우르반수스에 맞춰진 헤사벨은 원래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고, 에델레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런 부담 없이 칼드부흐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힘을 끌어 낸 상태를 유지했다.
덕분에 이후 이어지는 전투에서도 그들 역시 제법 도움이 되었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에델레드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거대한 곰을 향해 칼드부흐를 휘둘렀다. 칼드부흐를 통해 강화된 힘을 확인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개 곰 따위에게 엘릴의 성검을 휘두르는 것은 모기를 상대로 대포를 쏘는 꼴이다. 심지어 에델레드는 아이작의 이삭 검술을 쓰고 있었다.
퍼퍼퍼펑! 에델레드는 가볍게 휘둘렀을 뿐이지만 그 거대한 곰이 마치 베어 먹힌 듯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곰은 머리와 뒷다리만 남고, 몸통은 피죽이 되어 직경 20미터 반경에 반원을 그리며 흩뿌려졌다.
‘천사의 힘이라지만 정신 나간 위력이군.’
아이작도 그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검이 부여하는 힘이 에델레드의 검술도 강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아이작의 검술이 유난맞게 살기가 짙은 점도 한몫하고. 이런 공격을 전장에서 사람에게 날렸다간 얼마나 욕을 처먹을지 알 수 없었다.
“어, 음, 그러니까…….”
에델레드가 당황하는 사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석궁 화살 한 대가 날아갔다. 화살은 정확히 수풀 속에서 웅크린 채 에델레드의 목덜미를 노리던 늑대의 미간에 꽂혔다. 화살에 묻은 헤사벨의 피가 순식간에 늑대의 체액을 쥐어짜 으스러뜨렸다.
“오, 확실히 전체적으로 힘이 강해졌네요.”
사후세계의 충만한 기적이 모두의 힘을 어느 정도 강화시키고 있었다. 아이작의 힘이 강해진 영향도 있겠지만 눈에 띌 정도의 변화였다.
“그런데 여긴 뭐 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야생 짐승이 많죠? 창칼로 무장한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고.”
“왕실 사냥터입니다. 기사들이 힘을 키우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죠.”
리안나의 대답에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냥터라는 게 원래 그런 개념인가? 그냥 고기 구하러 오는 곳 아냐? 하지만 엘릴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개념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엘릴이 계신 곳을 향해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문득 리안나가 당연히 물었어야 하는 질문을 던졌다.
“분열 예식을 반납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단지 성지에 반납할 줄 알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탁을 들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이 먼 곳까지 오실 줄은…….”
[명천사 칼루리엔을 만나러 간다.]오월의 검이 대신 대답했다. 아이작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안 하겠지 싶었지만, 오월의 검은 심하게 눈치가 없는 검술 괴인이었다.
[칼루리엔이 엘릴을 감금하고 입을 틀어막고 있다. 놈을 처치하고 엘릴을 해방시킬 것이다. 너도 호수의 귀부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 합류하도록.]“예? 무슨…… 아니, 잠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명천사 칼루리엔을 해치시겠다구요? 안 됩니다!”
그녀는 경악하며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루미아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날이 잘 선 명검이었다. 문제는 오월의 검 주변에는 그런 명검들 수백 자루가 부러지고 녹슬고 이 빠진 채로 전리품이 되어 회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월의 검의 전리품 목록에 하나가 더 늘기 전에 아이작이 재빨리 나섰다.
“잠깐만요. 리안나. 설명할 수 있습…….”
“아뇨! 묵과할 수 없는 발언입니다! 엘릴을 감금? 그런 허황된 거짓말이 성지수호자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오월의 검은 손꼽히는 검객이라기에 기대했는데 이런 수작이라니! 실망스럽군요!”
리안나는 실망스러운 눈빛을 에델레드에게도 향했다.
“폐하, 설마 저 헛소리를 듣고 따라오신 겁니까? 칼드부흐를 열쇠로 삼아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나는…….”
에델레드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이작은 어쩔 수 없이 리안나의 뒤통수를 힐트로 내려쳤다. 그러나 소드마스터가 이런 공격에 당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아이작의 공격을 흘려내면서 칼을 뒤로 빼고, 아이작의 턱을 후려치려 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거대한 검에 꿰뚫렸다. 오월의 검이 결국 공격한 것이었다.
리안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관통한 검을 바라보았지만, 뒤이어 두 자루, 세 자루의 창과 검이 몸에 꽂혔다. 얼마나 강하게 꽂혔는지 그녀의 몸은 창칼에 고정되어 쓰러지지도 못했다.
“리안나!!”
에델레드가 경악하며 리안나를 붙잡으려 한 순간, 그녀의 몸이 황금색 낙엽이 되어 흩어져 내렸다. 에델레드는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소리쳤다.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이긴? 어차피 내일이면 되살아난다. 설득할 시간 같은 건 없어.]“아니, 하지만…….”
그제야 에델레드는 이곳이 천국이란 것을 떠올린 듯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그는 씨근거리며 오월의 검을 노려보려다가 그 눈동자를 마주치고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천사의 힘을 빌려도 감히 마주보기가 힘든 형상이었다.
하지만 오월의 검은 자상하게 더 말해주었다.
[그 아이는 호수의 귀부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귀부인을 설득할 수단으로 써보려 했지만, 반대로 결정적인 순간 우리를 배신할 확률이 높아. 그 애의 개인적인 품성을 보고 설득할 수 있다면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 그렇다면 배제할 뿐이다.]오월의 검의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논리’에 에델레드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작은 저 공감 능력 결핍된 사이코패스 천사가 중요한 같은 편 한 명을 추가로 적으로 돌려세우는 건 아닌가 싶어서 얼른 끼어들었다.
“폐하, 리안나는 어차피 되살아날 것이고, 그러면 천국에서 있었던 일 따위는 신경도 안 쓸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옳았다는 것만 증명해주면 됩니다. 감금된 엘릴을 해방하여 신탁을 받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더 있겠습니까?”
에델레드는 씨근거리다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원망 섞인 눈으로 아이작을 보며 말했다.
“내가 저 천사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오로지 선생님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저 역시 리안나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점만 알아주십시오.”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아이작은 겨우 에델레드를 달래고 오월의 검을 노려보았다.
다만 눈싸움을 벌이기엔 눈 크기가 너무 불리했기에,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저와 잠깐 따로 이야기 좀 하시죠.”
***
“앞으로 대화는 제가 알아서 다 할 테니 끼어들지 좀 마십시오.”
[시건방지구나. 엘릴의 종자들은 그 씨를 닮아서 그런가 불가사의한 역사를 이루어내는 경우가 많다. 방심해선 안 될 것들이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아이작은 오월의 검을 노려보았다.
“그럼 저는? 저는 믿을 만합니까? 제가 이름 없는 혼돈의 총애를 받는 사악한 괴물 혼종 튀기라고 하셨지요. 그럼 저는 어떻게 믿고 이런 임무를 맡기시는 겁니까?”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다. 그리고 믿고 맡긴다기보다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맡기는 것뿐이다.]“하.”
아이작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임무에 대해 다시 좀 생각해봐야겠군요. 애초에 제가 이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이유가 대체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