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마법사 칼루리엔 (3)
연기가 오월의 검을 감싼 순간 그녀의 불꽃이 시꺼멓게 변색되었다. 오월의 검은 연기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연기가 그녀의 불꽃을 급격하게 약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은 빛의 법전과의 연결점인 동시에, 엘릴의 우르반수스에서도 제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천이었다.
“빛의 법전 놈들이 언제고 이 난장판을 피울 줄 알았지! 내가 놀면서 기다릴 줄 알았느냐?”
아이작이었다면 연기의 정체가 ‘이산화탄소 가스’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알아차린 데서 끝일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오월의 검은 급격하게 약해지는 불꽃을 수습하며, 단 한 수에 힘을 집중했다.
칼루리엔은 섬뜩함을 느끼고 급히 몸을 움직였다.
펑. 다음 순간 칼루리엔은 오월의 검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몸 오른쪽이 완전히 날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월의 검은 그의 뒤쪽, 500여 미터 밖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칼루리엔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실소했다.
“그 둔중한 몸이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줄 몰랐군. 이때까지 인간들 걷는 속도에 맞춰서 총총 움직이길래.”
[그 늙고 비루한 몸뚱이가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줄 몰랐군. 평소에도 운동 따윈 안 할 거 같은데, 땀 좀 흘리셨나?]오월의 검의 말에 칼루리엔은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곁에 또 다른 칼루리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칼루리엔이 마법을 쓰자 상처를 입은 칼루리엔의 신체가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오월의 검도 꺼져가던 불꽃을 다시 되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불꽃은 아까 전처럼 극적으로 타오르지 못했다. 엘릴의 우르반수스 안에서는 불꽃을 재생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지상으로 향했다.
오월의 검이 준비한 진짜 비장의 무기는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서둘러줬으면 좋겠군, 성배기사…….’
***
유감스럽게도 아이작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감히 엘릴의 침소를 침입한 자들을 죽여라!”
피와 광기에 젖은 엘릴의 기사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통제되는 기사 무리였다.
그들이 일제히 상급 검술을 끌어내며 돌격을 개시하자 병력의 흐름은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는 일조차 없이 하나의 거대한 괴수가 되어 지면을 휩쓰는 듯한 형태가 되었다.
쿠쿠쿠쿠쿵! 아이작은 그 흐름을 끊기 위해 재빨리 먼저 달려들어 취약점을 타격했다. 기사들이 만들어낸 기세는 아이작을 잡아먹을 것처럼 순식간에 옥죄었다. 아이작의 몸에 순식간에 수많은 상처들이 생겨났지만, 그 안에서도 아이작은 빈틈을 포착했다.
아무리 견고한 사슬이라 해도 약한 부분이 부서지면 그대로 풀려 버린다.
아이작이 검기를 사용해 기사단의 취약점을 분쇄하자 맹렬하게 파도치던 기세가 와해 되었다. 그러나 맥을 끊었다 뿐이지, 그 많은 엘릴 기사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에델레드가 나서줘야 한다.’
칼드부흐를 사용하는 왕은 전략병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에델레드는 지금 그의 생애 최악의 적과 마주하고 있었다.
“수염도 안 자란 애송이가!”
선왕 알프레드가 광포한 웃음을 터뜨리며 거대한 양손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 난폭해 보이기만 하는 검격 하나하나에도 알데온 검술의 묘리가 담겨있어서, 칼드부흐를 든 에델레드조차도 발이 움푹 지면에 파고들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아이작이 보기에 에델레드의 움직임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알프레드의 힘이나 실력이 아닌, 그 자신의 두려움이었다.
‘쏠까요?’
아이작은 뛰쳐나가 그를 도울까 하다가 헤사벨의 의지를 듣고 멈춰 섰다. 헤사벨은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가장 유리한 전장으로 숨어든 것이다.
아이작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그녀에게 의지를 보냈다.
‘아니, 이건 에델레드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자신의 트라우마, 자신의 두려움, 자신의 죄의식과 마주하고 이겨 낼 수 있는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는다. 먼 미래를 보았을 때 에델레드가 성장할 기회를 막고 싶지 않았다.
‘이 벽을 넘어선다면…… 에델레드는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누가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는지, 그 자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엘릴 신도에게만 발현된다고 하지만, 아이작은 엘릴 신도가 아닌데도 각성했다.
어린 나이에 자질이 두드러진다고 하지만 빌론은 언데드가 된 뒤에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것은 어쩌면 검기가 엘릴 신도에게만 허용된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검술과 검기라는 것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직 엘릴 신도들 중에서만 소드마스터가 나오기 때문에 검기는 엘릴의 기적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애당초 엘릴 신도가 아닌 아이작이 어떻게 검기를 쓸 수 있는가?
어쩌면 검기를 각성하는 데는 아무도 모르는 다른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엘릴 신앙만 검기를 각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앙에서 자기 신도들을 검기를 ‘각성할 수 없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고.
다만 소드마스터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에델레드가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작은 알고 있었다.
‘에델레드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그리고…… 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이었지.’
이 싸움에서 이겨내면 에델레드는 극적인 성장을 이룰지도 모른다. 그게 단기간에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쿵, 쿵, 쿵!
그때 싸움에 또 다른 무리가 끼어들었다.
거대한 골렘 무리. 칼루리엔이 만들어낸 마법 하인들이었다.
작은 것은 5미터에서 큰 것은 10미터 이상까지도 이르는 놈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이작은 놈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달려갔다. 간신히 버텨내는 에델레드가 방해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이작이 빠르게 파고들자 골렘이 땅을 난타했다. 그때마다 진창이 된 땅이 움푹 패이고 흙탕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던 작은 놈을 향해 이삭 검술: 여덟 갈래를 펼쳤다. 검기를 두른 루앗딘 열쇠는 돌을 두부 자르듯이 베며 순식간에 수십 토막을 냈다.
‘이거…… 까다롭군.’
그러나 아이작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골렘은 짧은 순간 무너졌지만, 부서졌던 돌들은 바닥에 다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허공으로 떠올라 원래의 형상을 복구했다.
바위가 아니라 자갈로 이루어진 골렘이 되었을 뿐이었다. 골렘은 결국 마법으로 움직이는 무생물이었기에 그 내부의 마법의 촉매가 되는 물체를 부수기 전까지는 쓰러뜨릴 수 없었다.
복잡한 가공이 필요한 탓에 수준 낮은 골렘일수록 그 내부의 촉매가 커지기 마련인데, 이 골렘들은 마법사들의 시조, 드래곤이자 천사인 칼루리엔의 작품이다.
그렇게 잘게 토막 냈는데 촉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촉수를 쓰는 것도 소용없겠지. 촉수가 아무거나 잘 먹긴 해도 돌을 먹고 소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골렘은 돌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칼루리엔의 취미인지 뭔지 강철이나 티타늄, 심지어 용암으로 이루어진 골렘도 있었다.
아이작은 쓰게 웃으면서도 저 너머의 색채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심지어 오월의 검이 칼루리엔을 물리치지 못하면 이것들을 다 물리친 다음에 그가 천사를 상대해야 했다.
어쩌면 이 세계에 나타난 이래 최악의 상황.
‘즉, 오늘 나는 또 한 번 한계를 넘을 것이란 뜻이지.’
아이작은 자갈 골렘 위로 뛰어오르면서 루앗딘 열쇠를 치켜들고 검기를 세차게 뿜었다.
파르르르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너울치며 폭발하는 듯하다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검기는 자갈 골렘을 또 한 번 산산조각 내는 동시에, 그 자갈들이 흩어지지 않게 다시 구속하고, 또 한 번 분쇄했다.
이 과정이 단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일어났다.
산산이 부서져 모래가 된 파편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청록색의 돌이 바스라졌다. 골렘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전략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저 무작정 힘을 때려 박아 부순 것에 불과했다. 골렘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몇 번 반복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다만 그 나름의 효과는 거두었는데, 아이작을 끊임없이 포위하던 엘릴 기사들조차도 주춤한 것이었다.
죽어도 되살아나는 천국의 기사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은 아이작을 향해 묘한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수한 숫자의 적들, 심지어 희망조차 안 보이는 강대한 존재들을 앞두고 아이작은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었다. 그가 이교도건 엘릴의 침소에 침입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이작을 엘릴 신앙의 이상향에 가까운 존재로 겹쳐볼 뿐.
아이작은 멀리서 싸우던 에델레드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작은 보란 듯이 기사들과 에델레드를 향해 피식 웃어 주고는, 다른 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기사들의 반응으로 아이작은 희망을 보았다.
이 전투의 성공과 실패는 에델레드에게 달렸다.
***
“칼드부흐를 들고도 그 정도밖에 안 되다니, 약해빠진 놈이구나!”
쾅. 에델레드의 부친, 폭군 알프레드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공격을 퍼부었다. 그 비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완력과 속도는 소드마스터라는 격을 괜히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크윽……!”
에델레드는 어떻게든 칼드부흐를 휘둘러 알프레드의 공격을 받아치려고 했지만, 그는 결코 힘겨루기 따위를 받아 주지 않았다.
에델레드의 기량이 자신보다 한참 낮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에델레드가 칼드부흐를 통해 천사의 힘을 빌리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알프레드에 비하면 힘을 제외한 기량, 속도, 경험 모든 면에서 밀렸다. 알프레드가 든 검도 칼드부흐와 검날을 부딪치면서도 상하지 않는 것을 보면 평범한 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놈은 내 사냥감이다! 방해하지 마라!”
심지어 알프레드는 다른 기사들까지 배제하고 단독으로 에델레드를 상대했다.
에델레드는 그 모습에 기이함을 느꼈다.
‘내가 당신의 자식임을 모르시는 건가?’
알프레드가 죽은 것은 고작 몇 년 전이다. 에델레드를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에델레드에게 으레 했던 온갖 모멸적이고 자존감을 깎는 말들을 쏟아 놓지 않았다. 물론 그의 실력을 비웃기는 했지만, 그냥 전장에서 만난 기사를 도발하는 듯한 투였다.
어차피 부자간의 정에 호소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칼 앞에 그저 한 명의 기사로 섰다고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감히 나를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고 있느냐!”
퍽. 알프레드는 에델레드의 배를 걷어차 밀어 넘어뜨리려 했다. 넘어졌다면 즉시 올라타 그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겠지만, 에델레드는 가까스로 칼드부흐로 땅을 짚어 버텼다. 그의 호흡이 격해졌다. 두려움이 척추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던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광소를 터뜨리며 칼을 휘두르는 알프레드의 칼은 칼이 아니라 회초리였다. 천둥소리는 그의 폭언이자 비웃는 말들, 쏟아지는 빗물은 그의 폭정에 수군거리던 신하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에델레드는 자신이 지금 나이보다 점점 더 어려지는 것을 느꼈다.
더 약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더 비참해진 듯했다. 분명 그의 손에는 천사의 힘이 쥐어져 있는데, 그 힘은 이제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프레드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담겼다.
“칼드부흐를 내놔라! 그건 내 것이다!”
콰콰쾅! 그때 전장 한편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작이 다가오던 거대한 골렘을 일격에 박살 내는 소리였다. 천둥이 터지는 소리보다도 큰 굉음에 일대의 기사들조차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무너진 골렘의 돌무더기 위에서 승리감에 취하는 대신 다음 상대를 찾아 둘러볼 뿐이었다.
그야말로 전신(戰神).
패왕 엘릴의 현신이라 해도 좋을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그렇게 먼 거리에 있음에도 에델레드와 눈이 마주쳤다. 에델레드는 움찔했다. 동시에 수치심이 밀려왔다. 아이작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 작고 초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을 구하러 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작게 미소를 짓고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 정도 문제는 에델레드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듯.
그 일방적이고 단호한 믿음에 에델레드는 갑작스러운 전율이 찾아왔다.
“언제까지 한눈팔 생각이냐!”
알프레드는 에델레드를 향해 다시 한번 양손검을 내려쳤다.
알데온 검술의 극의. 견고한 성문조차도 일격에 박살 내는 상급 검술이 검기에 실려 발현되었다. 에델레드는 공성추가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쾅. 에델레드는 알프레드의 검을 가볍게 받아냈다.
동시에 오히려 그를 뒤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힘겨루기를 할 생각이 없었던 알프레드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어딘가 에델레드의 기세가 어딘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실제로 에델레드는 변화를 겪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