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마법사 칼루리엔 (6)
[아이작. 파수자의 등대를 켜라.]그 순간 들려온 오월의 검의 목소리에 아이작은 화들짝 놀랐다. 주변에 오월의 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급하게 다시 한번 아이작을 채근했다.
[아이작. 파수자의 등대를…….]아이작은 되묻는 대신 서둘러 파수자의 등대를 발동했다.
모든 것이 명료해짐과 동시에, 파수자의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허공에서 반짝거리는 불꽃들을 비추었다.
빛 아래 불꽃들은 작게 뭉쳐지면서 어떠한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제야 아이작은 오월의 검이 왜 자신을 지목해 이곳까지 데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파수자의 등대는 등대의 빛이 닿는 일대를 그 신앙의 사후세계로 바꾸지요. 살아남기 위한 방책으로 저를 데려온 거였군요.”
불멸하는 존재인 천사라 할지라도, 이단의 천국에서 죽으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 완전히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오월의 검은 파수자의 등대를 가지고 있는 아이작을 ‘세이브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귀여워진 오월의 검은 반짝거리며 아이작의 말에 대답했다.
[단순히 그것뿐만이라면 너를 데려오지 않았겠지.]오월의 검의 말에는 어쩐지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아이작은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어볼 틈이 없었다.
쿵, 쿠쿠쿠, 쿵! 오월의 검이 조각낸 산들이 추락하면서 일대에 지진과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선생님!”
때마침 아이작과 헤사벨의 추락을 본 에델레드가 황급히 달려왔다. 에델레드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헤사벨을 보고 움찔했지만 묻지 않았다.
“후폭풍이 옵니다! 조심하세요!”
대신 그는 칼드부흐의 힘으로 얻은 변화된 갑옷의 망토를 넓게 펼쳐 주변을 감쌌다. 부서진 산에서 튀어 오른 파편의 폭풍이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었다.
폭풍은 한참 주변을 진동시키다가 서서히 멎었다.
아이작은 일단 주변을 살폈다. 일단 가장 먼저 자신과 함께 추락한 헤사벨이었다. 자신 못지않게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겉보기엔 큰 상처 없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헤사벨. 상태는 괜찮나?”
“저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핏빛 날개의 헤사벨이라고 불러주시길.”
“다시 탄생하면 사춘기도 다시 오나? 아무튼 괜찮은 모양이군.”
아이작은 헤사벨이 추락의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헤사벨은 아이작이 신경도 안 쓰자 시무룩했지만, 아이작은 바로 에델레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에델레드 폐하, 폐하께서는…… 검기를 각성하신 모양이군요?”
아이작은 에델레드의 기세가 남달라진 것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그에게서 잘 갈무리된 힘과 절제된 기세가 느껴졌다. 더 이상 칼드부흐라는 몸에 맞지 않는 무기를 들고 휘둘러대던 어린아이 같지 않았다.
에델레드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버지와 맞설 때 갑자기…….”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의 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하지만 아이작은 에델레드의 이 변화가 칼드부흐와 엘릴의 천국이 만들어 낸 일시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지상으로 돌아갔을 때 칼드부흐도 없고 공기 중에 충만한 신성력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그 힘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지금의 깨달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에델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에델레드가 잘 해내리라고 믿었다.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천지 차이다. 원래부터 자질이 있으니 금방 지금의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은 에델레드의 망토에서 벗어나 언덕 위로 올라갔다.
주변은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랐다. 그저 낮은 구릉들만 가득하던 일대는 갑자기 생겨난 산과 절벽, 바위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그 충격만으로 남아 있던 골렘이나 마법 생물 따위들도 다 정리된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칼루리엔은? 오월의 검, 칼루리엔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었지. 하지만 죽이진 못했다.]오월의 검의 대답에 아이작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르르르…… 쿵.
그때 바위산이 무너져 내리며 그 손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푸른 비늘과 뾰족하게 솟은 여섯 갈래의 뿔, 수천 년 묵은 고목보다 깊게 파인 비늘들이 수 놓인 늙은 드래곤이었다.
한때는 신으로 숭배받던 명천사 칼루리엔이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척 봐도 엄청난 상처를 입고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 기세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이건 오월의 검이 진 걸로 봐야겠군.’
오월의 검은 아예 조각났다가 아이작 덕분에 주먹만 한 아담한 사이즈로 변했지만, 상대는 부상이 심해도 어쨌든 살아남았다.
칼루리엔의 마지막 수가 통한 것이다.
[나머지는 네 몫이다. 아이작.]“……제게 승산이 있나요?”
오월의 검은 냉엄하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아이작은 그럼 대체 왜 싸우라고 하는 거냐며 오월의 검을 쏘아보았지만, 오월의 검은 논리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지금이라면 승산이 있다. 하지만 칼루리엔이 지금 너희들의 싸움을 받아줄 리가 없지. 예상보다 네가 강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아마 이대로 도망쳤다가 힘을 회복하고 돌아올 거다.]“힘을 회복한다고요? 얼마나 걸리죠?”
[너희들을 다 죽일 정도의 힘이라면 반나절이면 충분하겠지.]“…….”
즉, 지금 당장이 아니면 칼루리엔을 제거할 기회 따윈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칼루리엔이 과연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 둘 힘이 자신들에게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저 거대한 덩치가 작정하고 날아오르면 잡지 못할 테니까.
그때 오월의 검이 해답을 내놓았다.
[나를 포식해라. 아이작.]“예?”
다행히 오월의 검은 자살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몸의 불꽃을 한껏 끌어모아 작은 불꽃을 더 만들어 냈다. 아이작은 그 타오르는 불꽃이 오월의 검이 간신히 끌어모은 정수임을 알 수 있었다.
[빛의 법전께서 내리신 불멸의 근원, ‘영광의 불꽃’ 일부다. 전부를 줄 수 없지만, 네 몸에 천사의 권능 일부가 스며들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아이작은 그 불꽃 속에서 가늠하기 힘든 신성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작고 빈곤해진 상태에서도 오월의 검은 여전히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다.
아이작이 그것을 허락하기도 전에, 오월의 검이 불꽃을 아이작에게 내밀었다.
[영광의 불꽃은 네 의지대로 발현되지만, 생명의 위기가 찾아와도 저절로 발현될 거다. 산 자의 몸이 영광의 불꽃을 오래 발현하면 신체에도 부담이 가니 조심해라.]오월의 검은 그것만을 전달하고 깜빡거리다가 이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는 당분간 회복에 전념할 테니, 네게…….]오월의 검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가 죽거나 사라졌다기보다는 그저 보이지 않는 다른 어떤 영역으로 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작은 오월의 검이 남긴 ‘영광의 불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이거 시키는 대로 해도 되는 건가? 이름 없는 혼돈이 또 발작하는 거 아냐?’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아니나 다를까 두고 보겠다는 듯 메시지가 전해져 왔다.
이건 독이다. 하지만 천사가 남겨 준 정수라니, 먹고 죽어도 좋을 만큼 탐나는 독이었다.
아이작은 고민 끝에 왼손으로 그 작은 불꽃을 품었다. 그의 왼손바닥이 입을 쩍 벌리며 작은 촉수 가닥을 뿜어 불꽃을 감쌌다.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가늠이 안 될 때는 이놈한테 시키고 보는 거지.’
촉수가 불꽃을 끌어당겨 입 안으로 넣은 순간, 손에서 시작된 열기가 확 몸 전체로 터지듯 번졌다. 아이작은 온몸이 들끓는 열기에 오월의 검이 자신을 죽이려고 수작을 부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작님!”
“선생님!”
아이작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에델레드와 헤사벨이 다가왔지만, 달아오른 쇠와 같은 열기에 당황해 물러섰다. 아이작도 그때쯤 되자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이건 오월의 검이 남긴 불꽃이 문제가 아니다. 촉수가 문제다.
‘이 미친 것이 불꽃을 한꺼번에 씹어먹으려고 하고 있어?!’
촉수는 오월의 검이 남긴 영광의 불꽃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화하는 대신, 아예 짓씹어 삼켜 단숨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짐승의 ‘포식’이었다.
문제는 그게 칼센의 갑옷을 감싼 축복 정도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천사를 만드는 신의 힘이라는 점이다. 폭탄을 물어뜯는 꼴이다.
아이작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일갈했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쩡. 아이작의 사념이 메아리친 순간 그의 권속들 전부가 그 목소리를 듣고 휘청거렸다. 먼 곳에 있는 헤카틀리나, 지힐렛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이 있던 헤사벨은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주변에 전혀 신경 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촉수는 아이작의 강력한 의지에 반응해 순간 불꽃을 물어뜯기를 멈췄다. 간신히 들끓어 오르던 열기가 잠깐 진정되자 아이작은 더욱 강한 의지로 촉수를 통제했다.
그제야 아이작은 이전에 황제 근위 기사 바슐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살기를 짐승같이 풀어 두지 말고 목줄을 쥐어 통제하라고.
지금까지는 짐승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작이 짐승의 목줄을 쥘 순간이 다가왔다.
‘안 돼, 먹지 마!’
잠깐, 이건 개를 훈련시키는 방법이었던가?
아이작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이 방법이 맞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촉수가 불꽃을 향해 야만스러운 식욕을 보일 때마다 내면의 목소리로 채찍질했다.
‘천천히, 천천히…….’
놀랍게도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촉수는 아이작과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다가 이내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아이작이 허락을 내리고서야 놈은 천천히 불꽃에 촉수를 휘감고 그것을 품었다.
자신의 내장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지만, 이제 아이작은 불꽃을 단숨에 먹어 치우려다 폭발하는 대신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이작은 지금 자신이 몸 안에 품은 이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았다.
‘한정된 힘이겠지만 최소한 칼드부흐 정도는 될지도.’
아이작은 루앗딘 열쇠를 꽉 쥐고 일어섰다.
천사의 힘도 얻었고, 체력도 회복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차례였다.
***
산이 추락하면서 만들어 낸 잔해의 규모는 엄청났지만, 그 곳에서 수백미터 짜리 날개 달린 도마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칼루리엔은 숨을 고르면서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입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것 같았다. 오월의 검이 새긴 6갈래의 커다란 상처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와 땅에 웅덩이를 이루며 고일 정도였고, 그 사이로 뼈와 장기들마저 보일 정도였다. 거칠게 숨을 토해 낼 때마다 입가의 벼락이 파직거리며 대기를 울렸다.
아이작은 칼루리엔의 상처가 제법 깊어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광의 불꽃을 사용하고, 에델레드와 헤사벨까지 돕는다면 제법 승산이 있을지도.’
아이작이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을 깨달은 건지 칼루리엔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거의 30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드래곤이 그들을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작은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그 드래곤이 명천사라면.
하지만 그저 강한 상대구나, 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뿐 예전만큼 천사를 상대할 때 느꼈던 짓이겨지는 듯한 압박감은 없었다.
어설프게라도 천사의 격을 얻은 덕분일 것이다.
‘부상이 심하지만 이곳은 결국 엘릴의 천국이다. 놈이 도망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최대한의 힘을 끌어모아 공격해야 해.’
“헤사벨, 에델레드. 아직 좀 더 싸울 수 있나?”
에델레드는 이미 장시간 싸웠고, 헤사벨 역시 자신의 신체 전체를 완전히 해체했다가 재구축한다는 기적을 발휘한 뒤다. 둘이 싸울 수 없다면 아이작은 혼자서라도 싸울 생각이었다. 오월의 검으로부터 정수를 받은 것은 자신뿐이지, 저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헤사벨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에델레드도 이어 동의의 뜻을 밝혔다. 그렇다 해도 아이작은 그들에게 큰 역할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패를 알아본 것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일단 더 이상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보다는 공격을 하면서 전략을 짜는 게 좋겠군.’
일단 아이작은 빠르게 달려들면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수가 뭐가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