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마법사 칼루리엔 (7)
쿠르르르르……!
아이작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하자 칼루리엔이 움직이면서 거대한 산이 무너져 내렸다. 말 그대로 쪼개지고 박살 난 산은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기괴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바위산을 비집고 나오는 칼루리엔의 외형도 만만찮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친 비늘과 뾰족하게 솟은 뿔들의 굴곡은, 그 커다란 덩치 때문에 움직이는 산맥처럼 보였다.
그때 칼루리엔이 입을 열었다
[잠깐, 말로 해결하자!]“누구 좋으라고?”
아이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쏘아붙였다.
불과 10분 전이었다면 혹했을지도 모르는 말이다. 하지만 시시각각 칼루리엔의 몸이 회복되는 와중에 시간을 끄는 수작질에 당해 줄 생각 따윈 없었다. 대화가 시작된다면, 놈의 팔다리를 잘라내고 목에 칼을 겨눈 다음이다.
칼루리엔은 아이작이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그대로 입을 벌렸다.
파지지지직! 입안에서 벼락이 날뛰며 응축되다가, 맹렬하게 터져 나왔다. 벼락의 줄기가 바위 계곡을 미친 듯이 튕겨 다니며 날뛰었다.
아이작은 재빨리 바위산 틈새로 몸을 숨기고 우회를 시작했다.
‘그나마 지형이 험악한 게 다행이군.’
달리기는 어렵지만 아이작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게 되면 별문제는 안 된다. 추락한 산의 잔해는 덩치가 큰 칼루리엔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반면, 아이작은 몸을 숨기거나 방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칼루리엔! 어찌하여 엘릴을 수호하는 의무를 저버리셨소!”
그 사이 정면에서 에델레드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원래대로라면 칼루리엔은 그를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에델레드의 격이 이목을 사로잡았다.
“정말 엘릴을 감금하여 왕국을 내전으로 몰아넣은 것이오? 그 무수한 엘릴의 기사들이 무의미한 피를 흘리도록 조장했단 말이오!”
에델레드는 소드마스터이자, 칼드부흐를 든 엘릴의 왕이다. 엘릴 왕국의 교황의 격을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인 셈이다.
칼루리엔은 천사의 업에 메여, 그의 외침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닥쳐라! 나는 네 놈들을 지키려고……!]쉭! 칼루리엔의 입이 벌어진 순간 헤사벨의 석궁 화살이 날아들었다. 아니, 그것은 보통의 화살과 달랐다. 헤사벨이 붉은 날개깃을 떼어 손가락뼈를 이어 붙여 만든 그 화살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신성을 품고 있었다.
자신의 분신 중 하나가 분열 예식의 통증을 겪었던 것을 떠올린 칼루리엔은 반사적으로 목을 틀어 그 화살을 피했다. 그러나 화살은 부드럽게 휘어지면서 궤도를 바꿔 기어코 칼루리엔의 목 안에 꽂혔다. 그 깃털에는 아이작이 미리 나눠주었던, ‘부패한 천사의 시독’이 발라져 있었다.
맹렬한 통증과 수포들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칼루리엔에게 상처가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목구멍에 작은 가시가 박혀 불편한 정도의 통증. 결코 칼루리엔에게 타격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 순간 산을 타고 오른 아이작이 칼루리엔의 머리 위로 뛰어내린 순간 이야기가 달라졌다. 칼루리엔은 다가오는 아이작에게서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분명 달려올 때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아이작의 눈과 머리가 새하얀 불꽃에 휩싸여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칼루리엔이 경악했다.
[영광의 불꽃! 오월의 검이 그렇게까지?]그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뛰어내리는 아이작을 향해 반사적으로 벼락 브레스를 토해 냈다. 그리고 아이작의 모습이 처음 봤을 때와 약간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의 갑옷이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
다음 순간 벼락 브레스가 그의 입안에 맺혀있던 헤사벨의 수포 덩어리를 건드렸다.
콰콰콰쾅! 칼루리엔의 벼락이 그대로 입안에서 터졌다. 미친 듯이 뻗어 나간 벼락 줄기가 온 사방으로 나뉘어 떨어졌다. 에델레드는 폭주하여 달려오는 벼락을 쳐내며 그 폭발의 정면에 있었을 아이작을 걱정했다.
칼루리엔은 입 안에서 터진 브레스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터진 수포를 타고 입안 곳곳에 벼락이 퍼져 나가면서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제는 입안에서도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칼루리엔은 자신의 뿔 위에 올라탄 아이작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칼루리엔의 입안에서 터진 벼락을 정면에서 함께 맞은 아이작은 상대적으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뿔에 매달린 상태로 곧바로 검기를 최대한 끌어내 칼루리엔의 미간을 향해 내리쳤다.
쩌어어어억! 세상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계곡 안에서 메아리쳤다.
***
[가아아아악!]칼루리엔은 천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토해 내며 몸부림쳤다. 아이작은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왼손의 촉수로 뿔에 간신히 매달려 버텼다.
그는 자신이 내려친 칼루리엔의 미간 부위를 보았다.
‘부족해.’
제대로 된 자세를 잡지 못하고 휘두른 탓에 힘이 부족했다. 칼루리엔의 비늘이 깨져 나갈 정도의 일격이긴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이겠지만, 당장 죽이니 살리니 하는 판국에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칼루리엔이 이렇게 폭주하는 것도 고통 때문보다는 분노 때문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개 같은 원숭이들! 은혜도 모르는 버러지들! 다 죽여버리겠다!]칼루리엔에게 제대로 타격을 입히려면 새로운 겉껍질을 건드릴 게 아니라, 이미 상처 입은 부위를 공략해야 한다. 아이작은 아직도 오월의 검에게 상처 입어 회복되지 않은 가슴 부위로 시선을 돌렸다. 칼루리엔은 전투가 시작된 이래 계속 몸을 납작 엎드리고, 날아오르지도 않고 있었다.
‘상처가 노출되는 걸 막으려는 거군.’
아무리 칼루리엔이라 해도 이미 상처 입은 부위를 다시 또 타격당한다면 버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헤사벨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 상처 부위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이미 경험에서 학습한 칼루리엔은 자신의 장기인 마법을 사용하여 화살 자체가 날아오는 것을 막아냈다.
텅, 터텅! 작은 방울 같은 방어막에 막힌 화살은 몇 번 궤적을 바꾸며 튕겨 나다 추력을 잃고 떨어졌다. 아이작은 그사이 미끄러지듯 칼루리엔의 몸을 타고 뛰어내렸다. 등 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칼루리엔이 그 모습을 얌전히 지켜봐 줄 이유가 없었다.
파지지지직! 칼루리엔의 뿔에서 시작된 벼락의 줄기가 날개 끝, 비늘 위를 타고 질주했다. 입안이 터져서 이제 벼락 브레스는 쓸 수 없었지만, 벼락을 발생시키는 능력은 여전히 그의 장기였다. 갑옷을 입은 아이작이 벼락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아이작은 벼락에 노출되자마자 휘청거리며 그의 등을 타고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아이작은 땅에 닿기 직전 착지하며 곧바로 칼루리엔의 배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뭐라고!]‘역시 통하는군.’
아이작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갑옷을 뒤덮은 저 너머의 색채를 바라보았다.
[태고의 마력(S): 세상에 질서가 아직 고정되어있지 않던 시절, 질서를 정리하던 관측자들의 힘이 담긴 마력.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거나 원소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아이작이 칼루리엔의 정수를 흡수하면서 얻은 이 능력으로 생명을 부여한 대상은 다름 아닌 ‘저 너머의 색채’ 일부였다. 저 너머의 색채가 단순히 눈속임용 환상을 넘어 물리적인 형상까지 취할 수 있게 되면서, 이것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쓸모 있어지겠다는 생각에서 착안했다.
물론 칼루리엔을 공격하기 직전 급박하게 내린 결정이었기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단 저 너머의 색채로 갑옷을 ‘착색’ 시킨 다음 비장의 수단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색채라면 어떤 변칙적인 공격에도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작의 갑옷 색이 바뀐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칼루리엔을 공격하는 와중에 폭발하는 벼락을 맞으면서 의외의 효과를 깨달았다.
‘……저 너머의 색채가 절연체일 줄이야.’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상 못 한 것이지만, 덕분에 칼루리엔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머리 위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칼루리엔의 피와 그의 가슴에 난 상처를 보았다. 오월의 검이 만든 그 상처는 전투 시작 전보다 확연히 아문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드러난 뼈와 내장은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작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붉은 선혈 속에서도 선명한 푸른색으로 맥박치듯 빛나는 보석이었다.
‘드래곤 하트.’
아이작의 몸이 기묘한 각도로 휘어졌다.
목표가 평소처럼 정면이 아닌 머리 위를 향해 있기 때문에 나온 각도였다. 저 너머의 색채가 안개처럼 터져 나가고, 촉수가 루앗딘 열쇠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면서 맥박치듯 꿈틀거렸다. 그 근섬유 조직이 한껏 부풀어 오른 순간, 아이작의 머리 위에서 영광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것만 벤다면……!’
그 순간 아이작의 몸이 굳었다. 중력이, 시간이, 대지가 아이작의 몸을 사로잡고 있었다.
칼루리엔은 지친 몸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마법과 마력을 동원해 아이작의 몸을 움켜쥐었다.
회복할 힘까지 쥐어짜 아이작을 구속한 것이다. 그 마법 자체만으로도 아이작의 몸을 쥐어 터뜨리기 충분했다. 아이작은 폐가 입 밖으로 빠져나오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칼루리엔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을 들어 올렸다.
[천사를, 우습게 보지 마라!!]칼루리엔은 피를 토하는 고함을 짜내며 아이작의 몸을 발톱으로 내리찍었다.
콰직. 섬뜩한 소리가 그의 손 아래서 터지고, 칼루리엔의 피보다도 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칼루리엔은 격한 신음을 토해 내며 자신의 유일한 약점을 노렸던 존재를 노려보았다. 명천사가 된 이래 자신을 이 정도로 몰아붙였던 필멸자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섬찟한 감각이 온몸을 장악했다.
‘설마? 설마 이걸로 끝이 아니라고?’
칼루리엔의 경악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작이 그의 손 아래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불사의 의지: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영혼을 육신에 붙들어 둡니다.]아이작은 빌론의 혼을 흡수하면서 일시적으로 얻었던 불사 능력을 지금 이곳에서 사용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피가 웅덩이만큼 고였지만, 그의 목숨은, 영혼은 여전히 육신에 붙어 있었고,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 마디 마디를 촉수들이 이어 붙이고 있었다.
지금 아이작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의지뿐이었다.
처음부터 짓밟힌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이작의 몸은 계획대로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검기를 뿜어냈다.
갑작스럽게 분출한 검기의 폭풍이 촉수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저 너머의 색채와 뒤섞인 검기의 폭풍이 칼루리엔의 손등과 발톱을 잘라내고 솟구쳤다. 터져 나온 검기는 벼락이 가지를 뻗듯 퍼져나가며 그의 상처 입은 몸을 난자했다.
천사의 비명이 천국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도살당하는 짐승의 비명이었다.
***
“커헉…….”
아이작은 한참 후에야 겨우 숨을 토해 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기절해 있던 것 같았다. 여전히 그가 살아 있는지 아닌지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불사의 의지는 그저 그의 목숨을 일시적으로 붙들어 놓을 뿐, 그사이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죽고 만다.
’아직 안 죽은 모양이군.‘
아이작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주변이 온통 칼루리엔의 피로 흥건했지만 오직 아이작의 주변만이 깨끗했다. 아이작은 자신이 기절한 사이 촉수가 칼루리엔의 피를 잔뜩 포식해서 아이작의 체력을 회복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칼루리엔의 신체(EX)’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신성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재생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